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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서 온 두루미 되돌리는 데 한국인이 나서달라"

"북에서 온 두루미 되돌리는 데 한국인이 나서달라"

 
김정수 2013. 12. 25
조회수 176추천수 0
 

북 안변서 겨울나던 두루미 식량난으로 철원으로 넘어와

아치볼드 박사, "북한 서식지 복원 확대 위해 한국인 후원과 참여 필요"

 

achi1.jpg » 국제두루미재단 공동 창립자인 조지 아치볼드 박사가 지난 12일 인천시 강화도의 두루미 도래지인 동주농장 주변 언덕 위에서 두루미를 관찰하던 중 카메라 앞에 섰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두루미는 해마다 이맘 때쯤부터 사람들이 주고 받는 연하장에 단골로 등장하는 새다. 순백색 몸과 검은색 날갯깃에 정수리의 붉은색이 절제롭게 조화된 고고한 자태, 장수ㆍ평화ㆍ정절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새해를 맞는 엄숙함과 희망을 나타내는 모델로 제격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중국, 몽골, 한반도와 일본 등에 서식하는 두루미는 지구상에 2600~2800여마리 밖에 남지 않은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1970년대부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벌여온 국제두루미재단(ICF)과 동아시아의 조류 연구자들은 1990년대 후반 이후 이 새들의 움직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챘다. 러시아와 중국ㆍ몽골 등지에서 우리나라의 민통선 이북 철원과 연천 등지로 날아와 겨울을 보내는 두루미 개체수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의 생존 여건이 획기적으로 개선돼 개체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achi5.jpg » 환경부 겨울철 조류 동시센서스 결과, 자료: 국립생물자원관

 

북한의 안변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240마리 이상의 두루미가 겨울을 나던 주요 월동지였습니다. 하지만 그 뒤 북한의 식량 부족 때문에 주민들이 추수하면서 논에 떨어진 낙곡까지 모두 취하고, 그래도 남은 것들은 오리, 거위, 염소 등 여러 종류의 가축들을 풀어 모두 주워 먹도록 하는 바람에 두루미들의 먹이가 남아 있지 않게 됐습니다. 안변에서 겨울을 보내던 두루미들이 그래서 안변을 떠나 남한의 철원으로 온 것입니다.”


캐나다 사람으로 미국 코넬대 대학원에 다니던 1973년 동료와 함께 국제두루미재단을 창립해 이사장을 지낸 조지 아치볼드 박사의 설명이다. 1990년대 후반 식량난이 가중되면서 일부 북한 주민들이 탈북을 감행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북한 지역에서 겨울을 보내던 두루미들에게도 일어난 것이다. 함경남도 원산 남쪽에 있는 안변과 강원도 철원 두루미 도래지는 직선거리로 8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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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전문가들은 이들 ‘탈북 두루미’가 철원과 같은 특정 지역에 몰리는 것은 멸종위기종 보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으로 보고 있다. 한 지역에 집중되면 전염성 질병이나, 개발 사업에 의한 서식지 훼손에 그만큼 더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치볼드 박사가 2008년부터 북한의 조류 전문가들과 협력해, 이른바 ‘안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다. 안변 농민들이 유기농업을 통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 주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이들이 들판에 두루미를 위한 먹이를 남겨놓아 두루미들이 다시 안변에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지난 11일 한국의 조류 연구자들과 남북한 두루미 실태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방한한 아치볼드 박사는 다음날 강화도에서 두루미를 찾아 나섰다. 백용해 녹색습지교육원 원장이 안내한 그의 두루미 탐조길에 동행하며 안변 프로젝트에 얽힌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봤다.

 

achi4.jpg » 아치볼드 박사가 지난 12일 강화도 동주농장에 내려 앉은 두루미들을 탐조경으로 관찰하고 있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안변 프로젝트의 목표는 무엇인가?
 

안변을 과거와 같은 두루미 월동지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두루미가 몰려드는 철원 지역이 개발되고 있어 걱정이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되면 철원 평야는 개발로 훼손돼 두루미들에게 더는 행복한 장소가 되기 어렵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도 북쪽에 두루미들이 갈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안변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됐나?

2005년부터 베이징에서 북한 조류학자들과 협의를 시작했고, 2008년에 처음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의 전문가들과 함께 안변 지역에 있는 비산협동농장 책임자를 만나, ‘우리는 두루미에 관심이 있는데, 여기 농사가 잘 되지 않으면 두루미도 여기서 생존할 수 없다. 그래서 당신들이 유기농을 통해서 농업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돕고 싶다’고 제안했다. 유기농은 화학비료를 이용한 농업보다 비용이 덜 들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 주는 대신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데, 북한 농장에는 노동력이 풍부하다. 그들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 우리는 농기계, 종자, 중국의 유기농업 현장 견학을 포함한 농민 교육 등을 제공했다.”


-두루미가 되돌아오도록 하는데 직접 초점을 맞춰서는 어떤 구체적인 노력이 진행되고 있나?

평양의 조류 연구자들과 조류 모니터링을 하는 현지인들에게 차량과 조사 비용을 지원해 두루미 실태 파악을 위한 조사를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북한 당국은 안변들 63㏊를 두루미 보호지역으로 이미 지정했고, 비산협동농장에서는 중국에서 지원받은 두루미 두 마리를 사육하면서 번식을 시도 중이다. 겨울철에는 이 사육 두루미들을 들판에 내놓아 상공을 지나가는 다른 두루미들이 내려 앉도록 유인하는 활동도 하고 있다. 앞으로 안변 비산협동농장의 일부 구역에 울타리를 둘러치고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어 낙곡을 주워 먹으려는 다른 가축들의 접근을 막아, 두루미들의 안전한 먹이터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안변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지 2년 만에 북한에서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 조류학자들이 2009년 11월 20여마리의 두루미가 안변들로 날아와 이틀 간 머물다 떠났다는 소식과 함께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이 지역에서 농민들이 들판에 두루미가 내려 앉은 것을 보기는 10여년 만에 처음이라는 것이 북한 학자들의 설명이었다. 안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현재 안변 지역의 두루미 실태는 어떤가?

북한의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올해 안변들 상공을 통과한 170여 마리의 두루미 가운데 35마리가 안변들에 착륙해 잠시 머물렀다. 이 가운데는 한 달 가까이 머무르다 떠난 새도 있다. 아직 먹을 것이 충분이 없어서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가 울타리를 쳐서 먹이터를 확보해주면 겨울 내내 머무는 새들이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지금까지 안변 프로젝트를 통해 북한에 지원한 규모는 얼마나 되나?

 

2008년부터 6년 동안 30만달러 가량 지원했다. 북한 정부에서도 안변 비산집단농장의 유기농 사업을 지원해, 이 농장은 이제 북한 전역에서 5만6000여명이 유기농을 배우기 위해 찾아오는 유기농의 모델이 됐다. 안변은 우리한테서 더 이상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성공해, 우리는 앞으로 두루미에게 중요한 북한의 다른 지역에서 현지 농민들과 협조해 비슷한 프로젝트를 확대하기를 원한다. 이에 따라 이미 황해남도 강령에서 두 번째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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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볼드 박사는 지난 11일 방한하기에 앞서 11월29일부터 11일 동안 북한을 다녀왔다. 2008년 안변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후 매년 한 차례씩 방북해온 그는 올해는 안변 이외에 황해남도 강령, 평안남도 문덕, 함경남도 금야 등 과거 북한의 주요 두루미 도래지 3곳을 모두 방문했다.
 

-다른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진행하면 안변 프로젝트는 끝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안변 농민과도 계속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교육이나 우리가 지원한 기계가 고장날 경우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구해주는 등의 지원은 이어갈 것이다. 다만 주요한 재정 지원은 다른 지역으로 옮기기를 희망한다.”
 

북한 두루미 서식지 복원을 위한 프로젝트를 안변 이외의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려면 해마다 5만 달러 정도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을 모으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한국의 중앙ㆍ지방 정부나 단체들로부터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 데다, 미국 내에서도 왜 적국을 도와주느냐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국제두루미재단이 안변 프로젝트를 위해 북한에 지원한 30만달러 가운데 한국에서 모금된 것은 많아야 2만 달러 정도이고 나머지 모금은 모두 미국에서 이뤄졌다. 안변 프로젝트에 사용되는 기금은 5명의 미국인 후원자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80살에 환경운동을 시작한 올해 95살 된 루이지애나에 사는 할머니다.
 

고교 시절 서캐나다 지역 여행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아름다운 두루미의 모습은 한 청년의 삶을 결정했다. 두루미에 마음을 빼앗긴 청년은 결혼을 하고도 자녀도 두지 않고 40여년을 두루미를 알리고 보호하는 일에 온전히 바쳐왔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나는 내 시간의 50%를 두루미를 돕기 위해 여행을 하면서 지낸다. 아이가 있으면 집에 머물러야 한다. 좋은 아빠가 되는 것과 두루미를 돕는 일을 둘 다 잘 할 수는 없다. 어린이를 사랑하지만 16명의 조카로 충분하다.”


아치볼드 박사는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는 한국 전쟁 이후 한국의 조류 연구자들조차 한국에서 두루미가 사라졌다고 믿고 있던 1970년대 철원의 민통선 이북 지역에서 100마리 이상의 두루미떼를 발견해 철원이 두루미의 주요 월동지라는 사실을 세상에 처음 알렸다. 지금은 국내 야생에서 멸종된 따오기를 1970년대 비무장지대에서 확인하고 맨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것도 그다.
 

대학원에서 두루미를 연구하면서 전 세계 조류 전문가들에게 두루미 서식 실태를 묻는 편지를 보냈는데, 한국에서 한국전 이후 두루미가 사라졌다는 응답이 왔다.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 1974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그해 겨울 파주 문발리에 살면서 미군과 한국군의 도움을 받아 매일 아침 8시 비무장지대에 들어가 새들을 관찰하다가 따오기를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그 뒤 한국 정부의 허락을 받아 따오기를 생포해 영국의 동물원으로 데려가 증식하려고 했는데, 붙잡지 못해 실패했다.”
 

아치볼드 박사의 꿈은 소박했다.

 

북한의 두루미 서식지 복원에 관심이 있는 한국분들은 국제두루미재단이나 한국두루미네트워크(대표 이기섭)를 통해 후원해주기 바란다. 북한의 두루미 서식지 복원 프로젝트는 한국말을 못하는 내가 하기보다 남한 사람들이 직접 북한과 접촉해서 일하는 것이 낫다. 남북한 관계가 회복돼 한국에서 북한의 두루미 복원 사업에 적극 나서, 나는 위스콘신의 집에 편히 머무를 수 있으면 좋겠다.”
 

강화/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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