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4/12/21 17:57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이주마다 글을 한편씩 토해낸게 일년여... 내년부터는 그렇게 안해도 된다는 소리에 반갑기고 하지만 한편 아쉽기도 하다. 2주에 한번씩 노동운동의 또는 사회운동의 현안들을 잡아 '건강'이란 화두를 풀기 위해 고민을 하고 정리를 해 온 시간들이 내게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느슨한 인간인지라 긴장이 걸리지 않으면 이렇게 주기적으로 뭔가를 정리하고 글을 써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아쉬움은 아마도 이런 불안함에 기인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오늘 2004년의 마지막 원고를 넘겼다. 아래글은 마지막 바로 전 글이다. ------------------------------------------------------------------------------------- 지금이 조선말이 아닌가 헤깔린다. ‘개방’을 막자는, 아니 막아야만 한다는 이야기가 ‘대세’를 거스르고 세계화를 막는 촌스러운 주장으로 비판 받는다. 대세를 따르고 살지는 않았지만 이 땅의 많은 의사들이 찬성하는 의료시장개방을 나는 ‘여전히’ 반대한다. 마치 2000년의 끔찍하기만 했던 ‘의사파업’처럼... 내가 그리고 나의 동지들이 ‘의료시장개방’을 반대하는 절실한 이유는 공적이어야하는 ‘의료’를 ‘시장’에 내어 놓음으로 인해 ‘사유화’하려는 자본의 탐욕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이윤창출구조가 위기에 처하면서 심지어 인간의 ‘건강’마저도 상품으로 만들어 시장에서 사고 팔겠다는 그들의 파렴치함이 싫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11월 16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수익성 보장을 통해 외국 병원의 경제자유구역 내 유치가 가능해지도록 `경제자유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했다. 내용 중에는 외국인 및 외국법인이 주체가 돼 경제자유구역 안에 설립하는 종합병원, 일반병원, 치과병원, 요양병원은 내국인을 대상으로 의료업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추가적으로 △외국인 병원의 영리법인화 △국민건강보험 의무 제외 △의료비 5-7배 인상 인정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외국병원 유치를 이유로 특구 내의 병원에는 국내 병원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는 공공의료에 대한 책임 규제 조항들이 완화되는 것이다.


현재 의료법에 의하면 의료인은 1인이 하나의 의료기관 개설만이 가능하다. 다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법령이 정한 공공기관과 비영리법인이 의료법인을 개설할 수 있다. 경제자유구역안으로 한정짓는다고는 하지만 의료라는 새로운 시장의 단 맛을 본 자본들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형평성 운운하면서 자신들도 영리법인을 세울 수 있게 해달라고 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일이다. 전경련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기업도시법을 보면, 영리병원을 기업이 개설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대자본들이 영리법인화된 병원을 소유하게 되면서 의료는 완전한 상품이 되어 버린다. 높은 진료비를 책정하고 최대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노동강도가 높아지면서 진료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 영리법인 병원의 환자들의 사망률이 더 높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병원들의 영리법인화가 이루어지고 나면 민간보험의 도입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 영리법인들에서 고급진료가 이루어지면 이러한 재정은 공적인 건강보험재정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게 된다. 현재 건강보험은 필수적인 것을 부담하게 되고, 더 나은 시설이나 추가 서비스를 원할 때 추가 비용을 내는 보충형 시스템이다. 그런데 최고급이라는 이름의 의료상품들이 확산되게 되면 건강보험의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진료 행위가 늘어날 것이고, 이러한 진료 행위의 확산은 전 국민 의료보험인 우리나라에서는 필연적으로 민간보험의 추가가입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납부의 의무에 따라 건강보험을 들면서 급여가 되지 않는 비싼 병원의 행위에 대해 지불할 수 있는 보험을 따로 들어야 하는 이중 부담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다 보면 민간보험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게 될 것이고 의료제도는 완전한 사적영역의 것이 된다. 이는 결국 가뜩이나 취약한 한국의 공공의료를 붕괴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OECD 평균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75%인데 반해 한국은 8%에 불과해 대다수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낮은 수준이다. 공적 의료보장률이 절반에도 못 미치는 현실에서 병원의 영리법인화를 통한 기업의 적극적인 의료시장으로의 인입과 그들의 이윤을 보장해주기 위한 민간보험의 도입은 결국 쥐꼬리만한 공공의료를 절멸시키는 과정으로 나아갈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수의 부유층을 위한 고급진료가 아니다. 그들은 이미 원한다면 비행기 타고 외국에 나가 최상의 병원에서 치료받고 돌아올 정도의 능력이 된다. 추운 날씨에 서울역에서 죽어가는 노숙자가 있고, 뼈 빠지게 일해서 골병들고 과로사로 죽고, 적은 인원으로 빡세게 일하다가 사고로 세상을 뜨는 노동자가 있고, 돈이 없어 쪽방에서 끼니도 못 때우고 살아가는 노인들을 위한 의료가 필요하다. 돈 없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을 절벽으로 몰아내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싸워야 한다. 우리는 누구나 건강할 권리가 있다. 세계화의 거대한 물결속에 우리의 ‘건강’을 시장에 내어 놓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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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1 17:57 2004/12/21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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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yjoo 2004/12/23 1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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