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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붓으로 쓴 삼천리 독보(獨步)의 꿈"

인권운동 사랑방·인권재단 사람,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선(線) 위에 선(立)' 전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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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8  00:3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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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운동 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이 주관한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선(線) 위에 선(立)' 장기수 9인의 서예작품 전시회가 17일 개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교도소에 들어가면 재소자는 혼자 걸을 수가 없습니다. 교도관이 반드시 뒤에 따라야 합니다. 독보를 못한다고 합니다. 지금도 반쪽밖에 독보를 못하는 형편이지만 그때 삼천리를 독보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팔도일행'(八道一行)이라고 썼습니다."

인권운동 사랑방과 인권재단 사람이 주관한 '0.75평에서 붓을 든 사람들-선(線) 위에 선(立)' 장기수 9인의 전시회가 개막된 17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라이프러리 아카이브.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대전교도소에서 20년동안 옥고를 치르다 1988년 6.29선언 1주년때 석방된 오병철 선생은 이날 개막 행사에서 1987년 옥중에서 쓰고 이날 전시된 '팔도일행'을 이같이 풀이해주었다.

   
▲ 오병철 선생이 붓으로 쓴 '삼천리 독보'의 꿈에 대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전시된 서예작품은 류낙진 선생, 박성준 선생, 석달윤 선생, 신영복 선생, 안승억 선생, 오병철 선생, 이구영 선생, 이명직 선생, 이준태 선생 등 아홉 분의 작품 50점.

20여년 전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모았던 것으로 옥중 작도 있고 출소 후 쓴 작품도 있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작품은 오병철 선생이 올해 봄 신현칠 선생의 시 제목을 쓴 '오늘이 바로 그날인가'.

오병철 선생이 쓰던 붓과 벼루, 신영복 선생이 감옥안에서 새긴 전각은 물론 감옥에서 공부하며 쓰던 책자 등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 오병철 선생의 작품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이명직 선생의 작품들. '송심난정', '소나무같이 꿋꿋한 마음 난초같은 유연한 성품'이 눈에 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국전 3회, 광주시, 전라남도 미술대전에 수차례 입선하기도 했던 류낙진(1928~2005) 선생이 쓴 '從善如流(종선여류), 선을 따름이 물 흐르듯 한다', '心淸事達(심청사달), 마음이 깨끗해야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백련강(百鍊剛), 쇠는 백번을 두드려야 단단해진다'는 작품은 20년 넘는 세월이 흐르도록 여전한 가르침을 주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로부터 익힌 붓글씨를 감옥 서예반에서 만난 성주표, 조병호 선생과 옥중 스승인 이구영선생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배운 신영복(1941~2016) 선생의 옥중작인 '회우보인(會友輔仁), 벗을 모아 어짐을 더한다), '한겨레 한나라'를 비롯해 세계인권선언 전문 등 여러 작품도 볼 수 있다.

옥중에서 신영복, 이명직, 오병철 선생에게 한학과 서예를 가르친 이구영(1920~2006)선생은 '晴耕夜讀(청경야독), 날이 밝으면 논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 '自天佑之(자천우지),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는 글도 전시되어 있다.

이명직(1926~2012)선생이 쓴 3.1독립선언서가 병풍으로 전시되었으며, '兼治別亂(겸치별난), 겸애하면 화평해지고 차별하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寬則得衆(관즉득중),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을 얻는다', '德必有隣(덕필유린), 덕이 있으면 따르는 사람이 있어 외롭지 않다', '松心蘭性(송심난성), 소나무 같이 꿋꿋한 마음 난초 같은 유연한 성품' 등 가장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성준(1940~ ), 안승억(1935~ ), 오병철(1937~ ) 선생은 직접 전시장에 나와 인사도 나누고 근황을 소개하기도 했으나 거동이 불편한 석달윤(1932~ )선생과 연락이 끊긴 이준태(1943~ ?) 선생은 과거 작품으로만 볼 수 있다.

1981년 안동 일가족간첩사건으로 무고한 8년 감옥살이를 한 안승억 선생은 재심청구 5년만인 오는 5월 16일 첫 재심재판이 열리게 됐다는 소식을 알리면서 참석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박성준 선생은 최근 어떤 계기에 '언제 가장 슬펐나'라는 질문을 받고 "우리의 운명을 해결할 방도를 자신있게 말 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슬펐다"는 답을 했다고 하면서, "앞으로 대학노트 한권 분량에 나는 이렇게 본다는 견해를 정리해 살아 생전 치르는 장례식을 준비해 여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이 소책자를 예물로 드리겠다"고 근황과 심경을 밝히기도 했다.

전시는 오는 30일까지, 매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행되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문의는 라이프러리 아카이브(02-363-5855, 02-725-2080)

   
▲ 선 위에 선.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 오병철 선생이 사용하던 붓과 머루, 신영복 선생이 새긴 전각들도 전시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정-18일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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