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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환장할 봄날에, 박규리, 창비시선 232

단 한 번 본 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마음이 가겠나. 마음이 가지 않는데 무슨 그리움이 파꽃처럼 싹트겠나. 파꽃처럼 쓰리고 아픈 향 뭐 때문에 피워 올리겠나. 향이 없는데 팔뚝을 타고 혈관에 지져댈 뜨거움 어딨겠나. 하아 아픔이 없는데 타고 내릴, 온몸을 타고 내릴 눈물이야 당최 어딨겠나, 동안거 뜨거운 좌복 위에, 내가 없어서 그래도 없는데, 이제 와서 싸늘한 비구 이마 위로 울컥울컥 솟구치는 이 신열은, 그런데 이 신열은

 

 

/* 그냥 저냥 그날이오면 에서 뽑은 시집이었는데, 재미있다. 감정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모양이, 아주 보기 좋은 시집이다. 근래 이렇게 속마음이 많이 드러나는 시인은 처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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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도 좋아하는 토끼

 

회사 지하1층은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지난해 어느 때던가, 토끼 커플이 이사해 왔다. 한번의 유산을 경험한 터라 다시금 새끼가 생길꺼라 다들 의심했었는데, 어느 날부턴가 조그만 토끼가 우리들 시선을 사로잡았다. 뽀송뽀송하고 귀여운 눈망울을 가진, 인간을 두려워하는 기색이라곤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토끼는 탄산음료와 과자부스러기를 주는 사람을 쫓아다니기 바쁘다.

 

녀석의 보금자리가 직원들의 휴식처에 자리잡고 사는 지라, 담배를 피러 오는 사람의 손에 들린 인공조미료, 염료, 카페인, 탄산 등에 어릴적부터 길들여지고 있다. 녀석은 아직 조그맣다. 종이컵에 머리를 쳐박고 먹는 장면이 귀엽게 보이지만, 인간에 의해 식습관이 망가지는 것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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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

 

발견 : 하늘에서 본 지구 366, 얀 아르튀스-베르트랑,  새물결, 2003년 11월

Reflections On Our Earth

 

*/

 

시각은 확실히 청각보다 더 설득력을 가지는 것일까?

 

그림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다닐 때 매달 홍역을 앓듯이 치뤄야했던 웬종일의 모의시험을 치고 나서였다. 난 어김없이 저녁도 거른 채 만화방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물론 그리 재미있는 만화가 있었다고 기억되진 않지만, 보는 즐거움을 누가 말리리.

 

최근에 두권의 사진집을 찾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발견'이다.

 

사진작가는 수년간을 기구를 타고다니면서 황지우 시인이 '우주 기적'이라고 불렀던 '초록별 지구'를 들여다 보았다. 물론 사진동아리 친구들이 항상 아껴쓰던 값비싼 ASA Film으로 찍은 사진집이다. 366이라는 이름은 사진집이 짤막한 해설이 덧붙혀진 365일의 사진과 표지사진 1장 으로 구성되어서 인 것 같다. 물론 들고다니기에, 무거운 책이다.

 

수년간 위험한 기구를 타고 사진집에 실린 거의 모든 사진을 그가 만들어 냈으니,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았을지는 상상에 맡기리라. 아름다움과 환경문제에 천착해서인지 어떤 사진은 그 화려한 천연색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이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제3세계의 빈곤과 더욱 광폭해지는 환경파괴로 좀먹히는 지구라는 공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버린다. 사진집을 보는 내 눈이 '삐었던가'? 아님 머리가 멎어버렸기 때문인가?  그런데, 이 묘한 느낌이 그리 불편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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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저냥 헐럭이기 #1] 숨막힌 압박감 혹은 즐거움

 

물론 나의 노동과 즐거움이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노동은 유형 무형의 네트웍을 만드는데 쓰이고 젊은이의 제법 큰 생활비를 이동통신사의 주머니속으로 끌어들인다. 착취는 그리곤 네트웍을 통해 더욱 가속화된다. 휴대폰으로 몇 백만원을 보내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놓았으니, 통장 같은 거 갖고 다닐 '구시대적 발상'을 하는 사람들이여, '보고 배울지어다'. 아주 손쉽게 인터넷을 건너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내가 아직 만들지도 않은 불확실한 자본'은 국경을 제 집 드나들듯이 하다. 몇일도 지나지 않아 받아볼테지만,  '내용물이 뭔데요? 책인데요'라는 세관원의 역습을 무사통과하기란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그 엿같은 '스파이더맨'의 거미줄에 단단히 쳐박혀 있다. Ubiquitous - 'Matrix'의 궁극 - 가, 그 화려한 알파벳의 조합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실시간이동을 위한 최상의 조건이라는 걸 알지만, 손에 핸드폰 없으면 이상하다.

 

 

각설하고,

 

휴일 일산 LaFesta에서 김광석의 노래를 너무 똑같은 창법과 음색으로 부르는 한 가수

 

감정의 울퉁불퉁한 기복을 잠재우는 최선의 방법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밖에 모르는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 방법은 그 속에 내재된 다양한 다른 즐거움으로 인도하는 입구이기도 했다. 술자리는 그 간의 나를 둘러싼 살아있는 혹은 죽어있는 변화들을 나눌 수 있는 편지와 같기도 했으며, 때론 감정의 응어리들을 털어버릴 수 있는 배설의 자리로도 안내했으닌깐.

 

요샌 더이상 그런 자리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데, 일산이라는 촌구석으로 도망치듯 빠져 나와서 벌어진 지리적 괴리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술자리는 줄고 설령 만들어진다고 해도  더이상 입구가 아니라, 종착지로서만 존재한다.

 

구경하기 시작했다. 혼자할 것이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인지도 모르겠다.

 

1. 최신 영화 개봉과 동시에 극장으로 달려가기.

2. 혼자 있는 시간에 궁싯거리지 않기=자거나 읽거나 마시거나.

3. 약속은 절대 마다하지 않기.

4. 볼거리 많은 곳에서 시간 죽이기.

5. 몇 안되는 편한 녀석에게 전화하기.

6. 최악의 경우, 회사에서 야근하기.

 

새로운 영화/만남으로 시간을 죽이고, '그리운 과거 혹은 두려운 미래'로 안내하는 책에 파묻히기로 했다. 광화문 사진전을 몽롱하게 쳐다보기로 했으며, 흑백사진을 들추기도 한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거리는 곳으로 발검을을 내딛어 사람구경도 했다. 지금까진 그럭저럭 '헐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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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OTIC

 

황인숙님의 '자명한 산책'을 다 읽었다.

 

시의 소재는 그녀의 전 시집과 동일하게 일상의 사소한 일을 그림을 보는 것처럼 탁월한 시각적 색채로 표현을 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 시선'을 드러내는 것도 있기는 하지만, 시집 전체적으로는 아무래도 일부인듯 하다.

 

그녀의 감각은 너무도 탁월해 혹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감각적인 표현방법 때문인지, 우울한 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유쾌하다. 폭소를 자아내는 독특한 시적 매력 중에 하나는 'EROTIC'과 반복이다.

 

/*

 

젖은 혀, 마른 혀

 

바람의 축축한 혀가

측백나무와 그 아래 수수꽃다리를 핥으면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는

슬며시 눈을 뜨고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로 깨어난다

 

바람의 마른 혀가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로 깨어난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를 핥으면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는

스스로 눈을 감고

측백나무와 수수꽃다리로 잠이 든다

영혼이 펄럭이며 잘 마르는 날.

 

*/

 

기분이 꿀꿀할 때에는, 가볍고 얇은 '황인숙'의 시를 읽는다. 그럼, 나도 모르게 키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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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그리운 지난 것 혹은 두려운 올 것로의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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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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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얘기나 써볼까라고 생각한 2004년 7월 27일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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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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