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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분리와 보편주의간의 충돌의 문제에 대한 인용. 이슬람 혹은 기독교 근본주의가 보편주의라는 의미는 아니고 오히려 그 종교들이 가지는 성격의 일부로서 보편성을 제거한 것이라는 점을 전제로.
이 쟁점을 상기하는 데는 아프카니스탄 인질납치와 관련된 상황 뿐 아니라 주빌리사우스 물-전력 사유화 노동자 회의에서의 논의도 영향을 주었다. 물 사유화 반대 투쟁 등에 종교적 윤리를 반대 논리로 활용할 수 있는가라는 쟁점. (<무례한자들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포스트) 다만, 다시 생각해보면 종교직 윤리와 논리를 사용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람이 염두에 둔 것은 일종의 "영성 페미니즘"이었던 것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어떤 측면에서 보편적인 것일 수 있지만, 종교들간의 충돌이 일상적인 곳에서라면, 역시 항상 기존 종교들의 논리에 흡수되거나 동화될 위험에 있는 것이 사실인 것같다.
▒ 원문 :
대안 세계화와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하여: 사회운동의 새로운 프로세스로서 시민교육운동
http://www.movements.or.kr/bbs/view.php?board=journal&id=1700 (장진범)
* 강조와 문단나눔은 나
대안세계화 운동을 위해서는 대중운동들 간의 국제주의적 연대를 매개할 수 있는 보편주의적 이념들이 필수적이다. 마르크스주의는 그 중 하나일 테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또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역사적 마르크스주의의 많은 조류가 민족형태에 포섭되면서 여러 사회운동들을 매개할 수 있는 역량을 상실해 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마르크스주의가 보편주의적 이념으로서의 역량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이나 평화주의, 생태주의, 다문화주의 등 다른 보편주의적 이념들과의 대화와 상호개조는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이 특수주의 간의 갈등이라면 특수주의의 상위에 있는 보편주의가 갈등을 매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문과 가문의 갈등을 상위에서 매개하는 민족처럼. 그러나 쟁점이 되는 것이 보편주의 간의 갈등이고, 따라서 그 상위에 보편주의를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그 상징적 사례 중 하나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히잡(hijab) 논쟁을 들 수 있다. 당시 쟁점은 ‘정교분리’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표식이 금지된 프랑스의 학교 안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아랍계 프랑스 여성들이 히잡이라는 이슬람 전통 스카프를 쓰는 것에 관한 것이었다. 종족적 차별, 문화적 인종주의 등을 문제삼는 다문화주의자들은 이를 허용할 것을 주장했고, 여성의 종속과 불평등, 그리고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맞서 싸우는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두 가지 보편주의적 이념 간의 갈등은 전면적이며, 아마도 이것이 실천적으로 해결되는 데는 매우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이 같은 모순을 부정하는 가운데 양자가 (사실상 어느 하나의 절대적 우위 하에) 자연스럽게 수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자신의 이념의 정당성을 근거로 다른 이념의 정당성을 부정하려고 하는 이념은 신뢰하기 어렵다. 우리는 각각의 이념의 정당성을 낳는 복합적이고 불균등한 물질적 조건이 존재하는 한 이 모순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며, 따라서 이 갈등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기예를 익혀야 한다.
또한 보편주의에 고유한 위험으로서 자신의 이념에 내재하는 공백과 모순을 부정하려는 경향을 제어하면서, 이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개방함으로써 보편주의 간의 (갈등적) 교통을 조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민교육은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다루는 ‘갈등적 다원주의’를 조직하고 유지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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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산/세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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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실제로는 히잡같은 경우를 '문화주의'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게된다면(실제 이슬람주의와 이맘들이 이민국의 소수민족,종교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조건에서)그런 복식착용을 뒷받침하는 이민자들의 보수적, 퇴행적 이데올로기와 실천적 경향들을 더 강화시키거나 더 나쁘게는 악화시키지 않을까 염려됩니다.이를테면, 얼마 전 영국에서도 이라크인 젊은 여성이 가족이 정해준 혼처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가족으로부터 '명예살인'을 당했는데, 세속주의와 종교주의가 충돌할때 둘 모두 다 보편주의라는 개념규정하에 불편부당하게 다룰 경우 전 이런 경향들에 뒷문을 열어주게 되는 게 불가피하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겨울철쭉님은 상호간 모순을 인정하고 상호교통을 강조하신터라 님의 주장이 꼭 제가 말한 결과를 빚을 것이라 속단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이맘들은 이런 악성 관행을 그들 사이에선 '보편주의'라고 강변할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봅니다. 보편주의 자체를 어떻게 규정하고 나눌지 부터가 참 난감하긴 합니다만)
여성에게 히잡을 씌우는 문제와 명예살인은 서로 떨어져있는 관계없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전 이 두 문제가 이슬람교라는 하나의 '보편주의'내에서는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문에 현재 이란 여성들도 아흐마네아자이드 같은 극우 종교세력 정권이 강제하는 여성복장에 대한 통제에 대항해 싸우고 있는 것이구요.
(79년 호메이니가 이란 혁명을 대중운동에서 종교적 철권통치로 뒤집어엎을 때도 그런 혁명 과정에서 대중운동의 당당한 주역을 담당한 여성들을 후퇴시키기위해서 여성 복장에 대한 이슬람적 통제를 가장 먼저 강요했다는 사실도 상기해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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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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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히잡 자체가 쟁점은 아니라는게 인용문의 주장일텐데, 현실적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이 필요한 문제죠..다만 정교분리에 대한 프랑스'공화국'의 이념이 결국은 이주자들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기제가 되었다는 점도 봐야할 듯. 지지난 해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소요로 알려진 '방리유 사건'은 그런 결과를 보여준 것일텐데;;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군요.ㅎ ^^;;;;
일단은 <공존의 기술>이라는 관련된 책이 나왔던데 일단 읽어보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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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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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연히 들렀다가 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 프랑스에서 히잡 논쟁은 상당히 격렬했을 뿐더러 매우 근원적인 쟁점을 다룬 모양인데, 위 글을 쓸 때 그런 부분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습니다.(참. '다. 문화주의자'가 아니라, '다문화주의자'에요. ^^) 일단 양자를 보편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이 모두를 불편부당하게 다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보편주의/특수주의 대당 속에서 판단할 때보다 사태가 훨씬 어렵고 복잡해질 것이고, 각 이념들이 대중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게 하는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하겠지요. 사실 히잡 착용 같은 것은 민주주의의 진전에 따라 이슬람 내부에서 쇠퇴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왜 최근 들어 다시 이런 경향이 고개를 들고 있는지를 보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관련해서 발리바르가 쓴 글이 있는데 읽어 보시면 도움이 될 겁니다. 단 영어라는 거. TT 사회진보연대 자료실에 올려 놓을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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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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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네요;ㅋ 최근 <공존의 기술>이라고 프랑스 방리유사태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서문만봐도 흥미진진할 듯. 저자들은 방리유를 "배제를 조건으로 해서만 포함되는 사회적 장소"라고 지칭하는데, 관련된 쟁점에 대해서 더 볼 수 있을 것같습니다.부가 정보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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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는 아니고 오랜만에 들었다가 이 글을 보게 되었네요. 히잡논쟁 그 자체가 쟁점은 아니라시긴 했는데, [프랑스의 문화전쟁―공화국과 이슬람]이라는 책(책세상 문고판 시리즈 중 하나) 내용이 생각나서요. 페미니즘이 어떻게 다른 보편주의와 갈등하는가에 대해 뭘 좀 찾아봐야 겠다 싶어서 보았던 책인데, 히잡 논쟁은 이런 문제에서 매우 상징적인 주제임에 분명한 것 같습니다.(이미 보셨을지 모르겠는데)암튼 책은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사이 프랑스에서 격렬하게 벌어졌던 두어 차례의 히잡 논쟁을 추적하면서 프랑스 공화주의와 이슬람 간의 갈등, 이민자 문제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페미니즘 문제는 그 자체로 쟁점적으로 다루지는 않습니다). 위의 아포리아님의 글과도 연관되어 책에서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부분은, 이슬람권 국가 본토 내에서는 히잡과 관련된 억압적 조건이 해소되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이슬람 출신 이민자들의 경우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이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더군요. 여기서 특징적인 것은 이민 1세대인 부모세대 보다 그 자식세대가 자발적으로 그걸 더 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오히려 부모세대들은 그런 이슬람 문화를 고수하는 것이 프랑스 사회로 통합되는 것에 많은 장애와 불이익 되는 스스로의 경험에 근거해 자식들에게 쓰지 말 것을 강제하는데, 그 딸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책에서 다양한 인터뷰 사례들로 이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 동안의 격렬한 히잡 논쟁은 주로 이 자식세대들의 사고가 형성되는 것과 연관이 되어서 나타났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그런 사고가 형성되는 토양과 조건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만..).
이런 세대 간 사고 차이가 일반적인 것인지 까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여기에는 (영미의 자유주의가 아닌) 프랑스의 공화주의라는 쟁점이 결부되는 듯 합니다. 위에 쓰여진 글들의 맥락대로라면 저자는 공화주의를 그 자체로 하나의 보편주의로 전제를 하고, 이것과 이슬람 문화와의 갈등을 다루고 있는 셈인 듯(페미니즘 문제는 그다지 중심적인 주제가 아니고). 여기서 공화주의가 보편주의로 간주될 수 있는 핵심이 뭔가 했을 때, 결국 시민권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부모세대들의 선택은 자신들의 보편주의를 기각하는 방식으로의 프랑스 사회로의 사회적 통합, 시민권의 획득을 얻는 전략을 취한 것일 듯합니다(최근 유럽에서 이민자, 빈곤이나 범죄 문제 등 다양한 맥락에서 사회적 통합 담론이 유행인 듯 한데, 겨울철죽 님 언급처럼 배제를 조건으로 하는 통합이지요. 그런데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면, 외적 배제/내적 배제에 관련되는 쟁점들이 한대 뭉뚱그러지는 것인데, 그 만큼 배제의 범주가 넓어지고 배제를 만드는 요소들 간의 결합은 심화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암튼 잡생각 수준으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는데, 보편주의를 이념의 측면에서 사고한다면 이것은 시민권에서 출발하(거나 그를 핵심 요소로 삼)는 것인데, 보편주의 간의 충돌이 벌어지는 구체적인 장소 역시 결국에는 시민권이 아닌가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다면, 시민권이 구성되는데 있어 보편주의 간의 갈등을 조정하거나 거리를 유지하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것인지. 그게 씨빌리떼인지, 갈등적 다원주의인지. 책의 저자가 말하는,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이민자 문제와 관련해서도 이주운동 쪽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다문화주의 라는 것은 확실히 그에는 미달하는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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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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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존의 기술>(이 블로그에 리뷰를 쓰기도 했지만요, 참고하시면 좋을 듯.)에서 언급하는 쟁점들이 있는데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주류 페미니즘은 아니겠죠) "그녀들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어야한다는 지적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왜 이주지 2~3세대 이슬람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죠. 그것은 역설적으로 여성으로서 사회에 나가기 위한 것으로 정의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저도 다문화주의는 보편주의들간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이를 통해서 시민권을 확장하는 것에는 미달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건 존재를 인정해주는 것에 불과한데, 배제를 내포할 수도 있고 한순간에 그것이 폭발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죠. (물론 남한의 현실은 그것에도 한참 미달하지만요.) 여튼, 보편주의간의 관계..에서 씨빌리테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도 그냥 그것을 긍정하는 걸로 되는 것은 아닌 것같구요, 뭐랄까, 제가 씨빌리테라는 게 정말로 뭘 의미하는 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씨빌리테라는 것의 "내용"자체를 채워넣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한편, 최근에 사회운동포럼을 준비하면서 "이주노동자의 참정권"까지도 시민권의 측면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이제까지 저도 미처 생각치 못했던 부분인데, 이주자들도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한다고 할 때 필수적인 한 부분일 것같습니다. 온전한 시민권을 요구하는 것은 또한 다문화주의를 넘어서는 문제일 것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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