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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2003)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nigni)가 손을 덜덜 떨며 커피를 마시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커피와 담배>는 웰빙 열풍과 히스테리컬한 금연 이데올로기에 밀려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커피애호가, 애연가들에게 무척이나 공감가는 영화일 것이다. <커피와 담배>는 커피와 담배를 즐기는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흑백 화면으로 담은 11편의 옴니버스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지루한 일상의 한 단편을 담은 영화라는 점에서 홍상수의 영화와 일맥상통하지만, 홍상수의 리얼리즘에 비해 <커피와 담배>는 보다 유쾌하고 유머러스하다. 아마 그것은 작품의 소재이자 곧 제목이 되는 커피와 담배 덕분일 것이다. 카페인과 니코틴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공감할 테지만, 커피와 담배는 평밤한 기호 식품들과 질적으로 다르다. 커피와 담배는 혼자 즐길 때는 휴식을 의미하며 같이 즐길 때는 소통을 의미한다. 늦은 밤 공부/일하다가 머리 식힐 겸 나와 피우는 담배, 비오는 창 밖을 바라보며 혼자 마시는 카푸치노는 더블초컬릿무스케익보다 달콤한 휴식을 가져다 준다. 이와 달리 여러 사람과 어울려 마시는 커피와 담배는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서로를 연결해 주는 고리가 되며, 대화/수다를 활발하게 해 주는 촉매가 된다.

역시나 이야기가 커피와 담배 예찬론으로 흐르는 느낌인데-_- 각설하고 영화로 돌아가면, <커피와 담배>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특이한 소재와 더불어 화려한-_-? 출연진이다. 누구나 알만한 로베르토 베니니를 비롯해 빌 머레이(Bill Murray), 스티브 부세미(Steve Buscemi), 케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알프레드 몰리나(Alfred Molina), 스티브 쿠건(Steve Coogan) 등 어디선가 많이 봤던 배우들, 그리고 이기 팝(Iggy Pop), 우탕 클랜(Wu-Tang Clan)의 RZA, GZA 등 뮤지션들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건강을 위하여 카페인/니코틴을 배격하는 분들도 이들이 스스로의 이미지를 적절히 패러디하여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수다떠는 위트 넘치는 모습에 충분한 재미를 느낄 것이다.

<커피와 담배>는 <천국보다 낯선>에서 유니크한 영상미를 보여주었던 짐 자무쉬(Jim Jarmusch)가 감독하였다. 사실 짐 자무쉬의 영화는 <천국보다 낯선>과 <데드맨>밖에 못 봤지만, 상당히 난해하다는 느낌이 든 전작들에 비해 강한 개성의 소유자인 출연진들의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흑백 화면으로 잘 묶어 표현한 <커피와 담배>는 짐 자무쉬의 재치있는 또다른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커피와 담배>는 원래 TV 라이브쇼의 한 꼭지로 제작되었는데, 짐 자무쉬는 그 후에도 짬짬히 단편을 하나씩 찍어 2003년에 11편을 묶어 지금의 <커피와 담배>가 완성되었다 한다.

마지막으로 나 같은 커피 애호가와 니코틴 중독자들은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준비를 하시기를 권한다. 90분이 넘는 상영 시간을 금단증상 없이 버틸 수 있을만큼 충분한 니코틴과 카페인을 반드시 미리 섭취해 두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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