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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건 몸뚱이 하나, 끝까지 싸우면 반드시 승리한다”



 

[인터뷰] 26일 극한 단식 마치고 복귀한 마트노조 안수용 홈플러스지부장

-패배주의 박살 낸 ‘아사 단식’의 힘

-투기자본 MBK의 ‘빨대’를 뽑아라

-다시 채워지는 매대, 승리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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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형재

26일이다. 곡기를 끊고 오로지 물과 소금으로만 버틴 시간이 무려 한 달에 가깝다. 마지막 3일은 물과 소금도 끊는 아사단식을 결행했다. 앙상하게 마른 몸, 푹 꺼진 볼을 예상하며 마주 앉았으나 오산이었다. 안수용 지부장의 눈빛은 형형했고 목소리에는 쇳소리가 섞인 힘이 실려 있었다.

 

“굶어 보니 알겠더라. 벼랑 끝에 서면 길이 보인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니 비로소 살구멍이 트이더라는 그의 말에서 ‘전사’의 기질이 엿보였다.

 

홈플러스 대주주인 투기자본 MBK파트너스의 ‘먹튀’ 행각에 맞서 싸워온 안 지부장을 만났다. 단식의 후유증보다 투쟁 승리의 확신이 그를 더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벼랑 끝 전술, 몸뚱이가 무기였다

 

안 지부장은 지난 단식 기간을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라고 회고했다. 회사는 물건 대금을 못 줘 물류가 끊겼고, 전기요금이 밀려 전원이 차단될 위기였다. 10만 노동자의 생존터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점잖은 대화는 사치였다.

 

“우리가 가진 건 몸뚱이 하나뿐이지 않습니까. 이 몸 하나 던져서라도 숨구멍을 틔워야 했습니다.”

 

패배주의 박살 낸 ‘아사 단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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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부 3인이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자 현장이 요동쳤다. “지도부 죽이면 안 된다”며 부산, 울산 등 전국 각지에서 조합원들이 용산으로 달려왔다. 올라오지 말고 현장을 지켜달라는 호소에도 조합원들은 “우리가 대신 굶겠다”며 농성장을 지켰다.

 

가장 힘들었던 건 배고픔이 아니었다. “해도 안 된다”, “망해가는 회사 잡고 왜 목숨까지 거냐”는 패배주의 섞인 비아냥이었다. 그 말이 비수처럼 꽂힐 때마다 안 지부장을 다시 일으켜 세운 건 몇 십년을 함께 해온 동료들의 얼굴이었다.

 

“누워 있으면 천장이 빙빙 돌아요. 그때마다 제 손을 잡고 ‘우리는 지도부를 믿는다, 끝까지 가자’고 말해주는 조합원들 덕분에 버텼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두드리니까, 진짜 길이 열리더군요.”

 

투기자본 MBK의 ‘빨대’를 뽑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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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부장의 분노는 정확히 한 곳, 투기자본 MBK파트너스를 향해 있다. 멀쩡하던 알짜 기업 홈플러스를 인수해 빚더미에 올리고, 매장을 팔아치워 임대료 폭탄을 떠안긴 주범이기 때문이다.

“울산 남구점은 임대료만 한 달에 10억 가까이 나갑니다. 아무리 장사를 잘해도 이익이 날 수가 없는 구조를 MBK가 만들어놨어요.”

 

그는 MBK가 홈플러스를 담보로 빚잔치를 벌이고, 그 돈으로 자기들 배만 불린 ‘먹튀’ 행각을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MBK 김병주 회장은 처벌받아야 합니다. 단순한 경영 실패가 아닙니다. 국민연금이라는 노동자의 노후자금까지 끌어다 쓴 사기극이고, 골목상권을 파괴한 범죄입니다.”

 

다시 채워지는 매대, 승리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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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 건 투쟁은 헛되지 않았다. 꽉 막혔던 물류가 뚫리기 시작했다. 삼양라면이 들어오고, 아모레퍼시픽 물건이 매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텅 빈 매대를 가로로 눕혀 진열하며 고객들의 원성을 온몸으로 받아내던 직원들의 눈빛도 달라졌다.

 

“현장에 가보니 조합원들 기세가 대단합니다. ‘우리가 뭉쳐서 싸우니까 없던 길도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확신이 생긴 거죠.”

 

안 지부장의 다음 목표는 명확하다. 12월 말 회생계획서 제출을 앞두고, 홈플러스가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아닌 건실한 주인을 찾아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리고 MBK 같은 약탈적 투기자본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과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며 안 지부장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 모습에서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동자가 뭉치면 이깁니다. 홈플러스 투쟁은 이제 우리만의 싸움이 아닙니다. 골목상권을 지키고 노동자의 생존권을 지키는 이 싸움, 끝까지 해서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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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문 1답]

― 26일 단식 끝에 얻은 소중한 결실인데, 먼저 소회를 밝힌다면?

 

“솔직히 말해 하루하루가 벼랑 끝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11월부터 물건이 안 들어오고, 각종 세금이 밀려 전기까지 끊겨 전원이 차단될 위기였다. 12월이면 노동자들 임금도 장담 못 할 상황이라 홈플러스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가진 건 몸뚱이 하나뿐이지 않나. 이 몸뚱이로라도 숨구멍을 틔워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투쟁했다. 혼자가 아니라 수석부위원장, 사무국장 등 지도부 3명이 함께했기에 서로 의지하며 버틸 수 있었다. 그 결과 1차 고비를 넘기고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 1차 고비를 넘는 과정에 가장 크게 기여한 투쟁전술은 무엇이었나?

 

“지도부의 ‘무기한 단식’, 더 나아가 ‘아사(餓死) 단식’ 결심이 결정적이었다. 노동자가 가진 최후의 수단으로 목숨을 거니 현장이 요동쳤다. 조합원들이 ‘지도부 혼자 죽게 둘 수 없다’며 동조 단식에 나섰고, 그 수가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각 지역 조합원들이 ‘지도부 죽이면 안 된다’며 우리가 대신 굶겠다고 용산으로 달려왔다. 이 힘이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 움직이게 만든 결정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 지난 4월 삭발 투쟁을 시작으로 자칫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해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게 만든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내 입장에서는 바로 우리 조합원들의 얼굴이었다. 2014년 입사해 해고 투쟁을 거치며 울고 웃었던 동료들, 그리고 MBK가 들어온 뒤 10년 넘게 함께 싸워온 끈끈한 동지애가 나를 지탱했다. 사실 단식하며 누워 있을 때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회사가 언제 망할지 모르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이 내 손을 꼭 잡고 ‘우리는 지도부를 믿는다,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말해주었다. 20~30년을 같이 산 식구 같은 동료들을 두고, 안 된다고 몸부림 한번 안 쳐보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 투쟁 과정에 상처가 됐던 말과 힘이 됐던 말을 한 가지씩 꼽는다면?

 

“가장 상처가 된 말은 ‘해도 안 된다’는 패배주의였다. ‘사장도 포기한 회사를 너희가 무슨 수로 살리냐, 안 되는 일에 왜 목숨까지 거냐’는 비아냥을 수없이 들었다. 반대로 가장 힘이 된 말은 ‘우리는 투쟁하면 늘 이기지 않습니까, 지도부를 믿습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래,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지’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으면 바늘구멍 같은 틈이라도 열린다는 믿음으로 버텼다.”

 

― 투쟁을 하다 보면 사람이 남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는데, 지금 조합원들의 기세는 어떤가?

 

“사실 몸은 무척 고되다. 물건이 없어 텅 빈 매대를 채우느라 가로 진열했다가 세로 진열했다가 하며 일이 2~3배로 늘었다. 고객들에게 ‘언제 망하냐’는 소리 듣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하지만 이번 투쟁으로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최근 삼양라면이나 아모레퍼시픽 같은 곳에서 다시 물건을 넣기 시작했다. 꽉 막혔던 혈관이 뚫리는 걸 눈으로 확인하니 조합원들도 ‘단결해서 싸우니 없던 길도 만들어지는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됐다. 대구 경북 지역 현장에 가보니 ‘지도부 믿고 끝까지 가겠다’는 기세가 대단하다.”

 

― 다음 투쟁 과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싸울 생각인가?

 

“목표는 명확하다. 첫째는 투기자본 MBK에 대한 처벌이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 당시 5조 원을 빚내서 샀고, 그 빚을 갚느라 알짜 부동산을 다 팔아치웠다. 울산 남구점은 임대료만 한 달에 10억이다. 이건 명백한 ‘먹튀’이자 사기다. 김병주 회장과 경영진이 반드시 법적 처벌을 받도록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둘째는 홈플러스의 정상화다. 12월 29일 회생계획서 제출을 앞두고 있다. MBK가 아닌, 홈플러스를 지속 가능하게 운영할 수 있는 건실한 주인을 찾아 매각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이를 위해 정치권 압박과 대중 투쟁을 병행할 것이다.”

 

― 조합원과 이 투쟁을 지지해준 독자들에게 한 말씀?

 

“홈플러스 문제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골목상권과 농민들의 판로가 걸린 전 사회적 문제다. 홈플러스가 망가지면 해남 배추 같은 농산물 판로도 다 막힌다. 3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해주시고, 수많은 연대 동지들이 함께 싸워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노동자가 뭉치면 길이 열린다는 희망을 보여드리고 싶다. 끝까지 함께 싸워서 우리 노동자와 가족들이 행복한 세상을 반드시 만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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