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한 PD수첩의 보도 이후 온통 난리다. 윤리문제에서 연구결과 발표의 사실여부 문제까지 확대되고 있다.
'붉은악마'의 애국주의적이고 인종주의적인 열광에 대한 ('진보'적인 인사들까지 포함한) 이데올로그들의 무비판적인 찬양은 오늘의 사태를 불러오는데 책임이 없지 않다. 그 열광이 마치 '대중의 활력'인 것으로 오해되었는데, 대중의 활력을 무비판적으로 찬양할 수 없다는 점, 그것은 쉽게 애국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파시즘 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과학의 이름을 통한 여성의 몸에 대한 지배, 여성인권의 문제다. 또한 연구용 등의 난자구매는 장기구매와 같이 가난한 자의 육체를 하나의 직접적인 상품으로 만든다. 여성의 육체에 대한 권리를 중심으로 인간의 육체를 어떻게 보아야할 것인가에 대한 쟁점이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해결책을 제시하고 토론해야한다.
또 한편으로 황우석의 연구결과에 대한 PD 수첩의 검증문제에 이르러서는 과학자 사회의 검증 매커니즘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과학의 위상, 사회적 관계에 대해 과학이 가지는 관계가 쟁점이 된다. 과연 과학에 대한 대중의 권리란 무엇인가?, 과학은 스스로를 대중의 '무지에 기반한 열광'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가?
아래의 두개의 링크(딴지일보에서 가져온 것이다)를 참고할 수 있다.
글 (1)은 황우석을 둘러싼 애국주의 열풍, 윤리문제를 비판하면서도 과학적 연구결과에 대한 검증은 과학자 사회가 할 일이라는 입장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서 (2)는 과학자 사회에도 권력관계가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과학이 아니라 권력이 판단하는 상황에서 과학자 사회 외부의 개입은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개진한다. (한편, 글의 내용들을 보면 아마도 글쓴이들은 연구조직의 위계에서 상이한 위치에 있지 않을까 예상해볼 수 있다.)
하나의 과학적 연구의 결과가 이미 과학 외적인 문제가 된 상황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과학이 사회로부터 고립된 것이 아니라 이미 중요한 생산기술의 일부로 통합되어 자본의 구성요소가 되었고 또한 이에 따라 정치적인 문제가 된 상황이 관련되어 있다. 황우석의 연구도 이미 과학자 사회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 문제, 정치적 문제가 되었다. 국가는 다른 연구에 대한 지원비를 빼서까지 황우석을 지원했고 이를 애국주의 선동에 앞장서 활용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가 저널리즘의 검증 대상이 되는 것이 올바른가를 생각해볼 수 있다. 저널리즘의 검증이라는 방식 역시도 과학을 과학 외적인 상황과 필연적으로 결합하는 방식 아닌가? 특히 황우석에 대한 광신을 조장한 것이 저널리즘이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저널리즘의 개입을 긍정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여기에 현재 수준에서 가능한 답은, 과학이 이미 과학자 사회의 전유물이 되기에는 불가능한 비가역적인 지점을 넘어섰다는 현상황에 대한 사실진술 정도인 것같다. PD수첩의 개입은 이미 과학적 연구결과가 '과학' 그 자체에 제한되지 않고 자본과 권력의 일부가 된 상황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황우석에 대한 광적인 지지-'무지에 기반한 열광'이 이미 연구의 독립성을 침식한 상황인데 PD수첩을 문제삼는 것은 공정한 일이 아니다. PD수첩이 아니라 이미 선행한 저널리즘의 대중선동 과정에서 형성된 과학과 저널리즘의 관계 구조 전체가 문제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조건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자본과 권력에 독립적인 (자연과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과학적 연구의 조건을 만들어내야한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가 묻혀진다는 점이다. 또한 자본과 권력에 독립적인 연구라면, 이데올로기로부터 독립적일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결국 과학적 연구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규정되고 이데올로기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식하는 가운데 과학이 스스로에 대해 비판할 수 있어야만 '과학'으로서 자신의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과학과 이데올로기의 관계, 여기에는 알튀세르를 더 참고해야한다.)
이번 과정은 딱히 어느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다양한 모순-쟁점을 드러내고 제기하고 있다.(다만 정세적으로, 대중을 사로잡고 있는 애국주의 광기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쟁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각각의 쟁점이 다양한 정치적 입장에서 논쟁될 수 있다. 이 속에서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사회운동, 좌파들의 입장들이 다양한 측면에서 제기되고 상황을 전체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방식을 대중들에게 제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만 최근의 열광은, 황우석의 연구가 설사 거짓말로 밝여진다고 해도 그것을 믿지 않거나, '진실'을 비방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연구의 결과가 사실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정치적으로 더 비극적인 상황이 전개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애국주의자들은 마침내 타도해야할 민족의 적을 명확히 지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상황에서는 더욱 대중이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중들 스스로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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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이 글을 남긴 다음 날, MBC는 뉴스테스크를 통해서 취제윤리문제에 대해서 사과하고 '이제는 과학계가 나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정리했다.
결국 '과학자 사회'에 공을 넘긴 셈인데, 이로 인해 숱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PD 수첩이 시도했던 과학에 대한 과학외적 접근은 '애국주의자들의 적'으로 자신들을 노출시킨 채 마무리되고 말았다. 또한 이후에 과학기술에 대한 맹목, 특히 생명과학에 대한 맹목이 맹위를 떨칠 것이다. 생명과학의 위험성에 대해서 생각한다면, 이 것이 앞으로 얼마나 큰 위험을 불러올 것인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독서일기] 나쁜 과학 - 근본적으로 위험한 유전자조작 생명공학)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과연 '과학자 사회'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도 의문일 뿐더러, 과학에 대한 환상을 더욱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결정의 영향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과학은 결국 과학자들만이 그 진위를 논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다만 과학은 대중에게 상상으로 번역될 수 있을 따름이고, 그 상상은 다름아닌 애국주의적 환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가? 지식에 대한 대중의 통제, 과학기술의 민주화는 과학에 대한 과학외적인 접근이 이루어질 때 가능할 수 있다. 그것은 충분조건은 아니라도 필요조건이다.
PD 수첩이나 MBC에 미숙한 대응이 한 몫했지만,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 과학에 대한 맹목이 국가와 민족에 대한 맹목과 결합했을 때, 어떠한 거대한 승수작용이 일어나는 지 이번 사건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애국주의에 열광하는 '국민'들이 환호할 수록 그들의 과학과 지식에 대한 권리가 박탈된다는 역설에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비극적인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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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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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트랙팩이 있는데. 트랙백 보내주세요. ^^top에 추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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