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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현 신부와 함께한 하루, 그리고 부산.

아침 8:30분 인천에 도착.

이스탄불에서 출발할 때부터 예정되어 있던 평택주민의 국방부 앞 기자회견 소식에 달려가지 않을수가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의 내용은 그 동안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기록을 모아 만든 "들이 운다"라는 책의 출간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눈이 있으면 보고 귀가 있으면 들어라"는 할머니의 절규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맞은 것은 시커먼 전투경찰일 뿐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매월 한 차례씩 진행되는 미 대사관 앞 집회를 위해 이동했습죠.

미대사관 앞에 도착해보니... 같은 날 있었던 농민집회에 모두 동원되어서인지, 소위 아는 얼굴인 종로서 정보과 형사들도 없고 처음 보는 전투경찰 부대만 있었습죠.


사전에 "들이 운다"를 미대사관에 전달할 것을 공지했었고 합의도 되었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미 대사관으로 향하는 길은 전투경찰에 의해 가로막혀 있었고 우회해서 가려는 신부님과 일행을 막아서는 통에 일이 커졌던것 같습니다.

나중에 전경 소대장이 한다는 말이... "차도를 행진하는 것은 불법이다"라고 하더군요.
인도를 안 막아서면 차도로 나갈 일도 없었을 것을... 게다가 행진을 한 것도 아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 모시고 책 한권 전하러 간다는 것이...

우리는 그날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습니다.

인도를 걸어갈 권리도 없고, 80먹은 노인네가 행여 테러라도 저지를까봐 움직이기만 하면 전경이 겹겹히 애워싸는 그런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국민이었다면 그런 대접을 받았겠습니까.

아니면, 그들이 대한민국 경찰이 아니었겠지요.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 경찰이 국민을 그런식으로 내동댕이 쳤겠습니까?

암튼 이때서야 나타난 구(라)과장(종로경찰서의 정보과장, 워낙에 구라를 잘 쳐서)은 오늘도 어김없이 진가를 보여줬습니다.

신부님을 속여서... 대표단만 간다면 미대사관에 갈수 있게 해주겠다고...
미 대사관을 경찰의 허가가 있어야 갈수 있는 것만으로도 열받는 상황이었지만, 책과 항의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그 의견을 받아들였지만...

대표단을 일차 전경의 벽을 통과시켜... 집회장과 대표단을 분리한 후...

기자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대표단은 채 50여미터도 가지 못한 채 다시 전경에 둘러 쌓인 거죠.

그래봐야... 인터넷 언론사의 기자들 몇 명이 있었을 뿐인데... 기자들을 우리손으로 내쫓으란것도 아니고...

구 과장이 진가가 나타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나중에 와서 하는 변명 비스무리한 것이... 구 과장의 밑에서 일하는 형사가 말이죠...

쟤네들은 우리 말 안 듣는다. 우리도 통제가 안돼 죽겠다.

뭐 이런 말만 늘어 놓더라구요.

결국 밤샘 농성을 하게 되었는데...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 여독도 풀리질 않아 먼저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 부산에 있습니다.

부산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조용합니다. 보수단체들에 의해 모든 집회장소를 선점당하고, 조그만한 집회라도 그 자체가 모두 불법이 되는 상황이어서 일겁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폭풍전의 고요함 같습니다.

얼마전 농민열사의 죽음과 엊그제 농민집회에서 도저히 경찰이라고 볼수 없는 진압(심지어 현금 65만원을 강도질 해 가기도 했다죠), 그리고 귀가하다 사망한 농민의 죽음으로 인해...

이곳의 집회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을것만 같습니다.

18일 집회도 집회지만, 19일 집회는 농민 집중집회로 잡혀 있었는데요.

18일 집회부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부산은 거의 반계엄 상황인것 같습니다.

해운대로 들어가는 길 자체가 막혀있으니까요.

이 곳에서 제가 할 일은 사진을 많이 찍어 올리는 일 같습니다.

지역에서 송희진 사무차장 한 명만 부산에 오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다 전달하진 못하겠지만, 또한 언론사들의 사진보다 못하겠지만...

지역에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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