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해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사진출처-국무총리실]
한덕수 국무총리가 4일 오전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해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사진출처-국무총리실]

도대체 국민의 생명과 안전 문제에 이렇듯 무도한 정부, 몰염치한 공직사회가 있을까?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겠다고 하면서도 정책 추진에 납득할만한 설명도 없고 정부조직법상 부여된 사명, 역할에도 아주 불성실하다. 

사리를 똑바로 분별하는 지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도무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 헛갈릴 지경이다.

대북전단과 오물풍선이 접경을 넘나들며 조성된 한반도 긴장은 조그마한 불티만 튀어도 전쟁으로 비화될 위험이 다분한  상황인데, 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도 시원찮을 판에 정부가 나서 기름을 끼얹고 있지 않은가?

군사적 위기는 물론이려니와 정부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의 위기가 현실화되지 않을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정부는 4일 오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9.19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국무회의를 주재한 총리는 북한이 지난 5월 28일 밤부터 6월 2일 새벽까지 남쪽을 향해 오물풍선을 살포하고 5월 29일부터 서북 도서지역 항공기와 선박을 대상으로 위성항법장치(GPS) 전파교란 공격을 가했으며 30일에는 18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하면서, 이같은 북한의 도발이 우리 국민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남북한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전부의 효력을 정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9.19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는 오물풍선 살포와 GPS 전파교란 공작,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의 도발에 대한 대응조치라는 설명인 셈이다. 

이같은 조치는 "우리 법이 규정하는 절차에 따른 합법적인 것이며, 그동안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약받아 온 군사분계선 일대의 군사훈련이 가능해지고,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보다 충분하고 즉각적인 조치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날 오후 조창래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은 "북한은 합의 이후 해안포 사격, NLL 이남으로 미사일 발사, GP총격 도발, 소형 무인기 침투 등 의도적이고 반복적으로 위반행위와 도발을 자행해 왔다"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군사활동에 더 이상 제약을 받지 않도록 9.19군사합의의 전부 효력정지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남과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했다"는 2018년 9월 19일 「역사적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는 사실상 전면 파기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하고 정부가 북한에 통보하는 절차를 밟으면 9.19남북군사합의의 효력은 완전 정지된다.

이에 앞서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는 "최근 북한의 일련의 도발이 우리 국민들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이미 북한의 사실상 폐기선언에 의해 유명무실화 된 「9.19 군사합의」가 우리군의 대비 태세에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며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 안건을 4일 국무회의에 상정한다고 발표했다.

왜 먼저 대북전단 살포의 중단을 검토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우선, 현재 조성된 긴장의 주요 사안이자 발단이 된 대북전단과 오물풍선 살포의 선후와 인과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최근 진행된 경과를 시간 순서대로 단순히 나열해 보면 이렇다.

5월 10일 밤 인천 강화도에서 대북전단 30만장과 K팝, 트로트 동영상 등을 저장한 USB 2,000개가 대형풍선 20개에 실려 북쪽 방향으로 살포됐다. 상습적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해 온 반북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연합(대표 박상학)은 며칠 후 자신들의 행위라며 이같은 사실을 언론에 공표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만에 전단살포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5월 26일 북한 국방성은 김강일 부상 명의 담화를 발표해 "국경지역에서의 빈번한 삐라와 오물살포행위에 대하여서도 역시 맞대응할 것"이라며,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지역과 종심지역에 살포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5월 28일 밤 경기도 파주와 동두천 등 경기·강원 접경지역 일대에 북쪽에서 살포한 '오물풍선'이 날아들었다. 

5월 29일 오전 합동참모본부는 "이러한 북한의 행위는 국제법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이며, 우리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고 하면서 '반인륜적이고 저급한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5월 29일 저녁 김여정 당 부부장이 담화를 발표해 "지금 쓰레기같은 한국 것들은 우리에 대한 저들의 전단살포는 《표현의 자유》라고 떠들고 그에 상응한 꼭같은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는 《국제법의 명백한 위반》이라는 뻔뻔스러운 주장을 펴고있는 것"이라며, "우리는 앞으로 한국것들이 우리에게 살포하는 오물량의 몇십배로 건당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 경고했다.

5월 31일 통일부는 '정부입장'을 발표해 △오물풍선 살포 △GPS 전파 교란 공격 △탄도미사일 도발 등을 비난하고 "북한이 이를 멈추지 않는다면 정부는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모든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6월 1일 밤 합동참모본부는 "북한이 오늘(6.1) 20:00경부터 대남 오물풍선을 다시 부양하고 있다"며 "현재(23:00)까지 서울·경기지역에서 90여 개의 오물풍선을 식별하여 조치 중에 있다"고 밝혔다. 풍선의 내용물은 '담배꽁초, 폐종이, 비닐 등 오물·쓰레기 등'이라고 알렸다.

6월 2일 밤 북한 국방성은 김강일 부상 명의 담화에서 ""우리는 국경너머로 휴지장을 살포하는 행동을 잠정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한국 것들이 반공화국삐라살포를 재개하는 경우 발견되는 량과 건수에 따라 우리는 이미 경고한대로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다시 집중살포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5월 28일 밤부터 6월 2일 새벽까지 휴지쓰레기 15t을 각종 기구 3,500여개에 담아 한국 국경부근과 수도권지역에 살포했다고 말했다.

6월 3일 대통령실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실무조정회의에서 4일 예정된 국무회의에 '「9.19 군사합의」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상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오전 접경지역 주민 등은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전단살포와 군사행동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6월 4일 오전 국무회의는 '「9.19 군사합의」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시간의 순서가 말해주는대로 자유북한연합의 대북전단 살포에 대한 대응으로 북의 오물풍선 살포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 이를 중단함으로써 대응수위가 높아지는 위기 국면을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인 판단이다.

통일 및 남북대화·교류·협력에 관한 정책 수립과 남북관계 개선을 주요 사무로 하는 통일부가 적극 나서서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통일부는 남북관계 상황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능력도, 의지도 없어 보인다.

대북전단 살포와 오물풍선 살포를 넘어 남북관계 상황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도 통일부는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하고 있다"(6.3 정례브리핑)는 입장만 되뇌일 뿐이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가 이른바 '대북삐라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에 대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을 이유로 위헌 결정을 하면서 현장에서 '경찰관 직무집행법' 등 판단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에 대해서도 "그건 현장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며 아예 손을 놓고 있다.

4일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관계자는 전단살포 단체와 계속 소통하고 있다면서도 "자제를 요청하는 차원이 아니고 그저 상황을 공유하는 그런 소통"이라며 입을 다물고 있다.

대북전단 살포 중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제 요청을 통해 조성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상식적 믿음에도 어긋난다. 

정권의 위기를 덮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남북관계 긴장을 높이려는 것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괜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또 하나. 정부 발표와 달리 한반도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의 부속합의서로 합의된 9.19군사합의가 파기된 과정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군사합의가 유명무실하게 된데에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을 중심으로 적대적 남북관계를 불사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요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작년 11월로 돌아가 보자. 지난해 11월 21일 밤 10시 42분 북한은 세번째 도전끝에 군사정찰위성 '만리경-1'호 발사에 성공했다. 

당시 영국을 방문중이던 윤 대통령이 주관한 가운데 열린 긴급 NSC 상임위원회의는 당일 '9.19 군사합의의 제1조 제3항에 대한 효력 정지를 추진하고, 과거에 시행하던 군사분계선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활동을 복원할 것'이라는 입장문을 냈다.

이튿날(11월 22일) 오전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무회의는 "남북간 상호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9.19 군사합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하는 방안"을 의결했으며, 대통령은 이를 최종 재가했다.

국방부는 이날 장관 주재로 전국 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군사분계선 상공에 '고정익 및 회전익 항공기'와 무인기, 기구 등 비행체의 종류에 따라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는 군사합의 제1조 제3항 효력 정지와 관련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 감시·정찰활동을 복원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당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북한의 위성 발사는 9.19군사합의 위반이 아니고 △우리 정부 역시 11월 말 군사위성 발사를 앞두고 있으며 △이미 한미의 군사위성, 정찰기, 레이더 등 정보자산이 압도적으로 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정찰 목적으로 굳이 접경지역 일대에 항공기 진입 등을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 결정 철회를 촉구했다.

이에 대해 북한은 11월 23일 국방성 성명으로 △지금 이 시각부터 우리 군대는 9.19북남군사분야합의서에 구속되지 않을 것 △북남군사분야합의에 따라 중지하였던 모든 군사적조치들을 즉시 회복할 것이라며 군사분야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했다.

연말 보도를 통해서는 △10월까지 전선지역에서 3,200여차례 확성기 방송 △연 1,100여척의 군함이 북측 영해 1,270여 차례 침범 △정찰기 연 150여 차례 영공침범과 각종 핵전략자산 상시 전개 등 사례를 열거하며 한국 정부가 남북군사분야 합의를 '전방위적, 입체적, 단계적, 상시적으로 위반'했다고 따졌다.

사실 관계를 살펴보면, 9.19군사합의가 유명무실하게된 것은 한국 정부가 먼저 일부 효력정지를 의결하고 북이 이에 대응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쪽에서 일부 효력정지를 발표하자 북이 전면 파기를 선언하고 이번에 다시 우리 정부가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를 공포한 시간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냉철한 고찰이 필요하다. '남북한 상호신뢰 회복'을 전제조건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상호신뢰'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먼저 솔직히 살펴보는 일이 순서상으로도 합당하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남북관계가 위기를 향해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통일부와 정부의 역할을 찾아볼 수 없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위협받고 있는 중대 국면에서 대통령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군사합의 전체 효력정지를 의결한 4일 국무회의를 총리에게 맡기고 '한-아프리카 정상회의'에 참석해 TV 앞에서 개회사를 했다. 전날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역시 TV앞에서 포항 앞바다 석유·가스 매장 가능성을 발표했다.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겠지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직접 관련된 일보다 더 그러했을까?  

전날 국무회의 안건 상정을 발표한 NSC 실무조정회의만 분주해 보인다.

실무조정회의에는 국가안보실 1차장을 겸하는 김태효 NSC 사무처장, 김홍균 외교부 1차관, 김선호 국방부 차관, 황원진 국가정보원 2차장, 김병대 통일부 통일정책실장, 인성환 국가안보실 2차장 등이 참가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한다는 믿음을 주고 있는지 자문해 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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