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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사당에 남은 마지막 반전 평화의 양심

[한익수의 아메리카를 쏘다]
 
한익수 기자 
기사입력: 2014/02/22 [21:28]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 헌법에 따르면 전쟁여부를 결정짓는 ‘전쟁선포’의 권한은 연방 의회에 있다. 행정부는 이러한 의회의 선전포고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는 ‘전쟁수행권’을 갖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단 5차례의 전쟁에서만 이 절차를 거쳤다. 쉽게 말해서 제1차, 2차 세계대전을 제외한 우리가 아는 미국이 벌인 무수한 전쟁 사례는 모두 정식 ‘선전포고’없이 감행된 것들이다. 미국은 1950년 코리아전쟁, 1964년 베트남전쟁, 1991년 걸프전쟁, 2001년 아프가니스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2011년 리비아전쟁을 비롯한 최소 125차례의 전쟁이 그러했다. 미국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서”, “상호 방위조약에 의거해서”라는 명분으로 절차를 무시하고 해외에서 전쟁과 전투, 무력시위를 진행해왔다. 또 전쟁 상황을 만들어 놓은 다음 군사력 사용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받는 식으로 선전포고 절차를 빗겨가기도 한다.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를 하고 있는 미국 시민들]
 
의회 내 첫 반전 움직임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인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를 연합국으로 하고, 독일, 오스트리아, 터키를 동맹국으로 하여 벌어진 전쟁이다. 본질적으로 이 전쟁은 식민지 확장에 눈이 먼 제국주의 국가들이 대립, 충돌하며 발생한 ‘제국주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전쟁 초기에 중립을 표방하며 영국 등 연합국은 물론 독일에도 식량, 군수품을 팔아 톡톡히 경제적 이익을 보았다. 그러나 전세가 연합국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미국의 금융 자본가는 영국에 거액의 돈을 빌려 주는 등 연합국을 적극 도왔다. 1917년 연합국인 제정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 일어나자, 전세는 다시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이에 미국의 자본가들은 만약 연합국이 쓰러지면, 연합국에게 빌려준 막대한 돈이 날아가고 자신들도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빠져 들었다. 결국 미국의 자본가들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를 부추겨 참전을 이끌어냈다. 1917년 4월 연방의회는 ‘대 독일 선전포고’를 하원 373:50, 상원 82:6으로 가결했다. 하원에서 50명, 상원에서 6명의 의원이 미국의 참전을 반대한 것이다.
 
‘평화주의자’ 자넷 랜킨
 
전쟁을 반대한 의원 중에는 미국 최초의 여성 의원인 ‘자넷 랜킨’도 있었다. 그는 미국 여성들이 참정권을 획득하기 이전인 1916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어, 의회에서 여성 참정권 입법운동을 주도했다. 그 결과 미국 여성은 1920년 참정권을 갖게 됐다. 자넷 랜킨은 ‘대 독일 선전포고’에 대한 의회 호명투표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동료 남성의원이 그에게 찬성표를 던질 것을 채근했다. 다시 이름이 호명되자, 그는 벌떡 일어나 단호하게 말했다. “전쟁에 표를 던질 수 없습니다. 저는 반대합니다.”
 
자넷 랜킨은 1941년 12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며 ‘대 일본 선전포고’를 결의할 때도 반대표를 던졌다. 1941년 12월 7일 하와이 진주만이 일본의 공격을 받자, 다음날인 8일 낮 12시30분 루즈벨트 대통령은 의회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호소하는 연설을 했다. 이어 상, 하 양원은 ‘대 일본 선전포고’에 대한 찬반 투표에 들어가 이날 오후 1시10분 표결을 마치고, 통과를 선언했다. 그야말로 속전속결로 진행됐. 이날 표결 결과는 상원은 82:0, 하원은 388:1이었다. 단 한 명 자넷 랜킨 의원만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저는 전쟁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전쟁터에 보내는 일도 반대합니다.”
 
1, 2차 세계대전을 모두 반대한 최초의 미국 여성의원 자넷 랜킨의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의원직을 떠난 지 20여년이 지난 1968년 1월15일, 그는 87세의 나이로 연방의사당에 다시 나타났다. 그는 이날 5000명의 여성들과 함께 의사당 앞에서 베트남전 반대시위를 벌였다.
 
진보정당에 가한 탄압과 투옥
 
1917년 제 1차 세계대전을 반대한 자넷 랜킨을 비롯한 공화, 민주 양당의 ‘평화주의’ 의원들은 다음해 선거에서 줄줄이 낙선했다. 개인의 양심과 소신에 따라 전쟁을 반대한 ‘평화주의’ 의원과는 달리 당시 진보정당인 미국 사회당은 당의 결의로 전쟁을 반대하고 반전운동을 벌이다 정부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사회당은 의회가 ‘대 독일 선전포고’를 가결한 다음 날 긴급 전국총회를 열고, “참전은 약탈적인 자본가들이 선동한 것”이며, “선전포고는 미국 국민에 대한 범죄행위”라고 규탄했다. 사회당은 당 지도부는 물론 10만 당원들이 발 벗고 나서서 반전운동을 벌였다. 이러한 반전운동에 힘입어 사회당에 대한 미국 민중의 지지는 급상승했다.
 
치솟는 반전운동을 꺾기 위해 1917년 6월 연방 의회는 ‘방첩법’을 통과시켰다. ‘간첩행위’에 전쟁을 반대하는 활동을 포함시키고 최고 20년 징역형을 처할 수 있게 했다. 연방 법무부는 1917년 9월 사회당 본부를 압수 수색하고, 당의 신문과 출판물에 대해 기소를 취했다. 이어 사법부는 사회당 소속 연방 하원의원인 빅터 버거를 비롯한 사회당 지도부와 전국 집행위원 4명에게 반전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방첩법 위반, 독일 간첩 혐의로 20년 징역형을 내렸다. 빅터 버거는 옥중 재출마하여 다시 당선이 됐지만, 의회는 빅터 버거의 의석 배정을 거부했다. 미국 철도노조운동의 상징이자, 사회당의 지도자인 유진 뎁스는 1918년 6월 전국 순회 반전 연설을 시도했다. 사법부는 유진 뎁스에게 방첩법 위반 혐의로 10년 징역형을 판결했다. 사회당 후보로 4차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그는 1920년에는 옥중 출마하여 공화,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 이은 3위 득표인 90만 표(3.4%)를 획득하기도 했다. 유진 뎁스는 반전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쟁을 선포하는 것은 지배계급이지만, 그 전쟁터에서 싸우는 것은 언제나 피지배계급입니다. 지배계급은 전쟁에서 모든 것을 얻되 아무 것도 잃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피지배 계급은 얻는 것이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을 잃고 심한 경우엔 목숨까지도 잃습니다.”
 
끝나지 않는 전쟁, 의로운 ‘평화주의자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의회 내에서의 반전 목소리는 1964년 베트남전을 앞두고 다시 나왔다. 1964년 8월7일 의회는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전쟁 전권을 위임하는 ‘통킹만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상원은 88:2, 하원은 416:0의 결과가 나왔다. 상원의원 단 두 명만이 반대표를 던진 것이다. 이러한 압도적인 의회의 지지가 나온 것은 훗날 미 국방부 기밀문서 ‘페타곤 페이퍼’를 통해 조작 사건으로 밝혀진 통킹만 사건 때문이었다. 린든 존슨 행정부는 1964년 8월2일 통킹만에서 미국 함정이 북 베트남 어뢰정의 공격을 받았다는 허위 사건을 조작하고, 며칠 뒤 의회로 부터 통킹만 결의안을 받아냈던 것이다.
 
반대표를 던진 두 명의 의원 중 하나인 웨인 모스의원은 표결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우리가 미국 헌법을 훼손하고 기만하였다고 기록할 것입니다. 다음 세기의 미래 세대는 지금 역사적인 대실수를 저지르려 하는 우리 의회에 대해 큰 실망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웨인 모스의원이 경고한 역사적인 대실수는 계속됐다. 2001년 9.11 사태 직후인 9월14일 미국 의회는 '대테러 군사력 사용 승인 결의안(AUMF)'을 통과시켰다. 조지 부시 행정부에게 어느 누구와도 전쟁을 할 수 있는 백지 위임장을 준 것이다. 이 결의안도 상원은 98:0, 하원은 420:1 이라는 압도적인 지지 표결 결과가 나왔다. 1명의 반대자는 흑인여성 바바라 리 의원이었다. 홀로 반대표를 던진 바바라 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출구 전략도 없고 특정한 목표물도 정해지지 않은 기약 없는 전쟁을 무조건 시작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2001년 10월7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쳐들어갔다. 그런데 13년이 지난 오늘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40여명 남짓한 의회 내 ‘평화주의’ 의원들은 군사비 동결,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전면 철수를 주장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이들 의원들의 노력은 계속되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을 막아내지도 못하고, 전쟁을 부추기는 군산복합체를 날카롭게 비판하지도 못한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전쟁의 광기가 휘몰아치는 제국주의의 한 복판에서 ‘전쟁의 거수기’를 거부해 온 의로운 양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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