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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내 10만명’ 너무 높은 국민동의청원 문턱, 겨우 넘어도 국회는 ‘하세월’

“국회의원 당선 득표수보다 높은 동의 얻었는데, 청원인은 이후에도 단식하며 의견 전달”

국민동의청원ⓒ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30일 내 10만 명 이상.

입법 제안 제도인 ‘국민동의청원’을 위해 넘어야 할 최소한의 문턱이다. 이를 가까스로 넘더라도 청원에 그친다. 이 청원을 수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국회의원의 손에 달렸다.

이처럼 국회 국민동의청원의 문턱이 너무 높은 탓에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사회에서는 취지에 맞게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동의청원 도입된 지 1년 반...달성된 건?

국민동의청원제도개선시민사회TF(4.16연대・민주노총・참여연대・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고영인·김용민·양경숙·정경태·조오섭·최혜영 의원은 6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제도 개선을 위한 시민사회 토론회’를 온라인으로 공동주최했다.

 

국민동의청원은 ‘의원소개청원’ 이외에 국회법 제123조 2에 따른 전자청원시스템을 이용해 전자적 방식으로 청원을 등록하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 제출하는 형식을 말한다. 한마디로 국민들이 직접 입법안을 제안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1월 1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국회법과 국회규칙에 따르면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 등록된 청원서가 ‘30일 이내에 100명 이상’의 찬성을 받고 ‘청원 불수리사항’이 아닌 것으로 결정되면 일반에 공개된다. ‘청원 불수리사항’ 해당 여부는 국회의장이 해당 청원이 100명 이상의 찬성을 받은 날부터 일주일 이내에 판단해야 한다. 재판 간섭 내용, 국가기관 모독, 국가기밀 내용, 허위사실 등은 청원으로 접수되지 않는다.

이 절차를 거쳐 청원이 일반에 공개된 이후, 30일 이내에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으면 공식적으로 접수된다. 접수된 청원은 소관 상임위원회에 회부되고, 위원회에 구성돼 있는 청원심사소위원회에서 이를 심사한다.

이때 상임위원회는 청원을 본회의에 부의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는 기준은 규칙에 명시돼 있다. 청원 취지가 달성됐거나 실현 불가능한 경우, 타당성이 결여된 경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위원회가 본회의에 부의하지 않기로 의결한 청원은 사유를 명시해 의장에게 보고하며, 해당 청원은 폐회 및 휴회기간을 제외한 7일 이내에 의원 30명 이상의 요구가 없으면 자동 폐기된다.

전진영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의 발제에 따르면 21대 국회 개원 이후 현재까지 접수된 국민동의청원은 총 18건이다. 그중 ▲4.16세월호참사 관련 박근혜 전 대통령 기록물 공개 결의에 관한 청원 ▲안전한 일터와 사회를 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입법에 일부 반영됐고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은 해당 상임위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본회의에 올리지 않기로 결정됐다.

반면 접수 요건 자체를 충족시키지 못해 폐기된 청원은 현재까지 94건에 달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1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어 청원으로 접수된 경우는 총 7건에 불과하고 미성립된 청원은 총 99건에 달했다. 접수된 청원 7건 가운데 5건은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10만 명이 참여한 국가보안법 폐지 국회 국민동의청원ⓒ사진 = 국회 국민동의청원 누리집 갈무리

다른 국가와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은 달성 기준

이 같은 집계 결과는 그만큼 국민동의청원 달성률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국민동의청원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시민사회단체들은 ‘30일 이내 10만 명’이라는 기준이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최근 10만 명 동의로 달성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국민동의청원을 주도했던 시민사회단체인 차별금법제정연대 장예정 공동집행위원장은 “사실상 집회가 불가능한 코로나 시국에 많은 단위들(단체들)이 이슈파이팅을 위하여 국민동의청원을 진행하고 있다”며 “(그런데) 차별금지법 국민동의청원을 경험하면서 ‘달성’이 거대한 조직이 있거나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고 밝혔다.

‘100만 조합원’을 자랑하는 민주노총도 국민동의청원 문턱이 높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도록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노동자라면 누구라도 노동조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노조법 개정 ▲노동자가 죽지 않고 일 할 수 있도록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담은 ‘전태일3법’ 국민동의청원을 접수해 ‘30일 이내 10만 명’의 동의를 달성한 바 있다.

이정희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100만 조합원’이라는 조직력이 있으니 그나마 사정이 나은 거지 10만 명의 동의를 얻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산별노조만 두고 봐도 10만 명 참여를 이끌어내는 건 어렵다”며 “‘전태일3법’도 서명은 한 달이 안 걸렸지만 준비부터 완료 시점까지는 반년이 더 걸렸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10만 명이라는 기준은 앞서 국민동의청원을 먼저 시작했던 다른 국가에 비해서도 높은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 우리가 벤치마킹한 영국과 독일에 비해서도 높은 기준이다.

손우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에 따르면 영국은 5명의 지지 서명으로 청원이 공개될 수 있다. 100명의 서명을 요구하는 한국과 큰 차이다. 독일의 경우 연방의회 내 상임위원회인 청원위원회에서 자체 심의로 청원이 공개된다.

손 연구위원은 "더 심각한 문제는 서명 기간을 우리와 유사하게 4주로 제한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 5만명의 청원 동의 서명으로 안건에 회부하는 것에 반해, 한국은 10만 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우리와 같이 10만 명의 동의 서명을 요구하고 있는 영국은 서명 기간이 6개월"이라고 덧붙였다.

인구대비 비율로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서명 기준이 가장 높다. 독일 기준을 적용하면 3만 명, 영국 기준을 적용하면 7만 명으로, 우리나라가 현재 적용하고 있는 10만 명보다 훨씬 적다.

국민동의청원 국가별 비교ⓒ손우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

이미 사회적 목소리 낼 수 있는 기반 있는 집단만 국민동의청원 가능

이처럼 ‘청원 남발을 막아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기준을 지나치게 높일 경우 특정 집단만 참여할 수 있어 국민동의청원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 위원장은 “10만을 모을 수 있는 이슈만, 10만을 모을 조직이 있는 의제만 청원 달성이 가능하다면 제도의 취지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뉴스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하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생업과 관련된 내용이 올라오기도 하고 아직 구체화된 법안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취지의 법안의 제정을 논의해달라는 청원들도 보인다”며 의미 있는 많은 청원들이 ‘10만 명 동의’를 얻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려져 있는 데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손 연구위원도 “청원의 남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서명 기준을 지나치게 높일 경우, 다수의 서명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종교단체나 시민사회단체, 이익집단 등 사회적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여러 경로를 이미 가지고 있는 집단만이 청원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개혁과 반대되는 ‘차별금지법 반대’ 국민동의청원이 종교집단 주도로 10만 명 동의를 얻은 바 있다.

손 연구위원은 “평범한 일반 국민이 입법과정에 의견을 제시한다는 청원의 취지를 살리자면, 공개 요건과 서명 요건을 대폭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동의 수에 미달한 청원 중에서도 의미 있는 제안을 발굴하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안건 발의에 필요한 동의 서명은 3만~5만 명 수준으로 대폭 조정하고, 서명 기간도 3~6개월 이상으로 허용해 충분한 동의 확보 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지방자치에서 조례의 제정·개정·폐지를 청구하는 경우 서명 기간은 광역의 경우 6개월, 시군구의 경우 3개월을 보장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4주의 기간은 지나치게 짧다”고 덧붙였다.

청원 가까스로 달성해도 입법은 결국 국회 몫

국민동의청원을 가까스로 달성한다고 해도 국회에서 이를 처리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이 정책실장은 “10만 명이면 웬만한 국회의원 당선 득표수를 훌쩍 넘는 인원이다. 소규모 선거구의 투표인 수도 넘는 숫자”라며, 그런데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입법 논의는 미온적이라고 비판했다.

이 정책실장은 “이로 인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대표 청원인인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 씨는 청원안을 논의하는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장 바깥 복도와 국회 본관 문밖에서 생사를 건 단식으로 의견을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손 연구위원은 “한 달 이내 10만 명 동의를 받아오라고 하면서 정작 국회는 5개월 동안 법안 심사조차 마치지 못하는 건 정치적 이유거나 민감하니 미뤄두고 싶다는 의사밖에 안 된다”고 꼬집었다.

이에 국회가 청원인의 진술권 보장과 함께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서복경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실행위원은 “현재 국회법상 국회 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청원인 진술권은 보장되고 있지만 실재로는 위원회 의결로 대개 생략되고 있음”며 “일정 요건을 충족한 국민동의청원안의 경우 소위원회로 회부하기 이전 위원회 전체 회의 대체토론 단계에서 독자적인 안건으로 다룰 필요가 있으며, 해당 단계에서 청원인이나 청원인이 지정한 전문가의 진술과 위원들과의 질의응답 절차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절차는 국민동의청원에 참여한 시민들에 대한 국회의 절차적 존중의 의미를 담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본 심의 이전에 위원들이 청원안 내용을 보다 숙지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청원 취지에 어긋나는 법안이 만들어지는 결과를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현재 국회 위원회 의안심의절차에 따라 청원안이 대안처리과정에 포함되는 경우 국회는 일정 경과 기간마다 청원안의 처리과정 및 논의현황에 대해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청원인 및 관심을 가진 일반 시민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청원안 처리 절차가 늦어지는 이유를 대부분의 시민들은 알기 어렵기 때문에 지연을 국회의 의무방기나 의지부족으로 이해하여 국회 불신이 높아지거나 국민동의청원제도에 대한 불신이 발생할 수 있고, 국회는 선제적으로 이런 우려를 해소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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