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남-북-미 여성교류가 정례적으로 이뤄진다면
<만남> 멜라니 버비어 조지타운대 ‘여성·평화·안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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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필자, 멜라니 버비어 조지타운대 ‘여성·평화·안보연구소’ 소장, 고유경 WILPF 컨설턴트, 조영미 한국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 [사진제공 - 김정수] |
위의 행사를 마치고 4월 14일(수) 워싱턴D.C. 조지타운대 ‘여성·평화·안보연구소’ 멜라니 버비어(Melanee Verveer) 소장을 만났다. WILPF 컨설턴트인 고유경씨가 버비어 소장이 CSW 기간 중에 유엔을 방문한다는 정보를 얻고 이메일로 면담을 요청했는데, 선뜻 답변을 주어 만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멜라니 버비어 소장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영부인 힐러리 클린턴의 비서실장, 오바마 행정부 당시 ‘글로벌 여성 이슈’ 대사를 역임(2010-2014)하며 한국에도 수차례 방문한 분이다. 현재 민주당의 핵심 인사는 아니지만, 미국 워싱턴 주류 사회의 한반도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차원에서, 한반도 평화와 북미 비핵화 협상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는 기회로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1시간 정도 맨해튼의 한 카페에서 필자와 고유경, 조영미(한국여성평화운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과 함께 만났다. 이 모임에서 나눈 대화를 요약하여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 4.27 판문점선언 이후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평화적 전환에 대해 국제사회에 홍보할 필요성
버비어 소장은 글로벌 여성·평화·안보 의제에 관한 전문가이고 한국도 여러 번 방문한 인사이지만, 정작 지난 해 한반도에서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이후 변화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했다.
특히 남북 간 이뤄진 군사적 긴장 완화, 북한이 싱가포르 선언 이후 이행한 조처들, 남북한 시민사회의 교류 내용에 대해 거의 모를 뿐 아니라, 한반도에 대한 정보는 거의 북한이탈주민 그룹을 통해 얻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한반도에서 진행되는 긍정적 변화 보다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한반도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버비어 소장 뿐 아니라, 워싱턴 정가에서 유통되는 대개의 한반도 관련 정보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정부나 의회, 그리고 시민사회가 워싱턴에 한반도에서 남북관계 사이에 벌어지는 다양한 접촉과 변화의 내용을 전달하는 노력이 더 확산되어야 함을 느끼게 하였다. 필자가 활동하는 평화여성회 역시 앞으로 유엔과 워싱턴의 오피니언 리더들에게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다.
2. 북-미 신뢰형성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은? people to people 소통 강화를 통하여
필자는 싱가포르 선언에서 북미 사이의 신뢰형성이 비핵화 프로세스의 기반이 된다는 점을 두 정상이 확인했음을 인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북미 사이의 신뢰가 형성될 수 있을 지, 미국의 워싱턴의 주류 인사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며 질문을 했다.
그의 답변은 다름 아닌 지속적인 ‘people to people’ 차원의 교류, 그리고 ‘step by step & give and take’ 방식의 협상 진행만이 북미의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본다고 답변했다. 미국이 적대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때 그 외의 방법으로는 성공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면서, 여성평화운동도 민간 차원에서 진행해 온 남북여성교류의 지평을 북-미 여성 교류 혹은 남-북-미 여성교류로 확장시키는 기회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히 워싱턴에서 남-북-미 여성교류가 정례적으로 이뤄진다면, 북미가 신뢰를 형성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비핵화협상에서 단계적, 동시적 접근이라는 북한의 입장과 일괄적 타결이라는 미국의 입장이 충돌하고 또 비핵화 시간에 대한 인식이 다른 상황에서 버비어 소장의 주장과 북한의 단계적, 동시적 접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비핵화 로드맵을 작성하고 마일스톤을 놓는 데 대한 양측의 작업이 어떻게 시작되어야 할지, 특별히 하노이정상회담이 별 성과 없이 막을 내린 터라 좀 더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3. ‘여성·평화·안보에 관한 유엔안보리결의 1325호’ 유엔 규범을 통한 남-북-미 여성들의 평화연대 모색의 가능성 확인
2000년 10월 31일 유엔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한국 정부도 2014년부터 채택한 유엔안보리 결의안 1325호 국가행동계획은 여성·평화·안보 (Women, Peace, Security, WPS) 의제에 관한 유엔과 국제사회의 규범으로, 분쟁 하 여성인권 보호와 예방, 평화 과정과 협상에 여성 참여, 재건 과정에 성인지적 관점 도입 등을 제시하고 있다.
버비어 소장은 WPS 의제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차원에서는, 특별히 예방과 참여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의견을 제시했다. 즉, 여성과 소녀, 아동, 취약계층의 인권 침해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무력분쟁 자체를 예방하는 활동, 한반도 평화과정에 성인지적 관점을 도입하고 여성들이 평화협상에의 의미 있는 참여에 대한 논의가 남- 북-미 여성들 사이에 공통의 의제로 설정될 수 있으며, 1325 결의안과 국가행동계획이 남-북-미 정부와 시민사회를 연결시키는 플랫폼으로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뉴욕에서 열린 ‘Korea Peace Now! End the Korean War!’ 캠페인은 한국의 여성평화운동이 지난 1991~3년 4회에 걸쳐 동경-서울-평양-동경에서 진행한 ‘아세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남-북-일본 여성교류), 2000년대의 남북여성교류, 2007~12년까지 진행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동북아 여성평화회의, 2015~18년까지 진행한 여성평화걷기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를 위한 남북한 여성들, 그리고 국제여성평화운동이 노력해 온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여성들의 평화 만들기 활동의 맥을 잇고 있으며, 향후 한반도 평화과정에서 지속가능한 평화, 민주주의적 평화, 성평등한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하겠다.
지금까지 여성들은 정부 간 평화협상 보다는 남북여성교류 혹은 국제여성평화 운동 차원의 한반도 평화 만들기 활동을 전개해 왔다. 이제부터, 남북의 여성들은 한반도 평화 과정과 평화협정에 성인지적 관점을 반영하여 남북여성들의 실질적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의미 있는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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