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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과 동행한 라닥 의료 봉사의 길

의료봉사 뿐 아니라 수행 성지 방문하는 축복까지

 
청전 스님 2013. 08. 12
조회수 10추천수 0
 

 

<신부님과 동행한 라닥 의료 봉사의 길 ②>

 

이제 덜어낸 짐칸에 두 사람이 앉고 차량 구조물 위엔 우리 온갖 짐을 싣는 일이 남았다. 질긴 밧줄로 짐을 다 묶는다는 일이 늘 쉽지 않은 귀찮은 일로 남았다. 달리다가 몇 번이나 짐이 쏟아져 나오는 해프닝에 재차 묶고 묶는 일을 몇 번이나 했던가. 또한 거기서 쟌스카의 중심 고을 파둠(Padum)까지는 도로 상태가 얼마나 엉망인지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상상이 안가는 길이다. 총 234 킬로인데도 이틀이 걸리는 고달픈 비포장 길이니까.

 

<<고산 산간 마을엔 비가 적어 이런 지붕 없는 흙집을 짓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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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인솔 총 책임자로써 내심 걱정은 고산증세가 나타나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따랐다. 다행이도 연세 든 신부님은 네팔 트레킹에서 이미 익은 산행 경험으로 끝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날은 일부러 고소를 익힐 겸 제법 낮은 마을 3300m 정도의 카길 지역의 마지막 회교도 마을인 파르카칙으로 불리는 마을에서 묶기로 했다. 생각한 대로 대원중의 한 사람 지 교수님이 두통을 하소연하며 드러눕는다. 그 자리에서는 눈(Nun:7135m)산과 쿤(Kun:7087m)산 두 개가 피라밋 형제처럼 멋진 만년설의 위용을 자랑하듯 함께 자리 잡고 있어 더러 유명 산악인들의 군침을 일구기도 한다.

 

<<무슬림 지역을 벗어나 불교도 지역에 들어가면서 만나는 첫 불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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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에 겨우 일어나기는 해도 어떤 먹꺼리를 거부한다. 그러나 우리 발길에는 하루라도 늦출 수가 없다. 어느 날 이건 간에 아침은 서둘러야 한다. 머리가 아파 빠개질듯 하다는 환자에게 가면 서서히 적응할거라는 위로의 말 외엔 방법이 없다. 다행으로 그 날 하루 힘들어 하고는 고소적응이 쉽게 이루어졌다.

 

<<우리 짐 가뜩 실은 찌프차도 보잉만유. 한여름에도 이런 눈 속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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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쟌스카 계곡의 초입, 하얀 불탑과 함께 따르촉 오색 기원 깃발이 나부끼며 여기서부터는 불교도 지역임을 표시한다. 모두 내려 탑돌이를 하고 이번 의료 봉사활동에 무사안전을 기원했다. 이 능선의 불탑을 앞뒤로 회교도(무슬림) 지역과 불교도 지역으로 나뉘게 된다. 두어 시간 들어가니 황량한 붉은 뒷산을 배경으로 4100m나 높게 자리한 첫 번째 곰빠 랑둠 사원이 아스라이 다가온다. 14년 전 슬픈 사건이 벌어지는데 이 절 세 스님이 회교도 측의 누군가에게 총으로 살해되었다. 범인은 미궁이다. 이 열린 시대에도 어느 종교나 회교도와는 공존이 어렵다. 절 초입에 세 스님의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늘 절에 들어가면 출석을 부르듯 한 스님 한 스님 명단을 부른다. 다행히도 한 해 동안 돌아가신 노스님이 없다. 곰빠에 가면 늘 티벳식 버터차를 내놓는데 이 절은 마른 야크 고기가 안주처럼 나온다. 처음으로 야크 고기 맛을 본다는 우리 일행, 꼭 마른 명태 맛이라며 씹어 먹는다. 먹다만 고기를 가져 갈 거라니 소임 보는 한 라마승이 따로 하얀 천에 듬뿍 고기를 내어온다. 이 지역의 식사대용인 음식인 것이다. 절 규모가 작아 영양제와 몇 가지 일용품을 챙겨드리고는 다음 절로 가기로 했다.

 

바삐 서둘러도 비포장 굽이 길에 왜 그리도 시간이 걸리는지, 가끔 휘몰아치는 까탈스런 바람에 먼지가 그대로 차안에 들어오기도 한다. 펜지라(4550m)고개를 넘으면서 마주치는 아래쪽에 그대로 처박힌 채 찌들어진 버스 잔해에 마음이 저민다. 여름에만 운행되는 레에서 빠둠까지의 노선버스, 매일 있는 정기 버스가 아닌 승객이 차야 움직이는 이 버스가 4년 전에 비극의 사고를 내고 만다. 저 아래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11 명이나 죽고 50여 명이 부상이었다.

 

<<이 고개 넘다가 뻐스가 뒹굴었다요. 사실 우리 차도 버이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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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에 빠둠 못미처에 있는 샤니 곰빠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예정은 종쿨 곰빠였지만 시간이 그곳까지는 어려웠다. 이 절은 인도 후기불교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성자 나로빠(1016-1100)의 사리탑이 있는 성지이다. 이분의 인생 역정이 가관인 것은 한 때 그 유명한 나란다(현 인도 비하르주에 있었던 불교 최대의 승가대학) 학장으로 있다가 모든 직위나 명예를 버리고 틸로빠(988-1069)를 스승으로 12년간 난행고행을 겪는다. 나로빠의 법제자가 티벳인 마르빠이며 이분의 수제자가 세상에 너무나도 잘 알려진 고행성자 밀라레빠(1052-1135)인 것이다. 어제 못 들어간 절 종쿨 곰빠의 동굴 사원은 바로 이 성자의 마지막 수행지로 여기서 해탈의 깨달음을 성취한 역사적인 성지이자 천혜의 동굴 사원이다.

 

아침부터 많은 마을 노인들이 우리가 온지 어찌 알고는 필자를 찾는데 거의가 신경통을 하소연하며 쀠모맨(무릎 약)을 요구한다. 언젠가부터 아예 신경통 약으로 우리 유한양행의 삐콤이 라닥 지방에 만병통치 수준의 약으로 알려진 것이다. 지금까지 나른 천정들이 삐콤이 몇 천병이나 될까? 이번에도 200병이 넘는 삐콤을 챙겨왔다. 사람마다에 180정 정도의 여섯 달 분량을 미리 나눠 담아둔 인도산 푸라스틱 약병에 나눠드린다.

 

진료를 마치고 모두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험한 동굴 사원을 향했다. 지대가 너무 높고 햇볕이 차단 된 동굴 안에는 냉기가 차디차게 배어있다. 불상과 함께 나로빠 성자 이후 까규파 전통의 수행법을 이은 성자들의 소상이 불단에 가지런하게 모셔져 있다. 엄숙함과 성스러움이 깔려있다. 이번 일행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한 것이란 우리 의료 봉사의 길 말고도 이런 곳을 방문하는 축복의 길임을 누누이 강조했었는데 모두가 이 자리에 온 것을 감탄한다. 그만큼 험한 길이며 오기 어려운 이 자리 지금 여기에 존재함은 불보살님의 가피로 느낄만하다. 우리말 반야심경을 염송한 후에는 한참을 정좌에 들었다. 늘 상상을 해보지만 그 시대 이런 외진 곳에서 무얼 먹고 살았을까를 의심해 본다. 성자의 후기 기록물에는 천인들이 공양물을 하늘에서 날랐다는 글로 성자를 더욱 신비스럽게 높인다. 설령 먹꺼리를 얻었다 해도 철저이 혼자인 이 자리에서 인간적인 고독의 시간을 과연 수행만으로 보냈을까?

 

<<성자 나로빠 어른스님의 동굴 수행처, 젤 윗 분이 나로빠, 아래는 부첸님 부터 구루 린포체와 카규파 조사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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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한 벗님들: 지 교수님. 레오 신부님. 머저리 시님. 심 신부님. 야크님. 빠리 스님은 사진찍는라 안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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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 문명과 복잡해진 도시 문화에 길들여진 성직자들이 서울로만 모이고, 온갖 풍요와 편리를 추구하는 현대판 수도승(首都僧:Capital Monk)들의 삶이 대조되는 이런 동굴 수행처가 이젠 잊혀진지 오래다. 함께 온 신부님 중의 한분은 이미 여러해 전에 지리산 기슭에 카톨릭적 명상 수도원을 개설해 놓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이란 참 수도자의 영성임을 알아차리고 시작한 일이다. 이런 자리에 함께 온 것도 다 "하느님의 섭리(Providence of God)"라고 하신다. 불교의 심오한 인연법이라는 말과 뭐가 다르겠는가. 컴컴한 동굴 이 자리가 뭔가의 힘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하긴 한 성자가 윤회의 끄나풀인 생사의 깊은 근본 번뇌를 끊고 부처가 된 이 자리라니 어찌 범상치 안으리. 동굴 바로 아래쪽엔 성자가 마시며 득도를 이뤘다는 "둡추(성취수)"가 한 방울 씩 떨어진다. 컴컴한 동굴 속이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바위에 이마를 상할 수가 있어 손전등 없이는 접근이 어렵다. 큰 항아리에 모아 둔 물을 참배객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는데, 이 물은 성자의 가피 물로 병을 나순다는 효험설로 이어져 내려온다. 우리도 그 차가운 물을 맘껏 마시고 빈 병 마다에 가득가득 채워왔다.

 

 

<<종쿨 곰빠 전경, 절 뒤쪽에 동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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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하산의 길이다. 모두가 그래도 아쉬운 듯 뒤보기를 계속하면서 저 밑에 바쳐둔 우리 차로 향했다. 다시 샤니 곰빠에 들어오니 더 많은 노인들이며 약을 찾는 사람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열악한 환경에 문명과는 먼 주민들에게 늘 그놈의 병치레가 삶을 괴롭힌다.

제법 현대 시설이 모인 읍 소재지랄 파둠, 주로 서양 여행객과 이 때 만이 가능한 장거리 트렉커들을 위한 숙소와 음식점이 있다. 늦은 점심을 식당에서 때우고는 카르샤 곰빠 방문길에 몇 가지 장보기다. 인도 메기라면 한 박스(96개 들이, 100개 들이가 아닌 특이한 인도식 포장법이다), 고급 비스켙 종류별 두 박스, 사미승을 위한 빨아 먹는 스틱볼 등등을 챙겼다.

 

 

<2차 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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