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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이 소설로 옮겨 쓴, <화엄경> 중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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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아무데도 없어. 그러나 진리를 찾아다니는 일이야말로 진리와 함께 있어. 진리는 한군데 머물러 있지 않고 그것을 찾아다니는 흐르는 물이나 그대와 같은 길손의 마음에 들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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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힌두 아유타의 고대시인 기나는 다음과 같이 읊었다.
아무리 황량한 곳이 있다 할지라도 서쪽 구도국 광야에 견줄 수 없는도다.
그곳은 모든 신들의 저주로 이루어진 곳
풀이 사나워서 바람을 잘라버리고 바위와 흙이 사나워서
쓰러진 자의 뼈다귀를 없애버리나니
갈지어다, 내 아들아
광야를 알고 싶거든 갈지어다
어찌하여 눈물과 여인의 노래로
세계를 안다 하겠느냐
광야를 알고 세계를 알고 싶거든
말과 낙타를 버리고 혼자 갈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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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늙고 이름 없는 사문(沙門) 농업에 종사하는 사문이다. 농업은 하루 이틀에 아무런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1년 아니 10년이 지나야 한다. 내가 딸과 헤어진 뒤 15년이 지나갔다. 그 동안을 이곳에서 나 혼자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아왔다. 나에게 진리가 있다면 그것뿐이다.”
선재는 그의 긴 여행을 당분간 멈추기로 했다.
한 평범한 늙은 농부가 된 선현 비구에게는 반드시 깊이 감추어진 지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것이 장다리꽃 한 개거나 무 한 개라 하더라도 그 진리는 온갖 세계의 관념을 떠나서 하나의 생생한 진리가 될 수 있지 않은가. 하루도 쉬는 일이 없는 산속의 외로운 농부야말로 어린 나그네가 함부로 길을 떠나지 않게 하는 힘이 되어 깊은 뿌리처럼 뻗어나고 있었다.
(...)
선재는 그 산속에서 곡식의 씨를 뿌려서 그것을 해가 짧은 건기(乾期)에 거둬들이는 동안 머물렀다. 그 적막한 농업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늙은 비구로부터 선재는 어떤 사람이라도 그가 지혜를 갖추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우주의 법칙이 깃들여져 그 사람과 우주가 어린아이와 어린아이 사이의 단순한 말 <나하고 놀자>와 순수한 만남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꿈 속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 박히는 어떤 놀라운 빛의 칼날처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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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모든 것을 안다지만
모든 것의 미래를 안다지만
모든 것의 미래의 미래를 안다지만
작은 배는 아무것도 몰라.
나는 작은 배
작은 배는 모든 것을 아는 강물에 떠내려갈 뿐이라네
작은 배여,
아는 것은 강물에 던져주고
나의 작은 배는 오직 강물에 떠내려가네.
안다는 것은 깨닫는 것이 아니다. 아는 것은 강물에 던져버리고 아무것도 몰느는 태초의 공(空)으로 돌아가서 강물에 떠내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선재에게 새로운 기쁨이 강 위의 여행에 찾아왔다. 강의 어려 물결이 물결 자체를 깨뜨리면서 기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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