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성민이 홈피(http://newworld.zoa.to)에서 퍼옴

 

나에게 특별한 사람 - 베트남에서 온 우리 엄마


 
안녕, 나는 하나라고 해. 나는 아홉 살이고 인천에 살고 있어. 오늘은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었는데, ‘자기에게 특별한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주는 편지를 쓰는 거야. 선생님 이야기를 듣고 난 금세 머릿속에 어떤 사람이 떠올랐어. 왜냐하면, 그 사람에 대해 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거든. 그 사람은 바로, 우리 엄마야.

 

특별한 우리 엄마

 

우리 엄마는 동남아시아에 있는 베트남에서 왔어. 엄마는 시장에 있는 ‘전주비빔밥’ 집에서 일을 해. 조금, 놀랐니? 우리 엄마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응, 그래. 우리 엄마는 외국 사람이야. 엄마는 눈이 동그랗고, 속눈썹이 길고, 피부가 까무잡잡해. 그리고 엄마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에 외출할 때는 내게도 꼭 목도리를 챙겨 주곤 해. 왜냐하면, 베트남은 1년 내내 여름이라서 엄마는 한국에 와서 겨울을 알게 되었거든.

 

하지만 난 평소에 ‘엄마는 외국사람’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지는 않아. 엄마는, 아직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한국말을 아주 잘 하거든. 가끔 엄마의 베트남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서 엄마가 베트남 말을 하는 걸 볼 때 ‘아 그렇지,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지.’하고 새삼 생각하게 돼. 그리고 엄마가 두 나라 말을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엄마는 참 똑똑하다고 생각했어.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그 나라 말을 배우는 건 참 어려운 일이잖아.

 

내 단짝 동무 예솔이는 우리 집에 놀러왔다가 엄마가 베트남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자기도 베트남 말을 배워서 노래를 불러보고 싶다고 했어. 그래서 이번 여름방학에는 엄마가 우리에게 베트남 노래 하나를 알려주기로 약속했단다. 예솔이와는 우리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기 때문에 좋은 점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나는 예솔이가 내 친구라는 것이 참 좋아.

 

외국 사람들, 그리고 한국 사람들

 

가끔씩 엄마가 외국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야. 그런데 나를 아주 화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을 때도 있어. 며칠 전 엄마와 슈퍼에 갔을 때 슈퍼아줌마는 엄마에게 “이거 오천 원이야. 어떻게 요리하는지 알기는 해?”라고 말했어. 다른 사람에게는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면서 엄마에게 반말을 하는 아줌마를 보고 나는 아주 화가 났어. 한국 사람이 아닌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아주 기분 나쁘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기도 해.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거나 식당에 갈 때 우리를 쳐다보고 귓속말을 하기도 하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은 한국 사람과 다르게 생긴 엄마의 모습이 신기한 모양이야. 하지만 누구라도 사람들이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숙덕숙덕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니?

 

아홉시 뉴스에 나온 엄마

 

그런데 며칠 전에 아주 놀라운 일이 생겼어. 아마 내 말을 믿기 어려울지도 몰라. 우리 엄마가 아홉시 뉴스에 나온 거야. 믿어지니?

 

텔레비전에서 나온 엄마는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하라!”고 외쳤어. 한국에 일하러 온 이주 노동자들 중에는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엄마처럼 동남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많이 있대. 그런데 몇몇 나쁜 사람들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혹독하게 일을 시키고, 월급도 안 주고, 심지어 때리기도 한다는 거야. 엄마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서 외쳤던 이유는 바로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였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엄마를 텔레비전에서 본 그 날은, 베트남에서 온 우리 엄마가 나에게 좀 더 특별해진 날이었어.

 

베트남 엄마와 함께 살아가기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나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어.


“하나야, 피부색이 다르고 겉모습이 달라도 사람들은 누구나 소중하단다. 일한 만큼 정당한 임금을 받고 살 권리가 똑같이 있지. 자기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또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지켜져야 할 권리야.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 받는 것은 옳지 않아. 한국 사람들이 안전하게 직장을 다니고, 일한 만큼 돈을 벌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하듯이 이주노동자들도 차별 없이 살아 갈 수 있어야 해. 하나야, 엄마는 하나가 엄마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기를 바란단다.”

 

사실, 엄마의 이야기는 나에게 좀 어려웠지만 난 엄마의 마지막 말에는 틀림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어. 우리 엄마는 다른 나라에서 온 ‘특이한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니까. 사람들이 저마다 생긴 모습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른 것처럼, 세상에는 여러 가족이 살고 있어. 한국 사람들이 함께 사는 가족도 있고, 베트남 사람인 엄마와 한국 사람인 아빠가 함께 사는 우리 가족이 있는 것처럼 말이야. 아마 세상에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나라에서 왔거나 우리 가족과는 다른 모습으로 모여 사는 가족들이 많이 있을 거야. 그래서 가족의 모습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OX퀴즈처럼 정답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열두 가지 색연필 색깔처럼 다 다르다고 생각해.

 

짝꿍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야기도 “이건 비밀이야.”라고 이야기하면 틀림없이 약속을 지켜주는 사람. 베트남 쌀국수를 정말 맛있게 만드는 사람. 작고 천천히, 그리고 용기 있게 말하는 사람. 그래서 내 동무들에게도 소개시켜주고 싶은 멋진 사람. 나에게 특별한 사람 이 사람 - 베트남에서 온, 우리 엄마야.


*  이 글에 나온 이야기는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원유순 지음, 중앙출판사 펴냄)의 일부를 새롭게 바꾼 것입니다.  <인권오름 5월 3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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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07 16:20 2006/06/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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