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박준성 선생(그냥 형이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자고 한 적도 없고 선생이 암과 싸우는 그 힘든 시기에 뭐 하나 힘이 되는 표현조차 제대로 못한 처지라...)이 암 투병 중에 "나무를 다루면서 버리고 비우고 낮추면서 내 아픔을 좀 더 나은 삶의 옹이로 삼자고 다독거"리며 틈틈이 만든 목공예 작품들을 전시한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마음뿐이었는데 선생의 글을 보면서 거꾸로 참 많은 위로와 힘을 얻는다.
누가 지방 사람들 위해 전시회장 들러서 작품 사진들 올려주면 고맙겠는데...
때 : 2006년 5월 19일부터
곳 : 하남 샘치과 복도 전시실
(샘치과 : 하남 시청 맞은편 길건너 오른쪽)
- 목공예전을 열기까지-
30여 년 역사를 공부하고 강의해온 사람이 목공예전을 하다니, 쑥스럽고 어색합니다.
목공예를 한 지 얼마나 되냐고 묻습니다. 초등학교 때 칼로 배를 만들고 낫으로 팽이를 깎던 때로부터 치면 40여 년이 됩니다. 칼과 낫은 전문가 못지않게 갈고 쓸 수 있다고 자부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 하남에 있는 대안학교 푸른숲학교를 세우고 학부모들과 함께 책상이며 온갖 교구재를 만들었습니다. 틈날 때마다 학교에 들려 끌과 망치로 장승을 파보기도 하였습니다. 내면 밑바닥에 잠수해 있던, 나무를 다뤄보고 싶다는 욕망이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차분히 앉아 나무를 만지고 있을 짬이 없었습니다.
2004년 말 간암 판정을 받고 처음으로 입원을 했습니다. 퇴원한 뒤 ‘투병’의 수단으로 취미를 찾아야 했습니다. 조금씩 맛은 보았던 그림 붓글씨 키타 카메라를 가지고 견주다가 목공예를 택했습니다. 두 차례 더 입원하고, 간암이 임파선으로 전이되었다고 방사선 치료를 받는 사이에도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면 종로 3가에 있는 한양목공예학원에 나가 목공예를 배웠습니다. 치료 경과가 좋았지만, 때때로 불안감에 휩싸일 때가 있고 우울증세가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한나절씩 나무를 파면서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것이 그렇듯이 목공예도 버리고, 비우고, 낮추어야 새로운 형체가 생겨납니다. 나무의 옹이와 상채기도 잘 다루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릴 수 있습니다. 나무를 다루면서 버리고 비우고 낮추면서 내 아픔을 좀 더 나은 삶의 옹이로 삼자고 다독거렸습니다.
돌이켜보니 기본 연습 작품들을 끝내고 만든 작품들에 알게 모르게 내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어떻든 열심히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10장생도’에 담았고, 술 마시고 싶은 심정을 누르며 술 마시던 기억을 소나무 아래서 생황을 부는 모습에 담아보기도 하고, 바위처럼 물처럼 꿋꿋하되 부드럽게 아래로 아래로 낮추자며 선비가 망연히 물을 보고 있는 그림을 새겨도 보고, 소나무 밑에서 명상하는 노인을 새기면서 버릴 수 없는 대안의 꿈을 떠올렸습니다.
목공예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부터는 여기저기 다니며 목공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암이 소개해줘 만난 나무들이 끊임없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며 힘을 주었습니다.
몸이 안 좋으면 다 나쁜가
죽음의 문턱이 눈앞에 다가와도
겁낼 일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볼 수 있는
오히려 소중한 축복이다
준비도 못한 채 비명횡사하는 사람들
얼마나 많은가
하던 일 놓는다고 다 손해인가
쉬어야 산다면
이 일 말고 또 다른 하고 싶던 일들
죽을 때까지 아쉽게 안고 가기보다
지금여기서 해 볼 수 있는
고마운 기회다
친구들아, 바삐 가려 말게
빨리 가서 빠른 것은 죽음 뿐
갈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고 멈칫거린다고
다 나쁜 것은 아닐세
희망의 씨앗 뿌리고 보듬어 열매를 맺으려면
햇볕에 쪼이고 달빛에 닦아
겨울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는
세월을 기다려야 한다네
천천히 가세
쉬었다 가세
‘간암에서 임파선으로 전이된 환자가 좋아지는 경우가 드문데 경과가 좋습니다“는 소리를 듣게 될 때까지 2년 반 동안 암과 친구하며 놀았던 시간, 그 사이에 만들었던 작품은 주로 나를 추스르고 나를 돌아보는 것들이었습니다. 몸이 좋아지면서 날마다 나무와 친구하며 노는 시간도 조금씩 줄어듭니다. 이제는 나를 넘어 다시 사람과 사회와 역사에 눈을 돌리고 그러한 뜻을 작품에 담으려고 합니다. 부끄럽지만 이 전시회를 그 전환점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이 전시회를 빌어 내가 목공예를 가르치는 푸른숲학교 아이들과 푸른교육공동체 목공예교실에 오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역사’만이 아니라 목공예도 훌륭한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저를 끌어 앉히곤 했습니다. ‘선생님’의 전시회가 목공예 공부에 디딤돌이 되기를 바랍니다.
목공예를 가르쳐 주신 태완목공예연구소 김용춘 소장님과 목공예와 우리문화사를 연결시키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경기문화재단 기전문화대학에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절벽처럼 자신 앞에 다가온 암이나 건강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분들에게 ‘역사’를 이탈한 저의 이러한 목공예 전시회가 조그만 희망의 씨앗이라도 되었으면 합니다.(2006. 5.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