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크] <한겨레> 세상읽기: 다가오는 자유주의의 시대 - 안병진
안병진 교수가 주장하는 자유주의의 이른바 '부상'은 (물론, 좀더 엄밀히 말하면 이유야 뭐라 하든 자유(민주)주의 정치의 안정화 내지 영속화를 선망하는 정치적 입지의 산물이라고 해야겠지만서도, 아무튼) 딱히 놀라워 해가며 주목할 것도 없이, 역사적으로 보면 서구산 근대화를 제 발로든 떼밀려서든 좇았던 데 치고 안 그런 데가 없었던 거 아닌가? 호황-공황이란 자본제 경제 특유의 주기적 싸이클이나 지정학적 입지완 무관하게, 자본주의 기업가나 민족 부르주아지들이 끝없는 이윤 창출에 대한 차가운 열정을 과시해왔던 것만큼이나 말이다. 앞으로 아마 더 중요한 물음은, 이런 열정과 맞물려 있었던 자유주의적 정치에 대한 선호나 선망이 '실제로는' 어떤 내재적 모순 속에서 그 선망과 극심하게, 또는 여보란듯이 어긋나 왔고 어긋날 거냐일 테고, 이런 어긋남이 그저 부재 내지 부실한 '합의절차'와 테크닉에 관한 문제일 뿐이겠느냔 걸 테다.
글쎄, 나로선 글쓴이가 "혁명"이라고까지 주장하는 (실은 그간 단속적으로 계속해서 있어온) 자유주의의 부상 전망 속에서 어떤 낙관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지 알 수도 없지만, 설사 안다 한들 설득력 있게 와닿을지도 의심스럽다. 소위 한국산 보수와 진보가 알고 보면 공통된 걸 공유하고 있다며 스스로 놀라워하는 것도, 뭐가 그리 놀라운 건지, 그게 되려 놀랍다. 소위 진보와 보수가 알고 보면 많이 겹치더란 주장은 사실, 한참 전에 백낙청씨와 박세일씨가 경향신문에서 벌인 대담인가에서 보여줬듯, 박세일씨 같은 이도 하는 얘기다. 백낙청씨도 동의할 얘긴지와는 별개로, 박세일은 자기가 보기엔 진보와 보수가 겉보기완 달리 심지어 7~80%가 겹친다고까지 했다.
그래서, 이런 겹치는 대목에 유념해 국민통합주의적 정치, 더 적극적으론 "자유주의 혁명"이 도래하면 우리는 희망을 입으로만 아니라 몸과 삶으로도 실감하게 될까? 박세일 같은 보수적 자유주의자가 이런 얘기 하니까 나쁘고, 안병진 같거나 그와 엇비슷한 진보적, 민주개혁적 자유주의자들이 하면 괜찮은 게 아니다 이건. 정작 문제는 입구만 다를 뿐 우리가 지금 마주한 현실에 대한 동일한 사고와 가치판단 회로가 공히 장착돼 있다는 건데, 거기에 누구 이름표가 붙어 있냐는 게 그리 중요한 걸까?
안병진씨의 주장에서 난, '점진적인 것'의 미덕을 주장하며 소위 중도적 국민통합주의를 지지하는 강단 지식인 특유의 메가리 없는 정치적 유토피아 혹은 신기루를 본다. 페북에서 이 글을 링크한 윤석규님의 포스팅에 달린 덧글을 보니, 무슨 남인에 소론까지 들먹여가며 당찮은 비교적 접근을 하잔 소리까지 나오는데, 이거야 뭐 조공체제와 근대자본제 체제를 맞비교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소급의 오류라 치자. 이걸 부여잡고 있기보단, 가령 이런 질문이 더 시급해 보여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네 몸뚱아리, 나아가 우리네 삶이 깃들어 있는 이 지구생태계의 활력과 항상성은 실은 부단한 분열증식 과정으로부터 생긴다는데, 이른바 분열을 정치적 죄악으로 단도리치는 건 과연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판단의 산물일까, 아니면 정치적으로 우상화된 세속종교의 산물일까? 게다가 다른 사회 체제도 아니고, 자본 축적이 빚어내는 각종 경제적, 지리적, 문화적, 따라서 정치적 적대와 갈등이 여러 방식으로 구조화되기 일쑤인 이 자본제 시민사회 아래서. 그렇다고 이런 유무형의 적대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철폐할 건지 제대로 궁리하지도 않을 거면서 말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소위 분열은 과다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과소해서 문제였던 거 아닌가? 우리 일상을 그간 피곤하게 가로질러 가며 압뷁해온 이런저런 적대를 제대로 해소, 극복하는 데 중요하고 또 필요한 창조적인 분열 내지 분화 말이다. 이런 긍정적 분열의 정치에 탄력을 받는 게 실은 소위 '국민경제'니 '국민통합'의 견지에서 언짢고 두려우면, 그렇다고 솔직하게 까놓고 말을 하던가. 이걸 끽해야 경제 살리기를 훼방놓는 "사분오열"로밖엔 판단을 못하거나, 일본산 식민주의자들이 윤색해놓은 '사색당파' 담론에나 기대 힐난하는 정치적 상상력의 결여, 혹은 빈곤이 더 심각하다, 내가 보기엔. 내가 알기론 담론적으로 거의 치명타에 가까운 부상을 입은 자유주의 가지고 의미 있는 변화를 꾀하겠다는 것도 굳이 말하자면 참 뜨악하거니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