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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팡내 심해 온종일 방향제 뿌려야 하는 그 방에, 6살 아이가…

 

등록 :2017-09-20 05:00수정 :2017-09-20 09:52

 

[주거빈곤에 멍드는 아이들]
세 가정 통해 본 열악한 주거실태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길 바란다. 하지만 정작 그 성장의 토대가 돼야 할 집 때문에 아이들이 겪는 고통은 알지 못한다. 저소득 가구 가 ‘부담 가능한’ 주택은 점점 줄고, 가난한 이들은 지하 와 옥탑, 고시원, 비닐하우스로 밀려난다. 어린 시절 열악 한 주거환경은 어른이 된 이후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리 사회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라도 어린이·청소년들 의 오늘을 위협하는 주거빈곤 상황의 개선이 절실하다.

 

안주철(37·가명)씨 부부가 7년째 사는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지하 단칸방. 한쪽 벽에 설치된 자동방향제가 15분마다 방 안 가득한 곰팡내를 밀어내고 있었다. 박기용 기자
안주철(37·가명)씨 부부가 7년째 사는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지하 단칸방. 한쪽 벽에 설치된 자동방향제가 15분마다 방 안 가득한 곰팡내를 밀어내고 있었다. 박기용 기자
‘치익, 칙’. 희미한 커피향이었다. 벽에 붙은 방향제 자동분사기는 15분마다 인공향을 뿌려댔다. 20㎡ 남짓한 정사각 실내에 곰팡내가 일순 지워졌다 다시 일었다. 냄새를 의식하자 마른기침이 났다. 지난 7일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 한 지하 단칸방에서 <한겨레>와 만난 안주철(37·가명)씨는 배에 보조기를 두른 채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안씨는 3년 전 허리를 다쳐 온전히 서지도, 제대로 앉지도 못한다. 볕이 들지 않는, 심하게 경사진 언덕의 2층 단독주택 지하방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 안씨는 “이 집의 곰팡이는 좀체 사라지질 않는다”고 말했다. 자고 일어나면 바닥의 습기로 베개가 젖고, 젖은 베개에 다시 곰팡이가 슬었다. 6개월마다 도배를 했고, 화장실에서나 쓰는 자동방향제로 냄새를 덮었다. 곰팡내 가득한 단칸방과, 옆집과 같이 쓰는 집 밖 공용 화장실, 현관이면서 부엌이자 욕실이기도 한 기이한 공간이 이 집의 전부다. 안씨와 아내, 6살 딸은 살림이 차지하고 남는 자리에 겨우 눕는다. 이곳에서 안씨네는 7년을 살았다.

 

안씨는 조건부 수급자다. 생계비를 지원받는 대신 정부 자활사업체에서 일을 하거나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한다. 주거급여를 포함해 세 식구의 월 소득은 110만원. 각종 고정비용을 뺀 30만~40만원으로 한 달을 산다.

 

 

기침감기 달고 사는 딸
돈없어 가족외출도 못해 종일 방에
어린이집서 또래의 말도 이해 못해


여섯 식구가 단칸방에
살림 빼곡한 방, 보채는 네 아이
“다자녀 혜택? 전기·가스 3천원뿐”


이혼한 이주여성 가정
남편 폭력에 애들 데리고 집 나와
아이들 눅눅한 반지하방서 TV만

 

 

곤궁해 외출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부모와, 전 생애를 이 집에서 보낸 아이는 온종일 집에 머문다. 기침감기가 끊이지 않는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만난 또래의 말을 해독하지 못해 언어치료를 받는다. “제가 진짜 우울증도 왔었어요. 옥상 올라가서 뛰어내릴까, 그런 적도 있었고.” 감정이 격해진 안씨가 살짝 말을 더듬었고, 당뇨와 신부전이 있어 남편을 돕지 못하는 아내가 고개를 떨구고 씁쓸히 웃었다.

 

안씨네처럼 최저주거기준을 밑도는 주거빈곤 가구의 어린이·청소년은 2015년 현재 94만4천명, 만 19살 이하 전체 어린이·청소년의 9.7%다. 춥고 습하고 어두운 방에서 매일 아침을 맞는 아이들은,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위협을 받으며 삶을 시작한다. 어릴수록, 또 위험 요소에 노출된 기간이 길수록 빈곤의 위협은 커간다.

 

안주철씨 집의 현관이자 부엌이자 욕실인 곳. 박기용 기자
안주철씨 집의 현관이자 부엌이자 욕실인 곳. 박기용 기자

 

먼지나 석면, 해충, 납이 포함된 페인트, 곰팡이는 아이에게로 와 알레르기나 천식, 심장질환, 암이 된다. 과밀하고 불결한 환경, 환기와 채광, 냉난방의 어려움은 스트레스가 돼 우울증과 분노, 사기저하, 과잉행동 같은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 더러 아이의 반사회적 행동이나 비행을 강화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대물림의 악순환이다. 외부 도움 없이 주거비 압박이 가중되면 저소득 가구는 더 과밀하고 더 열악한 주거로 내몰린다. 각종 편의시설이나 서비스 접근성이 떨어지고 더러 비닐하우스나 고시원 같은 ‘집 아닌 집’을 집으로 삼는다. 건강, 교육, 음식, 난방에 필요한 지출을 줄여 신산한 삶을 이어가지만, 일련의 선택은 이들의 미래인 어린이·청소년에게 부정적 영향으로 되돌아온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한국도시연구소가 통계청의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자료를 읍면동 단위로 분석해 2013년 내놓은 결과를 보면, 주거빈곤 어린이·청소년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은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이었다. 2010년 기준 이곳 어린이·청소년 10명 중 7명(69.4%)은 주거빈곤 상태다.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 단칸방에 사는 윤성학(35·가명)·권경인(30·가명)씨 부부. 부부는 이곳에서 각각 9살, 7살, 5살, 3살인 아이 넷과 살고 있다. 박기용 기자
경기도 시흥시 정왕본동 단칸방에 사는 윤성학(35·가명)·권경인(30·가명)씨 부부. 부부는 이곳에서 각각 9살, 7살, 5살, 3살인 아이 넷과 살고 있다. 박기용 기자

 

여섯 식구가 한방 ‘과밀가구’

 

지난 6일 정왕본동에서 만난 윤성학(35·가명)·권경인(30·가명)씨 부부도 최저주거기준(6인 가구 55㎡ 이상, 방 3개·식사실 겸 부엌)을 한참 밑도는 26.4㎡ 크기 단칸방에서 네 명의 아이와 살고 있었다. 이 방에서 7살인 둘째부터 3살인 막내까지 세 아이가 태어났다. 9살인 첫째는 월세 38만원짜리 인근 원룸이 고향이다. 부부는 돈을 빌려 보증금 3300만원의 전세로 옮겼지만 단칸방을 벗어나지 못했다.

 

네 명의 아이들은 인터뷰 중 계속 보채고, 방안을 돌고, 냉장고 문을 여닫고, 스마트폰 게임을 했다. 사방 벽은 각종 살림과 빨래, 아이들의 책과 장난감으로 뒤덮였다. 벽은 이따금 갈라졌고, 겨울엔 곰팡이가 ‘꽃처럼’ 피었다. 바퀴벌레도 무시로 드나들었다. 아이들은 자주 코피를 흘렸고, 방역업체 사람은 “건물 전체를 소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받은 돈을 돌려줬다.

 

이 지역은 인근 시화·반월공단으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많다. 윤씨와 권씨 부부도 공단 내 한 제조업체에서 일한다. 부부의 한 달 소득은 330만원가량. 대출받은 집 보증금과 이런저런 빚 탓에 한 달 상환액만 150만원가량이지만,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기엔 소득이 많다. 4대 기초생활보장급여 중 가장 높은 교육급여 수급의 내년 기준은 6인 가구가 309만6천원(중위소득 50%)이다.

 

부부는 “아이 넷이면 흔히들 받는 게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우리가 받는 다자녀 혜택은 한 달 전기·가스비 3천원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두 차례 공공임대아파트 입주 신청을 했지만 모두 대기 순위를 받았다. 윤씨가 본 입주자 모집공고문의 다자녀 가점은 ‘3자녀 이상 2점’뿐이었다. 윤씨는 “아이들이 더 크면 ‘좁아서 못 자겠다’는 얘길 듣게 될 텐데, 그게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소의 고주애 연구원이 낸 보고서 <아동 주거빈곤 정책 마련을 위한 탐색적 연구>를 보면, 과밀한 집에서 사는 아이들은 감기와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을 많이 앓는다. 과밀 주거환경이 결핵이나 뇌수막염, 위암과 소화기 질환과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결핵은 열악한 환경에 장기간 노출될 경우 치명적이고, 천식은 성인기에 재발하면 폐기능을 비정상으로 만든다.

 

 

윤성학·권경인씨 부부의 막내 아들이 베란다에 놓인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를 꺼내 먹고 있다. 박기용 기자
윤성학·권경인씨 부부의 막내 아들이 베란다에 놓인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를 꺼내 먹고 있다. 박기용 기자

 

어둑하고 습한 반지하 집

 

지난달 22일 서울 송파구 마천동 한 반지하 집에서 만난 결혼이주여성 권지숙(35·가명)씨도 아이가 셋인 ‘다자녀’였다. 베트남에서 태어나 2005년 한국으로 시집왔고, 생수 배달을 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이 셋을 낳았지만 올해 초 이혼했다. 남편의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나온 지 2년여 만이다. 위자료는 못 받은 채 아이들 양육권만 가져왔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인 이 집에서 2년째 산다.

 

주인집과 따로 난 철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어둑한 복도가 나오고, 한 집을 지나쳐야 권씨 집 현관에 이른다. 큰방, 작은방에 부엌과 화장실까지 30㎡가량의 지하 공간에서 각각 11살, 9살, 8살인 세 아이들이 자란다. 권씨는 인근 미싱공장에서 봉제일을 해 매달 120만원가량을 벌고 한부모가족 지원금으로 36만원을 받지만 일이 불규칙해 수입도 일정치 않다. 통장엔 60만원이나 80만원이 찍힌다.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권지숙(35·가명)씨가 사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반지하 집. 휑한 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제습기가 ‘웅웅’ 소리를 내며 실내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인 권지숙(35·가명)씨가 사는 서울 송파구 마천동의 반지하 집. 휑한 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제습기가 ‘웅웅’ 소리를 내며 실내의 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권씨의 집엔 살림이랄 게 딱히 없었다. 집에 오면 텔레비전만 본다는 아이들도 인근 아동센터에 가고 없었다. 둘 곳이 마땅치 않아 화장실 입구에 버텨 선 세탁기와, 휑한 방 한구석에 놓인 낡은 제습기가 ‘웅웅’ 소리를 내며 아이들의 옷을 빨고, 지하의 습기를 빨아들였다. “월세가 부담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다른 거 밀려도 월세 꼬박꼬박 내요. 아이들 때문에 집 구하기 정말 어려워요. 애 셋 키우는데 월세 어떻게 내냐며 쫓아내요”라고, 권씨는 조사를 뺀 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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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한국도시연구소가 2013년 발간한 아동 주거빈곤 실태 보고서 <아동의 미래, 집에서 시작합니다>를 보면, 미국 보스턴의 의사들은 임대료 보조를 못 받는 가구의 아이들이 일반 가정 아이들보다 철분 결핍이 50% 이상 더 나타난다고 보고했다. 또 주거비 부담이 과도한 가구에 속한 아이들의 연령 대비 저체중 비율은 그렇지 않은 경우에 견줘 2.11배 높았다. 다른 연구에선 수입의 절반 이상을 주거 유지 비용으로 사용하는 가족이 그렇지 않은 가족에 견줘 식비 31%, 교통비 70%, 의복비 47%를 덜 소비했다.

 

안씨와 윤씨, 권씨네의 상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11717.html?_fr=mt1#csidx4722e2c14837d5c8fd51e053f1a97e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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