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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피에타', 평화의 제주 강정을 품다

한베평화재단, 베트남전 종전 42년 동상 제막식 열어
제주=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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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26  17: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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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피에타' 상이 26일 제주도 강정마을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 들어섰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한국과 베트남 사이에 증오의 흔적이 사라지고 사랑만이 남아있는 그런 세상을 만드는 일은 이제 당신과 나의 몫이 아닌가."

베트남 국민시인 탄타오 씨의 시이다. 베트남전쟁 종전 42년을 사흘 앞둔 26일 제주도에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피해자를 위로하는 '베트남피에타' 동상이 제막됐다. 특히, 이날은 강정해군기지가 결정된 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다.

한베평화재단(이사장 강우일)은 이날 오후 제주도 강정마을 성프란치스코 평화센터에서 '베트남전 종전 42주년 기념 기자회견 및 베트남피에타 동상 제막식'을 열었다.

'베트남피에타'는 높이 150cm로,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희생자로 대표되는 어머니와 이름도 없이 죽어간 무명 아기들의 넋을 위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김서경.김운성 작가의 작품이다.

한베평화재단은 '베트남피에타'를 베트남 현지에 세우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모금활동을 벌였지만,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측이 베트남 정부에 "한국군 참전은 민감한 사안으로 한국의 반정부 단체나 각 정파들에 의해 내부 정쟁에 이용당하거나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한다"며 동상 설립을 반대, 결국 현지 건립이 어려워졌다.

이에 재단 측은 제주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 동상을 건립한 것. 구수정 재단 상임이사는 "강정에 이어 한국의 베트남대사관 앞에 '베트남피에타' 동상을 세우게 될 그날을 그려본다"며 "그것은 가해국의 시민들이 스스로 과거사를 직시하고 먼저 용서를 비는 사죄비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오늘 '베트남피에타'가 강정에 깃들고 강정이 '베트남피에타'를 품는 이 자리가 바로 평화"라며 "나의 애도와 너의 애도가 만나 온전히 슬픔을 떠나보낸 자리에 비로소 피어나는 것이 평화"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 강우일 이사장 등 한베평화재단 관계자들이 '베트남피에타'를 공개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동상 제작자인 김서경 작가가 '베트남피에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동상을 제작한 김서경 작가는 "'베트남피에타'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피고 진 뭇 생명들에 바치는 위무이자 산산이 부서진 그 작고 보잘 것 없는 육체들에 대한 기념비이고 죽은 자를 위한 산 자의 애도이자 수 년, 수십 년, 아니 어쩌면 수백 년이 흘러도 아물지 않을 상처를 치유하려는 진혼곡"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되었으나 끝내 국가가 책임지지 않은 목숨들에 대한, 그리고 한국 정부가 아직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베트남 민간인들에 대한 사죄비가 되어야 한다."

   
▲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인 강우일 주교가 '베트남전 종전 42주년 기념 기자회견문'을 읽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제막식에 앞서 베트남전 종전 42주년 기념 기자회견이 열렸다. 

천주교 제주교구장이자 한베평화재단 이사장인 강우일 주교는 기자회견문에서 "사죄와 위로를 전하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베트남피에타'는 전쟁으로 스러진 모든 아까운 생명을 보듬고 평화의 자장가를 부른다"며 "이것만으로 우리의 사죄를 표현하기엔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강우일 주교는 10년전 강정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상기시키며, "평화의 이름으로 '베트남피에타'가 여기 강정에 깃들었다. '평화는 평화로 살게 놔두라'는 베트남 국민시인 탄타오의 말은 바로 강정에 대한 베트남의 마음이다. '베트남피에타'가 강정과 만난 이유"라고 강조했다.

   
▲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역사의 진실은 피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임을 우리는 체험하여왔다. 타락한 정권의 몰락과 곧 이은 진실의 인양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재이며, 우리가 지켜본 역사의 진리이다. 그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무겁게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한살의 진실을 세상 밖으로 꺼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베트남전이라는 거울을 통해 한국사회의 더 많은 진실과 정의를 회복하고자 한다"며 "오늘 평화의 섬, 강정에서 우리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노래하는 나들'의 노래공연, 무용가 김미선의 추모춤, 고은 시인과 베트남 탄타오 시인, 찜짱 시인이 보낸 시 낭송, 강정마을 농부시인 김성규 씨의 시낭송 등이 어우러졌다.

강우일 주교, 명진 스님, 문정현 신부, 조경철 강정마을회장, 장혜옥 전 전교조 위원장,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한상렬 목사 등 1백여 명이 참가했다.

제주 강정마을 성프란치스코평화센터에 세워진 '베트남피에타' 옆에는 다음과 같은 동판이 문정현 신부의 글씨로 새겨졌다.

나는 야만을 기억하고 기억한다
여기
베트남의 마지막 자장가가 한국의 자장가와 만난다
오 동아시아 파도소리여 너와 나의 파도소리여

-고은시인

   
▲ 강우일 주교, 명진 스님, 문정현 신부,  한상렬 목사, 조경철 강정마을회장, 장혜옥 전 전교조 위원장,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 등 1백여 명이 참가했다.[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구수정 재단상임이사가 '베트남피에타'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참가자들의 기념사진.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 '베트남피에타'.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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