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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발 충격,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장담 못 해



[강명구의 뉴욕 직설] 일본 금리 인상, 글로벌 유동성 역전의 시작

25.12.18 06:58최종 업데이트 25.12.18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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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 위치한 일본은행(BOJ) 본사 모습. 2023.8.18.AP/연합뉴스

 

이번 주 목요일과 금요일, 일본은행(BOJ) 정책위원회가 양일간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행 0.50%에서 0.75%로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은 이 인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숫자로 보면 고작 0.25%포인트에 불과하지만, 이 결정의 파장은 도쿄 금융가를 넘어 뉴욕과 서울까지 미칠 전망이다.

 

긴장의 신호는 이미 암호화폐 시장에서 감지된다. 비트코인은 일본은행 금리 인상 때마다 급락하는 뚜렷한 패턴을 보여왔다. 지난해 3월 마이너스 금리 종료 때 23%, 7월 첫 인상 때 26%, 올해 1월 두 번째 인상 때는 31%가 빠졌다. 비트코인이 글로벌 유동성의 변화를 가장 먼저, 가장 민감하게 반영해 왔기 때문이다.

 

도대체 일본 금리가 왜 뉴욕 금융시장과 암호화폐까지 흔드는 걸까? 그 답은 '엔 캐리 트레이드'에 있다. 30년간 글로벌 금융시장에 싼 돈을 공급해온 이 흐름이 역전되면, 그 돈으로 굴러가던 자산들이 함께 흔들리는 구조다.

 

엔 캐리 트레이드, 30년간 작동한 글로벌 유동성 펌프

 

흔히들 '엔 캐리 트레이드'라 부르는 자금 흐름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일본에서 거의 0%에 가까운 금리로 엔화를 빌려 이 돈을 달러로 바꾼 뒤 미국 국채나 기술주, 암호화폐처럼 수익률이 높은 자산에 투자한다. 금리 차이만큼 이익이 남는 구조다.

 

이익은 금리 차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엔화를 빌려 달러로 바꾸면 엔화 매도 압력이 생긴다. 엔화가 약세를 보이면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의 가치도 줄어든다. 100엔을 빌렸는데 갚을 때는 90엔 가치만 갚으면 되는 셈이다. 금리로 벌고, 환차익으로 또 번다. 돈을 빌릴수록 이익이 늘어나니 더 빌리고 싶어진다. 월가에서 '무한 돈복사(infinite money glitch)'라 부른 이유다.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공식 추정치만 1조~1.7조 달러에 달하고, 장부에 잡히지 않는 외환스와프까지 포함하면 2조 달러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있다. 이 큰 뭉치돈의 자금 흐름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이미 시장에 확산되어 있다.

 

30년 가까이 이 펌프가 멈추지 않았던 이유는 일본은행이 '세계 금융의 닻'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자산 버블 붕괴 이후 일본은 디플레이션과 싸우며 제로금리, 마이너스 금리, 수익률 곡선 통제(YCC)까지 동원했다. 전 세계 트레이더들에게 엔화는 '빌리는 통화'였지 '보유하는 자산'이 아니었다. 이 구조적 현실이 글로벌 채권 금리를 억누르고 위험자산 투자를 부추겼다.

 

그러나 이 닻이 들어 올려지고 있다. 일본 물가상승률이 43개월 연속 목표치(2%)를 상회하고, 10월 근원물가는 3%에 달했다. 엔저가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기업들은 가격 전가에 적극적이다. 올해 춘투에서 대기업들이 5% 이상 임금 인상에 합의하면서'임금-물가 선순환'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금리 인상의 명분이 갖춰진 것이다.

 

정치적 장애물도 사라졌다. 취임 전부터 금리 인상은 멍청한 짓이라며 반대 입장을 취해 온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엔화 약세와 물가 압력에 밀려 결국 한 발 물러선 상황이다. 그렇다면 캐리 트레이드 청산은 시장에 어떤 충격을 주게 될까?

 

청산 충격의 전파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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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행(BOJ)의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지난 9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정책회의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우리는 이미 두 번의 예고편을 목격했다.

 

첫 번째는 지난해 8월 '블랙먼데이'다. 일본은행이 7월 말 금리를 0.25%로 올리자 엔화가 급등했다. 빌린 엔화를 갚아야 하는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팔고 엔화를 사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8월 5일 하루 만에 일본 토픽스(TOPIX) 지수가 12% 폭락했고, 충격은 태평양을 건너 미국 주식시장(S&P 500)을 6% 끌어내렸다. '공포 지수'로 불리는 변동성 지수(VIX)는 평소 15~20 수준에서 움직이는데, 이날 65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패닉 이후 최고치였다.

 

두 번째 예고편은 올해 1월이다. 일본은행이 금리를 0.50%로 올린 바로 그 주에,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저비용 AI 모델을 공개했다. 미국 빅테크가 막대한 투자로 쌓아올린 기술 격차를 중국이 훨씬 적은 비용으로 따라잡을 수 있다는 충격이었다. 두 사건은 별개였지만 시장 충격은 동시에 터졌다. 엔비디아 주가는 하루 만에 17% 급락하며 시가총액 약 5900억 달러가 증발했다. 미국 증시 역사상 단일 종목 최대 낙폭이었다.

 

두 번의 예고편이 보여준 충격의 전파 경로는 명확하다. 1차는 엔화 강세다. 엔화가 오르면 캐리 트레이드 투자자들은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자산을 팔아야 한다. 2차는 위험자산 매도다. 미국 기술주와 암호화폐가 가장 먼저 팔린다. 블랙먼데이와 딥시크 쇼크 때 목격한 패턴이다. 3차는 미국 국채 시장이다. 일본 자금이 본국으로 회귀하면 미국 국채 금리가 상승 압력을 받는다. 3차 충격은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12월은 앞선 두 번과 조건이 다르다. 캐리 트레이드 수익은 일본과 미국의 금리 차에서 나오는데, 지금 일본은 금리를 올리고, 미국은 내리고 있다. 양쪽에서 금리 차가 좁혀지니 수익성이 더 급격히 악화될 전망이다. 청산 압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만이 아니다. 일본은행은 양적긴축도 병행 중이다. 국채 매입 규모를 분기당 4000억 엔씩 줄여오다가, 초장기물 금리가 급등하자 올해 6월 속도를 2000억 엔으로 늦췄다. 그럼에도 10년물 국채 금리는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인 2%에 육박하고, 30년물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더 큰 우려는 장부에 드러나지 않는 레버리지다. 국제결제은행(BIS) 추정에 따르면 외환스와프 형태로 숨어 있는 엔화 차입 규모가 1.7조 달러에 달한다. 일본 생보사들의 환헤지 비율은 45%로 역사적 저점이다. 엔화가 급등하면 헤지되지 않은 55%가 손실로 직결된다. 지난해 8월 농림중앙금고(農林中央金庫)가 93억 달러 손실을 입고 630억 달러 외국채 매각에 나선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2026년 1분기, 진짜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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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일본 도쿄 긴자 쇼핑가에서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일본의 경제 관심사는 다가오는 일본은행(BOJ) 회의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행은 임금 상승세가 여전히 유지되면서 금리 인상 조건이 충족되었음을 시사했다. EPA/연합뉴스

 

시장의 시선은 이미 내년 1분기를 향하고 있다. 엔 캐리 청산의 파급 경로 중 가장 우려되는 곳은 미국 국채 시장이다. 일본은 1.1조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세계 최대 채권국이다. 지난 수십 년간 일본 연기금과 생보사는 국내에서 수익을 내기 어려워 미국 국채를 사들였다. 그러나 일본 국채 금리가 2%에 육박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굳이 환율 위험을 감수하며 미국 채권을 살 이유가 줄어든 것이다.

 

적극 매도까지 가지 않고 신규 국채 매입을 중단하는 것만으로 시장에는 충격이 될 수 있다. 미국 재정적자가 연간 2조 달러에 육박하고 시장이 흡수해 줘야 하는 물량이 연간 9조달러를 상회한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채권국이 발을 빼는 형국이 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미국 국채 금리는 연준 정책과 무관하게 상승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환율은 이 충격의 가장 빠른 전달 경로다. 엔화 강세가 본격화되면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가속화되고, 그 충격은 아시아 신흥국 통화로 전이된다. 달러당 1470원을 넘나드는 원화 환율이 추가 상승 압력에 노출될 가능성 또한 높다. 당연히 대비가 필요하다.

 

문제는 대비의 어려움이다. 30년간 쌓인 레버리지가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충격은 예정되어 있지만, 그 규모와 경로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도한 대비가 부족한 대비보다 낫다.

#엔캐리트레이드 #일본은행 #미국재정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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