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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폼페이오 방북 ‘전격 취소’ 미스터리... 백악관 막후에서 무슨 일이?

핵심 정책결정권자 모두 백악관 불려들어가 통보받아... 이번 ‘뒤집기’ 카드는 실패 가능성 농후

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8-08-26 14:51:21
수정 2018-08-26 15: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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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지명된 스티븐 리건, 성 김 필리핀주재 대사, 앤드류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을 백악관으로 불려 대북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지명된 스티븐 리건, 성 김 필리핀주재 대사, 앤드류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을 백악관으로 불려 대북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 트위터
 
 

“하룻밤 지나고 나니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바뀌었다. 정치뿐만 아니라, 외교관계도 자신의 동물적인 감각을 자신하는 그에게 누군가가 보고나 전화를 한 것이 분명하다”

지난 24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하루 만에 전격 취소한 배경에 관해 워싱턴의 한 소식통이 전한 말이다. 누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게 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지만, 그날 오전 백악관이 급박하게 돌아간 것은 분명하다.

24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호출을 받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해 새로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지명된 스티븐 리건, 그동안 대북 실무회담 총책을 맡았던 성 김 필리핀주재 대사, 그리고 북한과 막후 실무협상을 주도하는 앤드류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이 모두 백악관으로 불려들어갔다.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이 25일, 공개한 그날 백악관 회의 사진을 보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물론 존 켈리 비서실장을 포함해 백악관 대변인 등 주요 참모진도 모두 배석했다. 여기서 트럼프 대통령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전격 방북 취소를 거의 통보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지명된 스티븐 리건, 성 김 필리핀주재 대사, 앤드류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을 백악관으로 불려 대북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 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대북정책 특별대표에 지명된 스티븐 리건, 성 김 필리핀주재 대사, 앤드류 김 중앙정보국(CIA) 코리아미션센터장 등을 백악관으로 불려 대북 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 국장트위터

주요 외신과 외교 소식통의 전언에 따르면, 백악관은 물론 국무부의 주요 핵심 실무자들도 급작스러운 전격 취소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특히, 방북하고 돌아오는 길에 일본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해 방북 내용을 설명하려고 준비하던 국무부 관계자들은 거의 멍하니 언론 발표를 보고 취소 사실을 알아야 했다.

백악관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들도 전혀 전격 취소 발표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했다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이던 존 볼턴 보좌관도 스피커폰을 통해 백악관 회의에 참여해서 트럼프 대통령의 통보를 들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의문이 남는다. 대통령이 중요한 외교관계 문제를 급히 결정하는데, 만약 중앙정보국도 백악관 NSC도 국무부도 전혀 몰랐다면, 누가 미국 대통령을 움직였을까? 가장 유력한 가설은 존 볼턴 보좌관을 중심으로 하는 대북 강경파 일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번에도 ‘빈손 귀국’을 한다면, 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협박(?)했다는 추론마저 난무한다.

북미관계 자랑하던 트럼프, 하루 만에 스스로 궁지에 빠진 꼴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북한과 중국에 양보를 더 얻어내기 위해 또 ‘판 뒤집기’의 충격 전략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이번에는 별로 통하지 않을 것 같다. 불과 하루 전까지도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랑하던 그가 “비핵화와 관련해 충분한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던 미 주류 언론들은 이 점을 놓치지 않고 있다. “북미협상이 교착된 좌절감의 첫 공개적인 신호”라는 비판이 가세하면서, 온통 트럼프 대통령의 그동안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칼럼들이 넘쳐난다.

북·중의 양보를 얻기 위해 던진 승부수라고 해도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기도 전에 내부 비판의 치명상을 입고 있는 셈이다. 이 치명상을 각오하고도 북·중 양국에서 양보를 받아낼 가능성도 크지 않다. 당장 중국 외교부는 중국 탓을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무책임하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북한도 북미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의 사정하고는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나름대로 핵 실험장 폭파는 물론 미군 유해까지 송환해가면서 북미공동성명을 이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똑같은 양보는 하지 않고 초강수를 계속 두는 미국에 이제는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 취소 하루 전까지도 북한과 김정은 위원장에 관해 칭찬과 친밀감 일변도로 북미관계를 설명해 왔다는 것이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중단하면서, 북한 칭찬으로 일관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대북 강경책을 구사하려면, 자신의 기존 말을 다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온통 미 주류 언론들이 ‘차라리 안 가는 것이 잘했다’고 보도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는 말에 불과하다. 미 의회전문 매체 ‘더 힐’은 이에 관해 25일,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 방북 취소는 ‘실수’였다고 비판했다.

미 전문매체들 “트럼프 결정은 ‘실수’... 한국인들 ‘우려’ 더 커져”

이 매체는 “폼페이오 장관은 평양에 가서 김정은 위원장의 진짜 의도를 테스트해야 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과 대화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골치 아픈 문제는 더욱 뒤로 미뤘다(kick the can farther down the road)는 이유를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더 힐’은 또 다른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미국이 무언가를 얻으려고 한다면,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비핵화라는 큰 것을 원한다면, ‘평화 협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큰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관해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5일, 장문의 기사를 통해 한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염려(anxiety)’가 확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선언은 보장하지 않으면서, 단지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한 것을 자신의 ‘승리(trophy)’라고 치부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매체는 또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에 압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협력이 필요한 시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 전쟁을 개시한 것에 실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은 이는 첫 만남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급한 개인 성격과 관계가 있다고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는 특히, 한국 매체의 한 전문기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국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개인의 성격과는 관계없이 그가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를 지지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지금은 그가 그런 능력이 있는지 점점 의문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매체는 또 다른 한국인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를 가져온다면, 그의 접근법이나 태도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은 없다”면서 “하지만 지난해가 재앙(disaster)이었듯이 지금도 미래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희망은 있지만, 어쩌면 다시 험악한(nasty) 상황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19년 전, 트럼프 “지금 협상하지 않으면, 큰 어려움 직면할 것” 예언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부터 19년 전인 지난 1999년 10월, 자신의 자서전 출판을 계기로 미 NBC 방송에 출연해 “북한의 핵 개발을 멈추려면, 지금 협상을 해야 한다”며 “북한이 우리(미국)가 협상에 진지하다고 생각하면, 협상에 응할 것이고 문제가 될 일이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99년 11월 미 CNN 방송에 출연해 “지금 북한과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년 후에는 더 엄청나게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99년 11월 미 CNN 방송에 출연해 “지금 북한과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년 후에는 더 엄청나게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미 CNN 방송화면 캡처

그는 같은 해 11월에도 미 CNN 방송에 출연해 미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지금 북한과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5년 후에는 더 엄청나게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결국, 북한과의 협상은 고사하고 더욱 강경책을 펼친 조지 W. 부시 정권의 등장으로 현재까지 그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다.

한마디로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폼페이오 방북 전격 취소’ 카드는 불발탄을 넘어 트럼프 자신의 발목에서 터질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미국 국내적으로는 자신의 말도 책임지지 못하고 대북 정책에 관해 ‘오만(hubris)’에 가득 찼음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봇물을 이룬다.

한국 정부(외교부)도 공식적으로는 “아쉽게 생각한다”고 발표했지만, 늘 ‘긴밀 공조’를 강조하던 미 백악관의 처사의 당혹함을 넘어 혼란에 빠지고 있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 되새겨 들어야 할 말은 어쩌면 바로 자신이 19년 전에 스스로 했던 “지금 북한과 협상을 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엄청나게 큰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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