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KBS본부(본부장 권오훈·KBS본부)는 지난 18일 발행한 노보에서 ‘국정원’이라는 단어는 KBS에서 방송금기가 됐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 동안 KBS에서 방송된 국정원 관련 프로그램이 모두 ‘철퇴’를 맞았기 때문이다. 

KBS본부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사례를 들었다. <TV비평 시청자데스크>와 <추적60분>이다. 지난해 6월22일 방송된 <TV비평 시청자데스크>는 국정원 선거개입과 관련된 KBS뉴스의 문제점을 다뤘다. 옴부즈맨 프로그램으로서 역할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방송 이후 담당 국장과 부장은 보직 해임됐다. 

지난해 8월31일 국정원 간첩조작 의혹을 다룬 <추적60분>은 ‘불방사태’를 겪었다. 제작진과 KBS PD들의 격렬한 반발 때문에 ‘일부 수정된’ 방송 내용이 9월7일 전파를 탔다. <추적60분>이 방송한 국정원 간첩조작 의혹은 현재 검찰과 국정원의 ‘핵심증거 조작’ 의혹과 맞물리면서 현재 정치권 ‘핫이슈’가 됐다. 

모두가 국정원이라 말할 때 KBS는 유관기관이라 쓴다 

‘방송금기 국정원’이라는 KBS본부 비판은 2014년에도 계속 적용될 것 같다. 대다수 매체가 사용한 국정원이라는 단어가 유독 KBS <뉴스9>에서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향신문 2014년 2월22일자 1면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 21일 KBS <뉴스9>은 이상한 보도행태를 보였다. 이날 조백상 주중 선양 총영사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출석해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중국 공문서 3건 중 일부가 정식 외교경로를 거치지 않은 국가정보원 직원의 ‘개인문서’라고 밝혔다. 

조 총영사는 “관련 유관 정보기관(국정원)이 획득한 문서를 담당 영사(국정원 소속)가 내용의 요지를 번역하고 확인한 개인문서”라고 말했다. 이 말은 국정원이 비공식적으로 구한 문서를 국정원에서 파견된 이 영사가 공증해 검찰에 보냈다는 걸 의미한다. 경향신문은 22일자 1면에서 “국정원이 출처가 불분명한 문서의 입수부터 공증까지 직접 주도해 ‘공식 외교문서’로 탈바꿈시킨 것이어서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은 더욱 짙어지게 됐다”고 지적했다. 

조 총영사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유관 정보기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유관 정보기관’이 국정원을 의미한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일종의 상식이다. 경향신문 지적대로 조 총영사의 발언은 “출처가 불분명한 문서의 입수부터 공증까지 직접 주도해 ‘공식 외교문서’로 탈바꿈시킨” 주역이 국정원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언론이라면 정확히 국정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온당한 태도다. 

하지만 SBS JTBC 등 주요 방송사들이 21일 메인뉴스에서 국정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과 달리 KBS는 ‘유관 정보기관’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리포트 제목은 물론이고 리포트 내용에서도 국정원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모두가 국정원이라 말할 때 KBS는 유관기관이라는 표현을 고수한 셈이다. 

KBS본부,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 KBS에서 ‘국정원’은 방송금기 됐다” 비판 

KBS본부가 지난 18일자 노보에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 KBS에서 ‘국정원’은 방송금기 됐다”고 비판한 것을 스스로 확인시켜 준 셈이다. 21일 KBS 리포트와 타 방송사 리포트를 비교해 보면 ‘KBS 차별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2014년 2월21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조 총영사는 3건의 문서 가운데 출입경 기록 등 2건은 유관 기관이 입수했고 자신이 공증을 승인했다고 밝혔습니다 … 여당 의원들은 담당 영사가 비공식 경로로 입수한 것일뿐 문서 내용은 사실이라며 정치 쟁점화를 비판했습니다.” (2014년 2월21일 KBS <뉴스9> ‘의혹문서 2건은 유관기관이 입수’ 중에서 인용)

“조백상 총영사가 밝힌 대로 위조 의혹이 제기된 문건 발급과 전달에는 국정원 소속 영사가 관여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야당은 국정원 소속 이 모 영사가 특별한 임무를 띠고 파견됐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2014년 2월21일 JTBC <뉴스9> ‘국정원 영사, 특별한 임무수행?’ 중에서 인용)

 
   
2014년 2월21일 JTBC <뉴스9> 화면 갈무리
 
“유관 정보기관, 즉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중국어 문건을 국정원에서 파견된 담당 영사가 번역해서 공증한 것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 국가정보원은 선양 총영사관을 통해 해당 문건들을 전달받았고, 문건은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 입수자료에 공증만 해줬을 뿐’ (2014년 2월21일 SBS <8뉴스> ‘국정원 입수자료에 공증만 해줬을 뿐’ 중에서 인용) 
 
   
2014년 2월21일 SBS <8뉴스> 화면 갈무리
 
사실 KBS가 국정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해 논란을 빚고 있지만 가장 문제가 심각한 곳은 MBC이다. MBC는 21일 <뉴스데스크>에서 ‘국정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데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증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사안의 본질을 아예 흐리는 보도태도를 보였다. 

MBC는 이날 ‘총영사 출석 조작의혹 미궁’ 리포트에서 “공무원 간첩사건에서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핵심 당사자인 선양 주재 총영사가 국회에 나와서 입을 열었다”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안의 본질을 아예 흐리는 MBC ‘뉴스데스크’ 간첩증거 조작 리포트 

문제는 선양 주재 총영사 발언과 새누리당·민주당 입장 등을 내보낸 뒤 “조 총영사는 담당 영사가 번역을 한 뒤 사실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으며 문서는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공증이 됐다고 설명했다”를 끝으로 리포트를 마무리 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숱하게 제기되는 의혹들에 대해선 완전히 눈을 감아버린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만 간단히 요약한다. 
 
   
2014년 2월21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위조 의혹이 제기된 출입경기록은 우리 정부가 중국에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중국 정부가 거절을 하자 국정원이 비공식적으로 입수한 것입니다. 그런데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숨긴 채 정식 외교 경로로 입수했다는 의견서까지 법원에 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JTBC 2월21일 <뉴스9>)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의 초점이 국가정보원으로 좁혀지고 있다. 조작 의혹을 받는 중국 공문서 3건 중 마지막 싼허변방검사참으로부터 받은 피고인 유우성씨 출입경설명서의 ‘확보-공증-검찰 제출’ 전 과정을 국정원 직원들이 전담했다는 증언이 나오면서다. 국정원이 주도한 문서 전달 과정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면서 조작 의혹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 2월22일) 

“이 영사가 선양 총영사관에 부임한 ‘시기’도 의심을 사고 있다. 이 영사는 지난해 8월 말 선양 총영사관에 들어갔는데, 유우성씨는 지난해 8월22일 1심에서 2006년 5~6월 북한에 머물렀다는 검찰과 국정원 쪽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1심 무죄 선고 며칠 뒤 이 영사가 부임한 것이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이 영사가 국정원 대공수사팀에 소속됐느냐고 캐물었으나, 조 총영사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정 의원의 질의는 유씨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자 국정원이 대공수사국 소속인 이 영사를 선양 총영사관에 보내지 않았느냐는 의구심에서 나온 것이다.” (한겨레 2월22일) 

 
   
한겨레 2014년 2월22일자 5면
 
하지만 MBC에는 이 같은 내용이 없다. 내용만 없는 게 아니라 이번 조작의혹이 미궁에 빠지고 있다는 식의 제목을 뽑았다. MBC가 <뉴스데스크>에서 이 같은 ‘엉터리 보도’를 한 21일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안광한 MBC플러스미디어 사장을 차기 MBC 대표 이사로 선임했다. 

“(안광한 신임 사장은) 편성국장과 본부장을 거치면서 <PD수첩>을 사전 시사해서 4대강 방송분을 불방시켰으며 <후 플러스>를 폐지했고 ‘김재철 체제’에서 부사장과 인사위원장으로서 파업 참가자들에게 미친 칼춤을 췄던 당사자이다. 김재철 전 사장과 공동 책임을 지닌 안광한 사장이 옴으로써 MBC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성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이 21일 기자들에게 밝힌 내용이다. 2014년 MBC뉴스의 보도가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은 잠시 접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