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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아이

 

하루만큼의 아쉬움과 버거움을 등에 지고

타박타박 돌아오는 퇴근

집 앞 놀이터를 가로 지르는 길.

빈 그네 하나가 유난히 삐그덕삐그덕.

 

그늘막 하나없이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을 고스란히 받아낸채

지칠줄 모르고 꺄르르대던 동네 꼬마들의 흔적을

그네 발치 깊게 파인 모래밭 자국과

반들해진 그네줄이 말해주는 시간.

 

무언가 반짝 한다.

한 여자아이,

대낮의 꼬마들처럼 서로 먼저 타겠다며 앞다투는 분주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숨을 쉬듯

밥술을 뜨듯

그렇게 그네 위에 앉아 흔들댄다.

 

당장 내일 있을 쪽지 시험과

등 뒤로 쏟아지던 주변의 비난 따위와는 다른 세계인양

그녀 위로는 무지개빗 비누방울과

흰 돌고래들이 춤을 춘다.

 

왁자한 소음으로 가득찼던 놀이터는

어느새 습한 어둠과 동네 노인들의 흡연실이 되어 버린지 오래지만

그녀와는 상관없다.

 

단지

그녀가 후회하는 것은

그네를 흔드는 이유를 그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지 못했다는 것 뿐.

 

그녀가 나를 빤히 본다

질문을 포함하는 눈빛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어떤 질문에도 답해줄 여유가 없다

그래서 그만, 주춤, 하고 돌아서고 만다.

 

그 여자아이는 밤새 나를 원망했을지 모른다

혹은

운이 없다면 나는 오늘 밤이나 내일 저녁 또 그 여자아이를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는 꼭 말하기로 한다

너와 손을 잡고 걷고 싶다고,

어디로든.

우리에겐 목적지가 중요치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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