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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고통받지 않고 살 권리가 있다"

양심수의 어머니 고 임기란 여사 추모의 밤 열려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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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02  17: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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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저녁 '양심수의 어머니 고 임기란 여사 민주사회장' 추도식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학생운동을 하던 저는 1990년부터 1995년까지 옥살이를 했습니다. 고향인 전남 고흥에 살던 어머니는 막내 아들이 잡혀갔다고 하니까 당시 서울 남산 안기부로 무작정 달려왔습니다. 그 촌 아낙네를 '갑석이 엄마'라고 부르며 제가 나오기 전까지, 그리고 그후에도 한참동안 돌보아 주셨던 분이 임기란 어머니셨습니다. 전대협과 전대협동우회를 대표해 어머니에게 추도사를 올립니다."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 전대협 4기 의장을 지낸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1일 저녁 '양심수의 어머니 고 임기란여사 민주사회장' 추도식장에서 눈시울을 붉히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 힘겹게 입을 뗐다.

지난 6월 30일 오전 숙환으로 별세한 임기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초대 상임의장의 추도식이 1일 저녁 7시 빈소인 서울 여의도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됐다. 

30여년 가까운 세월동안 보랏빛 스카프를 두르고 민가협의 이름으로 손 내밀어 품어주었던 비전향장기수, 양심수, 고문 및 조작간첩 피해자 등이 추도식장에 모여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 송갑석 의원이 전대협과 전대협 동우회를 대표해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30년 경북 포항에서 출생한 고인은 1984년 전두환정권 퇴진을 외치며 민정당사 점거농성을 벌이던 막내아들 박신철씨가 구속되자 같은 처지의 어머니들과 만나 이듬해 12월 민가협을 창립하고 초대 상임의장이 되었다.

이후 네차례 민가협 상임의장과 고문을 맡아 1993년 '국가보안법 철폐와 양심수 석방을 위한 목요집회'를 시작으로 27년간 보랏빛 스카프를 두르고 매주 집회에 참석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과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을 역임하며 국가보안법 등 반민주악법 철폐운동, 비전향장기수 석방운동, 양심수 석방운동, 고문피해자 및 조작간첩 진상규명 활동,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 등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활동에 매진해 왔다.

그러던 중 2010년 11월부터 관절염과 허리통증이 심해져 문밖 출입을 못하게 되었고 2015년 초부터는 줄곧 입원생활을 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2017년 12월 제23회 불교인권상 수상 당시 소감발표를 위해 준비한 비디오 영상이 공개되었다. 영상속에서 고인은 "억울한 사람들이 있지 않나. 불우한 사람들이 있지 않나 늘 살피게 된다. 민가협에서 이렇게 고생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했으며 슬퍼하기도 많이 했다"고 회고하면서 "옳은 것을 옳다고 하는 그 정신은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 고인의 막내아들 박신철씨가 추모의밤 참가자들에게 가족을 대표해 인사를 전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신철씨는 "물론 시작은 이 막내아들이 치안본부에 끌려가 생사를 알 수 없었던 상황에서 어머니들이 모여서 된 일이지만, 돌이켜보면 어머니에게 이미 상당한 치매가 와서 말씀을 하기 어려웠던 2017년 12월에 제가 그 수상소감을 찍으면서 깜짝 놀랐던 것이 바로 그게 어머니의 힘이었구나하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당신이 아프신 와중에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 없는지,  불우한 사람이 없는지를 돌아보셨다. 어머니는 그 어떤 누구라도 어떤 이유에서든 불우하거나 고통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있고, 또 그럴 힘이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항상 어머니는 다수에 의해 탄압받고, 편견때문에 힘들어 한 불우했던 이웃에 대해 이유를 따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어 "1985년부터 점점 민가협 활동을 많이 해 나가셨는데, 평소 많은 지병이 있던 어머니가 그게 다 없어질 정도로 더 건강해지셨고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서 더 행복한 모습을 보았다. 가족들로서는 어머니가 민가협을 만들고 활동하신데 대해 많이 행복했다"고 하면서 "더불어 저희 가족들이 부족하고 용기가 없고 시간이 되지 않아서 늘 거리에 있는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는데, 여긴 계신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셨기 때문에 항상 깊은 고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는데도 어머니를 계속 기억해주셔서 가족으로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

   
▲ 왼쪽부터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장남수 유가협 회장, 정현진 제일교회 목사,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추모사에서 "숨막히던 독재의 시절, 어머님께서는 독재에 맞서 투쟁하는 모든 이들의 든든한 뒷배로 이땅의 민주화운동을 지탱해 주셨습니다. 6월항쟁 이후, 운동이 후퇴하고 많은 이들이 떠나가던 시절, 어머님께서는 겨울의 소나무처럼 꿋꿋이 버티시며 양심수들과 운동가들의 뒤를 지켜주셨습니다. 그 어떤 정치적 계산도 없이, 탄압받는 이들을 몸으로 보호하시고, 독재자와 부역자들, '이제 투쟁이 끝났다' 말하는 이들을 준엄히 꾸짖으시던 어머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너무나 그립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도숙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추모시를 통해 "어머니는 민주주의의 어머니로 투사들의 어머니로 참 괜찮은 삶이었습니다/어머니는 인권이라는 고민을 세상으로 끌고나온 참 괜찮은 삶이엉ㅆ습니다/어머니는 발로 뛰며 세상의 희망을 만들어낸 참 괜찮은 삶이었습니다..."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권오헌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조순덕 민가협 상임의장,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 회장, 제일교회 정현진 목사,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도 차례로 추모의 인사와 함께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 노래패 '우리나라'는 '남김없는 사랑'을 추모곡으로 불러주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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