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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판’ 선서 거부, 청와대와 여당 독배 마셨다

선서하면 불리 거부하면 유리… 그래서 택한 게 ‘공개 위증’?
 
육근성 | 2013-08-17 09:49:0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떳떳하고 당당하다. 검찰의 공소장 전체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실체적 진실과 너무나 다르게 왜곡되게 사안이 해석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지만 사실무근에 뜬소문이다.”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억울하다.”

“답변하지 않겠다. 그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실체적 진실이 왜곡되는 구나.”

“이 사건을 거치면서 떳떳하고 당당한 게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한 말이다. 국정조사에 불려나온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신들을 기소한 검찰의 혐의사실에 대해 억울함을 강력하게 호소했다.

새누리 변호 속에 당당했던 두 증인

김 전 청장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허위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증거를 은폐했다는 혐의를 전면 부인했고, 원 전 원장 또한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없으며 ‘통상적인 대북 심리전’이 정치개입으로 곡해된 것이라고 강변했다.

새누리당 소속 국정조사 특위위원들은 ‘국정원 댓글 사건’이 대선 승리에 집착했던 민주당이 국정원 전현직 직원을 매수해 벌인 정치공작이라며 두 증인을 두둔했다. 민주당 위원들이 검사라면, 새누리당 위원들은 의뢰인로부터 선임료를 두둑히 챙긴 변호인 같았다.

“떳떳하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억울하다”며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진실이 왜곡됐다”며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사실무근이다”라며 이미 드러난 증거들을 완강하게 부인했다.

‘떳떳하다’ 목청높이면서 증인 선서는 거부

억울하단다. 마치 힘도 없고 배경도 없는 노숙인이나 잡역부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붙들려 온 것처럼 그렇게 말했다. 웃긴다. ‘이명박근혜’ 정부다. 누가 감히 국가정보기관의 수장과 경찰 최고위 간부였던 이들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우겠는가.

떳떳하다며 목에 힘주던 이들이 증인 선서를 거부했다.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사람이 국회법에 명시된 증인선서를 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위증하면 처벌 받겠다’는 증인 선서는 거부하면서 이미 검찰 조사로 드러난 사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부인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였다. 위증죄를 피해가며 자신에게 유리한 질문만 골라 답변하는 전술을 폈다.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는 “모르겠다” “답변할 수 없다”며 빠져 나갔다.

‘선서 거부’는 유죄 판결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

이들이 증인선서를 거부하며 내세운 법적 근거는 국회 증언감정법과 형사소송법 제148조다. 법을 악용해 증인 선서를 거부한 것이다. 증인선서 거부는 국민에게 대놓고 ‘위증하겠다’고 선포한 거나 다름없다.

“증인은 형사소송법 제148조 또는 149조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 선서, 증언 또는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있다. 다만 그 이유는 소명해야 한다.” (국회 증언감정법)

“누구든지 자기나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한 관계가 있는 자가 형사소추 또는 공소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발로될 염려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148조)

서로 짠 듯 증언을 거부하며 제시한 법 근거대로 이들 두 사람의 행동을 해석하면 ‘유죄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많아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선서를 거부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선서하면 불리 거부하면 유리.. 그래서 택한 게 ‘공개 위증’?

선서를 하지 않는 게 자신들에게 유리하고, 선서를 하면 불리하다는 얘기다. ‘사실만을 말하겠다’고 서약하면 불리하고 거부하는 게 그나마 유리하다니 ‘사실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한 거나 다름없다. 거짓을 말하고 위증하겠다는 것을 두 사람 스스로 전제한 셈이다.

정말 떳떳하고 당당하다면 선서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 '위증하겠다'고 전제한 상태에서 떳떳하고 우긴다는 건 백주대낮에 만인들 앞에서 사기를 치겠다는 거나 진배없다.

원세훈·김용판 두 사람이 국선변호인처럼 행동한 새누리당 위원들의 비호 아래 전 국민 앞에서 ‘사실대로 말할 수 없으니 차라리 위증 하겠다’고 선포한 거다.

조중동과 종편은 '원-판'을 두둔하고 새누리당을 주장을 적극 편 드는 기사를 쏟아 냈다.

<'원-판'과 새누리당을 적극 비호한 보수언론들>

여권과 밀통한 국정원의 대선개입, 깊고 넓게 이뤄졌다는 방증

TV로 생중계돼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전 국정원장과 전 경찰청장이 ‘공개 위증’을 선언할 정도라니.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과 밀통한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얼마나 깊고 넓게 이뤄졌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증인 선서 거부가 몰고 올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위증죄를 피해가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당의 질문만 골라 대답한 두 증인과 저들을 비호한 새누리당의 파렴치로 인해 강도 높은 ‘역풍’이 불 가능성이 높다.

전 국민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위증하겠다고 선언했으니 국민의 분노가 들불처럼 번질 게 분명하다. ‘원-판’과 새누리당이 박근혜 정권에게 큰 부담을 안겨준 꼴이 되고 말았다.

독배 마신 박근혜 정권

처음부터 여당의 역할은 '방패'였다. 때문에 국정조사로 큰 수확을 얻을 거라고 기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간 것이다.

새누리당의 수작과 저들의 ‘공개위증’에 화난 시민이 많다. 불에 기름을 끼얹는 셈이다. 국정원 대선개입과 관권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분노의 불길에 청문회 증인선서 거부라는 ‘잘 타는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여권이 악수를 뒀다. 증인선서 거부라는 ‘독약’을 박근혜 정권에 술잔에 탄 거나 다름없다. 박 정권이 독배를 마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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