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6/12/19 08:10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이 영화를 누가 복수영화가 아니라고 했던가? 박찬욱은 마치 자기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영화와는 '다른' 영화를 만든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 영화는 복수영화다. 심지어 이 세상에서 당하지 않고 복수하면서 살려면 뭐가 필요한지(또는 필요없는지)까지 친절히(!) 가르쳐 주는 영화다.

 

 

정신병인지 아닌지의 기준은 사회적 역할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한다. 자신이 사이보그라고 생각해서, 사이보그는 밥먹으면 고장나니까 밥을 먹지 않고 하라는 조립은 안하고 충전한다고 엄하게 조립라인에서 손목 긋고 전선을 혈관에 연결하는 영군은 그래서 정신병 환자이다.

 

그리고 (틀림없이 부모들의 과도한 욕심때문에) 빈 소년소녀 합창단에 가려고 하다 오디션에 떨어진 이후 서른살이 될때까지 요들송을 부르는 그녀나, 결혼 못하고 혼자 살다가 소를 사랑하게 된 농촌총각이나, 엄마에 대한 분리 불안과 오이디푸스적 감수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관심을 끌기위한) 도둑질을 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일순이나, 그저 먹기만 하는 왕곱단이나.... 모두 사회적 기능에 뭔가 문제가 생겨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이다.

 

그리고 영군이 사이보그라는 망상을 가지게 된 결정적 계기인 혹독한 시집살이(!) 땜시(정신과 의사들은 참으로 편한 공식이 있나보다. ㅠㅠ) 자신이 쥐인줄 알고(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난 영군의 엄마가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 무만 갈갈이처럼 긁어먹다 정신병원으로 끌려간 영군의 할머니나...

 

사회(!)가 보기에 문제가 있는 정신병 환자들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환자'로 불리우지는 않지만 '환자'인 사람들이 많다.

 

 

첫장면 찰리채플린의 모던타임즈를 연상시키는 초록색과 붉은색의 보색대비가 인상적인 그 공간은 옆에서 일하던 영군이 손목을 칼로 긋고 거기에 전선줄을 꼽고 쓰러져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은 팍팍한 공간이다. 옆에서 일하는 사람이 쓰러져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정상일까?

 

영군의 엄마는 영군의 할머니가 스스로를 쥐라고 생각한다고 무만 먹어서 방안에서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면서 정신병원에 보내버린다. 사이보그라는 영군에게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만 안하면, 다른 사람들이 모르면 괜찮다고 이야기한다. 이건 괜찮은 걸까? 영군의 엄마가 영군의 할머니를 쥐망상이 있다고 이야기한것 자체가 영군 엄마의 망상인건 아닐까?

 

영군의 정신과 주치의는 친절해보이는 여자의사이다. 그러나 그녀는 환자들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얻어내고자 할때 가식적인 웃음을 짓는다. 환자들을 이해하는 척만하는 하지만 결국에는 환자는 환자일뿐 뭔가를 얻어내야하는 대상으로만 이해하면서 기술적으로 필요한 미소를 짓는데만 익숙한 그녀는 과연 정상인걸까? 

 

이 영화는 사회가 규정한 환자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은 모든 것을 훔칠수 있는 '일순'이다. 그들을 지금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필요없는 것들과 고통받는 것들을 훔쳐주는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순은 사이보그지만 (먹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한 순간도 손에서 놓지 않던 '엄마'를 그녀의 '마음'에 옮김으로서 자신도 치유된다.

 

나랑 다르다고, 이상하다고 배척하고 버리고 그 사람의 모든것을 부정하는 것이아니라, 그저 안타까운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판단하는 일이 사람과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다르다고' 배척받고 사회로 부터 격리된 사람들이 그들을 격리시킨 사람들에 대한 단호한 복수극이다.

 

사이보그인 영군은 복수를 위해 다음과 같은 칠거지악을 이야기한다. 이런 사회적 기능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에 복수하기 위해서 필요없는(또는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런 칠거지악을 어려서부터 배우면서 자라온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려면 이러한 칠거지악을 알아야 가능한것 아닐까?

 

1. 동정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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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마움 금지

7. 망설임 금지 

 



(그림 클릭해서 크게 보심 더 좋다. 쓰여있는 내용과 그림이 조화가... 가히 예술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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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루냐 2006/12/19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공감!! 저는 아무 얘기도 못(안) 듣고 이 영화를 봤는데, 그냥 저절로 <복수>를 또 다뤘구나,했어요.
    그런데 또 재밌었던 건, 이 영화 보고 나올 때 사람들의 반응이었다는..훗
    "뭐야 이 영화, 돈 아깝다"부터 어떤 (까탈스러워 보이는) 아주머니가 같이 이 영화를 보자고 한 아들을 나무라며 "세상에, 세상에나.. 넌 어쩜 이런 영화를 보자고 한 거냐? 어후 참, 세상에... (기가 막혀 돌아가시기 직전)"이라고 하는 것도 듣고... (아이는 기가 죽어 민망해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통쾌했더랍니다. 세상에 (저를 비롯해서) 환자가 얼마나 많은데요.

  2. 에밀리오 2006/12/19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그렇군요 >_< 임수정씨 보려고 영화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더더욱 봐야겠군요 ^^

  3. 넝쿨 2006/12/19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음 급작스럽게 보고싶군요+_+! 그런뒈, 맨 마지막 그림에 묶여있는 고냥이가 너무 귀여워요ㅠ_ㅠ 왜 난 이런것만 보일까엉엉

  4. 지나가다가 2006/12/19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싸이보그를 보고 기대도 안했지만 적잖이 실망하던 차에
    이렇게 명쾌한 해석을 해주시니...감탄일 따름입니다.

  5. 리우스 2006/12/19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양이그림 너무 시러라....(고양이들한테 미안해서 어쩌나....)

  6. 해미 2006/12/20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루냐/ 그 엄마도 참... 아들이 불쌍해요.
    에밀리오/ 임수정의 연기는 정말 최고에요. 완소! 임수정! 하지만 정지훈의 연기는 사실 별거 없어요. 드라마와 대략 비슷한 그저그런 정도...
    넝쿨/ 저두 그 그림들이 인상에 남았어요. 고양이가 넘 이쁘게 그려졌죠?
    지나가다가/ 저두 별 기대안하고 봤어요. 왠지 유치찬란할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이리 저리 들었던 생각을 써 놓고 보니 왠지 좋은 영화같은 환상이... ㅋㅋ
    리우스/ 그림 내용이 진짜 장난 아니죠? 수채화풍의 예쁜 그림에 담아놓은 내용 꼬라지하고는...

  7. 2006/12/25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 아침 블로그 순회중임. ^^

  8. 해미 2006/12/26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황/ 성탄절 아침 블로그 순회라니... ㅎㅎ 늦었지만 즐거운 성탄! 참 글고 박사논문 통과하심도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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