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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으로 죽은 사람만 40명... "대통령한테 싣고 가"

밀양뿐만이 아니다. 1970년대 송전탑이 지어진 전남 여수 봉두마을에 최근 또 송전탑이 세워져 주민들이 반대에 나섰다. 40여 년을 송전탑과 함께 조용히 지냈던 봉두마을 주민들은 왜 지금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까. 밀양의 '미래'가 될 수 있는 봉두마을을 찾아 2박 3일 동안(17~19일) 취재했다. [편집자말]
특별취재팀 : 김종술·황주찬·신원경·문나래·소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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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전탑으로 고통을 겪고있는 봉두마을 주민들이 18일 송전선로가 지나는 마을길을 따라 걷고 있다.
ⓒ 문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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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진 송전선이 밭 위를 길게 지나고 있다. 그 밭 위에서 일한 세월이 40년이다. 마을 구석구석 송전탑이 가깝지 않은 곳이 없다. 이곳에 한전은 지난해부터 또 송전선로 공사를 시작했다. 주민들은 언제 추가 선로를 연결하러 올지 모를 헬기 때문에 무섭다. 전남 여수의 봉두마을은 지금 아프다.

8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송전탑이 세워진 이래로 40명이 각종 암으로 죽었다(관련기사 : 주민 40명 암으로 사망... 이게 혹시 너 때문?). 걷지 못하는 소가 태어나거나, 이미 죽은 소를 낳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이 송전탑 때문이라고 의심한 적이 없다(관련기사 : 소·염소 시름시름 죽고, 주인은 백혈병). 

하지만 지난해 4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마을 집단 거주 지역 및 논밭 전자파를 측정해 보고, 송전탑 이후 사망한 주민들의 사망 이유를 조사한 뒤로 주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기 시작했다. 현재도 암 및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주민이 7명이다. 

컨테이너 박스 농성장 할매들 "'죽었다'하는 각오로..." 

봉두마을 사람들은 지난해 7월 송전탑철거시민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를 조직했다. 대책위는 지난해 10월 마을 입구에 컨테이너 박스를 세웠다. 농성장이다. 월화수목금 5일 동안 조를 편성해 농성장을 지킨다. 송전선로 신설 공사를 막기 위해서다. 농성장 뒤편으론 새 송전탑이 세워져 있다. 송전탑은 한 쪽으로만 송전선을 이어받은 채 공사가 중단돼 있다.

기자가 지난 18일 농성장을 찾았다. 열일곱에 봉두마을로 시집 온 덕천댁(82)은 8년 전 암으로 남편을 잃었다. "평생 아픈 줄 모르고 농사만 짓던" 할아버지는 정월에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고 2월에 세상을 떠났다. 

"잘 잡숫지도 못하고 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랴. 머리에 종양이 있다고. 그때 의사가 이미 상황 끝났다고 다른 병원 다닐 것도 없다여. 내가 겁이 많거든. 가슴이 우들우들 하더라고. 처음 송전탑 들어왔을 때는 해로운지도 몰랐어. 전기 들어온다고 좋다고 했지. 그래 가꼬 기냥 자갈도 여 나르고, 물도 여 나르고, 밥도 해 멕이고 그랬제. 인자는 송전탑 뽑아냈으믄 쓰것어. 빼내야 동네 사람들이 살 것인디. 끝이 어찌고 날까."

열아홉에 봉두마을에 시집 온 말언댁(84)은 헬리콥터가 지나면 "혹시 줄(송전선) 내려블까 싶어서 하늘만 쳐다봐"라고 말했다. "낮이나 밤이나 그것(송전선로 공사) 생각뿐"이라는 할매는 "밭에 콩이 다 죽어브렀다"며 "우리는 인자 '죽었다'하는 각오로 여기 있제"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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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두마을 할매들이 송전탑 밑의 컨테이너 박스 농성장에 모여 있다. 봉두마을 주민들은 조를 짜 평일 내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 문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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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올 때 신발이 찌릿, 애가 타고 속이 타서 잠을 못자" 

할매들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무서웠던 일, 억울했던 일, 쓰러졌던 일을 연신 늘어놓았다. 좁고 어두운 컨테이너 박스에서 이불을 나눠 덮은 채 할매들은 2시간 넘게 하소연을 늘어놨다.

"비 올 때 걸으믄 신이 찌릿 거리고, 송전탑도 '우웅~' 하고 울고. 두드럭 두드럭 거리고. 그라믄 '아이고 나 죽겄다' 하고 집으로 뛰가제. 무서워. 왜 그런고 그랬는디 알고 보니 전기가 겁나게 세서 그런거라 하더라고. 형광등 들고 있음 불이 온단갑네. 멍청하게 살았지. 그런 것도 모르고. 아이고. 송전탑을 산으로 쑥 올려브믄 좋지. 앵무산 꼭대기로 가기만 해도 나을 것인디." - 20세에 봉두마을로 시집 온 상두댁(72)

"2000평 밭에 있는 감나무도 다 없애브렀어. 언제 벤다는 말도 없이 강제로다가. 평소처럼 밭에 갔는디 나무를 싹 다 베놔서 사무실로 쫓아갔다가 그대로 쓰러져 브렀제. 그 뒤로 애가 터지고 속이 상해서 잠을 잘 못 자.

아들이 '엄마 죽어블면 돈도 필요 없고, 밭도 필요 없다'고 '밭에 가지 말라' 해서 (농)약도 안 치고 그대로 놔뒀어. 인제 밭에 안 갈라고. 철탑 지나가는 자리에는 논 짓던 사람도 인자 안 질라고 그래. 마을에 망조가 들었나벼. 우리 죽으믄 박근혜 대통령한테로 싣고 가." - 21세에 봉두마을로 시집 온 상임댁(71)

"마을이 송전탑으로 뺑뺑 둘러져 버렸잖아. 숨 쉴 구멍도 없이 감아버리니까 사람이 살 수가 없어. 철탑하고 생명하고 바꿀 수 없잖아. 생명이 제일 소중하고 귀하니까. 

쓰러지고 아픈 것이 넘의 일이 아니야. 항상 불안해. 들에 가도 불안하고, 누가 아프믄 또 송전탑 땜시 아닌가 의심이 들고. 자꾸 빈집이 늘어 싸. 부부가 암으로 죽어 블거나, 병으로 돌아가셔서 빈집이 여러 채야(현재 봉두마을엔 19채의 집이 비어있다)." - 23세에 봉두마을로 시집 온 새동댁(73)

시민단체 합류, 면 단위 대책위 꾸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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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두마을 할매들이 송전탑 밑의 컨테이너 박스 농성장에 모여 있다. 봉두마을 주민들은 조를 짜 평일 내내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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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대책위와 인근 지역 시민단체 여럿이 모여 콘테이너 박스 뒤 송전탑에서 '율촌면 봉두마을 송전탑 철거 시민대책위' 발족 기자회견을 열었다(관련기사 : 밀양 이어 여수도... "사람이 우선, 송전탑 철거"). 마을 단위의 대책위에서 시민단체까지 참여한 면 단위의 대책위로 규모가 커졌다. 

봉두마을 이장인 위성초 대책위원장(67)은 "우리는 이제부터 싸움 시작"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주민을 이끌고 '밀양 희망버스'로 두 차례 밀양을 찾았던 위 위원장은 "'보통 각오가 아니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더는 송전선로 밑에서 살 수 없다는 주민들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위 위원장은 "한전에서 계속 합의하자는 전화가 오는데 우리는 송전탑을 멀리 옮겨주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며 "돈으로 합의할 생각도 없다"고 덧붙였다. 

아래는 봉두마을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농사를 하고 있는 위 위원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주민들은 송전탑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나.
"전자파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전자파로 인해서 이런 일이 생기는 줄은 진짜 몰랐다. 신문, 방송에서 전자파에 대한 위험성이 보도된 이후 우리도 '우리 주민들이 아프거나 죽는 이유, 가축들이 사산하거나 기형을 낳는 이유가 전자파 때문일 수 있겠구나' 의심하기 시작했다. 요즘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이다."

- 양봉, 가축, 농사가 잘 안되기 시작한 시점은.
"철탑 들어선 지 40여 년 지났다. 10년 전부터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늘어났고, 가축도 잘 안됐다. 과거 병으로 사람들이 죽어갈 때 그것이 송전탑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현재도 두 명이 백혈병과 싸우고 있고 암투병 중인 주민도 다섯 명이다. 농토도 많지 않고 다수가 축산에 의지했는데 현재는 많이 접는 추세다." 

- 송전탑의 유해성을 알게 된 이후 주민들 반응은 어땠나.
"주민들의 의지는 확고하다. 더는 송전탑 밑에서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신설된 송전탑은 물론이거니와 기존에 있던 송전탑도 마을과 너무 가까이에 있다. 송전탑을 인가에서 먼 뒷산으로 올려야 한다." 

"돈으로 합의 없다... 밀양 가보고 '각오 단단히 해야겠구나'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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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성초 봉두마을 이장이 18일 마을 입구에 걸린 플래카드 앞에 서 있다. '봉두어르신께 미안한 시민모임' 명의의 플래카드에는 "전기는 우리가 쓰고 봉두어르신 미안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 문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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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위의 어떤 활동을 해 왔나.
"처음에는 장관, 국무총리, 대통령 등에게 탄원서를 내고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다들 한전에 위임해 버렸다. 탄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시민연대, 환경단체 등과 연대를 시작했다. 연대 이후 주민 20여 명과 밀양에도 두 번 방문했다." 

- 밀양에선 어땠나.
"추운 날씨에 밀양 할매들이 많은 고생을 하고 있더라. 이미 우리 마을 철탑은 90% 마무리가 된 상태인데 밀양은 하기 전부터 철탑자리에 구덩이를 파고 생활하고 있었다. 각오가 대단하다. 그걸 보고 '보통 각오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이제 구덩이를 파면 거기 폭삭 들어가 지키겠다." 

- 한전은 현재 어떤 입장인가.
"한전의 답변은 아주 무의미하다. 현재 봉두마을의 전자파 수치는 기준에 벗어나지 않고, 때문에 송전탑의 전자파로 인한 피해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 주민들의 건강검진 계획은.
"현재 여수시에 역학조사(암 사망자와 송전탑의 상관관계)를 요구한 상태다. 마을 주민들이 조사한 전자파 수치, 사망 이유 등의 자료를 여수시에 제출했고, 여수시는 자체 조사 이후 어떤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여수시의 입장이 결정되면 마을 주민 전체가 건강검진을 받아야겠다." 

- 마을의 요구는 무엇인가.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송전탑이 있다 보니 재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활권, 제일 중요한 생명권까지 위협받고 있다. 25개나 되는 송전탑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매일이 불안하다. 그렇다고 대대로 500년 가까이 살아온 부락을 어찌 떠나겠나. 아늑한 앵무산 밑 내 평생 살아온 이 좋은 고향을 어찌 버리겠나.

송전탑을 지중화 시키든지 원거리로 보내야 한다. 충분히 뒷산으로 옮길 수 있다. 조그마한 마을을 왜 이렇게 못살게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아무도 우리 부락에 오려고 하지 않고, 땅도 팔리지 않는다."

- 앞으로 걱정되는 부분은.
"한전에서 계속 합의하자는 전화가 온다. 송전탑은 그대로 두되,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우리 입장은 전혀 다르다. 송전탑을 멀리 옮겨주지 않으면 합의할 수 없다. 돈으로 합의점을 찾을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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