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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배상과 보상, 정부의 적극 행정 기대한다

하성환 시민기자

ethics60@naver.com

한국교육의 위기와 민주시민교육(인간과 자연사, 2025)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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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배상 책임 소멸시효 적용 배제가 마땅

이 대통령 "국가 폭력과 인권 침해 총체적 사과"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찾아나서는 행정 펼쳐야

국가는 진화위 결정 존중해 소송 제기 자제를

세금으로 로펌 선임 피해자 소송 방해 말아야

국가는 법원의 화해 조정안 전향적 수용했으면

대통령 직속 피해회복위원회 설치 적극 나서야

역사 정의는 가해자 단죄와 피해회복에서 시작

이재명 대통령이 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진실화해위 3기 출범 계기 국가폭력 피해자 위로 오찬에서 인사말을 마친 뒤 참석자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2026.8.7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청와대로 초청했다. 3기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출범을 계기로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오찬을 함께하며 그들을 위로하는 자리였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 현대사가 성장과 발전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국가폭력의 역사였다”고 고백했다. 다시 말해 국가의 “인권침해로 국민이 깊이 상처를 입은 굴곡의 역사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프락치 사건, 동일방직 사건, 삼청교육대 사건, 서산개척단 사건, 납북어부 간첩 조작 사건, 강제징집 녹화사업, 사북탄광 항쟁, 전교조 해직 등 “무리한 공권력으로 삶이 짓밟힌 국민이 많았다”고 술회했다. 나아가 “고통과 상처가 그 시대에 머물지 않고 계속 대물림됐고 국가는 피해자들의 간절한 물음에 충분히 응답하지 못했다”며 국가의 책임을 통절하게 돌아봤다.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숱한 간첩조작사건들(출처: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글쓴이가 촬영해 갈무리)

과거 김대중 국민의정부와 노무현 참여정부, 그리고 문재인 정부에서 제주 4·3항쟁과 5·18 광주항쟁 등 개별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한 적이 있다. 그렇지만 현대사 속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사건을 행정부 수반으로서 총체적으로 사과한 것은 처음 마주하는 장면이다. 이날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함께 “형제복지원, 덕성원, 해외 강제 입양 등 과거사 인권침해 문제를 더 이상 다음 세대에 떠넘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책임지겠다”라고 약속했다.

대통령의 발언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내용은 “국가 책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며 “국가폭력으로 인한 배상 책임에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않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 전후 독일의 역사 청산이 떠올랐다. 적어도 독일처럼 나치 전범들과 협력자들을 영구히 단죄하겠다는 내용은 없었지만 그래도 국가폭력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나서서 적극 행정을 펼치겠다고 선언한 대목이 그렇다.

 

제주 4·3 집단 학살에 대해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폭력이었다며 공식 사과하는 장면(출처: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글쓴이가 촬영해 갈무리)

사실 대한민국은 과거사 청산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사례만큼도 못하다. 독일처럼 가해자를 끝까지 추적해 90세가 넘어도 법정에 세워 응징하는 장면까진 바라지 않는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1976~1983) 기간 3만 명에 이르는 반정부 지식인, 학생, 노동자들을 학살한 비델라 군부 독재자에게 종신형을 선고한 아르헨티나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다 못해 가해자가 은폐된 국가폭력의 진실을 고백하고 사과하면 용서하는 남아공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은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든 국가폭력으로 은폐된 역사의 진실이든, 피해자의 피해회복이든 그 어느 하나 온전히 이뤄진 게 없다. 그렇게 8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김대중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관련 특별법’에 서명하고 있다. 2000.1.11. 연합뉴스

그나마 1998년 처음으로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 국가폭력 범죄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 1월 김대중 국민의 정부에서 「제주 4·3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했다. 그리고 노무현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이 직접 머리 숙여 공개사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추념사를 하고 있다. 2020.4.3. 연합뉴스

3기 민주정부 문재인 대통령 또한 2018년 제주 4·3 추념일 70주년을 맞아 공식사과했다. 따라서 국가폭력 관련 국가 배·보상을 염두에 두고 이재명 정부에 다음 네 가지 사안을 당부하고자 한다.

먼저 국가폭력 범죄로 발생한 피해회복에 대해 관련 국가기관이 직접 나서 피해를 온전히 배·보상해야 한다. 지금처럼 피해자 개개인이 진화위 결정에 따라 일일이 변호사를 선임해 민사소송을 제기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 그것은 소극적 의미에서 또 다른 국가폭력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국가가 직접 피해자를 찾아나서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 행정 표명에 박수를 보낸다.

해방된 지 80년이 지났으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보훈 행정조차 매우 소극적이다. 독립유공자와 그 가족이 분산된 여러 관계기관을 찾아가 독립운동을 입증할 서류를 일일이 검색하고 찾아낸 서류를 전부 첨부해 국가보훈부에 제출해야 심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소극적인 행정이 아닐 수 없다.

국가폭력 희생자 피해 회복을 위해선 독립유공자 보훈 심사처럼 진행하면 절대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밝혔듯 국가가 나서서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직접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민주 정부다운 모습이다.

다음으로 국가는 국가폭력 범죄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다른 국가기관인 진화위의 결정을 존중해 원고의 피해회복 노력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대형 로펌을 선임해 민사소송에서 피해회복을 방해하는 것은 2차 가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폭력 피해자가 국가를 상대로 피해 회복을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패소하거나 승소해도 몇 년씩 지연된 경우가 많다.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여섯 번째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은 고문 조작 수사로 진씨와 김씨 일가족을 말살한 잔혹한 국가폭력 범죄였다.(출처: 하성환) 진항식, 김상회 님은 사형 판결로 처형됐고 동생 진창식, 아들 김태룡은 무기징역, 나머지 8명 가족들은 5년~10년 징역형을 복역했다. 2009년 진화위 재심 권고로 2014년 재심 개시 결정에 따라 2016년 12명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솔직히 삼척간첩단 조작사건처럼 국가폭력 범죄로 가정이 풍비박산 나고 가족이 해체된 경우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미 고인이 된 경우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가를 상대로 하는 피해회복 민사재판에서 소송비를 마련하기도 어려운 상황인 점을 생각하면 현재 피해 구제를 위한 민사소송에서 국가는 결코 소송으로 맞설 일이 아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승소하기는 더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세 번째로 법원의 화해 조정안을 국가는 적극 수용해야 한다. 피해 회복을 위한 민사소송은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시간이 너무도 오래 걸린다. 민주 정부의 역사가 짧은 탓도 있지만 대부분 소송 기간이 길다. 모두 사형당한 인혁당 사건처럼 국가폭력 피해 유족들 대부분이 고령이다. 삼척간첩단 사건과 재일동포유학생 간첩단 사건, 그리고 삼청교육대 또한 마찬가지다.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고령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1989년 전교조 해직 당시 1527명 중 100명 정도가 고인이 되었다. 부부 해직교사 모두 작고한 경우도 있다. 따라서 소송으로 가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다. 국가가 나서서 법원의 화해 조정안을 적극 수용하는 게 올바른 처신이자 피해자를 존중하고 가족을 배려하는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이재명 정부에게 당부하고 싶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를 찾아 나서는 것과 함께 국가기관이 직접 국가 배·보상을 통해 피해회복을 적극 이행해야 한다. 국가기관인 진실화해위 결정에 따라 대통령 직속 가칭 <피해회복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 피해자 대표가 위원으로 참여하는 <피해회복위원회>는 해당 관련 부처와 협업해 피해 회복을 위한 피해액 산정을 결정함으로써 국가 배상과 보상을 신속히 집행하도록 해야 한다.

피해자나 유족이 일일이 관련 기록물을 검색하고 수집해 민사소송을 제기하고 피해액 산정과 관련하여 국가와 쟁송하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가폭력 피해자와 그 가족이 국가기관인 진화위의 결정으로 인권침해를 인정받은 만큼 관련 국가기관은 직접 국가기록물 자료를 첨부해 빠르게 피해가 치유되도록 적극행정을 펼쳐야 한다. 그러할 때 국가폭력 범죄와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사죄가 진정성을 획득할 수 있다.

 

칠성판은 물고문 당시 썼던 고문기구다.(출처: 민주화운동기념관에서 글쓴이가 촬영해 갈무리함)

손바닥이 솥뚜껑처럼 크고 90kg의 거구인 고문 기술자 이근안은 88세 천수를 누렸다. 그러나 그에게 고문당해 만신창이가 된 김근태는 평생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다 64세로 작고했다. 잠 안 재우기 고문을 비롯해 물고문, 전기고문, 날개꺾기 고문을 당할 때 김근태 장관은 모세혈관이 가위로 잘리며 끊어지는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박종철 군 아버지 박정기 님은 아들의 유해를 경찰이 감시하는 속에서 화장 후 임진강에 흩뿌렸다. '종철아! 잘 가그래이... 아부지는 아무 할말이 없대이'를 읊조리며... 이후 박정기 님은 아들이 가던 민주화운동가로서 삶을 평생 사시다 2018년 아들 곁으로 떠나셨다. 지금은 마석 모란공원에 안장돼 있다.(출처: 하성환)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은 남영동 대공분실(현재 민주인권기념관)에서 22세로 죽임을 당했다. 신체 건강한 청년이 갑자기 연행된 지 10시간 만에 발생한 참변이다. 그런데 남영동 대공분실을 총괄한 대공수사처장 박처원은 80세를 살았다. 그는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인물이다. 실제로 박처원은 젊은 시절 반민특위 해체의 계기가 된 국회프락치 사건 수사에도 참여한 인물이다.

공권력은 정당하게 발동되고 행사돼야 한다. 그런데 국민의 인권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오히려 인권을 짓밟는 국가폭력으로 변질했다면 정당화될 수 없다. 불행히도 대통령의 발언처럼 대한민국 현대사는 국가폭력의 역사였다.

 

남영역(1호선) 바로 옆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관) 남영동 대공분실, 바로 M2관이다.(출처: 하성환)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1976년 설계한 당시는 5층이었다. 1983년 7층으로 증축했다. 유독 5층 창문만 좁다. 조사실, 바로 고문실로 탈출을 막기 위해서였다.

민주화를 부르짖은 시민을 불법 체포하고 고문을 가했으며 심지어 의문의 죽음을 초래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인권은 존재하지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족이 해체되기까지 했다.

 

제주 4.3 항쟁 당시 서북청년회를 대거 경찰로 편입시킨 이승만 정권은 제주도민을 향해 잔혹하게 학살 만행을 자행했다. 젊은이들은 학살 대상이었고 청년이 없는 가정은 도피자 가족으로 몰려 대신 희생됐다.(출처: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글쓴이가 촬영하여 갈무리)

가해자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하판락, 노덕술, 이근안, 박처원을 비롯해 단 한 명도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고문은 예술’이라는 조롱섞인 표현으로 국가폭력과 인권침해를 합리화했다.

이제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 길이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지름길이다.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우는 첫걸음이 국가폭력 범죄 가해자에 대한 단죄와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과 보상임은 자명하다. 문제는 독립유공 서훈에서 보이는 국가보훈부의 소극행정을 뛰어넘어야 한다. 국가폭력 범죄 가해자에 대한 단죄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오찬 위로 모임에서 대통령의 표현대로 국가폭력 피해회복에서 정부는 적극행정을 펼쳐야 한다.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한 대통령의 표현대로 공동체 "모두를 위한 특별한 희생에는 특별한 보상과 예우가 뒤따라야 한다." 그런데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특별한 보상과 예우까진 바라지 않는다. 다만 피해가 온전히 회복되길 바랄 뿐이다.

하성환 시민기자 ethics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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