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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8/16
    마이크 데이비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3장 요약
    구르는돌
  2. 2009/08/16
    이택광, <무례한 복음>(1)
    구르는돌

마이크 데이비스,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3장 요약

제3장. 노동진영의 몰락



1983년말, 레이건의 ‘경기회복’이 한창인데도 또 한차례의 양보와 임금삭감 물결이 AFL-CIO의 핵심부에까지 파고들어 노동평화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 현재 기업들은 상시적으로 노조를 파괴하고 있으며,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그들의 작업은 1920년대 초반의 ‘미국적 방식’ 공세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이루어지고 있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사실상 그때보다 더 놀라운 것인데, 왜냐면 외관상으로나마 영구적인 노사화합을 제도화하고 ‘보장’한 관료적 장치 전체가 변질되거나 혹은 아예 포획되는 일마저 필히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주 인용되는 그람시의 발언을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면, “위기란 다름 아니라 낡은 것이 죽어가는데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공장 내의 새로운 의사소통망, 이윤공유 임금구조, 더욱 인간적인 경영실천 등을 기반으로 하여 노동자들이 산업에 ‘참여’하는 새시대가 왔다고 경제신문 사설란에서 시끌법석 떠들어댔지만, 노사관계의 새로운 정착이 신속하게 이루어질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대신 이 새로운 질서의 초석이라 일컬어지는 것들의 자리에는 고참노동자의 특권과 권리를 내주는 대신 직장을 보장받는 것, 그리고 무노조 첨단기업이 채택한 종신고용제(그러나 종신고용인들 뒷주머니에 해고통지서가 찔러넣어져 있는)가 자리하고 있다.


임금관계의 사회화


미국의 산업화관정에서는 계급관계가 토지소유 귀족 계급에 잔존해 있는 온정주의나 혹은 행정적으로 강력한 국가기구의 개입에 의해 조절된 적이 없었다. 실제 미국에서 사회보험이나 보호입법을 제공함으로써 자유방임주의적인 임금관계를 개선하려는 시도는 1차대전 시기에 와서야 비로소 생겨났다. 이 시기에 전국적인 규모에서 임금관계를 조절한 적이 약간이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이민정책, 노동관계 금지명령(법원이 노동자의 파업이나 농성과 같은 행위를 중지하도록 명하는 강제적 명력) 및 공화당의 관세정책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기업의 시장지배력과 생산성은 혁신되었지만, 연방정부의 경제규제와 사회적 구매력의 더딘 성장과 마찰을 빚는 상황 속에서는 노동자의 이직률과 생산량의 제한 그리고 공장노동자의 근로의욕과 같은 문제들이 새로운 생산체제의 잠재력을 실현하는 데 주요한 장애물이 되었다. 대기업 규모의 대량생산이 이루어지면서, 자본은 노동자를 강제하는 혁신적인 새 기술을 획득했지만, 동시에 가족회사 특유의 낡은 종정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합의의 원천을 찾아낼 필요 또한 한층 커진 것이다.


복지자본주의인가 단체교섭인가


제1차 세계대전 전야에, 합의로써 강제를 보강하면서 임금관계를 조절해야 한다는 전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복지자본주의’적 해결책이 등장하였다. 포드는 국가의 사회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회사의 ‘복지정책’은 단지 산업군주의 의무만이 아니라 높은 생산성의 전제조건이자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깨달은 최초의 산업가 중의 하나였다.(ex: 일급 5달러 제도) 새롭고 과학적인 인사관리를 통해 공장생활과 가계경제 전체를 관리하는 한편, 생명보험계획, 회사연금 및 주식구매계획 등은 점차 흔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이 복지자본주의는 내포적 축적체제(regime of intensive accumulation: 조절이론의 개념으로, 자본구성의 상승에 따르는 사회적 노동조직의 심한 변형과 급속한 생산성 증대, 그리고 투자 증대의 계획화를 특징으로 하는 축적체제)에 적합한 노사관계 계획으로서는 극복할 수 없는 모순점 두 가지를 갖고 있었다. 첫째, 종업원의 합의와 대표라는 행복한 외관을 지탱해 준 것은 작업반장과 회사 보안과가 행사하는 일상적인 테러였다. 둘째, 복지자본주의는 근본적으로, 생산성 증가에 맞추어 유효수요를 조정하는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미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


전국전시노동위원회(NWLB)는 단체교섭의 제도적, 실질적 질서를 창출하는 터전이 되었다. 작업장에서 고충처리절차를 보편화하고 최종중재의 관행을 확립하는가 하면, 거기서 마련한 임금결정절차는 나중에 산업 전부문에 걸친 임금기준표들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한편 NWLB는 연공서열제 이상의 근본적인 경영자 통제권은 노조에게 하나도 양보하지 않은 채 노동자의 자율조직을 공장질서 속으로 통합시키는 규칙과 절차를 선구적으로 만들어냈다.

미국의 노동관계를 전후의 단체교섭의 형태로 바꿔놓은 것은 자동차 노조와 제너럴 모터즈사 사이의 끈질긴 투쟁이었는데,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1>소득을 임금과 이윤으로 나누는 기존의 분배방식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2>생계비와 생산성과 같은 객관적인 경제적 사실들을 임금결정 요소로 명백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임금은 정치력에 의해 결정되며 이윤은 잉여가치라고 보는 모든 이론을 내팽개치고 말았으며 3>관리기능의 중요성과 경영이 노동자의 이익으로 직접 작용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정한 몇 안되는 노조협약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미국의 노사관계와 국제포드주의


미국체제의 두드러진 특성은 전국이나 주의 정치권에서 노동자의 독립적인 정치적 대표체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미국에서 단체교섭은 법적으로 대표단에 대한 개인의 동의라는 고전적 자유주의 개념에서 유래된다. 노동조합의 합법성이 개별적인 동의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법에 규정된 미국노조의 권리는 잠정적이고 취소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우익측의 반(反)노조운동은 항상 ‘개별 노동자의 권리’라는 제퍼슨식의 언어로 수행되었다.

미국의 사회입법은 놀랄 만큼 억제당해왔는데, 그 보상으로 단체교섭의 영역이 확장되어 북지규정의 협상까지 포괄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라면 시민권에 기초한 사회임금(social wage)으로 노동계급에 귀속될 것이 미국에서는 특정한 고용주집단과 그들의 노동자집단 사이의 사적인 계약에 의해 협상된 거치임금으로만 손에 넣을 수가 있다.

유럽의 경우 노사협약이 일반적으로 단기간 동안 유효한 최소한의 기초만 제공하고 그 나머지 세부사항은 전부 지부단위에서 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노사협약은 구속력이 있으며 협약기간도 오래간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파업금지 규정을 담고 있으며 적용대상이 광범위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그 내역이 극히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필히 상당한 수의 노조관료를 필요로 한다. 미국에서만큼 노사관계가 하위체제적 자율성을 갖고 재생산되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법적 관료화와 중재) 이것의 추진논리는 노조관료와 기업경영자가 공모하여 단체교섭의 ‘국가관리’를 방지하거나, 전후 영국에서 독자적인 작업장 대표 조직의 힘으로 성취한 것과 같은 ‘이중권력’의 출현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불웨어주의: 첫 번째 불길한 징조


노사관계 이론가들은 이런 단체교섭을 틀을 물신화한너머지 노동관계와 경제민주주의가 역전 불가능한 ‘성숙’에 달했다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조합원으로부터 노조 간부진으로 권력을 근본적으로 이양한 점, 단체교서이 보편적이지 못한 점, 노동시장이 분할된 점 등으로 인하여 기층노동자의 참여가 저조했다.


IBM은 60년의 역사 동안 노사분규에 단 한 시간도 빼앗긴 적이 없는데, 그것은 이 회사가 독보적인 성장과 이윤을 기록함으로써 종신고용제를 어느 정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고충처리절차 대신에 그 유명한 ‘언로 개방’을 확립하여 종업ㅂ원이 직접 최고경영자에게 호소하도록 한편, 종업원의 근로의욕을 추적, 감시하기 위하여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GE의 인사관리자 불웨어를 시작으로 경영자 주도방식에 초점을 맞춘 노사관계 모델로 변형된다. UE가 최초로 전기산업의 모든 공장에서 조업을 중단한 1946년 파업이 전환점이었는데, 이에 불웨어는 듀퐁사에 의해 기발된 반노조적인 선전선동을 거리낌없이 채용하고 최신의 마케팅 방법을 전개하여, GE의 노동자들을 회사측으로 돌리려고 했다. 그는 자기회사의 노동자에게는 자유기업체제를 판매하고 대중에게는 전구를 판매하는 방식을 드러냈다. CIO가 UE를 공산당이라 하여 축출, 비방하여 노조를 파괴함으로써, GE의 이데올로기적 공세가 더욱 가열되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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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택광, <무례한 복음>

 

 

한참 한글2002를 켜놓고 마이크 데이비스의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3장을 요약정리 하고 있다가, 너무나 반복적으로 나오는 AFL-CIO가 민주당과 붙어먹으려다 뒷통수 맞았다는 얘기들에 질려서 간단히 서평이나 써볼랜다.

 

사실 이 책은 이택광 교수의 블로그(wallflower.egloos.com)를 하루에 한번씩 꼭 출석체크하는 사람에겐 별로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없는 책이다. 왜냐면 이 책에 실린 글이 대부분 블로그에서 한번쯤은 언급했던 내용들을 정리해서 시간순서대로 실은 것이기 때문이다. 난 솔직히 저자가 여기저기 신문같은 데에다가 기고한 칼럼을 묶어서 책으로 내는 것은 어떤 면에선 참 뻔뻔하고 종이낭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면에서 이택광 교수의 이 책은 좀 너무한 면이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나서 지금까지 터져나온 숱한 사건들과 문화적 현상들을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면서, 그가 줄곧 이야기하는 '쾌락의 평등주의'와 '먹고사니즘'이 어떻게 관철되고 있는지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는 매체라는 면에서는 훌륭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난 이런식의 출판행태가 저자의 저서목록을 하나 더 추가해 주어 그의 '이름빨'을 날리는데에 기여하는 것 외에 어떤 긍정적인 면이 있을지... 심히 의심되는 바다. (그런면에서 박노자가 한홍구 교수도 쫌 거시기하다.)

 

각설하고, 어쨌든 이 책에서 주요하게 이야기하는 주제는 바로 앞에서도 말했듯이 '쾌락의 평등주의'와 '먹고사니즘'이다. '쾌락의 평등주의'라는 것은 올 해초 나온 <당신은 왜 촛불을 끄셨나요>에서 그가 실린 글에서 제기된 뒤로 조정환과의 논쟁에서 주요 공격타겟이 되기도 했던 개념이다. 솔직히 나도 <당신은 왜...>에서 이 개념을 접했을 때에는 뭔가 억지스러운 개념이란 생각이 들었던게 사실이다. 이것은 분명 나뿐만은 아닐텐데, 왜냐면 촛불집회를 통해 '쾌락의 평등주의'를 유추해내기에는 그 당시 거리로 나왔던 주체들의 행동양식이 '쾌락'보다는 '윤리'에 더 가까웠다고 보는게 일반적 상식이었으니 말이다.

이 책은 촛불집회를 관통한 대중의 무의식이 왜 '윤리'보다는 '쾌락'에 가까운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을 충분히 해소해 준다.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분석의 시간대를 97년 IMF 이후 변화된 한국사회에서의 대중의 존재양식과 욕망구조 변화를 살펴봐야 하는데, 저자는 정확히 그런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와 용산참사, 금융위기, 그리고 김연아와 원더걸스, 게다가 '1박2일'과 '우리결혼했어요'같은 예능프로그램 분석에 까지 손을 뻗친다.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한국사회 대중의 욕망은 "네가 즐기는 만큼 나도 즐겨야 한다는 한국적 방식의 평등주의"이며, 그런 류의 먹고사니즘이 경제로부터 정치를 소외시켜 경제지상주의를 내걸은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한편 그런 욕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통해 좌절을 느끼자 대중을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으며 여기서 그동안 '평등하게 쾌락을 누릴'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10대가 부각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10대들은 성공한 10대의 표상인 '김연아', '원더걸스'가 될 것을 강요받는, 존재하지만 존재할 수 없는 이들로 고정되고 만다.

 

대충 이런 식의 설명들을 한권의 책으로 읽어내고 나야 '쾌락의 평등주의'가 작동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왜 우리는 용산참사에서, 쌍용차 파업에서 2008년 5월과 같은 열기를 다시 볼 수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와 동등한 '쾌락의 주체'가 아니라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새로운 합의가 "어떤 이들은 우리보다 더 평등하다"라는 문장 속에 담겨져 있다면, 그 '우리'라는 주체는 '더' 평등한 존재가 되기 위해 싸울 준비를 하는 이들이다. 그냥 평등한게 아니라 '더' 평등하게!!

 

"more th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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