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조선은 화성포-19형 시험발사 직후인 2024년 10월 31일 시험발사에 관한 보도를 내더니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11월 1일 시험발사에 관한 보도를 또다시 냈다. 이제껏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수없이 진행해온 조선에서 시험발사에 관한 보도를 이틀에 걸쳐 두 차례 내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차례 연속 보도된 내용을 살펴보자.
1차 보도에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명칭을 화성포-19형이라고 명기하지 않고, 그냥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시험발사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도 밝히지 않았다. 대륙간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전략미사일 능력의 최신 기록을 갱신”했고, “전략적 억제력의 현대성과 신뢰성을 과시”했다고 간략하게 보도했다.
1차 보도와 확연히 다르게, 2차 보도에서는 대륙간 탄도미사일 명칭을 화성포-19형으로 명기했고, 화성포-19형이 7,687.5킬로미터까지 상승했고, 1,001.2킬로미터를 날아갔으며, 비행시간은 1시간 25분 56초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했다.
의문이 생긴다. 조선은 왜 화성포-19형 시험발사에 관한 보도를 이틀에 걸쳐 두 차례 보도했을까? 1차 보도 내용과 2차 보도 내용을 견주어보면, 화성포-19형 시험발사 직후 시험발사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1차 보도가 나왔고, 시험발사가 성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 2차 보도가 나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의문은 좀 더 깊어진다. 조선에서 화성포-19형 시험발사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왜 그처럼 시간이 걸렸을까? 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무심히 지나쳤지만, 이 물음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조선이 화성포-19형 시험발사의 성공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이유를 파악해야, 화성포-19형 시험발사의 목적을 알 수 있고, 그 목적이 어떻게 달성되었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제원과 성능지표는 국가기밀이므로,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은 화성포-19형 시험발사에서 얻어낸 성능 지표 중에서 정점 고도, 비행거리, 비행시간만 공개했다. 화성포-19형의 정점 고도, 비행거리, 비행시간은 그 시험발사 과정을 면밀히 주시한 주변 나라들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으므로 기밀 사항으로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조선이 화성포-19형 시험발사에서 얻었지만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중요한 성능지표는 무엇인가? 이 의문을 풀어줄 실마리는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부장이 2023년 2월 20일에 발표한 담화에 들어있다. 이 담화는 2023년 2월 18일 화성포-15형 대륙간 탄도미사일 발사훈련이 진행된 직후에 발표되었다.
2023년 2월 18일 조선이 화성포-15형 시험발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화성포-15형 발사훈련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이 화성포-15형 시험발사를 진행한 날은 2017년 11월 29일이다. 2023년 2월 18일에 진행된 화성포-15형 발사훈련은, 조선이 화성포-15형 시험발사를 2017년에 끝내고 그 미사일을 실전 배치해 운용해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조선이 화성포-15형을 실전 배치한 것은, 대륙간 탄도미사일 재진입체(reentry vehicle)를 대기권에 진입시키는 최종 시험을 끝내고 그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재진입체를 대기권에 진입시키는 최종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미완성이므로 실전에 배치될 수 없다.
화성포-15형 재진입체를 대기권에 진입시키는 최종 시험을 육안으로 관측한 사람들이 있다. 2017년 11월 29일 오전 4시경 동해 한일 중간수역에 있는 동해퇴(東海堆) 어장에서 오징어를 잡던 일본 이시까와(石川)현 어선 승선자들은 “유성보다 큰” 섬광체가 바다로 떨어지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는데, 그 섬광체가 바로 화성포-15형 재진입체다. 대기권 밖으로 나갔던 재진입체가 정점 고도를 지나 지구를 향해 떨어지면서 대기권에 진입할 때 엄청난 대기 마찰이 일어난다. 그렇게 되면 재진입체 표면에 극고열과 극고압이 발생해 표면이 타들어 가면서 눈부신 섬광을 발하게 된다.
그런데 김여정 부부장의 2023년 2월 20일 담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조선이 재진입체 기술을 완성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그 담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분명히 하지만 우리는 (재진입체에 관한) 만족한 기술과 능력을 보유했으며 이제는 그 역량 숫자를 늘이는 데 주력하는 것만 남아있다”라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읽어보면, 재진입체 기술과 능력을 보유한 조선이 재진입체의 “역량 숫자를 늘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재진입체의 역량 숫자를 늘이는 기술은 무엇인가?
김여정 부부장이 2023년 2월 20일 담화를 발표하기 약 한 달 전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가 평양에서 진행되었다. 조선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 회의에서 “신속한 핵반격 능력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또 다른 대륙간 탄도미사일 체계를 개발할 데 대한 과업이 제시되었다”라고 한다. 그 회의에서 제시된 “또 다른 대륙간 탄도미사일 체계를 개발할 데 대한 과업”은 김여정 부부장이 담화에서 언급한 재진입체의 역량 숫자를 늘이는 기술을 개발하는 과업이다. 그 과업은 2021년 1월 8일 김정은 총비서가 조선로동당 제8차 대회 사업총화 보고에서 언급한 “다탄두 개별유도기술”을 개발하는 과업이다. 당시 김정은 총비서는 “다탄두 개별유도기술을 더욱 완성하기 위한 연구사업을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김정은 총비서가 언급한 다탄두 개별유도기술은 ‘다중 각개 목표 재진입체(multiple independently-targetable reentry vehicle)’를 개발하는 기술이다. 미 제국에서는 다중 각개 목표 재진입체라는 영어단어에서 첫 철자를 따서 ‘MIRV’라는 약칭을 쓴다. 조선에서는 MIRV를 개별 기동 재진입체라고 번역했다.
2. 선행 시험은 2024년 6월 26일에 진행되었다
김정은 총비서가 다탄두 개별유도기술 연구를 마감 단계에서 진행하고 있다고 언명한 때로부터 3년 6개월이 지난 2024년 6월 26일 조선은 “개별 기동 전투부 분리 및 유도조종 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개별 기동 전투부라는 말은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이 들어있는 전투부(warhead)라는 뜻이다. 조선은 이 시험을 마친 뒤 4개월 만에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진행했다.
여기서 개별 기동 재진입체에 관한 약간의 보충 설명이 요구된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3단 추진체가 단계적으로 연소하면서 발생시킨 추력으로 날아간다. 제3단 추진체가 연소를 끝내면, 추진체와 후추진체들(post-boost vehicles)이 서로 분리된다. 후추진체들(PBVs)에는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MIRVs)이 각각 탑재되었다. 분리된 후추진체는 자유 낙하하는 것이 아니라, 로켓엔진 추력에 의해 정해진 방향으로 유도조종되어 날아간다. 일정한 낙하 고도에 이르면, 후추진체들에서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이 일제히 분리되고, 분리된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이 각각 정해진 타격 대상들을 향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유도조종되어 날아간다.
여러 개의 후추진체에서 여러 개의 개별 기동 재진입체를 동시에 분리시키는 기술, 그리고 분리된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을 서로 다른 타격 대상들을 향해 날아가게 하는 유도조종기술이야말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완성하는 기술 중에서 가장 어려운 고난도 기술이다. 조선의 미사일 공학자들은 바로 이 고난도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오랜 기간 분투해왔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침내 2024년 6월 26일 “개별 기동 전투부 분리 및 유도조종 시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당시 조선의 언론 보도에 의하면, 그날 시험에서 개별 기동 재진입체 3개를 분리시켰고, 분리된 개별 기동 재진입체 3개가 정해진 방향으로 유도조종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미사일 공학자들은 개별 기동 재진입체 3개가 후추진체에서 안정적으로 분리되었는지, 그리고 분리된 개별 기동 재진입체 3개가 정상적으로 유도조종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관측장비를 탑재한 선박들이 개별 기동 재진입체가 떨어질 탄착 수역에 미리 가서 대기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조선이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을 조선 동해안에서 1,00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일본 홋까이도 서남쪽 해상에 떨어뜨리면, 관측 선박들이 거기에 갈 수 없다. 왜냐하면 일본 홋까이도 서남쪽 해상은 주일미제국군 전투기와 일본 항공자위대 전투기들이 초계비행을 하는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에서 가까워서 조선의 관측 선박들이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은 개별 기동 재진입체를 탑재한 후추진체의 비행거리를 대폭 줄여, 관측 선박들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는 “조선 동해의 170~200킬로미터 반경 범위 안에” 탄착시켰다. 개별 기동 재진입체들이 떨어질 탄착 수역에 나간 조선의 관측 선박들은 개별 기동 재진입체 3개가 각각 “설정된 3개의 목표 좌표점들로 정확히 유도”되는 과정을 관측할 수 있었다. 2024년 6월 26일에 진행된 시험은 2024년 10월 31일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위한 선행 공정이었다.
그런데 조선은 2024년 6월 26일 시험에서 개별 기동 재진입체를 왜 3개만 쏘아 올렸을까? 그것은 2023년 4월 13일 1차 시험발사를 진행하고, 2023년 7월 12일 2차 시험발사를 진행한 화성포-18형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개별 기동 전투부에 개별 기동 재진입체 3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화성포-18형의 개별 기동 전투부가 유선형 첨두탄처럼 생긴 까닭은 그 전투부에 개별 기동 전투부 3개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미 제국이 운용하는 미닛맨(Minuteman)-3 대륙간 탄도미사일에도 개별 기동 재진입체가 3개 들어가므로 전투부가 유선형 첨두탄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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