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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성욕은 동물보다 강하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6/13 08:17
  • 수정일
    2017/06/13 08: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양형호 2017. 06. 12
조회수 3543 추천수 0
 
곤충 유혹 위해 잎이 꽃으로 변신, 잎 벌려 꽃 두드러지게 만들기도
수정 마치면 고개 숙이는 산수국 꽃, 다른 꽃에 수정 기회 넘겨
      
IMG_8073.jpg» 긴꼬리제비나비 애벌레. 새싹으로 곤충을 배불리 먹인 뒤 식물은 자신의 짝짓기에 바빠진다.
 
봄이 되어 숲의 나무마다 맛있는 어린 새싹을 내어 애벌레를 오동통하게 키울 무렵, 숲에는 짝을 찾는 새들의 다양한 구애 소리로 한바탕 시끄러워진다. 그렇게 숲 속 새들의 ‘결혼 시즌Ⅰ’이 시끌벅적하게 끝나면 애벌레와 새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한 나무의 ‘결혼 시즌Ⅱ’가 시작된다.
 
1432772436588.jpg» 화분 안에 둥지를 튼 박새 가족.
 
20170518_090246.jpg» 화분 안에 둥지를 튼 노랑할미새.
 
BJ7I1183.jpg» 딱새 둥지에 탁란한 뻐꾸기.
        
식물이나 동물이나 살아가면서 가장 멋있고 아름다운 때는 종 번식을 위한 결혼 적령기이다. 아래 사진의 원앙도 짝짓기 철 혼인 깃이 가장 아름다워 보인다. 원앙이 화려한 색을 띠는 이유는 자신의 화려한 깃으로 건강미를 과시해 원하는 짝을 얻기 위해서이다.
 
IMG_4469.jpg» 화려한 혼인 깃으로 장식한 원앙 수컷.
 
덜 알려진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새끼를 기를 때 매와 같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이 먼저 눈에 띄어 희생함으로써 아기 새와 엄마 원앙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원앙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의 새끼나 둥지가 노출될 위협을 느끼면 날개가 부러지거나 다친 척해서 천적을 유인하는 의태 연기가 아주 뛰어난 새 중 하나다. 
 
그러고 보면 자식 사랑은 사람이나 새나 모두 같은 것 같다. 시간이 지나 새끼 원앙이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면 수컷 원앙의 혼인색도 암컷과 비슷한 색으로 변하게 된다. 더는 천적에게 위험하게 노출되는 화려한 깃을 가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결혼 폐백상을 장식하는 목각으로 만든 다정한 새 한 쌍은 많은 이가 원앙으로 알지만 잘못된 상식이다. 원앙은 일부다처제이기 때문에 폐백상에 적합하지 않다. 폐백상에 오르는 새는 평생 한 배우자하고만 살아가는 기러기 부부이다.
      
고등식물이나 동물들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다양한 환경과 장애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도록 자손에 변화된 유전자를 남기려 한다. 이를 위해 유전자가 서로 다른 암수가 짝짓기와 수분을 통한 수정으로 새로운 유전자 조합의 2세를 탄생시키는 진화를 이룩했다.
      
식물은 동물의 성기 같은 기능을 하는 암꽃과 수꽃을 만들어 수분하는데, 식물은 동물과 달리 스스로 이동할 수 없어 꽃가루를 이동시켜 주는 다양한 매개체를 이용해 배우체를 만나 수분한다. 꽃가루를 이동시켜 주는 매개체에 따라 바람을 이용하는 풍매화, 물을 이용하는 수매화, 곤충을 이용하는 충매화, 새를 이용하는 조매화가 있고 때론 동물을 이용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주로 곤충을 이용하는 충매화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IMG_8625.jpg» 개다래 꽃.
 
위 사진은 숲 가장자리 길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덩굴성 나무인 개다래의 꽃이다. 개다래는 자신의 꽃을 먹는 곤충 등쌀에 꽃을 보호하기 위해 꽃을 잎 뒤에 숨기는 전략을 세웠는데, 정작 결혼을 시켜 줄 곤충까지 꽃을 찾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되었다.
      
IMG_7046.jpg» 꽃이 피면 개다래의 잎이 희게 변색돼 곤충의 눈길을 끈다.
  
그래서 개다래는 꽃 피는 시절이 되면 자신을 결혼시켜 줄 곤충을 불러 모으기 위해 잎의 일부를 꽃처럼 화려하게 변장하는 방법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잎을 꽃처럼 위장해서 곤충들을 유혹한 뒤 수정이 끝나 본연의 임무들 마치면 잎은 다시 광합성 작용을 위해 초록색으로 돌아간다.
 
IMG_9202.jpg» 개화기에 붉게 물든 쥐다래의 잎.
 
개다래와 같은 속인 쥐다래는 개다래보다 더 화려한 분홍색으로 잎을 물들여 자신을 결혼시켜 줄 곤충을 유혹한다.
 
qor.jpg» 백당나무.
   
백당나무 꽃에서 우리가 얼핏 꽃으로 생각하는 부위는 사실 꽃이 아니다. 커다랗게 보이는 꽃 안쪽에 있는 작은 꽃이 열매가 맺는 진짜 꽃이고 밖에 보이는 하얀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멀리서도 곤충을 유혹할 수 있게 꽃을 크게 보이게 만드는 헛꽃이다.
 
IMG_6247.jpg» 불두화.
 
꽃 욕심 많은 사람이 백당화의 꽃을 더 화려하게 보기 위해 열매가 맺는 진짜 꽃을 없애고 헛꽃만 피우게 육종했다. 그렇게 만든 꽃이 불두화이다. 불두화는 꿀이 들어있는 진짜 꽃이 없기 때문에 벌이나 나비 같은 곤충이 찾아오지 않는다. 사찰 주변에는 불두화처럼 꿀이나 향기가 없어 곤충이 찾지 않는 식물을 심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수양하는 스님이 꽃에 찾아오는 벌이나 나비를 보고 마음이 흔들릴까 걱정되어서라는데,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일 수도 있다.
 
IMG_4742.jpg» 산수국.
 
여름이면 산 계곡 주변에서 다양한 색으로 아름답게 꽃을 피우는 산수국을 볼 수 있다. 산수국도 결혼할 시기가 되면 아름답고 아주 커다랗게 보이는 꽃이 피는데, 백당화처럼 열매를 맺는 유성화와 꽃을 화려하게만 하는 무성화를 피운다.
 
IMG_9808.jpg» 뒤집힌 산수국 헛꽃.
  
그런데 산수국은 특이하게도 수정이 되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꽃처럼 화려한 색으로 치장했던 무성화가 신기하게도 본연의 임무를 마친 듯 화려한 색을 빼고 뒤로 벌러덩 뒤집히는 특징이 있다. 수정을 마친 꽃은 이제 열매 맺는 데 집중하고, 아직 미수정인 꽃에게 기회를 넘기는 것 같다.
  
20170601_123049.jpg» 흰 꽃처럼 보이는 산딸나무 총포.
  
사진에 보이는 산딸나무는 공처럼 보이는 곳에 작은 성냥개비처럼 붙어 있는 게 진짜 꽃이다. 꽃이 작은 산딸나무는 총포를 하얗고 큰 꽃처럼 만들어 곤충들을 유혹하는 전략을 가졌다.
 
IMG_4407.jpg» 곤충들 눈에 잘 띄게 잎 사이로 꽃을 들어 올린 피나무.
 
잎이 아름다운 하트 모양인 피나무는 결혼할 때가 되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잎 아래에 달린 꽃대를 잎 사이로 들어올려 꽃을 피우는 결혼 전략을 쓴다.
      
IMG_8936.jpg» 곤충들에게 꽃을 잘 보이기 위해 잎을 벌린 찰피나무.
  
위 사진에서 한 아름 화려하게 피어 있는 것은 찰피나무의 꽃이다. 찰피나무는 곤충을 유혹하기 위해 강한 꽃향기와 함께 곤충이 꽃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잎을 좌우로 벌려 꽃이 잘 보이게 하는 전략을 편다. 결혼할 때는 잎을 펼쳐 광합성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곤충에게 자신의 가장 중요한 부위를 지퍼를 열 듯 보여 줘 유혹하는 것이다.
      
이처럼 식물은 자신의 2세를 만들기 위한 온갖 수단을 써 곤충을 유혹한다. 어쩌면 식물의 성욕은 동물보다 강한지도 모른다. 
   
■ 참고문헌:
 
이경준. 1993 수목생리학
남효창. 2008 나무와 숲
강혜순. 2002 꽃의 제국
이나가키 히데히로. 2006 풀들의 전략
 
글·사진 양형호/ 국립수목원 전시교육과 현장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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