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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The Host, 2006)

한국의 영화감독 중에서 그 이름만으로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오직 두 명 뿐이다. 바로 박찬욱,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먼저 이름을 알린 박찬욱 감독이었지만, 박찬욱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것은 <복수는 나의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복수 3부작"부터었다. 반면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독특하기 짝이 없는 블랙코미디 <플란다스의 개>를 보면서 봉준호를 주목하게 되었는데, 데뷔작부터 기대를 가지고 봐 왔던 감독인만큼 봉준호에 거는 기대가 좀 더 크다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제가 우연히 고교 시절에 잠실대교 교각을 기어올라가는 괴생물체를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라는 봉준호의 말로 시작하는 <괴물>의 트레일러를 보고 난 후, 몇 달 동안 부풀어가는 기대와 함께 개봉을 기다려왔나 보다.

<괴물>이 한국영화의 신기록을 수립하네 마네 하는 얘기가 떠도는 지금, 그리고 이미 <괴물>에 대한 수백수천 건의 글들이 온/오프라인에 올라와 있고, 지금도 올라가고 있는 지금, 영화의 줄거리부터 시작하여 포인트, 의미 등을 다시금 떠드는 건 무의미할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_- 개인적인 느낌과 온/오프라인에 올라온 평론들에 대해 포스팅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1. <괴물>을 보고 "재미있다"와 "재미없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실 "재미"라는 요소는 99% 주관적인 판단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개인적으로 <괴물>(을 포함한 봉준호의 영화)은 "잘 만들었다", "못 만들었다"는 잣대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의 영화는 연출, 시나리오, 캐스팅, 촬영, 음악 등 뭐 하나 빠지지 않기 때문에, 다 보고 나면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나게 된다. (<괴물>도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가장 먼저 "히야~ 잘 만들었네"라는 말이 나왔다) 솔직히 에일리언보다, 심지어는 스타크래프트의 히드라리스크-_-보다 압도적이지 않은 <괴물>을 온몸을 긴장시키면서 보게 되는 것은 "잘 만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2. 만약 <괴물>이 재미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봉준호의 블랙코미디를 만드는 재능 덕분이다. 그의 유머는 약간 냉소적이고 비뚤어진 측면이 있는데, 뭔가 어색한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대해 맘껏 비웃게 하는 것이다. <살인의 추억>에서 지하 취조실에서 발생하는 묘한 웃음, <괴물>에서 박강두가 갇혀있던 컨테이너실을 개조한 병원에서의 웃음 등. <괴물>의 재미 중 상당부분은 이런 역설적인 유머에서 발생한다.

3. 아무리 정치/사회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괴물>을 보고 미국의 거대권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도입부의 맥팔랜드 사건부터 시작해, 에이전트 옐로우, 사건 은폐 노력 등 <괴물>에서 슈퍼파워로서의 미국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할 수밖에 없을 만큼 노골적이다. (심지어는 영화 말미에 괴물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물고기가 북미산 외래 어종인 "베스"라는 점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이에 비해 괴물과 맞서는 모습은 철저히 한국적인 이미지를 지녔다. 박강두네 가족들이 들고 싸우는 무기만 하더라도 죽창(강두), 화염병(남일), 활(남주)이 아닌가. (그렇다고 "한국적"이란 의미에 오바할 필요까진 없겠지만)
  이런 대결 구도 앞에서 <괴물>을 반미영화로 읽는다 해서 하나도 이상할 것 없다. 봉준호는 인터뷰를 통해 이를 부정했지만 (아무래도 봉준호라면 "반미"라는 조야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냉소적으로 바라볼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이미 영화가 개봉된 후 해석은 관객들의 몫이기 때문에 <괴물>을 반미영화로 만드는 것 자체가 별로 어색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미영화"라는 점을 굳이 부인하려고 애쓰는 모습들이 많다는 게 더욱 어색하지 않은가. (굳이 이런 어색한 투표를 할 이유가 있을까?)

4. 개봉 이후 쏟아져 나온 수많은 평론들 중에 개인적으로 지난 <씨네21>에 실린 정성일의 평론(#1, #2)이 가장 마음에 든다.(꽤 긴 글이지만 꼭 한 번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의 글은 현학적이고 영화적 지식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적 지식을 요구하지만, 이 평론은 그나마 쉽게 쓰였고 <괴물>에 대한 (용기있고) 독창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그는 <괴물>을 봉준호의 "정치적 커밍아웃"이라고 단정하면서 <괴물>에 대한 정치적인 독해를 주장한다. 안토니오 그람시의 영향을 받은 그리스의 맑스주의자 풀란차스의 정치론(le politique, la politique)을 끌어오면서, <괴물>을 사회구성체 속에 존재하는 계급적 관점으로 읽기를 원하고 있다. 그의 의견을 따르면, 괴물은 발생 자체부터 미군이 수도 서울의 중심에 주둔하고 있던 한국의 현실에서 기인한다. 현서가 괴물에 의해 잡혀가게 된 것은 그녀의 계급적 숙명 때문이고, 그 괴물을 추적하는 박강두의 가족에게 국가 권력과 사회는 괴물을 같이 잡으려 하기는 커녕 바이러스를 빌미삼아 그들을 잡아 가두려고만 한다.
  나는 이것과 유사한 스토리를 (최소한 하나 이상) 알고 있다. 대추리의 문제도 그렇고, 한미FTA의 문제도 그렇지만, 사회구조적으로 발생한 문제들에 대한 피해를 뒤집어 쓰는 사람들은 박강두의 가족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문제에 맞서 싸우려고 일어나면 국가와 사회는 문제의 본질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다른 빌미를 내세워 그들을 억압한다.
  물론 정성일의 독해가 약간 억지스러운 면도 있고 오바한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긴 하다.(이를테면 현서가 박강두의 꿈이라는 의견은 좀 억지스럽다. 만약 현서가 괴물에 잡혀갔을때 죽었다면, 마지막에 박강두가 괴물의 입에서 끄집어냈을 때 이미 해골이 되어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그가 <괴물>을 보면서 응시한 포커스는 정확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봉준호 영화의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도 정확한 해석이라는 생각이다.

5. 마지막으로, <괴물>은 분명히 좋은 영화이다. 칸에서 기립박수를 받았기 때문도 아니고, 천만 관객을 돌파했기 때문도 아니라, 논쟁을 생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것도 판토마임 같이 전위적인 미적 표현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영화가 의미하는 바와 의도하는 바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괴물>은 드물게 좋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봉준호의 가장 큰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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