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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에게 초심으로 돌아가라? 25년 전에도 빨갱이라더니”

[인터뷰]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

고희철 기자 khc@vop.co.kr
입력 2013-10-07 01:17:21l수정 2013-10-07 07:51:10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김철수 기자

최근 고용노동부는 한 달 안에 규약을 개정해 해직교사를 조합원에서 배제하라는 최후통첩을 전교조에 보냈다. 이로 인해 합법화 14년 만에 다시 ‘법외 노조’의 가시밭길을 걷게 될 위기가 전교조에 드리웠다. 후배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보는 이가 바로 이수호 전 전교조 위원장이다.

1989년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1700여명의 교사가 해직당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사건 당시 그는 전교조 사무처장이었다. 이후 전교조 위원장과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내고, 평교사 출신의 서울시 교육감 후보까지 오른 그는 전교조 운동의 상징적 인물이다.

교육현실에 실망한 교사들, 전교조 결성에 뛰어들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1974년 경북 울진의 제동중학교에 첫 부임했던 시절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유신독재의 서슬퍼런 시절, 학교도 병영과 마찬가지였고 공장에 인력을 대기 위한 훈련소였다.

“경쟁과 획일적인 교육으로 인성교육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학교는 교장, 교감 등 경영자들 맘대로 운영하고 부패도 심했다. 한 반에 60~70명씩에 오전·오후반 2부제니 교사들이 애들 이름도 몰랐다.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돈 주며 자기 애들 부탁하고, 체벌이 난무하고. 소풍 가서 찍은 단체사진, 수학여행 다 비리였다.”

당시 이 전 위원장 역시 학생들을 체벌하기도 했다고 한다. 학교 현실에 실망한 그는 서울로 올라와 본격적으로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당시엔 둘만 모이면 불법이고 조직사건 나니까 YMCA나 흥사단 같은 단체의 우산 아래 들어가 교사들이 모였다”고 회고했다.

교육운동 1세대들은 1987년 민주화 물결을 타고 전국교사협의회를 만들었고, 1989년 5월 28일 전교조를 결성했다. 예상한 바지만 정부의 전교조 탈퇴 압박과 언론의 ‘의식화 교사’라는 공세는 혹독했다.

“오죽했겠나. 지방에서 부모님이 올라와 울고불고, 교장 찾아가 잘못했다고 빌고. 친척은 물론 교장과 교감이 나 좀 살려달라고 하고. 그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교사가 무슨 노동자냐, 막노동꾼으로 전락하려고 하냐.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도 있었고, 학생들 의식화하는 빨갱이가 아니냐고도 했다. 전교조 초기에는 좋았는데 요즘 왜 그러냐고? 전교조 인정받은 적 없다. 그땐 더 미워했지.”

부모가 식칼을 꺼내놓고 같이 죽자고 하거나 투병 중이면서 치료를 거부하며 탈퇴하라고 한 일이 곳곳에서 터지던 시절이었다. 이 전 위원장은 24년 기억하며 “보수진영에게 전교조는 25년 동안 종북이고 좌파였다”고 일갈했다. 평온하던 그의 목소리가 이 대목에서 유달리 높아졌다.

1989년 해직사태 5년 뒤 1차 복직이 이뤄지고, 1999년 합법화하면서 최종 복직이 이뤄졌다. 합법화 이후 전교조의 위상은 높아졌고, 교육현장은 더욱 빠르게 달라졌다. 촌지와 부정부패가 상당히 줄었고, 체벌도 사라졌다. 그가 위원장이던 시절 김대중 정부와 교섭해 학급당 학생 수를 35명으로 줄이기로 합의해 시행되기도 했다.

보수정치권과 언론, 정치적 이해관계로 교육의 중립성 흔들어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김철수 기자

 
이 전 위원장은 전교조의 과제도 짚었다. 우선 밖에서 기득권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을 스스로 내려놓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자기희생적 요소’라고 표현했다. 좀 더 유연한 태도를 주문하기도 했다. 교원평가 문제의 대응이나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네이스(NEIS) 반대 투쟁 등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교육 문제의 제일 큰 책임은 정책을 편 정부에 있는데 이를 전교조에 떠넘기려 한다”면서도 “문제가 있을 때 전교조가 조금 더 유연하게 국민을 인식하면서 정부와 잘 교섭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 전 위원장은 “교육의 중립성을 흔들고 위협하는 것은 보수 정치권과 언론”이라며 특히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했다.

“보수진영과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은 전교조가 아이들을 의식화한다고 선거 때마다 전교조를 이용했다. 저도 작년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선 토론에서 이름까지 거론하며 공격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교육을 정치적 이해로 이용하면 안 된다. 전교조를 공격해서 보수 표 결집하고, 그런 게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해친다. 박근혜 대통령 사립학교법 개정했을 때 텐트치고 촛불 들고 난리였는데 다 같은 것이다.”

공안정국 의도 파악하고 당당하게 나아가야

이 전 위원장은 고용노동부가 갑작스럽게 전교조에 규약 개정을 요구한 것을 현재의 공안정국 속에서 파악했다. 단순히 노동 문제나 규약개정하면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 저쪽은 정보를 독점하고 이쪽을 교묘하게 분리시킨다. 우리가 별것도 아닌데 당했다. 전교조도 서로 분리시키려 한다. 이제 조용히 애들이나 가르치지 이런 식으로. 학교 실정을 잘 몰라서 그렇지 물신주의, 경쟁, 효율화 이런 것이 학교가 제일 심각하다. 그걸 막으려는 게 참교육이고 그동안 그나마도 ‘이건 아니다’라고 말한 게 전교조 교사들이었다. 이제 그걸 완전히 뿌리를 뽑으면 학교가 어떻게 되겠냐. 정말 암담하다.”

고용노동부의 통보 이후 전교조 내부는 상당히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해직 교사를 배제한다는 것은 전교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지만, 법외화 역시 자칫 조직을 약화·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부담을 넘어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전 위원장은 여전히 희망과 전화위복을 말했다.

“어느 때라고 우리가 고통과 어려움이 없을 때가 없었다. (전교조 문제를)무슨 정치적 이슈 수준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진보진영 전체가 약화되고 혼란스럽지만 우리 미래를 올바로 만들어가는 것은 모든 운동의 근본이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다시 한번 뭉치고 연대하고 싸우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를 찾는 전교조 후배들에게 이런 말도 전했다.

“후배들이, 또 지도부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세도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니다. 1989년 당시에도 그랬다. 문익환 목사 방북으로 공안정국이 시퍼런데 어떻게 하냐. 그런데도 우리가 나선 것은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옳은 것을 가르치고 또 가르침을 내가 실천하려는 것이었다.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 길 밖에는 없다.”

그는 “내가 위원장 할 때 정부와 중앙교섭도 하고 조합원도 가장 많아 10만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6만명 정도로 40%가 줄었다”면서 “전교조라고 돌아오는 이익이 있나, 신나는 일이 있나? 욕이나 먹지. 그래도 매달 상당액의 조합비를 내면서 조합원으로 6만명 이상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하다. 여기에 길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수호 전 위원장은 전교조 건설부터 지금까지 교육운동의 최전선을 지킨 활동가로서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이수호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김철수 기자

 


우선 전교조 결성 당시 양김(兩金)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입장이 달랐다고 한다.

“당시 야당에 김대중, 김영삼 두 분 계셨는데 전교조 이야기를 하면 정말 알만한 분들인데도 ‘우리나라에서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어서 교사가 노조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당신들 하는 일 옳지만 우리 현실은 안 된다는 거죠. 정확한 판단이었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옳은데 왜 안 되냐고 했고, 그냥 싸움을 했어요.”

“전교조 결성 준비하던 88년인가 노무현 대통령을 국회의원 사무실로 찾아갔어요. 설명을 하니까 ‘교사가 노동자인 건 맞고 노조 결성도 옳다. 현행법이 그걸 못하게 하면 법이 잘못된 거다. 잘못된 법을 고치기 위해 과감하게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 대량 희생을 각오해야 할 거다’ 그러면서 내 기억에 열 사람 정도 구속되고, 100명 정도 해직될 거라고 말했어요. 그게 대량해고였던 거죠. 노 전 대통령, 그 뒤로 많이 도와줬어요.”

이명박 정부 이후 보수진영은 촛불시위의 배후로 전교조를 지목하고 공격해왔다. 과연 그럴까?

“옛날 생각이에요. 선동하는 지도부가 있고 뒤에 배후가 있고 이런 잘못된 생각으로 촛불 배후가 누구지? 자기들 볼 때 전교조밖에 없는 거죠. 물론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가르친 것은 잘하는 겁니다. 어느 나라나 다 그렇게 하죠. 그러나 전교조가 학생들을 선동을 했을 거라고 보는 것은 정말 잘못 짚은 것이다. 요새 애들이 누구야? 촛불 나가려고 하다가도 선생님이 나가라면 안 나가.(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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