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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7/27
    정교분리와 보편주의(인용)(6)
    겨울철쭉

정교분리와 보편주의(인용)

정교분리와 보편주의간의 충돌의 문제에 대한 인용. 이슬람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보편주의라는 의미는 아니고 오히려 그 종교들이 가지는 성격의 일부로서 보편성을 제거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 쟁점을 상기하는 데는 아프카니스탄 인질납치와 관련된 상황 뿐 아니라 주빌리사우스 물-전력 사유화 노동자 회의에서의 논의도 영향을 주었다. 물 사유화 반대 투쟁 등에 종교적 윤리를 반대 논리로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 (<무례한자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포스트)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종교직 윤리와 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람이 염두에 둔 것은 일종의 "영성 페미니즘"이었던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편적인 것일 수 있지만, 종교들간의 충돌이 일상적인 곳에서라면, 역시 항상 기존 종교들의 논리에 흡수되거나 동화될 위험에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다.

▒ 원문 :
대안 세계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프로세스로서 시민교육운동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700 (장진범)
* 강조와 문단나눔은 나

대안세계화 운동을 위해서는 대중운동들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매개할 수 있는 보편주의적 이념들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중 하나일 테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조류가 민족형태에 포섭되면서 여러 사회운동들을 매개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해 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보편주의적 이념으로서의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이나 평화주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다른 보편주의적 이념들과의 대화와 상호개조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특수주의 간의 갈등이라면 특수주의의 상위에 있는 보편주의가 갈등을 매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문과 가문의 갈등을 상위에서 매개하는 민족처럼. 그러나 쟁점이 되는 것이 보편주의 간의 갈등이고, 따라서 그 상위에 보편주의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그 상징적 사례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히잡(hijab) 논쟁을 들 수 있다. 당시 쟁점은 ‘정교분리’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표식이 금지된 프랑스의 학교 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프랑스 여성들이 히잡이라는 이슬람 전통 스카프를 쓰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종족적 차별, 문화적 인종주의 등을 문제삼는 문화주의자들은 이를 허용할 것을 주장했고, 여성의 종속과 불평등, 그리고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두 가지 보편주의적 이념 간의 갈등은 전면적이며, 아마도 이것이 실천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매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이 같은 모순을 부정하는 가운데 양자가 (사실상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 하에) 자연스럽게 수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자신의 이념의 정당성을 근거로 다른 이념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이념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각의 이념의 정당성을 낳는 복합적이고 불균등한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이 갈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또한 보편주의에 고유한 위험으로서 자신의 이념에 내재하는 공백과 모순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제어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개방함으로써 보편주의 간의 (갈등적) 교통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다루는 ‘갈등적 다원주의’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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