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요즘읽는 책(1) - <직선들의 대한민국>

서류발급 기계로 살게 된지 이제 10개월이 다 되어 간다. 얼마 전부터는 매일 밤 2시간 반씩 커피와 빵 파는 기계의 삶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나의 모든 사회적 소통을 위한 네트워크들은 철저히 파괴(!!) 되었고, (자의든 타이든 간에) 사실상 홀로 고립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와중에 내가 유일하게 사회적 소통을 할 수 있는 창구는 인터넷과 책 뿐이다.

그나마 인터넷은 워낙에 잡 쓰레기가 많이 굴러다녀서 그걸 헤집고 나가는데 퍼부어야 할 노력이 더 수고스럽다. 그래서 요즘 나를 작게나마 위로 또는 희열, 즐거움 등을 주는 매체는 오직 책 뿐이다.

 

그 10개월 동안 한 달에 책을 꼭 10권 이상 읽겠다고 다짐하고 살았는데, 성공한 적은 별로 없다. 대부분 8-9권을 읽었을 뿐.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내 속독 능력과 내 독서시간을 앗아가는 밀려오는 민원인들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래도 2년 안에 평생 읽을 책의 절반 이상을 읽겠다는 각오로 독서에 임하고 있는 마당이니, 중간중간 독서 계획을 잡고, 간단한 독서평을 하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상적 과제다. 그래서 오늘은 간단히 최근 한 달 사이에 내가 읽은  책 중에 인상적이었던 것들에 대한 감상만을 끄적여 볼까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

 

 

 

▶ 직선들의 대한민국 (우석훈, 웅진지식하우스, 2008)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제대로 된 서평을 따로 써 볼 생각이다. 사실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저자의 공전의 히트작이라 할 수 있는 <88만원세대>가 세간의 평가에 비해 매우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책도 별로 기대를 안했다. (예전에 진보넷 블로거인 EM님이 <88만원세대>에 대해서 "경제학적 개념을 통해 세대론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세대론을 빌려와 경제학적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라고 평한 것을 봤는데, 얄짤없이 정확한 평가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아 이 책은 뭐... 내가 볼땐 우리나라 청소년, 또는 젊은이들에겐 <88만원세대> 보다는 <직선들의 대한민국>이 더욱 권장되어야 한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세대론이라는 것은 각각의 세대가 어떤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접어두고 그저 윗 세대에 대한 공분만을 재생산해 소득없는 논쟁을 부풀릴 위험이 있다. 지극히 감상적인 것이긴 하나 실제로 <88만원세대>가 그런 효과를 낳았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부모님세대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져야 할 단 하나의 가치관"을 말하라면 바로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생태미학'이 아닐까 한다.

 

길게 설명할 거 없이, 저자가 말하는 생태미학이라는 것을 내 식으로 해석하자면 이런거다. 얼마전에 석돌이의 동생(그는 대구소재 모 대학의 토목과(맞나?)에 다닌다)이 방학을 맞아 삼촌이 일하는 공사현장에 일도 배우고 돈도 벌 겸 해서 며칠간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그런데 그 공사가 하천 제방을 쌓는 공사인가 뭔가 그런거 였다. 공사과정에서 하천 바닥의 토사를 포크레인으로 퍼나르는 작업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수 많은 미꾸라지, 개구리 등등 민물고기들이 제집을 잃는 난리를 겪어야 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석돌이 동생은 안타까운 마음에 미꾸라지, 개구리들을 품에 안아 인근 논에 '방생'해 주었단다. 하지만 그럼에도 석돌이 동생은 가슴이 아팠단다. 그 미꾸라지, 개구리들은 어차피 논에 뿌려진 농약때문에 얼마 살지 못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일련의 경험을 통해 석돌이 동생은 "미꾸라지와 개구리, 그리고 거기에 서식하는 생물들의 터전을 파괴하면서까지 하천공사를 해야하는걸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스스로 친환경 토목설계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던 그는 그렇게 스러져갈 미꾸라지와 개구리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지금의 나는 오로지 "나는 생명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입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것이 없지 않은가? 라고 비관한다.

 

어느 한 어리고 착한 토목공학도의 순수한 자기고백 쯤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이야기가 나는 너무나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시대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참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바로 석돌이 동생이 가진 이런 '생태미학'이 있어야만 미래에 대한 대안을 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고가아파트에 살면서 아토피 때문에 고생하는 어린이들의 고통에 함께 할 수 있으며, 화산지형임에도 불구하고 난개발때문에 홍수를 겪게 된 제주도 사람들과 뭇 생명들의 고통에 함께 할 수 있을 것이다. <직선들의 대한민국>은 MB정부의 대운하 건설계획 비판을 중심으로 이런 미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묵직하게 역설해내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