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공단의 인천근로자건강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오웰이 만났던 노동자들을 진료실에서 만나는 느낌은 여전히 짠하다. 하지만 무료로 운영되는 시설에 들르는 골병든 식당 아주머니, 청소 아주머니, 정리해고된 실직자, 조그마한 식당을 운영하는 주인, 심각한 스트레스 증상을 호소하는 젊은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지금은 좋다.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지금은 약간 답답하지만 천천히 어떻게 그들한테 다가갈 수 있을지 찬찬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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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다. 책을 읽는 내내 좌절감도 느꼈다. 조지오웰의 유명한 문장력은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아 글을 읽기 쉽게 만들고 그 생생함을 피부로 느끼게 했지만 그만큼 좌절이 더 커졌다. 20세기 초반의 영국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리고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소위 사회주의자 진영의 모습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심지어 더 악화된 것 같아서 책을 계속 읽기 어려웠다. 또한 소위 ‘진보’를 외치는 또는 외쳤던 자들의 요즈음의 행보가 겹쳐지자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희망을 만들어야 하는 것인가?’와 ‘희망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현실이 무거운 만큼 책의 내용이 무겁게 느껴졌다.
익히 알려진 데로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이 북부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삶을 바라보고 관찰한 기록이라면 뒷부분은 파시즘의 준동을 막기 위해 사회주의자의 특성에 대한 성찰에서부터 시작하여 이를 바탕으로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선동문에 가깝다.
1부에 드러난 노동자들의 삶은 빈곤하고 불건강한 지금의 한국의 노동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으로 가계를 꾸려가고 새벽부터 밤까지 일을 하고 적절한 식사를 하지도 못하고 살 곳이 없어서 떠돌고 그나마 살고 있는 곳의 주거환경은 엉망인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오히려 1930년대의 영국의 재개발 정책은 세입자가 이사 갈 집이 없으면 강제 철거 명령을 내릴 수 없도록 되어 있으니 용산에서 철거민들을 사지로 몰아넣은 2010년대의 한국보다 오히려 나았다. 지금 어느 작가가 청소노동자나 이주노동자, 비정규노동자, 영세 자영업자의 삶을 들여다보는 참여관찰 연구를 한다면 그 보고서는 아마 오웰의 작업과 대동소이한 것이 될 것이 자명했다.
2부에서 오웰은 사회주의자(사회주의가 아니다)의 자세와 생활양식에 대한 비판을 통해 사회주의가 대중적이지 못한 이유를 분석한다. 또한 수입으로만 계급을 나눌 수는 없고 성장 과정에서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일정한 생활양식과 문화적 측면이 계급을 나누는 주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배운’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들과 함께 섞이지 않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저급한 것으로 또는 개선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한 사회주의는 지식인들이 향유하는 또 하나의 문화일 뿐이다. 실업과 빈곤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노숙인을 만나거나 지나치면서 그들의 냄새를 맡게 되었을 때 느끼는 불쾌함이 사라져야 진정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사회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 또는 (학생) 운동권적 용어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많은 노동자들이 등을 돌리게 하는 것이라는 그의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오웰은 이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파시즘에 대항하기 위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즉 사회주의의 바탕이 되는 이상인 ‘정의와 자유’를 목표로 하여 노동자들의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문제, 예를 들어 실업자의 삶의 문제나 곤경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으며 ‘과연 같은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회주의자의 외관과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기계적 발전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즉 기계적 발전으로 모든 인간이 일을 안 하고 사는 것이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현재의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억압에 대한 피억압자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오웰이 제시한 방향은 타당한 면이 많다. 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현실에서 그들의 언어로 다양한 삶을 살피면서 모든 종류의 억압에 저항하지 않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은 1930년대의 영국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그의 솔직한 성찰 속에서도 노동자들이 주체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파시즘의 광풍이 불던 시기에 아쉽기만 한 지식인 사회주의자들의 행보에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이러한 고민을 가린 것일 수도 있지만 여전히 지식인들이 ‘무언가를 해 주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아쉬웠다.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에 대한 관찰에서 시작한 만큼 지식인들이 노동자들 속에 들어가 그들을 관찰한 후 노동자들의 언어와 양식으로 표현을 대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의 필요를 인지하고 이를 이야기하고 실천을 도모하기 위해서 사회주의가 또는 사회주의 정당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나아갈 바를 제시해주기를 바란 것은 나의 과도한 욕심이었을까?
이 책을 읽고 있던 와중에 만났던 한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보통 밤 9시에 퇴근한다고 했다. 집에 남편하고 같이 살고 있는데 남편은 정해진 일이 없어서 노는 날이 많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준비를 해놓고 하루 종일 일을 한 후 퇴근해서 남편 밥 차려주고 뒷정리하고 자면 하루가 끝난다고 했다. 이 아주머니는 당뇨가 너무 심했는데 병원에 갈 시간이 없다고 했다. 병원에 가려면 조퇴를 해야 하는데 일이 너무 많고 사람이 적어서 잠깐 자리비우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이 공장의 아주머니들은 점심시간에만 화장실에 간다고 했다. “제가 빠지면 라인에서 눈치 보이는데 상담 안 받으면 안 돼요? 선생님이 그냥 약을 주시면 안 돼요?”라고 쳐다보는데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시급이 깎일지도 모르는)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퇴가 꼭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써 주는 것뿐이었다. 이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영국의 노동자들이 잠깐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위건 부두에 갔던 것처럼 지금 한국의 노동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고 건강해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의 다양한 운동에 대해 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책을 덮은 후에도 계속 머릿속에 남는 의문이다.
<건강형평성 학회 소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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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2011/04/05 17: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인데...
지식인들이 아무리 노동자들 편에 서서 글을 써도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글을 쓸 수는 없을 거 같아요. 지식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에 대해 글을 쓴다면 모를까.
어떤 글에서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는 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쓰는 수밖엔 없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