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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 과학기술
김명진 엮고지음 / 잉걸
2001년에 나온 이 책은 황우석 교수 사태에 대한 논란 속에서 제기되는 쟁점들을 이미 여러가지 측면에서 제기하고 있다. 대중의 과학기술 수용을 중심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 쟁점을 중심으로 과학기술논쟁의 전개, 대중매체와 과학기술, 생명공학의 문제점 등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황우석 논란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 현상의 문제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가를 질문한다면 이 책의 여러 문제의식이 유용할 것이다.
우선 과학기술이 대중과 맺는 관계가 문제다. 과학기술은 20세기에 들어와서 급격하게 생산력과 결합했다. 물론 이전에도 기술과 결합하기도 했고, 사회적인 영향을 주고 있었지만 그것이 전면적으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와 함께 대중의 삶에 과학기술이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학'에 대한 대중의 소외는 구조화되어 갔는데 지식의 독점이 심화되어갔기 때문이다. 생산현장에는 테일러주의의 도입과 함께 노동자들의 암묵적 지식도 박탈되었다. 그러나 과학기술과 그 정책이 대중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당연히 대중들 사이에 토론되고 이를 통해 결정되어야한다. 이런 지점은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적 지지가 철회되기 시작한 60~70년대부터 제기되어왔다. 환경운동, 평화운동 등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제기가 활성화되었다. 이런 흐름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른 생산력의 무한한 확장, 영원한 번영이라는 관념이 70년대의 불황으로 인해서 약화된 데도 원인이 있다.
그래서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가 쟁점이다. 대중이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 알아야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논지부터, 과학기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사회적 쟁점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논지까지 여러 입장에서 대중의 과학기술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필요성이 제기된다. 문제는 이러한 논지에 따르면 대중은 필연적으로 과학자들에 비해서는 과학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에 최종적인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과학자들에게 주도권이 주어져야한다는 입장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결국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과학자들의 지적위계에 따른 권력을 강화할 뿐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저자에 따르면 많은 과학기술 논쟁에서 비전문가인 대중들도 논쟁에 개입하는 과정에서 논쟁의 쟁점과 의미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며 이에 기반해서 입장을 정리한다는 점이 밝혀졌다고 한다. 특히 대중적 쟁점이 되는 과학기술의 쟁점에서 이러한 대중의 입장과 자기 이해는 매우 중요할수밖에 없다. 핵폐기장 문제와 관련해서 첨예한 논쟁이 진행되었고 대중적인 투쟁을 불러왔던 부안 핵폐기장 논쟁이 비근한 사례가 될 것이다. 대중들은 과학자들이 간과하는 사회적, 정치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때문에 순전히 '과학적' 판단을 하는 것보다 올바른 정책적 판단이 가능하다. (저자는 국내 사례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가 진행한 98, 99년의 유전자조작식품과 생명복제에 대한 '합의회의'를 들고 있다. [유전자조작식품합의회의 자료/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예를 들어, 선천적 질환을 가진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유전자 검사는 어떨까? 과학자들이 '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이를 선호할 수 있지만, 이러한 기술이 기업에 의해서 노동자 채용에 적용될 때 드러나지 않고 발현될 지 확실치도 않은 유전적 특성 때문에 부당한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것은 과학을 둘러싼 논쟁이 단지 과학적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최근에 우리 사회에 제기된 논쟁만 해도 학교에서 지문인식기 사용, 전자주민카드, NEIS 등이 있고, 근골격계질환, 노동탄압으로 인한 정신질환 등 산업재해를 둘러싼 투쟁도 이러한 논쟁이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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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러한 쟁점들에 노출된 대중은 과학기술에 대해서 양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된다. 영화 등 대중문화를 통해서 유포되는 '미친 과학자' 이미지에 친숙하면서도 과학기술이 가져다줄 '장미빛 미래'를 지지한다. 나는 올해 개봉된 영화 '아일랜드'를 보면서 그 영화의 악역인 탐욕스런 경영자-과학자가 당시 열광을 불러오던 황우석과 같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숀빈이 연기한 '메릭 박사'는 인간복제로 돈을 버는 기업의 경영자이자 스스로 과학자인 인물이다. 생명과학을 이용해 돈을 벌어들이는데 몰두할 뿐 아니라 --최근의 상황에서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지만-- 과학자이면서 비즈니스맨이고 거짓말장이라는 데 동일하다. 대중들은 영화 '아일랜드'에 호응하면서도 동시에 황우석에도 열광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것은 합리적으로 입장의 정합성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과학기술에 대해서 가지는 양면적인 무의식을 드러내는 사례다. 과학기술에 대한 불신, 과학자의 지식 권력에 대한 공포와 함께 그것의 장미빛 진보에 대한 환상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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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논쟁은 대중에게 개방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민주적 통제가 증진되어야한다. 과학기술이라는 것인 사회적인 맥락과 분리된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러한 과학 외적 개입은 필수적이다.(이러한 과학 외적 개입에는 저널리즘의 개입도 포함되는데, 저자는 한개의 장을 할해하여 논의를 소개한다. PD수첩의 역할과 관련된 논쟁이 첨예한만큼 책의 한 부분을 인용해보자.; "..결국 과학 저널리즘의 목적이란 과학연구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식견을 갖춘 시민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비판적 과학저널리즘은 과학활동이 내포하는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함의들, 의사결정을 뒷바침하는 증거의 성격 그리고 인간사에 적용되었을 때 과학이 보여주는 힘뿐만 아니라 그 한계까지를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할 것이다.(166쪽)" PD수첩, 프레시안, 한겨레 등을 제외한 언론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보수적인 과학자들의 주장처럼 특수한 연구의 방향이 결정되는 것도 사실은 과학 스스로의 내적 발전경로에 의한 것은 아니다. 이미 자본이 이윤 추구에 직접적으로 종속된 과학 연구방향에 대해서 다른 대안을 제기해야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생명공학 연구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료분야들이 있다. 황우석 지원 예산이면 당장 혈액질환자 고통 던다 /박주영 (민중의료연합))
그러나 이 과정이 제대로 된 대중적 토론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된다.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처럼 대중이 맹목적인 애국주의적 열광은 합리적 판단을 마비시키고 제대로된 토론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대중의 과학기술 통제만을 이야기할 경우, 여기에는 대중의 합리적 토론을 만들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 조건에 대한 문제가 간과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번 황우석 사태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대중의 과학기술에 대한 권리는 자칫하면 이데올로기적 동원에 무력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쟁점을 넘어서는 대중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더 사고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중요한 문제 몇개를 제기한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문제의식에는 지식생산의 민주화라는 쟁점이 포함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 지식이 과학지식의 생산에 기여할 수 있으며, 특히 환경, 보건과 같은 분야에서 그렇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가능성은 고도로 생산력에 통합된 과학기술 생산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자신의 지식을 생산하고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지적 차이를 감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과학자 사회의 민주화'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요즘같은 상황에서 이 중요성은 더 부각된다. 저자가 두드러진 것으로 지적하는 것은 △ 여성과학자에 대한 진입장벽과 처우상의 차별 철폐 △ 불리한 조건에 처한 집단(장애인, 저소득층 등)이 과학기술 교육을 평등하게 받을 수 있는 권리보장 △ 대학원생, 박사후 연구원 등 청년,소장과학자들의 발언권 보장 △ 내부고발자에 대한 보호 등이다. 이 중 몇가지는 특히 이번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중요성이 더 부각된 쟁점들이다. 과학자 사회도 '과학'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당연하게도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과학적 진실이 억압되기도 한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서 드러났다. (하긴 과학자 사회라고 다른 집단들과 다를 이유도 딱히 없는 것이다. 단지 '과학적'이라는 이미지가 가지는 환상이 있을 뿐이다. 하긴,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과학적'이라는 수식어가 가지는 '객관성, 가치중립성, 엄정함, 복잡한 수식과 정교한 실험' 등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7세기말 뉴튼 과학의 성공으로부터 형성된 과학 이미지일 뿐이다. 이는 미신과 무지, 독단에 빠진 당시 사회를 과학적 성공의 모델에 따라 개조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던(혹은 '오해'하였던) 18세기 계몽철학자들이 오늘날에 남긴 하나의 규범적 허구에 불과"하다.(본문17쪽))
이번 황우석 사태를 거치면서 많은 쟁점들이 평가되고 토론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특히 지식에 대한 대중의 권리, 그리고 그것이 보장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대중이 '과학'을 '종교'로 수용하는 현실은 지식으로부터 체계적으로 배제되고 권리를 박탈되어온 과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지식을 둘러싼 쟁점이 사회의 민주화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쟁점이라는 것, 매우 첨예한 정치적 쟁점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확인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쟁점들은 더 극적이지는 않을지 몰라도 꾸준히, 그리고 중요하게 출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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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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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정보 감사합니다. 읽어봐야겠네요. ^^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