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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En attendant Godot)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관람하다. 임영웅 연출, 홍대의 조그만 소극장 '산울림'. 항상 대박의 웃음으로 시작해 연극이 끝날 무렵엔, 아주 심하게 뒷통수를 얻어 맞는 인상을 주는 부조리극의 대명사 말이다.

 

2005년 3월 26일의 느낌은 사뭇 달랐다.

 

등장인물 네명 - 디디, 고고, 포조, 럭키 - 의 주된 문제는 하루하루가 심심하다는 거다. 매일매일 고목나무 하나 있는 공터에 놀러오는 밑바닥 인생 디디와 고고는 물론이거니와, 거의 말을 하진 않지만 생각이 너무 많은 노예 럭키를 끌고 다니는 포조는 하루의 무료함을 달래볼까 하고 디디와 고고와 얘기를 나눈다.

 

디디와 고고는 하루는 '고도'를 기다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실 수 개월째 혹은 수년째 '고도'를 기다려온 것 같다. 그치만 극중에서 '사람'처럼 묘사되는 고도는 어김없이 만날 약속을 내일로 미루고 그들의 지루한 일상은 또 다시 연장된다. 삶의 목표가 고도를 만나야 하는 사람들, 극중 내내 고도는 죽음을 그들에게 안겨줄 신(神)이나 죽음자체를 상징한다. 개인적으로는 죽음으로 번역하고 싶지만.

 

이틀에 걸친 얘기인 것도 같지만, 사실 매일매일이 똑같다. 극중 인물의 시간관념도 그들의 적지 않은 육체적 나이(치매)가 곁들어지면, 이틀은 '어제와 오늘'의 그것이 아니라, 수일 혹은 수개월의 시간차를 사이에 둔 어떤 날들이다. 막이 바뀐 시점에 이파리가 하나도 없던 나무에 무성하게 자란 잎이 이런 해석을 가능케 한다.

 

네덜란드 화가 에셔의 그림이 연상케 하는 구성이 연극 곳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계속 올라간 듯 한데 다시 처음인 쳇바퀴의 삶이 혹 나에게서도 보이고 있는지를 반추해본다.

 

 


 

Waterfall, Escher,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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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는 것이었는데, 자세히 쳐다보니 끔찍하다. 출근길에 일렬로 서있는 가로수는 콘크리트로 둘러쌓인 반평 남짓의 흙에 둥지를 틀고 있다.  크게 자라지도 않은 5~6년쯤 된 가로수의 허리를, 누군가가 며칠전에 싹둑 잘라버렸다. 가게 간판을 가린다고 생각한 잔혹한 주인의 짓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토할 것 같더니, 젠장 울컥 치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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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나요? 그리고 버리기

 

 

겨울이 가고 있다. 아니 (좀더 미래지향적으로) 봄이 오고 있다.

 

1. 폭설로 인한 큰 사고가 없이 지난 간 것이 다행이고

2. 그다지 춥지 않은 날씨때문에 내년 농부들의 수확이 걱정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기껏해야 수십개의 자음 모음의 결합이지만 문자의 외관이나 혹은 발음이 참 멋진 단어들이 있다. 그 중에 단연 나의 시선을 사로 잡는 건 단연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다. 그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나를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세포가 꿈틀거리는 작업이 동반되기에 더욱 그러한 듯 하다. 내게 있어 아무래도 가장 멋진 건, 봄에서 여름으로의 이동인데, 파릇파릇 돋아나는 초록의 편안함에 가늘게 코 끝을 자극하는 라일락의 기억이 어울러지면 거의 기절 직전이렸다.

 

지하철역에서 둥지를 틀고 있는 노숙자에게 조금 잠자리가 편해지는 것만으로도 봄은 멋진 계절이다. 무거운 외투를 하나씩 벗어던지고, 가볍게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며, 봄날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각설하고,

 

회사에 들어온지 3년이 되어서야, 입사하면서 세웠던 유치한 목표 = 월급 10% 버리기 - 정확히 나를 둘러싼 시민사회 단체 후원 - 의 반환점에 서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물질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어려워졌다. 2000원짜리 식사로 만족하기엔 이미 미각은 고급화되었으며, 양주 몇병은 충분히 먹을만한 돈벌이를 하고 있다 믿는다. 5000원의 티셔츠로는 만족하지 않으며 이왕 구입할 거라면 자동차 또한 근사해야 했다. 충분히 많이 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충분함이 어느덧 자신만을 위해 사용되고 있었다. 그래서 쓰기전에 버리는 것을 선택했는데, 3년이 지나서야 계획의 절반지점에 도착했다. 버리는 속도는 너무 느리고 아직 많이 부족하다.

 

20여전의 초등학교 '도덕'시간의 딱딱한 문구일 뿐인 '이웃사랑 혹은 불우이웃돕기'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현실화되기 위해서 많은 장벽을 뛰어넘어야 함을 알았다. 혹시 모를 사고에 대한 안전장치인 보험, 늦출수록 힘들어지는 주택구입, 다른 집 아이들과 비슷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의 희망. 물론 부양할 가족이 없는 나로서는 심리적 장벽이 대부분이겠지만, 아직도 매달 자동이체가 만드는 기회비용이 머릿속에서 '윙윙윙' 소리를 내고 있다.

 

1. 스노보드 데크를 새로 구입하면 어떨까?

2. 자동차 엔진 오일 바꿔야 하는데 :(

3. 봄이 오면 테니스 배우고 싶다 :)

 

돈의 속성인지 나의 영악함인지는, 상황은 참 간사하다. 더 빨리 더 많이 버리면 행복해 질거라고 막연히 그리고 가끔 떠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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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새로 온 꽃, 윤재철, 창비시선 233] 그리고 숨쉬기

다양한 종류의 시가 있을테고, 시인의 독특한 시쓰기 방법도 있을거다. 윤재철의 '세상에 새로 온 꽃'에 묶인 시들은 외형적으로는 산문시의 형식을 빌고 있지만, 전개 방식은 고전적인 시조의 구조를 그대로 띠고 있다. 물론 기승전결의 구조와 딱 들어 맞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의 시는 시인의 감정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것 같은(?) '자연'에 대한 기술로 시작해, 울컥할 정도의 감정을 실어 - 물론 아래 '사막'에서는 애틋함일테고 '세상에 새로 온 꽃'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겠다 -  마무리하곤 한다.

 

이런 구성이라는 것이 아주 편하게 읽히는 건 아마도 중고등학교때 정신없이 외며 시험준비를 했던 몇편의 시조에 대한 기억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계적으로 외며 중요한 부분에 대한 해석에 목매달아 한몸의 시가 내게는 어떤 느낌을 주는지를 확인할 겨를은 추호도 없었지만 적어도 아주 익숙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니, 나름의 교육의 효과는 있는 셈이다 :)

 

산문시는 아주 자유롭게 씌여지는 것 같지만, 시인의 요구에 맞춰 한편으론 운율을 고집하기도 하고, 시조 및 자유시의 형식도 파괴하여 독특한 '행(行)과 연(聯)'을 적절히 배치해 시 전체가 하나의 물체형상처럼 보이도록 하기도 하며(황지우),  글자를 뒤틀어 그림과 뒤섞여 그림과 문자의 구분을 애매하게 만들기(William Blake)도 한다. 

 

시는 1. 줄과 줄을 나누고 2. 또 한줄을 띄워 3.숨쉬는 법을 잘 모르는 내게 잠깐 쉬어 가라고 한다. 너무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로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고 詩처럼 잠시 멈추는 현명함을 찾아보시라.

 

 

사막

 

옛날에는 초원이었겠지

조상 대대로 양 치며 노래하며 살았겠지

그러나 지금은 모래바람 불어가는 사하라

사막의 변두리

사막은 자꾸 넓어지고

갈 곳이 없다

 

아낙들과 아이들은 메마른 풀을 찾아

며칠씩이고 양을 몰고 다니고

땔감을 줍고

사내들은 한달씩 걸려

천여 킬로미터 사막을 가로질러

좁쌀을 사러 간다

낙타를 팔아 일년치 좁쌀을 사서

다시 한달을 걸어 돌아오는

긴 낙타의 행렬

 

그 사막에 용서라는 것이 있던가

그 사막에 헛된 바람이라는 것이 있던가

더이상 갈 곳이 없어서

집은 거기에 있다

늙어 지친 낙타와

다시 태어나 젖을 빠는 어린 낙타와 함께

 

 

 

 

세상에 새로 온 꽃

 

한식 며칠 지나 가본

아버지 산소

제절(除節) 바로 앞에

어린 산수유나무

지난번에는 못 보았는데

일 미터가 조금 넘을까

가늘고 여린 가지 위에

대여섯 송이 노란 산수유꽃

 

꽃을 두고

죽은 사람 그리는 심사도

예전 같지는 않아

태연한데

엊그제인 듯 갓 피어

봄 햇살과 입맞춤하는

꽃만 눈부시다

꽃이 더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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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nstruction

 



영화는 아주 차분한, 시나리오 작가 혹은 영화속 소설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대충 '한 남자가 있었다고 하자' 였을 거다.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어느 길 모퉁이를 혼자 걸어나오게 설정한 후, 다시 여러 군중 들 속에 동일한 발걸음을 내딛는 '알렉스'를 곧바로 보여준 후에야 영화제목이 화면을 가득채운다. 이로써 영화속 소설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소설은 아주 '비극적'이라는 독백도 곁들인다.영화, 정확히 말해 영화속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알렉스'라는 남자와 그의 애인 '시몬느'가 있었는데, 지하철에서 우연찮게 마주친 '아메'라는 여인에게 눈길이 닿은 알렉스가 '아메'에게 달려간다. 공교롭게도 '아메'는 강의로 정신없이 바쁜 영화속 소설가의 부인이며, 그 소설가는 '알렉스'와 '아메'의 불륜도 목격하게 된다. '아메'는 일에 노예가 되다시피 한 소설가와 결별을 선언하고 '알렉스'와 로마로 떠날것을 약속하며 K 카페에서 기다린다.

한편 '알렉스'는 '아메'와의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의 하숙집에 들러 로마로 떠날 차비를 하려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하숙집은 온데간데 없고 여태 알고 지내던 친구, 애인, 하숙집 주인이 자신을 전혀 모르는 낯선 이방인으로 취급하는 것에 당황해 한다. 이제 남은 건 자신을 알아주는 어젯밤의 '아메'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메'역시 자신을 모른다며 여전히 '발뺌'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건 자신을 낯선 타인으로 인식한 '아메'가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로마로 함께 떠나자는 제안에 선뜻 입을 맞춘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의 사랑함을 확인한 '알렉스'와 '아메'는 저녁 8시 K카페에서 만나 로마로 떠날것을 약속하지만, '알렉스'는 '시몬느' - 물론 '시몬느'에게 '알렉스'는 낯선 타인이지만 - 와의 감정을 정리하는 데 머뭇거리다 결국 약속시간을 놓친다.


그리고 영화는 다시 '알렉스'를 뭇 군중속에서 길모퉁이를 돌아 나가려는 모습으로 설정한 후, 곧바로 군중들을 제거한후 혼자 길모퉁이를 돌아 나가는 모습으로 마무리한다. 이것으로 영화속 소설은 끝이 난 셈이다.

영화 전반에 걸쳐 펼쳐져있는 모호한 설정은 영화속의 영화, 정확히 표현하면 영화속 소설의 전개라는 독특한 구성에 기인한다. 처음엔 하나의 영화속의 시간의 비틀기쯤으로만 보였지만. 시간 비틀기로만 이해하기엔 너무 많이 뒤틀려 있다.

극중 '아메'와 '시몬느'는 일인이역이었는데, 이는 영화속 소설가가 아내를 등장인물로 내세웠지만, 그 아내의 억제된 욕망에 근거해 소설석 또 다른 인물을 창조했기 때문일거다. 즉, 소설가의 아내는 일상에서 남편에게 충실한 인물 - 시몬느 - 이었을것이나, 그 내면에 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불만을 품고 있는 또다른 인물 - 아메 - 를 만들어내, 소설의 주요 모티브로 삼았던 것이다.

알렉스가 영화속 일상에서 전혀 낯선 타인으로 자리매김하는 수 많은 장면은 알렉스가 영화속 소설 주인공이기를 거부하고 영화속 현실로 뛰쳐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에 기초해 알렉스, 아메, 시몬느, 소설가 등도 영화속 소설와 현실을 넘나들며 동분서주 한다.


'Reconstruction'은 멱집합(Power set), 재귀(Recursive Programing)의 구성을 영화로 가져온 Stylish Love Story - 영화에 초대한 선배의 소개말을 빌면 - 이다.


위와 같은 소설속 소설, 영화속 영화 같은 이야기는 그리 참신한 얘기꺼리는 아니다. 단지 그 것이 SF 에서 주로 발현되었기에 관객들에게 큰 부담이 없었을 테다. 'Matrix 3(Reloaded)는 지금 껏 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관객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 현실을 또 하나의 Matrix로 보여주고, '13층'은 게임속의 게임 또 그 게임속의 게임을 재귀적으로 보여주며 게임속 인물이 게임밖으로 뛰쳐 나오는 황당한 그림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치만 이런 설정을 멜로물에 넣어버리면 아주 혼란스럽다.

'Reconstruction'은 제목처럼  다시 불이 켜진 극장을 나서며 재구성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재구성이 황당하게 느껴진다면, 광화문 씨네큐브로 달려가 덴마크 감독 크리스토퍼 부(Christoffer Boe)가 만든 'Reconstruction' 보고 Reconstruct 해보시라. 2003년 깐느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받았다고 하니, 졸립더라도 두눈은 크게 열어두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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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
    그리운 지난 것 혹은 두려운 올 것로의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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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 얘기나 써볼까라고 생각한 2004년 7월 27일이 처음이었다.
  • 소유자
    RED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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