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기차에서 본 세상] "일단 먹고, 계산은 나중에" 식의 경쟁 구도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5.12.19. 05:48:38
현재 진행 중인 대통령 업무보고 과정에서 한국철도가 안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가 드러났다. 바로 철도차량 산업 분야가 처한 현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국토교통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다원시스가 납품을 지연했음에도 열차 계약금의 절반 이상이 이미 지급된 점을 두고 "정부 기관들이 사기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네트워크 산업인 철도는 전국적 망을 가진 거대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으로 인해 막대한 투자와 유지비용이 필요하다.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는 것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경쟁체제란 이름으로 찢기 시작하면 필요 없는 중복비용을 지불하거나 본질을 망각한 경쟁을 위한 경쟁에 매몰되어 산업 자체가 황폐화되고 결국 국민 불편으로 돌아온다. 철도를 구성하는 3요소는 철도망을 이루는 시설과 열차를 운행하는 운영, 그리고 차량 제작 산업으로 이루어진다. 가장 바람직한 구조는 이 3요소가 통합된 체제이겠지만 각 국가의 철도 역사나 사회적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최소한 유기적인 보완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철도를 구성하는 중요한 축 중의 하나인 차량 제작 산업은 정부가 정책으로 면밀하게 주도하고 지원해야 하는 분야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주기적으로 마련하는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에 이를 포함하지 않고 시장에 전적으로 맡겨놓은 상태다. 한국은 세계에서 5번째로 고속철도 운영을 시작한 나라로 철도 분야의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전체 영업거리의 한계로 인하여 차량분야 시장은 협소하다. 때문에 차량제작사의 난립은 경쟁의 효과를 얻기보다는 자칫 차량제작분야의 국제 경쟁력까지 갉아먹을 수 있다.
한때 한국 철도차량제작 분야는 대우, 한진, 현대 등 대형 중공업 회사들이 경쟁하는 시장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작은 내수 시장 규모에 부침을 겪다가 IMF를 지나며 현대에 흡수되어 로템으로 일원화 되었다. 이후 2010년경부터 철도차량제작 업체들이 새로 등장하고 이들 간에 인수 합병 과정 등을 거처 현재 현대로템, 다원시스, 우진산전 삼각구도로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앞서 지적한 대로 한국 철도차량제작 시장은 이들 업체가 적절히 사업을 영위할 만큼의 시장 규모가 되지 않기 때문에 세 회사는 제로섬 게임을 해야 한다. 어느 한 업체가 대량의 차량을 수주할 경우 다른 업체는 안정적인 생산을 유지할 물량을 수주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철도 차량 입찰 경쟁은 회사의 사활이 달린 문제이고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수주전에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철도선진국들은 철도차량제작분야를 주요 국가 기간산업으로 간주하고 주력 업체가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독일의 지멘스, 프랑스의 알스톰 등 차량제작사는 자국을 대표하는 고속철도 차량은 물론 국제철도 시장에서 다양한 철도 차량을 공급함으로서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 이미 충분히 큰 회사들도 규모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서로 간 인수와 합병으로 더 몸집을 불리고 있는 현실이다. 일본은 히다치, 가와사키, 미쓰비시 등의 차량제작사가 탄탄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특이한 점으로 일본 최대의 철도회사 동일본 JR의 경우 JR종합차량제작소라는 직할 자회사를 제작사로 두고 있다. 자신이 사용할 철도차량을 직접 제작함으로써 차량 구매 비용의 적정성은 논란이 되지 않는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