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님의 [마르크스에게... 역사란?] 에 관련된 글

 

알바 마감하고도 이런저런 일로 뮝기적대다, 한 일주일 전에야 (제가 달았던 댓글에 대한 나름의 입장인 것으로 보이는) EM님 글을 읽었습니다. “마르크스에게.. 역사란?”이란 포스트하고 “이론이란,, 그리고 지식이란” 포스트요.

 

포스트를 포함해, 그와 관련해 오고간 댓글들까지 읽으면서 솔직히 여러 모로 좀 심난해졌습니다만.. (게다가 아래에 댓거리 격으로 글을 써놓고 보니 스크롤 압박까지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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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두절미하고, 폴라니 아저씨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합니다. ‘제 말’ 대신 이른바 대가라 불리는 아저씨의 말로 글머리 여는 게 별로지만, 뭐 어쩔 수 없죠. EM님의 관련 글을 읽다가 문득, (아마 익히 읽어보셨을 듯도 합니다만) 폴라니가 1933년 무렵에 썼다는 미간행 유고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강의교안”의 내용이 떠올랐거든요(폴라니, 홍기빈 옮김, 2002).

 

그래서 다시 함 찾아봤어요. 이 교안에서 폴라니는 맑스주의 철학이 “진보적”이며 “본질적으로 혁명적인 철학”인 건 “오늘날 우리가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우리 시대에 국한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고 합니다. “현재의 사회를 넘어선다면 새로운 지식의 시야가 열릴 것”이라고 덧붙이면서요.

 

폴라니에게 맑스주의란 “따라서.. 하나의 체계라기보다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해, 맑스주의 사상, 혹은 방법으로서의 맑스(주의)란 “우리에게 어떻게 진실되고 적절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지 그러한 지식의 항목들을 쌓아놓은 더미가 아니”라는 거죠.

 

(맑스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은근히 맑스와 ‘척을 지우려는’ 최근 낌새와는 달리) <거대한 변환>을 읽고서 폴라니를 맑스의 대체재가 아닌 훈늉한 자양강장제로서 받아들였던 저로선, 이 구절을 보고는 폴라니에 대한 호감지수가 더 상승했더랬죠. 저 정도 통찰이면 그를 통해 맑스(주의)가 냈던 목소리들이 ‘문헌학적 복기’를 넘어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겠다 싶어서요.

 

특히 폴라니가 (사실 개인적으론 ‘반反철학적’ 사상이라 하는 게 더 적절하다 봅니다만, 어쨌거나) 맑스(주의) 철학이 “우리가 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지식을 우리 시대에 국한된 것으로 간주”하는 고로, 실은 방법에 가깝다고 한 대목은 적어도 제겐 ‘두텁게’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만. 왜 그런지 EM님의 주장을 본격적으로 되짚어보면서 밝혀 보죠.

 

님은 맑스의 이론 자체가 “타인의 "이론"이 "역사"를 올바르게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의 결과”인 만큼, 맑스의 “"이론"을 "역사"와 대비시키는 것은 헛된 짓”이라셨어요. 이를테면 월러스틴 옹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얘길 텐데, 과연 그럴까요? 맑스 텍스트에서 ‘이론(화 작업)’과 ‘역사’가, 폴라니가 말한 맑스(주의)적 “방법”의 내적 성분으로, 마치 뫼비우스의 띠마냥 ‘표리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상호되먹임 관계라는 걸 월러스틴 옹이 몰랐겠냐는 겁니다. ‘이론’과 ‘실제’를, 무슨 제 꼬리를 못 물어 안달난 강아지 새끼마냥 뺑뺑이 돌리기 일쑤인 과학적 부르주아 지식의 생산자들(=소위 주류 사회과학자들)처럼 말이죠.

 

직접 안 물어봐서 단언까진 못 하겠지만, 최소한 월러스틴 옹이 부르주아 사회과학 진영에서 곧잘 들이대는 (실증-경험주의적) ‘검증’의 잣대 따위로 맑스의 이론(화 작업)에 토단 게 아닌 건 분명하지 싶네요.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EM님께서야 곧바로 “그래, 아는 놈이 그렇단 말야?”라고 대꾸하시겠죠?^^ 그럴 줄 알면서도 굳이 이렇게 짚고 넘어가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제가 보기엔 EM님이야말로 맑스의 위대한 성취라 할 저 “방법”, 즉 이론(화 작업)과 역사(적 개입)의 부단한 상호되먹임 속에서 ‘비판의 무기’를 벼려내는 일과 관련해 월러스틴이 던진 질문을 제대로 “속류화”하잖았나 싶어서요(사족일진 몰라도 뭐 제가 수도원의 사제도 아니고, 속류화란 표현이 적절한진 꽤나 의문인데, 차라리 ‘희화화’라는 표현이 더 낫잖나 싶네요).

 

님의 월러스틴 비판 자체에 반발하는 게 아녜요. 월러스틴 스스로 자신의 입론이 흔히들 지칭하듯 ‘론’이 아니라 분석이며 차라리 이론(화)에 대한 요청이라고 하는 마당에, 게다가 자신의 분석 작업이 얼마나 성공적인지도 미지수라고 스스로 밝히는 마당에, 날릴 게 있음 날려줘야죠. 다만 날릴 땐 날리더라도, 스스로 세운 허수아비 쓰러뜨리듯 하진 말았음 싶슴다. ‘실체’는 정작 의연한데 허수아비 쓰러뜨려 뭐할 거냔 거죠.

 

전 월러스틴이 EM님 말씀처럼 “맑스(주의자들)의 논의를 “프롤레타리화”로 단순화한 뒤”, ““실제 자본주의 현실”에서는 그런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고 보지 않아요. 아니, 그렇게 볼 순 없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월러스틴이 프롤레타리아화 자체를 부정했던가요? 그렇지 않죠. 그게 맑스의 “단순무식한 주장”이라 한 적은 더더군다나 없고요. 외려 그게 장기적 추세로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행되는 과정임은 월러스틴도 수긍합니다. 다만,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역사적으로 굴러먹어온 궤적을 보건대 그 과정이 (임금노동 말고는 토지나 여타 생활수단이 부재하다는 식의) 통상적 정의처럼 이뤄지진 않더라는 겁니다. 월러스틴의 요지는, 프롤레타리아화한 노동력의 판매자들이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주요 제도 중 하나인 (‘가족’으로 한정되지 않는) 가계구조의 일부로 연결돼 있다 보니, 실제로는 프롤레타리아화 추세의 상쇄 요인들이 있었다는 것이고 이는 노동력 비용 압력을 낮춘다는 의미에서 자본가들로선 외려 축적상의 부담을 덜(=노동자들한테 전가할) 수 있었다는 거죠.

 

중요한 건 이런 주장으로 소위 ‘좌파’들이 무슨 덕을 볼 수 있겠냔 점일 겁니다. EM님께선 맑스가 공들여 쌓은 탑을 허무는 헛짓이라고 하지만, 저는 외려 월러스틴이 “방법”으로서의 맑스를 자칭 맑스주의자들은 얼마나 충분히 밀고 나갔던 건지 자문해보자는 쪽이었다고 봐요. 즉, 역사적 자본주의에 독특한 장기 추세인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반)프롤레타리아라 불릴 만한 주체들이 좀더 효과적으로 자본주의를 극복할 “투쟁의 장소”(들)로서 바라보면 어떻겠냐고 했다는 거죠. (대체로 구미권, 혹은 중심부/반주변부 지역) 산업(남성)노동자들한테 사실상 “특권적 지위”를 부여해온 ‘경화된’ 개념적 구성물로서가 아니라요.

 

이렇듯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사실상 이론적으로) 특권화된 노동자상을 도출하는 논리적 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을 겨냥한 현실적 운동이 잠재하는 “투쟁의 장소”들로 바라보면, 가변자본화 혹은 잉여인구화 압력(혹은 폭력)에 노출돼 있는 “모든 노동자들”이 투쟁 방법과 전략상의 이유로 빚어온 불필요한 (심지어 적대로도 치달았던) 반목과 분할을 제거하거나, 적어도 완화하는 ‘정치적 효과’가 있잖겠냐는 겁니다.

 

월러스틴이 이같은 주장을 하게 된 데 아프리카 대륙의 근대(적 식민)화 연구(와 일정 정도 관여하기도 한 이곳의 사회주의, 아프리카주의 운동) 경험이 크게 개재돼 있음은 잘 알려져 있죠. 아리기도 이 지역 노동인구의 형성과 이동, 이주노동 양상에 대한 “현장조사”로 세계경제 내에서의 임노동자화가 가계구조와 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걸 밝힌 바 있고요. 노동력 공급자의 임노동자화가 자체 논리에 따라 근대 자본주의의 장기 추세를 보인다 해도, (통시적으로뿐 아니라 공시적으로도) 역사적 자본주의 체제에서 임노동자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노동통제 방식이라는 건 사실이 아니며 외려 ‘플렌테이션’ 노동이라고 통칭되는 강제노동 내지 근대적인 노예-소작노동이 가치화 과정에 아주 쏠쏠하게 기여했음을 강조했던 것도 그래서구요.

 

요컨대 역사적 자본주의의 성립조건이자 그 발전의 산물이기도 한 근대 식민지 창출과 더불어 제도화된 광의의 플렌테이션 노동통제양식이 자본축적(과 그에 따른 내적 모순의 ‘해결’)에 기여한 바는, 흔히 알려져 있다시피 ‘해외시장’으로서 기여한 바보다 더 크다고 하는 것만으론 부족할 만큼 압도적이었다는 건데요. 예컨대 ‘캘리포니아학파’ 중에 가장 발군으로 알려진 케네스 포메란츠의 <설탕, 커피 그리고 폭력>이 월러스틴/아리기 식의 세계체제 분석틀, 그 중에서도 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상이한 유형의 노동자 주체가 만들어지고 정치적 연합이 펼쳐질 ‘투쟁 장소’로서 이해하자는 제안에 일정하게 기대고 있음은 부인하기 힘들 겁니다. (16세기 유럽 자본주의 세계의 발흥이 근대식민지에서의 노동력/자원 착취와, 당시 압도적 위상을 가졌던 중화권 세계-경제가 마침 인도양 언저리에서 발을 빼는 바람에 생긴 '운빨', 이 두 요소의 찰떡결합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거대한 분기> 같은 경우는 제가 보건대 맑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 개념과 세계체제 분석틀을 지적 씨줄과 날줄로 엮어 짜낸 매력적인 피륙이랄 수 있지 싶고요.

 

이런 일련의 ‘성취’ 덕분에, 근대 자본주의 세계가 (포메란츠에 따르면) ‘우연찮게’, 그리고 오롯이 식민지화 덕분에 하나의 체제로 자리잡고선 어떻게 굴러왔다곤 하나 그게 영구불변의 유토피아라며 설레발쳐온 것관 달리 실은 꽤나 희한하고, 월러스틴 같은 경우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을 ‘진보적’이긴커녕 ‘전지구적인 도덕적 붕괴 과정’이라고 혹평할 정도로 엽기적이기까지 했다는 걸 ‘좀더 체계적으로’ 알 수 있게도 됐달까요.

 

어제 서점에서 박준성씨가 쓴 신간 <노동자 역사 이야기>를 봤습니다. ‘좌파적’ 시각에서 한반도 노동운동사를 개괄하는 책이더군요. 근데 목차를 보니 ‘근대일본령 조선기’를 전후한 시기에 등장하는 노동자는 ‘공장’노동자였던 강주룡씨 정도가 다더라구요. “잃어버린 노다지 구한말 노동운동”이라는 장이 따로 있긴 하지만, 이 역시 ‘산업노동자’의 원형을 과거로 소급해 투사하는 느낌이 강하구요. 개인적으로, 한국 상황에서 나름대로 좌파적인 시각을 견지하며 이 정도 역사적 접근이라도 시도한 게 어디냐 하고 말기엔 뭔가 씁쓸함을 지우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근대일본령 조선기의 ‘노동자’를 그저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로만 한정짓는 게, 바꿔 말해 당시 일본령 조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며 소(작)농 형태로 노동력을 투하(즉, 착취당)했던 농업 인구는 임노동자가 아니(거나 그에 ‘미치지’ 못하)니 사실상 논외로 취급하는 게 과연 타당한 걸까 싶더란 거죠.

 

이와 관련, 김준보라는 원로 농업경제(사)학자는 그래서 근대일본령 조선이란 식민주의 지배연합 국가의 탄생을, “지대의 이윤화”라는 테제를 통해 농업자본주의적 생산의 제도화 과정으로 설명하려 하죠. 물론 이 테제가 함의하는 바는 소작농들이 근대적 식민지화 과정 속에서 미성숙한 노동자 내지 산업노동자의 전사前史 따위로 그저 ‘온존’하는 게 아니라 (상층지주들의 근대적 농업자본가로의 변신 과정과 표리를 이루는) 엄연한 농업‘노동자’로 질적인 변환, 즉 자본주의적 포섭을 겪는다는 겁니다.

 

결국 외견상으론  예전과 형태적으로 별다를 게 없어 뵈는 일본령 조선인들의 노동/생산 과정이 어떻게 가치화 체제의 내부로 ‘양식화’하는지 해명하는 게 중요하겠죠. EM님 논증 방식대로면, 이때 (아마도 반-프롤레타리아가 대다수였을) 일본령 조선기 농업노동자들의 현존은 단순히 틀렸거나 적어도 진위 판별이 불가한 “현실”이 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정말 그런가요? 근대일본령 조선기 소작농 내지 농업노동자들이 농업자본가들의 이윤추구 행위에 체계적으로 포섭돼 있었음을 규명하는 작업이 아예 틀렸거나, 그렇게나 아예 불가능한 일이냔 겁니다.

 

제가 보기엔 안 해서 못 했을 뿐이지, 이런 작업은 예컨대 포메란츠가 한 식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봐요. EM님으로선 마뜩찮겠지만, 프롤레타리아화에 관한 월러스틴의 ‘질문’이 근대 식민지란 역사적 시공간에서 이뤄진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재편 양상을 살피는 데 꽤나 쓸모가 있는 것도 분명한 듯싶고요.


***


맑스의 “방법”이 역사적 접근과 관련해 지닌 쏠쏠한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맑스가 말하는 ‘역사’가 이른바 “역사 없는 역사성”에 머문 거 아니냔 지적은 EM님도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이를테면 맑스가 자본주의가 역사적 체제로서 등장했다고 한 16세기부터 맑스가 한창 활동하던 19세기까지 자본주의는 실제로 어떻게 굴러갔는지, 또 20세기 이후 자본주의는 19세기까지의 자본주의와는 어떻게 다르면서도 같은지 하나로 꿰어볼 수 있었냐는 거죠. 엄밀히 말해 이에 관해 어떤 이론화를 시도했다기보다는, 가치형태론 같은 이론화 작업을 중심으로 그같은 이론화의 (중요한) 단초를 마련했을 뿐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 않나 해요.

 

본원적 축적에 관한 이야기가 역사적 자본주의란 어떤 필연의 산물이라기보단 꽤나 억지로 만들어진 것임을, 적어도 노동자가 된 인민들이 스스로 원해서 탄생한 체제는 아님을 아는 데 도움이 됐고, ‘아시아적 생산양식’에 관한 언급의 경우 19세기 유럽산 부르주아들이 스스로 믿고팠던바, 자본주의가 모든 역사적 체제들이 밟게 마련인 ‘이행’의 종착점이란 따위 랑케식 역사주의(혹은 헤겔식의 ‘세계사적 진보’)를 위태롭게 할 수는 있었다 해도,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했다는 겁니다.

 

이건 사실 ‘19세기’라는 제약조건 아래 계몽사조의 자장 안에 있던 맑스로선 불가피한 게 아녔을까 싶기도 해요. 그 정도까지 밀고 나간 것만도, 그가 발딛고 있던 시대상의 제약을 감안하면 대단했던 거라 할까요? 오히려 문제는 이른바 맑스의 후예라는 이들이 맑스의 방법에 얼마나 충실했냐는 걸 텐데요. 역사 없는 역사성에 관한 질문들이, 맑스의 텍스트를 ‘온전히’ 읽는 걸로만 답이 나올 그런 질문일까요? 맑스에 대한 같잖은 조롱과 폄훼는 차치하고서라도요.

 

글쎄요, 전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맑스문헌학 전문가가 되려는 게 아닌 이상에야, 맑스를 충실히 읽고 난 뒤 그가 애써 구축한 ‘이론’에 이후 제기된 문제를 ‘덧붙이면’ 될 사안일까도 싶고요. 제가 보기에 맑스의 이론(화 작업)은, 아니 맑스의 “방법”은 그런 게 아니니까요. 이론화의 틀을 달라진 물적 조건에 조응해 아예 다시 짤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활짝 열어두는 것이야말로, 맑스 스스로 추구한 '무자비한 비판', 즉 체제가 수호려하려는 지배적 척도의 '무근거성'을 드러내는 필요조건이라면 더더욱 그렇잖나 해요.

 

 이리 보면 예컨대 가치형태론의 분석적 유효성을 둘러싼 문제제기도 맑스의 특정 입론의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달리 보면 맑스의 "방법"에 한층 더 충실해지자는 요청으로 볼 수 있겠죠. 가치형태론이 '위기'라는 얘기가 나온 것 자체가 달리 보면 축적(의 폭력)을 떠받쳐온 가치화 기제가  근본적으로 뻐걱거리고 있다는 어떤 위기의 징후로 볼 수도 있단 겁니다. 이 와중에 그런 건 19세기'에나'; 통하는 거란 식의 조야한 뻘소릴 피하기 어렵더라도, 마냥 나쁘게만 볼 일은 아니란 얘기죠. 바꿔 말해 가치화 기제가 뻐걱거리는 징후라면, 이건 외려 반가운 소식 아니냔 건데요.ㅋ 그렇다면 정작 필요한 건 가치론을 의롭게 '방어'하는 게 아니라, 가치론의 유효성을 고려하면서 이같은 징후에 걸맞는 이론화 작업에 '다시' 나서는 일이 아닐지. 전 방법으로서의 맑스주의가 지닌 상대적 강점 따위가 아닌 '절대적 힘'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해요. 맑스가 이런 방법을 보여줬기에, 이 아저씬 시대의 산물인 동시에 시대를 넘어설 위대한 사상가 반열에 오를 수 잇는 걸 테고요.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님의 진술은 읽고서 솔직히 좀 뜨악했더랬습니다. 위악적 반어인가 싶어도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이게 대체 뭔 소리래 싶었어요. 뭐, 맑스도 “비판의 무기는 무기의 비판을 대신할 수 없다”며 “물질적 힘은 물질적 힘에 의해 타도돼야 한다”고는 했다지만, “그러나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고 했던데.. 전 이 말이 함의하는 바가 실천우위도, 이론우위도 아닌 실천과 이론의 부단한 되먹임이라는 얘기로 읽히거든요. 이론이 '만능열쇠'야 하냐 마냘 떠나, 전 이게 (이론의 '실천적 유효성'을 포괄하는) 이론의 존재론적 기초라고 봅니다만.

 

저 역시, 이를테면 정성진 선생이 무슨 훈고학 하듯 ‘고전적 맑스주의’야말로 정답인 양, 그래서 여타 논의들은 잠재적인 기각대상인 양 다루는 게 마뜩찮아 그런지, 이론을 중시하는 것 자체에 프리미엄을 부여할 맘은 없어요. 다만 이론과 실천이 별 관계가 없다고까지 하는 건 (물론 이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닐 텐데도 불구하고) 주류 사회과학자들이 현실 내지 역사를 이론의 오염원 내지 이론을 캐낼 원석인 양 취급하는 거하고 뭐가, 어떻게 다른 건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님이 말씀하시는 지식생산자로서의 “특권”이 이미 댓글서도 지적됐지만 굳이 스스로 천명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이론도 대중을 사로잡는 순간 물질적 힘이 된다”는 맑스 말마따나 결국 대중‘화’함으로써 사후적으로 ‘조성’되는 거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때 말하는 대중화가 단지 머릿수로 환원되는 게 아니라는 건 굳이 상론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요. 어쨌거나 댓글에 달린 (그러니까 제가 보기에, 제대로 된 소통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몇몇 질문/답변들은 님의 든 비유를 고대로 돌리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미장공이 재즈댄스까지 잘 춰야 하는 건 물론 아니더라도, 재즈댄스의 동선에 걸맞는 작업이 미장일만 잘 안대서 이뤄질 순 없는 것 아니냐. 사정이 이러하다면 미장일 마무리가 미장공 보기에 아무리 깔끔한들 그건 기껏해야 미장공의 에고만 한껏 부풀리고 말 공산이 크다.’


님께서 말씀하시는 특권은 차라리 ‘특별한 능력’이라 하는 게 더 나아 보이는데, 별 영양가 없는 용어 선택으로 의아함 내지 불통의 소지만 키운 건 아닌지도 모르겟습니다. 물론 그 능력이란, 여타의 특별한 능력들과 조성하는 (그럼으로써 ‘필요한 경우’ 스스로 새로워질) 능력까지 이미 포함하고 있는 걸 테고요.


 


음,, 좀더 짜임새 있고 압축적으로 님의 글에 대응하려 했지만, 그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통에 그렇게는 못 했네요.;; 이른바 ‘과소소비론’(에 대해 맑스가 했다는) 비판이나 역사적 사회주의의 위상, “역사적”이란 게 뜻하는 바를 놓고 펼친 님의 나머지 주장들에 대해서도 (여전히ㅋ) 할 말이 많지만, 시간이 되는 대로 나중에 마저 코멘트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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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9 13:01 2009/07/29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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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M 2009/07/29 20: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트랙백 고맙습니다. 앞서 "스크롤 압박" 말씀하셨는데, 이 글이야말로 꽤 되네요. ^^ 그런데 솔직히 제겐... 님의 글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것이 앞서 제 글에 대한 트랙백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좀 뜬금없게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제 속마음이 그렇다는 거고요, 결국 생각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한 제 잘못이겠죠. 어쨌든 이 글에 대해선, 저로서는,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구나"라고 하고서 넘어가는 게 적절해 보이네요. (아, 굳이 따지자면, 님과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저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많을 거라고 저는 짐작합니다.)

    (그래도 이후 언제가 될지 모를 토론을 위해 덧붙이자면) 사실은 저는 님께서 내놓으신 말씀에 대체로 동의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프롤레타리아화에 관한 월러스틴의 ‘질문’이 근대 식민지란 역사적 시공간에서 이뤄진 노동과정의 자본주의적 재편 양상을 살피는 데 꽤나 쓸모가 있는 것도 분명한 듯싶고요"라고 하셨네요. 님의 예상과는 달리("EM님으로선 마뜩찮겠지만") 저는 이런 주장에 거의 100% 동의합니다. 따라서 님과 저의 차이는 다른 곳에 있다고 해야겠군요.

    그리고 저의 다른 글에 대해, "별 영양가 없는 용어 선택으로 의아함 내지 불통의 소지만 키운 건 아닌지도 모르겟습니다"라고 하셨네요. 사실은 저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나중에 언젠가 좀 더 보충할 필요도 느끼고 있는데...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네요.

  2. 들사람 2009/07/30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스크롤 압박은 제 글이 그렇다는 얘기였는데, 어째 em님 글이 그렇단 식으로 써버렸군요. 언능 수정했습니다.ㅋ;

    고맙단 말씀은 별말씀인데, 제 글이 뜬금이 없었군요.ㅋ; 그리 말씀하시니,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지 더 궁금해집니다만ㅋ 차이 없는 '교통'이란 어불성설일 테니, 차차 말씀 들을 수 잇었으면 좋겠네요.

    얘기 난 김에 덧붙여 말씀을 드리자면, 저는 근대일본령 조선에서 소위 반-프롤레타리아화 과정을 통해 한반도에 착근된 생산관계가 대한민국으로 통치 형태상의 일정한 '명의변경'을 거친 뒤에도, 1960년대부터 본격화된 준전시동원형 축적체제 형성에 따라 소멸됐다기보다는 외려 '중첩'된 채(혹은 주름진 채로) 1960년대 이후의 축적 양태를 보전하고 있었다고 보려 합니다.

    그렇다면 반-프롤레타리화 양상은 자본주의적 생산이 태생적으로 통치의 단위로서 소위 주권국가 형태냐 아니냘 떠나 '식민성'을 아울러 생산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추론도 뒷받침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식민성의 (재)생산이 (보통 낭만화되기 일쑤인) 주권국가의 부재에 기인하는 건 결코 아니랄까요. 이리 보면 기존 반체제 운동들이 구사했던 '탈식민화' 전략의 전체적 구도도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텐데요. 여하간 저는 '현대' 한국의 정치경제를 다루는 데 근대일본령 조선이란 역사적 시공간에서 진행됐던 일련의 과정을 한낱 '불행한 삽화' 정도로 취급하는 식으론, 현대 한국의 비판적 이해조차 온전하기 어렵다고 보는 쪽이다 보니..ㅋ; (물론 좀더 근본적으론, '근대', '현대' 따위구분이 과연 타당하며, 설사 나누더라도 둘을 어떻게 엮을 거냔 물음을 던져야겠지만요.)

    가령 손호철 선생의 <현대 한국정치> 보시면, 구한말/1910년~1945년 이전을 다루곤 있지만 45년 이후와 비교해보면 꽤나 소략한 게 사실이죠. 그렇다고 1945년 이후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근대일본령 조선기의 축적-통치기제와 충첩돼 있었는지 '두텁게' 감안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이런 서술과 구성에서 벗어난 역사서술이 (물론 만만친 않겟지만) 이젠 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램이 있어요.


    동의를 해주시니 저로선 다행이다 싶은데^^: 뭐랄까요, 지식생산자의 독자적 위상을 충분히 감안한 '유기적 지식인'이 요즘 보니 무척 아쉽다고 하셨으면 훨씬 더 낫잖았을까 싶습니다. 이런 규정은 적어도, 각기 선 자리에서 누려야 할 고유한 독자성을 수긍하면서도, 그게 자폐화하지 않고 어떻게 되먹임하며 서롤 살찌울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열려 있는 셈이 될 테니까요. 비록 샤방해 보이진 않더라도요.ㅋ

    (근데 이렇더라도 지식 생산은 협의의 생산-수용 차원을 넘어 쌍방향적인 관계를 통해 이뤄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맑스의 유명한 말을 응용해보자면, "지식생산자는 지식생산자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 그는 유기적 지식인이 된다."고 할 수 있을라나요? 이 특정한 관계까지 지식생산의 내적 성분으로 감안하지 않음, 맑스의 텍스트마저 얼마든지 '자본'이 되잖겠냔 거죠. )

  3. 디디 2009/07/30 1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ㅅ-확실히 소통에 실패했었지. ㅋㅋㅋ 잘 지내니? 9월말에 잠깐 한국 간다. 현군이랑은 함 보려하는데 너도 같이 보면 나는 무척 좋겠다. 보고싶구나-0-

  4. 들사람 2009/08/01 0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디디/내 보기에, 니 잘못은 아녔던 거 같고. 연초에 직장 때려치고, 알바형 백수로 지내. 이를 일러 별일없이 산다,고 하면 될라나ㅋ 9월 말.. 의뢰받은 원고의 잠정마감 시기다만,, 뭐 볼 수 있겠지.

  5. EM 2009/08/05 1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늦긴 했지만 덧글이 달렸나 해서 들어와봤더니... 이곳에서 저 위와 같은 디디님의 반응을 보니 좀 불쾌하군요. 저한테 직접 하셨어야 했을 말씀을, 이곳에서 이렇게 "쑥덕거리는" 형태로 접하니 말이죠. 뭐 어차피 이제 저야 불로그도 접었으니, "그래도 진보넷 불로거끼리..."라는 식으로까지 말하진 않겠습니다. 비록 위 덧글을 쓰신 것이, 제가 불로그를 닫기 전으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죠.

    그건 그렇고... 제가 들사람님 의견에 동의한 건 아닙니다. 만약 들사람님께서, 제가 위 덧글에서 동의를 밝힌 부분을 동의하지 않을거라 생각하셨다면 그거야말로 오히려 제게 "의외"입니다. 그런 상식적인 내용에조차 동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셨다면 말씀입니다.

    사실 앞서 제 덧글의 핵심은 "뜬금없다"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저는 월러스틴 이야기를 "과소소비론"의 일종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비록 매우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건 사실 매우 치명적인 비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들사람님은 이런 내용에 대해선 전혀 반박을 내놓지 않으셨죠. 비록 그런 문제에 대해 "할 말이 많"다고는 하셨지만요.

    그보다는 들사람님은 마르크스의 "방법"과 "가치(형태)론"에 대한 본인의 "견해"만 희미하게 내놓으셨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런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것이라고 봅니다. "'방법'으로서의 맑스"라뇨? 대체 그게 뭡니까? "‘이론(화 작업)’과 ‘역사’가 ... 마치 뫼비우스의 띠마냥 ‘표리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한’ 상호되먹임 관계"... 이런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논의나 저작에 대해 붙이는 상투적인 표현입니다.

    들사람님은 월러스틴이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식으로 제 주장에 반박하시는데(물론 그것만은 아니지만)... 세상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그러나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면서) 떠드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 상기시켜드리겠습니다. 저는 제가 다 옳다는 얘길 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강력한 표현은, 당연히 저 자신에게도 해당될 겁니다. 제 말씀은, 월러스틴이 그런 말을 안 했다...라는 것은 별로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은 많은 비판들이, 그 비판의 대상이 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을 드러냄으로써, 그 대상의 오류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죠. ("과소소비론"이라는 비판도 그런 종류라 해야겠죠.)

    이론과 실천의 관계 문제. 위에서 저는 "표현"과 관련해서 제가 좀 신중하지 못했던 것도 같다고 했을 뿐입니다. 내용적으로 보면, 제가 지금은 사라진 제 포스트에서 내놓은 내용에서 별로 물리고 싶은 건 없습니다. 위 본문에서, 이론이 "결국 대중‘화’함으로써 사후적으로 ‘조성’"된다고 하셨는데... 그런 이론에 뭐가 있나요? 굳이 이론이 대중화해서 발전한다고 한다면, 그건 기껏해야 연구자 공동체 안에서 대중화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러 전문인들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논의되는 것이죠. 그러나 지금까지 그런걸 "대중화"라고 부른 건 아니었죠. 물론 그 이상으로 대중화되는 게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굳이 나쁠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대중화가 대중들이 지적으로 돼서 다들 지식생산자가 되는 수준까지 진행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굳이" 추구할 것도 못 된다고 봅니다.

    끝으로, 들사람님은 이해를 못하셨나 몰라도, "제대로 소통"되고 공감한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어차피 핵심도 아닌 이런 부분, 더 얘기할 필요를 못 느끼겠네요.

  6. 들사람 2009/08/05 13: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쑥덕거렸다? 블로그스피어의 속성상, 스스로 게토화하지 않는 이상에야 쑥덕거림이 당최 성립가능한 씨추에이션이었던가요? 제 깜냠으론 무척 참신한 상황 해석이다 싶어서요. 하이퍼텍스트처럼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다시 여기로 보란 듯이 흘러다니는 게 블로그 댓글인데.. 제가 개념이 부재해 그런지 몰라도, 심히 고개가 갸웃해지는구만요. 블로그 닫기 전이라고 하시지만, 댓글 격으로 쓴 제 글에 와서 앞서 em님이 쓴 글에 대한 소회를 끄적거린 게 그렇게 불쾌한 일인지, 솔직히 모르겟네요 저는. 이 모든 게 개념이 없어 하는 소리라면, (디디님을 대신해서든 아니든) 사과를 드려야겠지만요. 근데, 그럴 일인가요 이게?

    (저도) 그건 그렇고,,ㅎ 문맥으로 충분히 파악이 되겠다 싶어 따로 얘기 안 했더만.. "동의를 해주시니 저로선 다행이다 싶은데"라고 한 건 별 영영가 없는 용어 선택으로 불통을 자초한 거 같단 앞선 얘기에 수긍하신다 싶어 대꾸한 겁니다. 그렇건만 님은 이 말을 엉뚱하게 이해하신 모양인데, 이 점에선 님의 반응도 만만찮게 꽤나 뜬금없으시네요. 님이 제 주장에 부분적으로라도 맞장구 잘 안쳐주리라는 거야 모를 리가 있나요.ㅋ 그래서 어떤 차이가 있을지 추후에 들어보겠다 한 거고,, 덧글 다시 보심 아시겠지만, 제 덧글은 님이 쓴 단락에 대략 일대일 식으로 대응하고 있거든요. 쩝.;

    하나마나한 소리라.. 그렇긴 그렇죠? 아닌 게 아니라, 세상에 하나마나한 소리다 싶어 지겹기까지 한데도, 거듭해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가 좀 많아야죠.ㅋ 글케 치면 제가 트랙백한 님 글에서 한 얘기 절반 정도도 하나마나한 얘기 아닌가 싶은데. 맑스 텍스트에서 역사가 갖는 위상이 주류 이론의 역사와 어떻게 다른지 논증하신 대목이 바로 그렇죠. 뭘 굳이 이렇게까지, 싶더라구요. 게다가 반프롤레타리아화 테제 비판의 일환으로 한 얘기다 싶어, 저로선 솔직히 어이도 좀 없었고. 그런데도 전 거기에 대해 딱히 언급 안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생각해 보셨음 좋겠네요.

    그렇죠. 아닌 게 아니라 정작 소위 "과소소비론"에 대해 따로 다루질 못했습니다. 시간 나는 대로 포스팅 할 때니, 무자비한 비판 부탁드리고요.ㅋ 헌데, 반프롤레타리아(화) 테제와 과소소비론이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과소소비론은 <자본> 2권 21장서 아웃됐으니 반pt화 테제도 따라서 아웃이라는 식으로 정리할 수 있는지-뭐, 하나하나 따져볼 문제일 텐데요, 여기선 어쨌거나 <자본> 1권의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법칙' 장과 2권의 '축적과 확대재생산' 장 간에 발생하는 '불일치'가 'em님 식으로 해결'됐다고 하는 소린, 저도 과문해서 그런지 들어본 적 없다는 정도만 언급해 두죠. '정공법'이 아녀서 스스로도 좀 껄끄럽긴 하지만, 현대(양자)물리학에서 '이체 문제'라고, 두 물체 간에 (통제된 조건아래선) 먹히던 '법칙'이 셋 이상의 관계에선 잘 먹히지 않게 되는 문제를 일컫는데요,, 전 이와 유사하게 이른바 과잉생산 테제와 과소소비 테제를 척지우기보단 이 둘이 '일국' 수준을 넘어 국가간 관계를 매개로 이뤄지는 지구적 상품연쇄 과정의 상이한 측면은 아닐까 하고 보려는 쪽예요. 1권과 2권의 '어긋남'은, 제거해야 할 이론적 잡티 같은 게 아니라 이런 접근틀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게 아니냔 거죠. (게다가 2권이 사실 안타깝게도 '미발간 초고' 상태였음을 감안하면, 이른바 과소소비 테제에 대해 님처럼 깔끔(?)한 정리가 가능한 건지도 전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대체 그게 뭐냐고 한 마당에 하나마나 한 소릴지 모르겟지만ㅋ; 맑스, 특히 <자본>을 완결된 체계가 아닌 어떤 유효한 (인식)체계를 구성하는 방법으로 보는 게 더 유용하다고 한 것도 그래서예요. 비겁한 절충주의로 보일지 모르나ㅋ 섣부른 기각보다는 차라리 낫지 않겠냐, 는 거죠.)

    "사실은 많은 비판들이, 그 비판의 대상이 내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자기도 모르게 한 말을 드러냄으로써, 그 대상의 오류를 밝히는 것"이라셨는데요,, 맞아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처럼 님께서 '월러스틴 그 할배가 스스로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사실상 이렇게 떠들고 있다'고 한 데 대해 전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할 수도 있죠. 정확히 말하잠, 전 월러스틴이 님 주장처럼 얘기한 적도 없지만, 님의 비판 논리에 따르더라도 그렇게 볼 순 없다고 했습니다. 왜 그리 볼 수 없는지에 대해선 나름대로 떠들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수긍이 안 되신다면야,, 제 논지 전개능력을 과신하는 건 아니라 해도, 뭐 어쩌겠슴까.ㅠ 다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반박을 하실 땐, 아 다르고 어 다르단 거에 좀 민감해지셨음 좋겠다는 거랄까요. "자본주의와 노예제"에 다신 덧글 보면서도 느꼈던 거지만, 더구나 스스로 이론을 다루는 "전문인"이라는 분의 말씀 치곤 논리적 비약도 잦고, 좀 투박하단 느낌을 피하기 힘들었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해, 표현상의 문제가 있었을진 모르나, 별로 물리고 싶진 않다시니 굳이 그렇다시는 데 또 토달진 않겠습니다. 다만 참으로 "희귀"한 입장을 가지고 계시구나 하는 정도만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희귀하대서 곧 소중하고 심지어 장려해야 할 건진 전혀 별개겠지만요. 이론의 대중화와 발전은 연구자공동체 내지 "전문인들에 의해 이렇게 저렇게 논의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시는 듯한데,, 저 역시 이론화 작업의 독자적 지위를 인정하는 쪽임에도 불구하고, 지식생산에 대한 굉장히 제한적인 이해를 보여주는 데 불과하단 생각밖엔 안 드는군여.(근데, 연구자공동체 내에서 널리 알려지는 걸 대중화라고 할 수 있나요? 이걸 대중화라고 아니 부른 건 그리 부를 수 있는데도 안 부른 게 아니라, 도무지 그렇게 부를 수 없어서자나요?ㅋ)

    끝으로, 님께선 세상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그러나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면서) 떠드는 사람이 많다셨죠? 얘기 난 김에 님한테 이 말을 살짝 비틀어 이렇게 말씀드려보고 싶어요. 세상엔 자기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러나 문제 없다고 생각하면서) 떠드는 사람도 꽤나 많구나,라고요. em님이 그 중 한 사람은 아닐지, 여러 번도 필요 없고 딱 한 번만 생각해 보셨음 하는 바램입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엔, '쓸데없이' 까칠하신 듯해요. 전 그저, 어설픈 상호존중도 완전 비호감이지만,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시며 차이를 쉽사리 적대로 환원하지도 마셨음 좋겠어서요.(겨울님하고 오고간 댓거리를 보며 특히 그런 인상을 피하기 힘들었는데요.) 누군가와는 "제대로 소통되고 공감하"셨다는 게, 제가 이해를 못 한 데 대한 적절한 알리바이일 수 있을진 의문입니다. '제대로 소통'했대서 곧바로 공감하게 되는 건지도 의문이구요. 이해는 충분히 하지만 동의하기 힘든 경우도 적잖으니까요. 소통이란 게 공감 이전의 문제라 드리는 말씀예요.

    뭐,,"더 얘기할 필요도 못 느끼겠다"고 하신 판에, 이 글을 또 보실진 몰겠네요. (그렇다 보니 저도, 지금 뭐하고 있나 살짝 허탈해지기도 하고요.ㅋ) 허나 서로 어떤 각을 세우건 간에, 님의 <자본> 읽기와 그외 공부에도 반가운 진전과 성과가 있기만큼은 바라 마지 않애봅니다. 저로서도, 어줍잖은 리베랄 열보다야, 꽤나 완고하다 한들 좌파 하나가 더 소중하니까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