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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잘리고 실명…'고문 지옥'에서 살아 남은 기자들 증언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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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전쟁범죄⑱] 성고문 생지옥-감옥⑦

“스파이로 협조할래? 아님 징역 더 살래?”

“나가서 떠들면 또 투옥된다”며 침묵 강요

유엔 “이스라엘 감옥 고문, 전례 없는 수준”

이스라엘, 고문방지협약의 비준 서명국 맞나

입소, 이감 때마다 쏟아지는 ‘환영식’ 몰매

구타, 전기충격, 굶주림, 질병으로 체중 급감

기자들도 항문 성고문, 수간 피하지 못해

 

이스라엘 감옥에서 풀려나 가자지구로 돌아온 이가 호송버스에서 내린 뒤 지금도 갇혀 있는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떠올리며 큰 소리로 울부짖고 있다.ⒸThe Palestinian Information Center

고문이란 단어는 듣기만 해도 오싹한 느낌을 주기 마련이다. 고문의 역사는 참으로 오래 이어졌다. 기원전 1300년 무렵 이집트의 히타이트 원정 때 람세스 2세는 적군의 병력 배치 상황을 알아내려고 포로들을 고문했다고 한다. 고대 중국이나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가릴 것 없이 고문은 권력자가 약자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쓰였다. 지난 3년 가까이 이스라엘 감옥에서 저질러진 고문도 피억압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의지를 꺾으려는 시도이자 전쟁범죄다.

유엔 고문방지협약은 지난 1984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국제인권조약의 하나다(1987년 발효). 40여년 전 그 조약 체결에 앞장섰던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 활동가들은 “어떤 경우라도 고문을 정당화할 예외적 상황은 없다”는 말로 회원국들을 설득했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이 고문방지협약의 비준 서명국이라는 점이다(서명 1986년, 비준 1991년).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저 허울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겨냥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는 이스라엘 스스로를 전범국가로 낙인찍었다. 2023년 10월 7일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진 이래 이스라엘군이 벌여온 마구잡이 인명살상을 가리켜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와 인권단체들은 ‘집단학살(genocide)’로 못 박았다.

UN, “완벽한 면책 아래 고문 저질러”

지난 3년 가까운 기간에 유엔의 여러 관련기구와 특별보고관들, 그리고 독립적인 국제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행위, 특히 감옥에서의 인권 침해를 지적하는 보고서들을 펴내왔다.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와 그에 속한 유엔팔레스타인인권사무소(OHCHR oPt),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 유로-메드 인권 감시단(Euro-Med Human Rights Monitor), 휴먼라이츠워치(HRW)의 보고서들이 그러하다.

인권 활동가들은 “그 보고서들을 프린트해서 쌓아 놓으면 트럭 한 대 분량은 충분히 될 것”이란 말들을 주고받는다. 이스라엘의 잔혹행위를 비판하는 보고서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이고, 실제로 숱한 희생자를 낳아 왔다. 2025년 11월 12일 유엔 고문방지위원회(UN Committee against Torture)는 이스라엘 교도소의 감시 환경과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에 대한 조직적인 고문을 논의하면서 그 보고서들을 다시 살펴보고는 새삼 놀라움을 나타냈다.

[본 위원회는 다양한 출처로부터 접수된 수많은 다른 보고서들을 통해 팔레스타인인, 특히 어린이와 기타 취약 계층에 대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고문과 비인도적 대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보고서들은 2023년 10월 7일 이후 고문과 학대가 급격히 늘어나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거의 완벽한 면책 아래 (고문과 학대가) 저질러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난 많은 사람들은 고문이나 학대를 당했다고 증언했다. 여기에는 성기를 포함한 신체에 대한 심한 구타, 전기 충격, 장시간 고통스러운 자세 강요, 고의적인 비인도적 환경 조성 및 기아, 물고문, 그리고 광범위한 성적 모욕과 강간 협박 등이 포함된다.]

(https://www.ohchr.org/en/meeting-summaries/2025/11/experts-committee-against-torture-commend-israels-initiative-frontline)

 

팔레스타인 언론인 30명이 갇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오페르 감옥의 야간 전경 ⒸZain Jaafar/AFP

CPJ 보고서 “우린 지옥에서 돌아왔어요”

2023년 10월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터지면서 많은 팔레스타인 기자들이 붙잡혀 갔고 고문을 받았다. 언론인보호위원회(CPJ)는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언론인 단체다. 1982년 창립 이래 ’언론계의 국제적십자사‘와 같은 기능을 맡아 왔다. CPJ는 2026년 2월 19일 “우린 지옥에서 돌아왔다(We Returned from Hell)”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감옥에서 풀려난 팔레스타인 언론인 65명 가운데 59명이 CPJ와의 인터뷰로 생생한 증언을 남겼다. 기자들은 한결같이 “고문과 학대를 받았다”고 몸서리쳤다.

(https://cpj.org/wp-content/uploads/2026/02/EN-%E2%80%98We-returned-from-hell-Palestinian-journalists-recount-torture-in-Israeli-prisons-Committee-to-Protect-Journalists.pdf)

CPJ 보고서에 따르면, 풀려난 기자들이 갇혀 있던 수감시설마다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고문을 비롯한 학대 유형은 놀랍도록 일치했다. 신체적 폭행 방식, 샤바흐(shabach) 라는 고통스런 자세 강요, 시끄러운 음악이 귀청을 때리는 ’디스코 룸‘이란 공간에 며칠씩 가둬두는 음향폭탄 고문, 성폭행, 의료 방치 등은 모든 수감시설에서 저질러졌다. 또한 보고서에 담긴 증언들은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을 비롯한 다른 곳에서 낸 증언집의 내용과 거의 같다. 베첼렘은 ‘지옥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Hell, 2024년 8월), '살아있는 지옥(Living Hell, 2026년 1월), 이 두 개의 보고서(증언집)에서 이스라엘 수감시설을 ‘고문 수용소 네트워크’라고 지적했다(연재 14 참조).

풀려난 기자들은 다들 몸무게가 크게 줄었고 얼굴이 야위었다. 몸무게는 평균 23.5kg 줄어들었다.

세계보건기구(WHO) 통계로 보면, 7살 난 어린이 몸무게만큼 줄어든 셈이다. 풀려난 언론인들 가운데는 50kg이나 줄어든 이들도 있다. 팔레스타인 투데이 TV 기자 아흐메드 샤쿠라(Ahmed Shaqoura, 38세) 기자는 2023년 12월 8일 붙잡혀 갔다가 2025년 2월 15일 풀려날 때까지 14개월 갇혀 있는 동안 54kg이 줄었다(126kg→72kg). 그는 말한다. “북부 이스라엘의 알잘라메 감옥에서 보낸 140일 동안의 심한 고문으로 다리 근육이 파열되어 두 달 동안 고통받았다. 그들은 내 갈비뼈를 부러뜨렸다. 또한 플라스틱 수갑으로 내 손을 묶어 심하게 피를 흘리게 했다.”(https://cpj.org/data/people/ahmed-shaqoura/)

CPJ가 인터뷰를 한 59명의 기자들 가운데 10명은 선동, 반국가 활동 또는 테러 조장 혐의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났다. 나머지 대부분의 기자들은 어떤 범죄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았고, 악명 높은 불법전투원법이나 행정구금 제도에 따라 구금되었다. 이 제도는 이스라엘에 맞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소 없이 붙잡아 두고, 6개월 구금 기간이 지나면 연장할 수 있기에 무기한 가둬놓을 수도 있다.

기자의 갈비뼈 부러뜨린 ‘환영식’

2024년 3월 18일,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알 시파 의료 단지를 공격하여 수십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체포했다. 그날 사진기자 샤디 아부 시도(Shadi Abu Sido, 레바논 베이루트에 본사를 둔 민영 방송사 팔레스타인 투데이 소속)도 붙잡혀 스데 테이만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로부터 20개월 동안 지옥을 체험했다. 시도 기자는 알 시파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한 병사가 그에게 몸을 기울이더니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게임 오버(Game is over).” 한마디로 “더 이상 맞서지 말라”는 뜻이다.

시도 기자는 스데 테이만 수용소로 끌려 들어가면서 그곳 경비병(제100부대 소속)들로부터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다. 신입 수감자들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의식을 그곳에선 ‘알 타슈레페’(al-Tashreefeh, 환영식)라 일컫는다. 수갑이 채워지고 눈가리개를 한 채 군용 트럭에서 내린 가련한 이들을 향해 이스라엘 경비병들은 마음껏 폭력을 휘둘렀다. 곤봉과 발길질, 그리고 가해자의 고함소리와 피해자의 비명이 뒤섞여 어지러운 복도를 지나가야 했다. 그 악마의 환영식으로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었다. 시도 기자도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시도 기자는 “하마스 관련 정보를 대라”며 고문을 받았다. 그 때문에 눈을 크게 다쳤다. “그들은 고문 중에 내 시력 손상을 목표로 삼았다고 대놓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우리가 네 카메라 렌즈를 부쉈으니 이제 네 눈의 렌즈도 부숴서 다시는 카메라를 조작하지 못하게 할 거야"라고도 말했다. 지금 시도 기자는 한쪽 눈으로만 사물을 바라볼 수 있다.

옥중에서 건강이 나빠진 데다 음식이 너무나 형편없어서 시도의 몸무게는 확 줄었다. 붙잡혀 들어갈 때 95kg이었지만, 2025년 10월 휴전협정으로 풀려날 때는 63kg이었다. 이스라엘군 정보장교(504부대 소속)는 감옥 문을 나서는 시도 기자에게 협박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언론계로 돌아가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반대운동을 선동하지 말라. 그러면 다시 체포되어 살해될 것이다.”

스데 테이만에 갇힌 ‘강제실종자’

가자지구의 가족 잡지 알 사아다와 알라이 라디오에 기고를 하던 프리랜서 언론인 모하메드 나페즈 카우드(Mohammed Nafez Qaoud)는 11개월 동안 지옥을 겪었다. 2024년 3월 19일 피난민 친척을 만나러 가던 중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힌 카우드는 여러 달 동안 행방불명자(이른바 ‘강제 실종자’)로 분류돼 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다행스럽게도, 변호사가 감옥에 갇혀 있는 그를 간신히 찾아냈다.

카우드 기자가 처음 끌려간 곳은 네게브 사막의 군 구금시설인 스데 테이만이었다. 그곳까지 트럭에 실려 가는 도중에도 심한 폭행이 이어졌다. 함께 붙잡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카우드는 곤봉과 총으로 머리와 등을 줄곧 두들겨 맞으며 갔다. 그리곤 ‘환영식’ 구타가 이어졌다. 3월 하순이라 아직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스데 테이만 경비원들은 그의 옷을 완전히 다 벗도록 명령했다. 그리고는 고통을 더 주려고 5분마다 찬물을 끼얹고 심한 구타와 욕설을 퍼부었다(차가운 땅바닥에 오래 누워있었기에 카우드는 천식 증세로 고통받았다. 지금도 흡입기에 의존하고 있다).

스데 테이만이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연재 15-17회). 카우드 기자는 손이 묶이고 눈이 가려진 채 그곳에서 100일 동안 머물렀다. 그는 특히 덩치가 큰 군견의 폭력에 시달렸다고 증언한다. 훈련된 군견들은 입마개를 하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금속 입마개로 공격할 경우 몸에 상처가 생기고 흉터가 남았다. 그는 또한 경비병들로부터 입에 담기 힘든 언어적 학대에 시달렸다.

오페르 감옥으로 이송되기 직전에는 수십 시간 동안 이어진 고문을 당했다.

CPJ와 인터뷰를 한 59명의 기자 가운데 56명은 감옥 안에서뿐만 아니라 체포 및 이송 과정에서도 반복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밝혔다. 카우드 기자도 오페르로 가는 길에서 퍼부어지는 매를 견뎌야 했다. 모두 합쳐 30명쯤의 언론인이 갇혀 있었던 오페르는 수감 환경이 열악하기로는 스데 테이만 못지않았다. 14명만 수용할 수 있는 감방에 25명이 갇혀 있었고, 겨울에는 열린 창문으로 빗물이 찬바람과 함께 새어 들어왔다. 수감자들은 의료 서비스는커녕 위생용품조차 받지 못했다. 경비원들의 구타로 카우드는 오른쪽 발을 심하게 다쳤다. 치료를 못 하고 방치하는 바람에 감염이 심해져 “상처에서 벌레가 나올 정도였다”고 증언한다. 또한 장기간 구속복(수갑과 가죽혁대를 매단 특수복)을 입고 있었던 탓에 손의 감각을 잃었다. 붙잡혔을 당시 몸무게가 96kg이었으나, 풀려날 때는 58kg였다.

 

모하마드 바드르 기자는 심하게 구타당해 혀가 잘려 나갔고, 2주 동안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음식도 먹지 못했다. 10개월 동안 몸무게가 40kg 줄었다. ⒸMohammad Badr

“폭행으로 혀가 잘렸다”

팔레스타인 온라인 웹사이트 알하다스(Al-Hadath) 기자 겸 칼럼니스트 모하마드 바드르 (Mohammad Badr)는 2023년 10월 7일 전쟁이 벌어진 직후 이스라엘군의 체포를 피해 도망쳤다. 하지만 3주 뒤 자수했다. 이스라엘군이 바드르의 아내를 붙잡아 자수를 압박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10개월 동안 스데 테이만으로 추정되는 네게브 사막의 한 수감시설에 갇혀 있으면서 고문을 받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뒤에 풀려났다. 그가 CPJ에 털어놓은 증언을 대화체로 재구성해본다.

“갇혀 있는 동안 여러 차례 심한 고문을 당했다. 특히 2023년 12월 4일에는 손발이 거의 하루 종일 묶인 채 금속 막대기와 나무 막대기로 맞고, 발로 차이고, 금속 구속구로 머리를 맞고, 가스가 뿌려지는 고문을 받았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신베트) 요원들에게 (반이스라엘) 언론 활동에 대한 심문을 받았다. 그들은 정보기관에 스파이로 협조하거나 더 가혹한 고문과 장기 징역형을 감수하는 두 가지 선택지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강요했다.”

(https://cpj.org/data/people/mohammad-badr-2/)

바드르 기자는 거듭된 폭행으로 혀가 잘렸고, 2주 동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물만 마시며 목숨을 이어갔다. 그는 성폭행 협박도 받았다. 다행히도 실제로 성폭행은 일어나지 않았고, 여러 차례 알몸 수색만 당했다. 몸무게가 40kg 줄어들었다.

아부 그라이브의 '인간 피라미드' 재현

서안지구에 기반을 둔 J-미디어 네트워크와 하마스 계열의 알 아크사 TV 기자 무스타파 알 카와자(Mustafa al-Khawaja)도 고문 희생자다.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열흘 뒤 새벽 3시에 20명가량의 이스라엘군이 집 문을 부수고 들어왔다. 오페르 교도소로 끌려간 알 카와자는 구금 첫날 밤부터 모진 폭력을 견뎌내야 했다. 등 뒤로 수갑을 채우고 눈가리개를 한 채 얼굴을 두들겨 맞았다. 그 뒤 오페르에서 메기도, 샤타 감옥으로 옮겼고, 가는 곳마다 곤봉 또는 맨손으로 구타당했다. 샤타 감옥에서의 폭행은 치명상을 안겼다. 갈비뼈 골절에다, 반월상 연월판 파열, 척추 손상을 입었고, 그 뒤 디스크 탈출증으로 고생했다.

그뿐 아니다. 2023년 12월 17일 샤타 감옥에서 알 카와자는 다른 여섯 명의 수감자와 함께 강제로 벌거벗긴 채 인간 피라미드를 쌓는 모욕을 겪었다. 인간 피라미드라니...어디서 많이 들은 얘기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뒤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바로 그런 가학적인 추행이 있었다(인간 피라미드를 쌓아 놓고 환하게 웃는 기념사진을 챙긴 찰스 그레이너 미군 상병은 나중에 징역 10년형을 받았다). 이스라엘 경비병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몹쓸 짓을 저질렀을까. 그레이너 상병과 똑같은 기념사진을 찍어 SNS에 올려 관심을 끌고 싶었을까.

그렇게 10개월 동안 온갖 모욕과 학대를 견디던 알 카와자 기자는 2024년 8월 풀려났다. 교도소 기아 정책으로 몸무게는 40kg이나 줄었다. 교도소를 나서기에 앞서 이스라엘군 정보장교는 그에게 위협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가서 이스라엘 점령에 반대하는 언론 활동이나 기타 활동을 하지 말라. 만일 그러면...”

기자도 성폭력 피해가지 못했다

2025년 10월 8일 전쟁 2년을 맞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를 뚫으려 했던 여러 국제 구호선단 중 하나가 자유선단연합(FFC)이다. 가자지구로 향하다가 이스라엘 군에 억류됐던 독일 언론인 안네 리트케(Anne Liedtke)는 충격적인 증언을 했다. “(네게브 사막에 있는) 크치오트 교도소에서 다른 교도소로 이송되는 동안 알몸 수색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CagVvlD2TTY). 이탈리아 언론인 빈첸초 풀로네(Vincenzo Fullone)와 호주 활동가 수리야 맥이웬(Surya McEwen)도 거의 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물론 이스라엘은 “그런 일 없었다”고 부인했다.

이스라엘 수감시설의 성폭력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보복 가능성을 걱정해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팔레스타인 언론인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내 성기를 케이블 타이로 묶고 심하게 때렸다”고 증언했다. 그 때문에 성기에서 피가 흘렀고 한동안 소변을 볼 수 없었다. 그들은 그에게 “너는 더 이상 남자가 아니다”라고 비아냥거렸다. CPJ 보고서의 성폭력 관련 내용을 보자.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다른 인권 단체들이 기록한 바와 같이, 성폭력은 증언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기자들은 자신들을 모욕하고, 공포에 떨게 하고, 영구적인 상처를 남기려는 의도로 저질러진 성폭행을 증언한다. CPJ는 모두 17건의 성폭력 관련 증언과 19건의 굴욕적인 알몸 수색 관련 증언을 기록했다. 혐의 내용에는 기자들의 성기에 대한 폭행, 물건을 이용한 강제 삽입 시도, 강제 나체화 및 녹화, 강간 협박, 그리고 기타 성적 강압 행위가 포함된다.]

(https://cpj.org/wp-content/uploads/2026/02/EN-%E2%80%98We-returned-from-hell-Palestinian-journalists-recount-torture-in-Israeli-prisons-Committee-to-Protect-Journalists.pdf)

 

이스라엘 감옥에서 성고문을 당한 사실을 용기 있게 폭로한 사미 알 사이 기자. 1년 4개월의 옥고로 얼굴 모습이 바뀌었다. ⒸSami al-Sai

“항문에 곤봉 쑤셔 넣었다”

CJP와 인터뷰를 팔레스타인 언론인 59명 중 2명은 “구금 중에 성폭행을 당했다”면서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카타르 방송사 알자지라 무바셰르와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방송사 알파제르 TV에서 보도 활동을 해온 프리랜서 기자 사미 알 사이(Sami al-Sai)는 2024년 2월 23일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군에게 붙잡혔다. 처음엔 북부 이스라엘의 메기도 감옥, 나중엔 남부 이스라엘의 라몬 감옥에 ‘행정 구금’되었다가 1년 4개월 만인 2025년 6월 10일 풀려났다. 그는 ‘팔레스타인 개발 및 언론자유센터(MADA)’가 주최한 모임에서 공개적으로 자신이 겪은 성고문 피해를 증언했다.

“이스라엘 경비원들이 나를 구타하면서 눈가리개를 씌우고 수갑을 채우고는 곤봉으로 성고문을 저질렀다. 적어도 네 명의 군인들이 나를 악취가 나는 곳으로 끌고 가면서 계속해서 구타하고 모욕했다. (무릎을 꿇고) 엎드린 자세로 앉으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그들이 저지르는 일반적인 모욕 행위의 일부라고 짐작했다. 하지만 곧 그들이 내 항문에 딱딱한 물체를 삽입하는 것을 느꼈다.”

(https://cpj.org/2025/12/palestinian-journalist-sami-al-sai-alleges-torture-sexual-violence-in-israeli-prison/)

알 사이 기자가 성고문을 당한 곳은 메기도 감옥이었다. 경비원들은 그를 작은 감방으로 끌려가 바지와 속옷을 벗기고 곤봉으로 성폭행했다. 알-사이는 25년 동안 복역해온 두 명의 고참 수감자들에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수감 기간 내내 감옥 안의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한참 뒤 마찬가지로 성고문을 겪은 다른 출감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을 듣고 나서야 겨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훈련된 대형 맹견들에게 수간 당해

하마스가 자금을 지원하는 방송사 알 아크사 TV 기자이자 알 자지라 방송의 기고가로 활동했던 오사마 알 사이드(Osama al-Sayed)도 성고문 피해자다. 2024년 3월 18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알 시파 병원 단지를 공격했을 때 알 사이드는 다른 언론인들과 함께 붙잡혔다. 약 500일간의 구금 끝에 1년 7개월 뒤인 2025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휴전으로 풀려나기까지 알 사이드는 그야말로 악몽 같은 나날을 보내야 했다.

처음에 알 사이드는 스데 테이만 수용소에서 수감자들이 ‘지옥’이라고 부르는 야외 구역에 갇혔다. 그곳에서 눈가리개를 한 채 며칠 동안 팔을 묶어 어깨 위로 올리는 샤바흐(shabach) 자세를 강요당했다. 새들이 날아들어 그의 몸에 배설물을 쌌고 벌레들이 주변을 기어다녔다. 그곳에서 다른 수감자들의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봤고, 그 자신도 되풀이되는 구타로 갈비뼈와 이빨이 부러졌다. 그는 또한 최루 스프레이 공격과 전기 충격을 받았다.

(https://cpj.org/data/people/osama-al-sayed/)

더 모진 굴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알 사이드는 다른 수감자들과 함께 스데 테이만에서 옷이 벗겨진 채 훈련된 대형 맹견들의 공격을 받았다. CCTV 카메라가 없는 사각지대로 끌려간 그는 ‘수간(獸姦)’이라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본 연재 13에서 다룬) 수간 피해자의 증언을 담은 유로메드 보고서 ‘벽 뒤의 또다른 학살’(Another Genocide behind the Walls, 2026년 4월)과 알자지라 동영상 ‘방대한 증거’(Bodies of Evidence, 2026년 6월9일 방영)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었지만, 알 사이드의 수간 증언도 놀랍다. 자신과 동료 수감자들이 겪은 그 사건을 알 사이드는 ‘강간(rape)’이라고 규정하면서 “군인들은 그 강간 장면을 촬영하면서 웃었다”고 강한 분노를 나타냈다.

이스라엘의 협박과 국제사회의 침묵

CPJ와 인터뷰를 한 기자들 가운데 10명은 자신들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익명을 요구했다. 풀려나기 전 이스라엘 심문관과 감옥 관계자들로부터 “나가서 여기서 있었던 일을 공개적으로 떠벌린다면 다시 체포되거나 살해될 거야”라는 노골적인 협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CPJ에 따르면, 31건의 개별 증언에서 그런 협박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협박은 실제로 먹혀들었다. 여러 언론인들이 보다 구체적인 증언을 삼가고 입을 닫았다. 아마도 성고문 관련 사실도 침묵속에 묻혔을 것으로 짐작된다.

풀려난 기자들은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붙잡아 가두고 고문을 한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마구잡이 파괴와 살육의 전쟁범죄 실상이 바깥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여긴다. 이스라엘 수감시설은 그런 목적을 위한 통제와 억압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CPJ의 중동지역 책임자 사라 쿠다는 보고서 끝에 이스라엘의 기자 투옥 행태를 비판한다. “기자들을 위협하고 침묵시키며, 그들의 증언 능력을 파괴하려는 이스라엘의 의도적인 전략의 결과가 기자 투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팔레스타인, 특히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재난과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국제사회가 제대로 막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국제사회의 지속적인 침묵은 이러한 행태(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묵인할 뿐이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문제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자들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처벌한 것인가다. 전쟁범죄는 언제까지라는 시효가 없다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비호를 받는 이스라엘이기에 현실적으로 처벌이 어렵다. 그렇다면 고문이라도 멈추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스라엘은 정치군사 지도자들부터 일선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아예 전쟁범죄가 면책이 되는 걸로 여기는 분위기다. 어쩌다 문제가 되면 “사이코패스 성향의 문제아‘로 낙인찍고 꼬리 자르기 식으로 넘어갈 뿐이다. (계속)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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