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통영 씨의 기억 속에서 송석도의 삶은 오류애육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해방 직후 송석도는 부천군 고척면 일대에서 목장을 운영했다. 당시 그곳에서 일했던 큰아버지 송석도는 일제 패망으로 일본인이 남기고 간 목장을 거의 무상에 가깝게 넘겨받아 운영했다는 것이 통영 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인근 안양천의 오염으로 목장 운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정부의 도움을 받아 용인에 있는 농장으로 옮겨갔다. 이후 이 농장은 오류애육원 아이들의 배움의 길을 가로막으며 주말과 방학이면 그곳에 노동체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끌고 갔다. 원생들을 강제노역으로 몰아넣은 삼애농장의 출발점이었다.
한 사람의 삶에는 이렇게 여러 공간이 겹쳐 있다. 그리고 독재정권과 야당 정치의 충돌. 오류애육원의 역사를 제대로 복원하려면 이 모든 장면을 따로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 고아원의 역사는 흔히 원장의 이름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중요한 질문은 조금 다르다. 누가 처음 아이들을 데려왔는가. 누가 밥을 먹였는가. 어디에서 나온 돈과 물자로 시설을 운영했는가. 누가 그 돈과 물자를 관리했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할 물자가 실제로 아이들에게 돌아갔는가. 오류애육원 역시 마찬가지다.
송통영 씨의 증언은 지금까지 알려진 오류애육원의 설립자와 운영자에 관한 기억에 질문을 던진다. 오류애육원의 역사는 한 사람의 이름으로 끝낼 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한국전쟁이 남긴 아이들이 있었고, 그 아이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다. 미군의 구호물자가 있었고, 정부의 농지개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한 가족이 아이들을 돌보는 시설을 만들었다. 그 시작점에 누구의 이름을 써야 하는가. 송통영 씨는 그 답을 아버지 송석홍의 이름에서 찾고 있었다.
오류애육원의 시작이 미군이 지어준 막사였다면, 그곳에 처음 제대로 된 건물이 들어서는 과정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송통영 씨는 일신제강과 한일시멘트 등의 지원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사재를 출연하여 건물을 지은 것으로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송석도가 자기 돈을 내서 지은 건물이 아닙니다. 기업들의 도움으로 건물이 들어선 겁니다. 당시 오류애육원은 전쟁 직후의 임시적인 난민수용 공간이었지만, 이후 아이들을 수용할 제대로 된 건물이 필요했고, 기업들이 건축에 필요한 자재와 비용을 지원하면서 시설은 조금씩 모습을 갖춰갔습니다. 시설의 토지는 농지개혁을 통해 마련됐고, 초기 운영에는 미군의 구호와 국가의 지원금이 있었으며, 정식 건물의 건축에는 기업들의 도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류애육원은 특정 개인의 노력과 재산으로 만들어진 시설처럼 이야기되기 시작했습니다.”
송통영씨는 당시 공식적인 직책을 맡지는 않았지만 오류애육원의 운영을 직간접적으로 돕고 있었다. 그러나 점점 시설 운영을 둘러싼 오해와 갈등이 커지자 그는 한발 물러섰다. “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지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가 오류애육원 운영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이유였다. 하지만 이것은 오류애육원이 마치 송석도의 자선사업으로 포장된 시초가 되었다. 더욱이 1975년 설립자인 아버지 송석홍이 오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의 죽음이 오류애육원의 역사에서도 하나의 분기점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와 사후의 시설 운영이 크게 달라졌다고 기억한다. 특히 송석도가 재단의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커졌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까 재단 재산을 자기 재산처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설립 당시 돈 한푼 출연하지 않았던 큰아버지 사적편취의 출발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송통영 씨가 말하는 핵심은 ‘소유’였다. 오류애육원은 처음부터 가족의 사유재산으로 만든 시설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법인 소유의 토지와 재산이 마치 특정인의 개인재산처럼 취급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산을 처분하고 개인적인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 통영 씨의 주장이다. 오류애육원에서 생활하던 아이들은 용인의 농장으로 보내지기도 했다.
송통영 씨는 당시 아이들이 농장에 끌려가 사실상 강제노역에 가까운 일을 했다고 증언했다. 아이들은 농장 일을 해야 했다. 그리고 퇴소할 때가 되면 소 한 마리를 주겠다는 약속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소 대신 아이들에게 돌아가야 했던 정착금까지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들에게 지급돼야 할 돈이 시설 운영자의 사적인 이익으로 전용됐다는 것이 그의 증언이다. 그는 이를 단순한 운영 상의 실수로 보지 않았다.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의 노동력과 권리가 운영자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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