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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작년 공공연맹 안에서 비정규직 조직화/투쟁 과정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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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투쟁을 돌아보며]
공공부문에서도 비정규직 운동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
요즘 2005년 공공연맹 사업평가를 진행하는 중이다. 평가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도 치열하게 진행된 투쟁의 상당수가 중소영세, 비정규직 사업장의 투쟁이었다는 점이다. 굳이 2005년에 전면화된 것은 아니겠지만, 일부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이 지속적으로 침체되고 있으며, 중소영세, 비정규직 사업장의 투쟁은 장기화되는 경향이 더 뚜렷해졌다. 이런 점은 공공서비스의 사유화 공세가 대규모 공기업 자체의 전면적인 사유화보다는 이른바 ‘핵심-비핵심 업무의 분할’, ‘비핵심 업무’에 대한 위임위탁 활성화 등을 통해서 진행되는 정세와도 관련되어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선 공공부문 대규모 사업장의 투쟁이 다소 다른 전선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새로운 전선은 훨씬 분산되어 있고, 정부와 자본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용이한 곳에 설치되어 있다.
햇수로 3년째를 맞는 경마진흥노조의 투쟁부터, 해고투쟁 1년이 다가오는 대경공공서비스노조 칠곡환경지회 투쟁, 200여일을 넘기면서 이제 마무리된 시설노조 코펙지부 투쟁 등 장기투쟁 사업장들이 많다. 현대기림지회, 경찰고용직공무원노조, 경기도노조 안양지부, 서울시설환경노조 성북태한지부, 학교비정규직노조, 건설엔지니어링노조 건축사협회지부, 세종문화회관지부 등 예술노조의 각 사업장 투쟁, 새마을호/KTX 승무원 투쟁도 장기간 진행되었거나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밖에도 상애원, 정립회관 등 사회복지기관의 투쟁은 전면적인 파업이 지속되지는 않더라도 일상적인 탄압과 투쟁이 끊이지 않고 반복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보면 지난 연말 64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다음 투쟁을 기약하면서 현장에 복귀한 산업인력공단비정규직노조는 상대적으로 많은 성과를 남긴 셈이다.
투쟁의 이러한 장기화에는 공공서비스 업무의 민간위탁 등을 통한 간접고용화와 이 과정에서 공공서비스 업무를 중소영세 민간자본이 수탁하는 사정이 연관되어 있다. 공공부문의 중소영세 사업장이라고 하면 그것은 곧 민간위탁 사업장으로 간접고용인 상황이다보니 중소영세=비정규직 사업장이 되고 장기투쟁으로 연결된다. 고용형태가 형식적으로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문제보다도 민간위탁, 외주화의 확산을 통해 다각적인 방식의 노동의 불안정화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2005년을 돌아보면 이런 장기간, 전투적으로 진행된 투쟁들은 공동의 의제를 제기하거나 연대투쟁 전선을 형성하는 데는 거의 나가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투쟁들이 한 개의 산별연맹 소속이고, 상당부분 공동의 쟁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지역적으로도 가까운 경우가 있지만 개별화되는 경향이 있다. 공공연맹 수준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는 데 있어서도 실태조사, 정책과제 제기 등 추상적인 수준의 사업과 구체적인 사업장 투쟁 지원이 유기적으로 맞물리지 못했다. 사업장의 분산성이 제조업보다 심하고 연대의 경험이 일천하다는 점, 연맹차원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대정부요구를 구호,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연대투쟁으로 조직하고 있지 못한 등의 한계가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투쟁사업장 간의 연대는 물론,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투쟁에 책임있게 연대하거나 조직하는 활동도 매우 제한적이었다. 서울지방본부를 중심으로 한 철도노조 동지의 활발한 활동과 정보통신노조의 시도 정도를 제외하면 비정규직 조직화, 투쟁에 정규직 노조가 자기 문제로 결합한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전력기술(KOPEC), 인천지하철에서는 시설관리노동자들이 시설노조에, 대구지하철에서는 정비용역노동자들이 대경공공서비스노조에 가입하는 등, 연맹 내에서조차 비정규직 산별노조가 조직화를 대리하는 경우도 많았다. 자동차산업 대공장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정규직-비정규직 분할과도 유사한 상황이지만, 논쟁보다는 오히려 무관심이 특징적이다.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풀어가려는 운동적 긴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산별노조 건설 논의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조직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금속산업 부문보다 산별노조 건설에 대한 논의가 훨씬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정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만, 고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계급적 연대를 위한 산별노조 건설의 원칙은 추상적으로만 확인될 뿐이고, 구체적인 쟁점에 들어가면 활동가들 사이에서도 자기 (정규직) 노조의 당면한 이해를 우선하는 입장이 더 자주 드러난다. 정규직 노조들이 가지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책임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비정규직 노조들끼리 독자적인 조직전망을 논의하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특히 근래 가장 급속하게 신규조직화된 지자체 직간접 고용 비정규직의 경우 독자적인 전국적 규모의 산별노조로 결집하려는 시도가 이런저런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공공연맹은 정규직 조직까지 함께 하는 산별노조, 더 열악한 하위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할 수 있는 산별노조를 건설할 것을 제안하고는 있지만, 현재와 같은 논쟁 지형에서 ‘같이 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 제안의 설득력은 점점 더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도 지역공공서비스노조의 건설을 중심으로, 아직 많은 한계가 있지만 지역차원의 비정규직 연대의 수준을 좀 더 높여낸 것이 성과라면 가장 큰 성과다. 3개 지역에서 지역공공서비스노조를 건설하고 지역차원의 산별적인 조직화를 시작하고 있다. 공공연맹의 입장에서 보자면 새롭고 귀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민주노총의 50억 기금 사업의 지체에 따라 후속 지원이 중단된 상황에서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정규직 조직화에 대한 지속적이고 책임있는 지원이 없이는 곧장 조직적 침체, 위기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여기서 다시 확인하게 된다. 비정규직 조직화는 1회성 사업으로 진행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다.
차고 넘치는 추상적인 논의 속에서 정작 구체적인 연대를 실현하고 전선을 모아내기 위한 노력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공부문 노조운동의 얕은 활동가층의 문제부터, 활동가들 사이에 논쟁이 부족한 것이 또한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다. 건강한 정규직 활동가들도 비정규직 활동가들과 논쟁할 수 있는 기회도 접점도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좀 더 많은 논쟁이, 활동가들로부터 시작되어야한다. 논란이 발생하고 더 시끄럽게 쟁점에 대해서 토론하는 과정 없이는 개별 사업장의 고립된 투쟁, 정규직 노조의 무관심, 겉도는 연맹사업과 같은 상황이 2006년에도 계속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어떤 종류의 교훈이라기보다는 고민의 항목들이 더 늘어간 2005년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난점, 한계들에 직면했을 뿐아니라 그것을 만든 책임이 있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고민들이 난점과 한계로만 기억되지 않고 건강한 공동의 논쟁으로 활성화될 때, 운동이 한걸음 더 진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어쩌면 공공부문에서는 아직, 우리가 마주친 난점들이 기억되지 않고, 고민들이 제대로 논쟁되지 않는 것이 우리 한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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