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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디스크의 저주-_-

분명히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어릴 적부터 나는 "물건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주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던진 적이 한 번도 없고 (던지면 아플까봐-_-)

웬만한 물건은 잘 버리지를 않아서

서랍은 항상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으며

집에 있는 인형들-특히 큰 인형들-을 무서워해서

밤에 화장실 가거나 할 때 눈길을 슬슬 피하곤 했다.ㅋ

 

이런 생각이 커서도 이어지는 건지

가끔은 컴터도 생명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갑자기 컴터가 버벅거리거나 부팅이 느릴 때면

'오늘 기분이 안 좋나 보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곤 하는데

이런 생각은 부품으로까지 이어져

컴터 부품을 살 때에는 가격대 성능비보다

뭔가 나와 잘 맞는 부품을 고르려고 하는 것이다.

 



다운받아놓은 애니와 영화 때문에 하드를 확장할 계획이었다.

원래는 120G 정도 더 확장하면 충분하겠단 생각이었으나

이런 종류의 일엔 욕심이 개입하는 법이라

200G까지 가격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것을 보고

200G를 사려는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하드는 소음문제 때문에 시게이트를 선호하는데

얘는 맥스터나 웨스턴디지탈보다 1-2만원 정도 비싸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시게이트 200G 하드를 골랐는데

사진을 보는 순간 뭔가 나와 안맞을 것 같다는 필이 들었다.

 

바로 얘가 시게이트 200G(8M 버퍼) 하드

 

하지만 하드 용량의 극심한 압박을 견디다 못해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그만 냉큼 구입을 하고 말았다.

 

원래 LBA 인터페이스에서 137G까지밖에 하드를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바이오스와 칩셋이 48bit LBA라는 인터페이스를 지원해야하고

윈도2000에서 인식시키려면 레지스트리를 별도로 수정해 줘야 한다.

여튼 인터넷을 뒤져가며 알아낸 지식으로 하드를 컴터에 붙이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드디스크의 용량제한에 대해서는 이 강좌를 참고하시어요)


문제는 도스에서 포맷을 하는 것이 보다 빠른데

도스에서 인식이 안되기 때문에 '윈도 디스크 관리'에서 포맷을 해야만 했다.

아침에 포맷을 눌러놓고 출근을 했는데 퇴근해서 돌아와보니 70% 진행 중이었다-_-

결국 새벽 3시쯤에 끝났다-_-

 

그래도 하드를 사용할 준비는 마친 셈이다.

이젠 용량 압박없이 풍족한 공간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지만

웬일인지 하드를 새로 붙이니 컴터가 지나치게 느려져 버렸다.

특히 영화나 애니를 볼때의 끊김 현상의 압박이 장난아니고

급기야는 서핑을 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라디오헤드가 랩을 하는 듯한-_- 끊김 현상을 들었을 땐 웃음이 나왔다는-_-)

 

전문가-_-에게 이 현상을 문의해보니

하드디스크가 사용하는 전력에 의해 CPU에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는

다소 허무하기 그지없는 답변을 들었다.

 

결국 하드를 떼고 외장형으로 붙이기로 마음 먹었다.

다행히도 별도 전원으로 돌아가는 외장형 케이스가 있어서

하드를 떼고 외장 케이스에 붙이려고 했는데

원래 들어가 있던 CD 라이터를 떼는 과정에서

날카로운 모서리에 손가락을 찍히는 바람에 살이 움푹 파였다-_-

 

베이자마자 손가락을 들어서 봤는데

아주 깊이 베인 것 치고는 피가 나오지 않아 매우 신기했다.

...고 생각한 순간 오른손이 피바다가 되었다-_-

'피도 많이 나오면 시원한 느낌이 드는구나'-_-하는 이상한 생각도 하고

갑자기 추워지길래 '영화에서 피흘리며 죽어갈 때 춥다고 하는 게 진짜구나'-_-하는 생각도 하고

오른손에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가길래 '내일 휴가나 낼까'-_-하는 생각도 하면서

허둥지둥-_- 빨간약하고 밴드를 찾아 빨리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이려고 했는데

피가 도무지 멎질 않는 것이다.

'아아 이대로 죽으면 너무 허무할텐데'-_-라고 생각하면서

컴터를 부팅하고 이 억울한 사연을 블로그에 올려야겠단 의무감으로

오른손을 휴지로 칭칭감고 간만의 독수리 타법-_-으로 이 포스트를 쓰고 있다.

 

다행히도 포스트를 쓰는 중간에 피는 멎어서 출혈과다로 죽지는 않을 듯 하지만

쓰고 싶은 포스트도 못쓰고 이런 포스트나 써야 하다니.

뭔가 억울하기 짝이 없다.

 

여튼 지금은 책상위에 올라와 아무일 없었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앉아있는

이 하드디스크와 잘 지내봐야 할텐데. ㅡㅜ

 


♪ Evanescence - Haunted (Live Vers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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