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패권주의"에서 "종북주의"로애초에 대선즈음에 들은 민주노동당 혁신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당내 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자주파의 패권주의적 행태였다. 그리고 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패권주의의 원인으로 종북주의가 지목되었을 때만 해도 이해할만한 상황이었다. 스탈린주의적 당노선을 가진 세력들과는 상호 존중하는 정치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인정할만했다.
그러나, 정작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문제는 패권주의가 아니라, 패권주의의 원인으로서 (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주체주의)가 아니라, 곧장 "친북노선"자체가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바로 빨갱이 사냥으로 이어졌다. 최기영 제명안은 비록 나중에 수정되기는 했지만 "편향적 친북행위"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쯤되면, 쟁점은 애초에 문제의식, 패권주의로 인해 불가능해진 당내 민주주의 수호가 문제가 아니라 북조선에 대한 공격이 된다. 노골적인 반공주의 노선으로 전환.
2."신당파"의 반공사민주의이 과정에서 신당파의 정치적 포지션은? 당장 결성한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공동대표는, 박승옥이었다. 92년 전노협 위기논쟁에서 2007년 노동운동위기논쟁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노동운동의 변혁성과 전투성을 문제삼고 "새로운" 노동운동을 주장했던 사람이다. 그 "새로운"이라는 수사 안에는 이제까지 그나마 민주노조 운동이 만들어왔던 긍정적인 정치적 의미를 모두 폐기하는 운동이 그려져있다. 신당파의 입장이 무엇인지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그런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이 NL에 비해서 급진적이기는 한가? 신당파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본질을 너무 빨리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렇다고 당내 혁신파가 다른 입장이었나? 비록 그 안에는 당을 보다 왼쪽으로 가게 해야한다는 입장이 있었을지 몰라도, 심상정 비대위가 제안한 내용은 한편으로는 "편향적 친북행위"라는 반공주의 의제를 활용하고 또 한편으로는 "생활 속의 푸른 진보" 운운하는, 생태주의를 핑계로 우경화된 정치노선을 표방했던 것이다. (더 오른쪽에 있는 노회찬은 말할 나위도 없다.) 왜 급진적 생태주의와 반자본주의 변혁으로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퇴행적인 생활정치로 나가는가? 이후 민주노동당내 "자율과 연대"와 같은 사민주의 세력은 노골적으로 신당지지를 선언하고 나선다.
결국 애초부터 신당파, 혁신파 모두가 동일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처한 공간은 그 프레임 때문에 점점 더 우경화하고 있다. 이제 자신들의 위치를 보면 NL을 "우파"라고 부르기가 쑥스럽지 않나?
어떤 분이 모아놓은 민주노동당 분당관련 신문기사, 사설들을 보라.
http://cafe.naver.com/hamsatam.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19743.대중조직의 분할인가?이제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이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책임묻기로 일관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공동의 과제 중 하나는, 당의 분열이 대중조직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이미 일각에서는 공공연하게 이런 위험을 경고한다. 이미 강승규사태, KT노조, 민공노, 민주연합노조 사태 등 폭약은 쌓여있으니, 뇌관만 있으면 되는 상태일수도 있다.) 이번 민주노동당 분당의 사실상의 정치적 책임이 NL에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의 위기도 국민파-NL 집행부가 만들고 있다. 이미 실질적으로 진행되는 정치적 분화를 패권으로 막으려는 우매한 행위를 민주노총 집행부가 하고 있고, 이는 역으로 현장의 분할을 촉진한다. (민주노동당 분열의 주된 책임이 NL에 있는 것처럼, 민주노총이 분할의 위기에 빠진다면 그 정치적 책임은 온전히 국민파-NL 집행부에 있다.)
이런 조건에서 양식있는 활동가들은 당의 분할이 민주노총의 분할로 이어지지 않도록 함께 노력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주노총 안에서 정치적 선택의 폭을 여는 것이 필수적이다.(민주노총 정치방침, 민주노동당 배타적지지 방침 개정) 그러나 그러한 방향자체가 민주노총의 정치적 분할을 촉진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되며 매우매우 신중해야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민주노총 분열위기의 1차적인 책임은 국민파-NL집행부에 있을 것이지만, 중앙파-좌파도 면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4.그럼 NL--'민족주의화된 스탈린주의'와 동거할 수 있는가?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NL당이 된 민주노동당에 남아있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점에서 노운협 등의 입장은, 정치적 지형에 대한 진단에서는 올바르지만, 정작 현실의 정치적 지형에서는 무능하다.
자주파/평등파 왜곡된2분법, 민족개량파 공개사과하라 천영세 직무대행이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민주노동당내 이른바 '평등파'가 분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인 NL이 노선을 혁신하여 분파형성권을 인정하고 당 노선을 수정하지 않는한 그들과 공동의 정치활동에서는 "복종"혹은 "압도"가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그런 측면에서는 애초에 당내 평등파의 문제제기--"패권주의"의 본질이 NL의 "종북주의"정치노선, 당과 수령관을 핵심으로 주체주의에 있다는 비판은 정확했던 것이다.) NL만이 압도적으로 남은 당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혹은 조선노동당의 우당인 조선사회민주당 같은 포지션은 가능하겠지만 말이다.
5.제 3의 선택지?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신당파의 반공 사민주의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에 남은 NL의 스탈린주의도 아닌 다른 정치적 위치가 가능할까? 이것은 마치 냉전시기의 국제적인 사회주의 운동이 처한 것과 유사한 딜레마. (물론 정치적 지형은 분명히 다르고 따라서 다른 사고, 제3의 선택지에 대한 사고도 가능할지 모르지만.) 이런 지형에 대한 "좌익적 비판"은 어떤 내용이 될 수 있을까?
사회주의 정치를 압살하는 두 경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기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이다.
특히 비-NL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분당-탈당파가 "전면적으로 지지"받는 상황, 레디앙만이 아니라 이제는 참세상 기사에도 그런 기사가 탑에 올라오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래도 이제는 생각을 좀 해보자. 지금 더 절박한 것은 NL만 남은 (이제 서서 죽은) 민주노동당 공격이 아니라 새로운 당을 만들겠다는 흐름에 대한 비판이다.
비-NL이 올바른 정치노선을 보장해주지는, 전혀 않는다.
댓글 목록
트루로드
관리 메뉴
본문
비판에는 공감하지만..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활동을 도모해야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그래도 지역에서 함께해온 동지들이 현재의 지형에서 어디에 서 있는지 봐야하고, 신당의 우경화를 제어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에서의 운동프로그램을 가동해야지요...근데 노트북은 넘기긴 할건가요. 목빠지겠어요. 이번주를 넘기면 분노의 저주로 방자할지 몰라요^^~
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박승옥의 입장을 과연 단순히 변혁성 제거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프레시안에 3회에 걸쳐 실린 박승옥의 글(적녹청 동맹을 주장하는 글)을 보면 그 역시도 자본주의 극복에는 동의한다고 보여지는데요 (생태주의적 입장 내지 풀뿌리 공동체의 관점에서의 접근이긴 하지만). 그리고 노동운동 비판에 있어서도 과격한 언사가 있긴 했지만 핵심은 받아들일 만한 내용이었다고 생각되는데요? 노동운동이 정규직 조직노동자 중심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말은 백번 옳은 것 아닌가요?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저는 한국에선 영세자영업자나 주부까지도 일종의 산업예비군으로서의 노동자계급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비정규직이라도 현대자동차의 1차밴드 비정규직의 경우 중소업체의 정규직이나 영세자영업자보다 오히려 더 낫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요?부가 정보
지나가다가
관리 메뉴
본문
흔히 말하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동안 자본가계급과 최전선에서 대리전을 펼쳐왔습니다.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아니라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 자본이 원하는 일이겠군요 지금 자본이 온갖 이데올로기를 동원해서 공격하고자 하는 대상을 진보진영에서 공격하다니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트루/그 "누구"와 함께하기 위해서라도 비판이 필요하지 않을까? 적어도 NL의 패권주의가 없는 공간이 열리는 셈이니 지역을 중심으로 사회운동적 당활동을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겠지만, 그것을 위해서도 과연"어떤 사회운동"인가라는 쟁점을 제기하면서 논의해야할 듯. 그 시험대는 총선준비과정일 수도 있는데, 총선준비에 결합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할 것같구만;; 그리고 노트북은 21일 까지 넘기겠음;;ㅋ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글쎄요/ 적색+녹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어떤 방식의 결합이냐는 것이죠. 녹색으로 가기 위해서 덜 적색이어야한다는 것이 박승옥의 입장인셈인데, 오히려 더 녹색이기 위해서 더 적색이어야하고, 더 적색이기 위해서도 더 녹색이어야한다는 다른 방향이 있다는 것이죠.게다가 녹색만 특권화될 수도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노동자운동, 사회주의 운동의 맹목점이 생태주의, 민족주의 문제(따라서 국제주의)만이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페미니즘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러한 사회운동"들"이 어떻게 급진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냐가 문제가 되겠죠.
박승옥의 입장이라는 것은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노동자운동이 전투성과 변혁성에서 후퇴해야한다는 주장인 것인데, 이것은 적녹연대라기 보다는 사회운동 전체를 사민주의 무덤에 순장시키는 것과 같은 주장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연대라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 어떤 요구안을 양보하고 시혜하자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요컨데 녹색을 후퇴의 명분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죠.박승옥은 92년부터 항상 노동자운동의 후퇴를 주장해왔습니다. 이제는 그 후퇴의 명분으로 공동체와 녹색을 들고 있을 뿐인 것으로 보입니다. "녹색"을 그렇게 취급해서도 안되겠지요.
부가 정보
동감
관리 메뉴
본문
신당파의 반북주의 보면 정말 화납니다NL패권주의를 지지 못하겠는 것만큼이나 반북주의자들도 지지 못하겠습니다 어쩜 그리 손쉬운지
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지나가다가/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 과연 최전선에 있었는가에 대해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동참했는지요? 현자 이상욱 집행부의 태도가 과연 대공장 정규직 중 일부만의 태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비판에서 그들은 과연 자유로울까요?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겨울철쭉/ 현재의 정규직 대공장 노동운동이 과연 얼마나 '변혁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투쟁에 대한 연대'라고 말씀하셨는데, 과연 그들이 얼마나 투쟁에 연대했던가요? 게다가 저는 투쟁에 대한 연대도 다르게 생각합니다. 단순히 현재 벌어지고 있는 투쟁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과 함께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운동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닌가요? 가령 하청업체 노동자를 위한 복지기금을 내놓으라고 자본측에 요구하든지, 비정규직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줄 것을 정부나 지자체에 요구하는 식의 투쟁들은 전혀 하지 않고 투쟁이 벌어지면 사후적으로 면피용 대응을 하는 것도 투쟁에 대한 연대일까요? 적어도 저는 박승옥의 입장을 겨울철쭉님처럼 그냥 후퇴라고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겠더군요. 현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얼마나 차별을 받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라서요.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동감/ 노동운동을 하기 전, 학생운동 시절에는 저 역시 NL이었습니다. 현재 신당파의 입장을 '반북주의'라고 말씀하시는 것 또한 '손쉬운' 것 아닐까요? 반제의 최전선에 서있다는 이유로 북을 우리의 대안 중 하나로 생각하는 사고를 철저히 반성하고 비판하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이분법적 진영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과거의 제가 그랬거든요.부가 정보
지나가다가
관리 메뉴
본문
현대차 민투위 문제는 현장파에서도 깊이 반성하고 평가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대리전 문제는 그거랑은 상관없어요 -_- 현대중공업, 현대차(민투위도 포함되겠지만) 소위 말하는 이런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일선에 서서 자본과 대리전을 치뤄온건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팩트에요.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글쎄요/대공장운동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면 무엇을 비판할 것인가가 쟁점이겠죠. 제 블로그의 다른 글을 보셔도 아시겠지만 저는 대공장 현장파에 대단히 비판적입니다. 그렇지만 그 이유는 그들이 전투적이어서가 아니라 경제주의적이기 때문이죠. 박승옥의 주장은 전노협 논쟁에서부터 지금까지, 전투성과 경제주의를 교묘하게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동시에 폐기할 것을 주장한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변혁은 전투성을 우회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박승옥은 전투성=폭력혁명이라는 도식화를 또 한번 시도하죠.) 자본가들의 전투성을 우선 봐야죠.박승옥의 주장은 "저항이 아니라 형성"운운하면서 풀뿌리 공동체 우동의 확장이 자본주의를 넘어서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공동체 운동이 대안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실험으로 또 근거지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겠으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견고하게 구조화된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힘을 갖지는 못합니다. 자본주의에 저항하지 않고 그것을 우회하겠다는 전략인 셈인데, 공동체의 생존이 가능하기 위해서라도 자본주의에 대한 지속적인 저항, 변혁을 위한 투쟁은 필수적이겠죠.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해서는, 오히려 단협요구안에 비정규직의 요구를 "대신"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장의 경제적 시혜(또다른 경제주의이자 대리주의)가 아니라 투쟁의 주체화가 없으면 안되는 것일텐데, 여기서 정규직 사업장의 역할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논쟁이 진행되어 왔습니다. 정규직 노동자에게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할 수 있도록 방어하고 연대하는 투쟁을 요구해야할 겁니다. 멋들어진 대리적인 요구해주기 전에 자기공장의 사내하청 투쟁에 연대하고 이랜드 조합원 생계비 모금부터 하라는 겁니다.
반북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북한을 대안사회로 상정하자는 주장이 아닌 것은 아실텐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당황스럽군요. 다만 북한에 대한 비판은 역사적 과정--역사적 사회주의 운동에 대한 반성과 아메리카 헤게모니의 자본주의 세계체계--를 전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그런 비판--그것은 필연적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사민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당운동 노선에 대한 비판까지 연결될 것입니다--은 생략하고 대중의 반공이데올로기에 영합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지침을 받는다"는 것 외에 어떤 비판이 있습니까? 북한을 비판해야하지만 반공주의에 영합하는 방식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주체주의든 트로츠키주의든 평의회주의든 공산주의자 일반을 증오하는 반공-사민주의자들의 그런 포지션은 이해가 되긴 합니다만.)
부가 정보
행인
관리 메뉴
본문
자칫 독해를 잘못할 경우에, "북조선에 대한 공격 = 노골적인 반공주의 노선으로 전환"으로 읽힐 수 있겠는데요. 분당관련 일련의 사태 속에서 주사 : 반주사의 대립구도가 형성되면서 본질적인 문제가 왜곡되고 미루어진 것은 분명합니다. 당내 정치투쟁의 모습이 매우 졸렬하게 이루어진 것이죠.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이라는 외부집단으로부터 사주를 받고 당내에서 프락션 한 것에 대한 비판을 곧장 "북조선에 대한 공격 = 노골적인 반공주의노선으로 전환"이라고 등식화하는 것은 매우 단편적인 판단이라고 생각됩니다.더불어 퇴행적 생활정치라는 규정을 하기 위해서는 그 안티테제로서 "급진적 생태주의와 반자본주의 변혁"의 당위성만이 아니라 그 구체적인 실현태와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가장 극렬하게 벌이는 방법이 생활정치와 왜 구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이해하지 못합니다. 퇴행적 생활정치가 어느 범위까지를 포괄하는 개념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죠.
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제 말을 오해하고 있군요. 제가 말하는 것은 단협에서 비정규직의 요구를 몇개 넣어달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본의 이윤 중 일부를 비정규직을 위한 사회적 기금으로 강제하는 투쟁이나 정부나 지자체에서 비정규직을 위한 각종 정책방안들을 내놓도록 그들에게 직접 요구를 해야 한다는 거에요. 가령 장애인들이 지자체에 요구해서 이동권 등 각종 요구사항을 따내듯이, 정규직 노조간부들이 앞장서서 이런 투쟁들을 하자는 것이지요. 이게 왜 경제주의가 되고 대리주의가 되지요? 저는 오히려 이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정치투쟁이라고 보는데요?겨울철쭉님 주장대로 이미 발생한 비정규직들의 투쟁을 방어하고 연대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것만으론 너무나 부족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의 극히 일부만을 사고하는 겁니다. 실제의 비정규직은 그들만으론 일부 자동차업종의 사내하청이나 이랜드처럼 나름대로의 투쟁을 벌일 조건조차 안됩니다 (이랜드조차도 정규직들이 같이 했기에 가능했던 것 아닌가요?). 그런 상황에서 '투쟁이 벌어지면 이를 방어하고 연대하자'는 주장은 독자적인 투쟁의 주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없으면 과거의 전투적 조합주의와 동일한 논리라는 반박을 피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부가 정보
글쎄요
관리 메뉴
본문
그리고 신당파/분당파를 지지하는 사람 중 하나로서 말씀드리는데, 신당파가 반공-사민주의라는 노운협이나 겨울철쭉님의 단언은 (제가 신당파에 대해 가장 불만이었던) '종북주의' 딱지붙이기와 동일한 또 하나의 딱지붙이기 아닌가요? 계급형성을 고민하고 사회연대전략을 고민한다고 해서 이를 손쉽게 반공-사민주의라고 딱지붙이는 식의 비판이 '올바른 정치노선을 보장해주지는 않는' 것 아닐까요?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행인/종북주의가 문제가 되는 지점이 몇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1) 당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패권주의를 정당화하는 종북주의(주체주의자들의 조직노선)
(2) 대선패배까지 이르는 종북주의 정치노선의 한계
(3) 대안사회의 상으로서 북조선식 모델의 한계
그런데 대선패배 상황에서 촉발된 논쟁에서, (3)은 (중장기적으로 필요하지만) 정세적으로 뜬금없고 (2)는 종북주의만의 문제가 아니며(오히려 평등파의 책임도 전혀 덜하지 않습니다) (1)은 직접적으로 종북주의가 쟁점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논쟁에서 종북주의가 핵심적인 쟁점으로 부각되어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대선패배가 종북주의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지만 그 근거가 무엇인지 회의적입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 정치활동의 누적된 한계가 원인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는데, 이 경우 평등파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원내 정치에 몰두한 것은 다들 다르지 않고, 오히려 자주파가 대중동원식 정치로, 원내정치를 넘어서려고 시도했죠.)
이런 상황에서, 종북주의가 왜 문제인가, 이렇게 되어서는 위에 세 가지 논점이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종북주의니까 문제다"라는 주장을 공리로 전제하는 주장들이 전면화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일 뿐입니다. 이데올로기는 굳이 논리적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고, 그냥 들으면 귀를 즐겁게 만들어주니 강력한 힘이 있게 되죠.
패권주의가 문제라면 그것을 비판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찾거나 혹은 자주파하고는 그게 안되는 세력이다라고 판단하게 되면 분당하면 되는 것이겠죠. 그런데 논쟁 과정에서 마치 “종북주의” 때문에 같이 못하겠다, 이렇게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죠. 이건 노선과 관련된 건데 그런 수준에 맞게 논의가 되지도 못하고 상대세력을 비난하는데만 활용됩니다. 이게 맞냐는 겁니다. (정치공학적으로 분당의 명분을 이렇게 세우는 분들도 있었다고 보는데, 그게 바로 대중의 반공반북주의에 영합하는 방식이죠)
북조선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부분, 쟁점들은 당연히 있습니다.(위에서 (3)의 부분) 그러나 제가 보기에 북조선에 대한 비판은 "우리 안에 있는 그 요소"에 대한 반성과 동반되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북조선을 악마화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불과한 것이 될 겁니다. 그것은 핵심적으로 민족주의-국제주의의 문제, 그리고 국가-당노선의 문제입니다. 역사적 사회주의운동에 대한 반성의 핵심적인 부분이 북조선에 대한 평가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당 내의 주체주의자들은 물론이지만 평등파라고 해서, 사민주의자들조차 전혀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민주의같은 경우에도 “민족”국가-당 노선)
사실 당 내에 반공사민주의자들은 언제나 있었고, 따라서 작금의 상황이 그들에게는 “노선 전환”은 아닌 셈입니다. 문제는 반공사민주의자들이 주도권을 잡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그런 논점에 휩쓸려--혹은 동조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반공사민주의자가 아닌 “평등파”의 책임영역인 것이죠. 이제는 예전부터 그랬던 반공사민주의자들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았다고 보이는 평등파들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답을 해야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생활정치와 관련해서는,
“아래로부터의 주장과 요구를 담아내고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문제를 포함하는 생활정치”가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의 한 영역으로서 필요하죠. 문제는 그것이 “운동권 정당”(혹은 자주파의 대중동원식 정치)에 대한 비판, 대안이라는 식으로 쟁점을 형성하면서 제기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박승옥은 아주 노골적으로 이 둘을 대치시켰고, 심상정 비대위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우회적으로 그런 식의 대비를 언급해왔습니다.)
어떤 정치가 더 중요한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저는 생활정치라는 영역은 중요하기는 하지만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근거지를 만들어가는 의미는 있겠지만 사회전체를 변혁하는 정치의 영역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치의 영역을 상호간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가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을 당면과제로 하는 변혁의 정치를 배제, 비판하기 위해서 생활정치가 제시된다면 그것은 퇴행적인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체제 변혁을 위한 정치를 배제할 경우 이것은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가능한 영역을 추구하는 것으로 나갈 수밖에 없고, 그것은 사민주의와 공명하겠죠. (생활정치가 결합하는 방식도 이중적이라는 것인데, 그것이 지역의 민중공동체 형성, 민중연대의 강화와 변혁의 정치와 결합이라는 방식이 또한 가능할 수도 있겠죠.)
여튼, 제기하신 이러한 논점들과 관련해서는 새로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와 관련해서 사회운동들 안에서 충분히 논쟁-토론될 필요가 있는 영역일 것같습니다. 설사 입장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토론이 시작되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가 정보
행인
관리 메뉴
본문
(1)의 문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짚어야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그걸 짚어내는 것은 결국 주체사상에 함몰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중언부언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당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이미 지역정치조직활동 안에서 이 문제는 안으로부터 썩을대로 썩어 있는 상황이라는 것만 짚고 넘어가죠.대선패배가 종북주의때문이라는 것은 원래 비대위차원의 혁신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될 수 있는 한 그런 인상을 주는 평가를 작성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안입니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요. 대선패배의 원인으로 종북주의노선에 대한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정에 대해서 좀 더 확인을 하셨더라면 일정한 정도 오해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종북주의때문에 대선패배가 아니라 종북주의추종의 과정에서 당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 원래의 목표였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정체성 상실의 과정은 자주파나 평등파 어느 쪽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결국 두 파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실력행사조차 계획하지 못했던 두 파 제외 모든 당원들의 책임론까지 제시해야겠죠. 어쨌든 이 과정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종북주의자, 혹은 주체주의자나 김주의자들과는 같이 일 못하겠다는, 어느정도는 감정적인 골이 깊게 파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인과관계를 일정정도 건너뛴 채 혁신안의 내용과 혁신안 제출 및 당대회 진행과정만을 살필 때는 어떤 의미에서 반공반북주의에 영합한다는 평가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렇게 단정할 때에는 손석춘의 표현처럼 "존재 이전의 문제"로 상황은 전환되어버립니다. 대중적 반공반북주의가 아직도 공고한 상황에서 종북주의논란이 확산되면 결과적으로 대중영합적 반공반북주의의 이용이 될 수 있겠지만, 실제 내부에서 벌어진 정치투쟁은 그러한 차원에서 "존재 이전의 문제"로 전환시킬 이유가 없는 것이었구요.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겨울철쭉님이 생각하는 사민주의와 사회주의 또는 다른 이데올로기가 어떤 형식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생활정치 관련부분을 사민주의로 규정하고 이를 비난하는 겨울철쭉님의 의견에 동의지점을 찾기 어렵다는 겁니다.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등 이데올로기의 이론적, 실천적 형질에 관하여 저 나름대로 10여년을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습니다만 과연 무엇을 특정한 이념의 형태라고 규정할 수 있을지 아직도 잘 모르겠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제 고민의 깊이가 그만큼 낮기 때문일 수도 있겠죠.
어쨌든 심비대위가 제기했던 혁신안에서 이야기되는 생활정치라는 부분이 매우 추상적인데다가 현실적이고 전면적인 대안 아젠다로 역할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겁니다. 저 또한 그런 차원에서 그들의 대안제시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사실이구요. 그러나 체제변혁이라는 거대담론을 화두처럼 붙들고 살면서 지난 시기 목소리를 높여왔던 사람들이 과연 어떤 대안을 제시하면서 실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오히려 어떤 측면에서는 구름위를 떠돌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니까요.
일전에 김세균 교수 등이 참여한 토론회에서 주 발제자들의 발제문들을 읽다가 혹시 이 글들을 다함께가 작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더랍니다. 왜냐하면 지난 십수년 간 이야기되었던 어떤 기획들이 아직도 그대로 반복되기 때문이었고, 과격한 표현을 통해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전복과 체제의 변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인 추진의 방법은 여전히 열심히, 잘, 투쟁으로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죠.
대안아젠다를 설정하는 것은 이데올로거의 역할이라고 하겠지만 이것이 실현되는 과정은 말 그대로 "생활의 영역"에 발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민주노동당의 실패요인 중의 하나는 현장 조합원들을 그저 쪽수의 대상으로 인식한 채 그들에게 당적을 입히는 것으로 조직활동을 끝냈다는데에도 있습니다. 현장의 조합원들이 당에 대하여 논의하고 당에 대한 정치적 확신과 참여, 이를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실천을 고민할 수 있도록 당이 제시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으며 민주노총 역시 마찬가지였죠.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오히려 작년 초에 박래군이 제안한 새로운 운동의 형식이 고민되는 겁니다. 머리는 당위에 두더라도 발은 현실에 굳건히 자리하는 그런 방식의 운동. 심비대위의 혁신안이 비록 이에 미치지 못하였다고는 하나 생활 속의 운동에 대한 고민과 천착이 지금시기처럼 필요한 때가 없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민주 반민주의 대립구도가 한 사회에서 진보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를 주지 않은 채 방향성을 고정하고 있었던 시기. 그 시기에는 생활정치의 문제가 달리 논의될 시간도 환경도 있지 않았습니다만, 지금 이 시기는 그와 달리 바로 생활 자체가 전복의 일상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떤 이는 거대담론, 즉 체제의 전복 내지 변혁을 이야기하겠지만 어떤 이는 생활영역에 있어 삶의 모습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르게 도모해보는 것을 고민할 수도 있겠죠. 그런 측면에서 저는 변혁의 논의와 생활정치의 논의가 왜 일도양단하듯이 구분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앞으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것은 비단 어떤 정당을 만들 것인가의 논의로 한정할 필요도 이유도 없겠구요. 또 좋은 이야기 기대하겠습니다.
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글쎄요/제가 언급한 내용도 단협에 비정규직요구 반영하는 내용은 아닙니다. "비정규직을 위한 정책방안"이라는 것, 사회적 기금 같은 것이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정규직노조가 단협에 내용을 넣어서 한편으로는 자기이해가 걸린 투쟁의 직접적인 쟁점으로 비정규직 내용을 단락시키고, 한편으로는 기업이 직접 자신이 채용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거나 처우를 개선하게 해야합니다. 기업 외부에 기금으로 무엇을 하자는 식의 방식은 오히려 기업이나 노조나 모두 자신이 직면한 딜레마에서 면피하기 쉬운 방식입니다.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현장에서 정규직노조가 자신의 요구에 비정규직 내용을 반영해서 조합원들이 변화할 수 있는 실천을 함께 하고, 현장의 비정규직 조직화와 투쟁에 연대하는 방향이 옳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영역에서는 그것이 재작년 비정규법안 저지투쟁과 같은 쟁점에 대해서 투쟁할 수 있어야할 할텐데, 그것 역시 정규직노조의 활동가-조합원 주체들이 변화하는 과정으로 동반되어야하겠죠.
비정규직 투쟁에 연대와 방어가 비록 그것이 비정규직의 "극히 일부"라고 해도 그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투쟁하고 주체화되는 과정이 확장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도 구체적으로사람과 돈을 내고 조직화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몇몇 단위들은 부족하지만 하고 있죠.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이러한 비정규직 투쟁이 전투적 경제주의의 한계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비정규직 운동주체들 사이에 가장 심각한 우려이기도 하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투쟁이 사회운동, 정치운동과 결합하고 이 안에서 급진적인 활동가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제기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정치적인 것으로, 사회운동으로 만들어야겠죠.
종북주의 문제는 '행인'님에 대한 답변 중에 언급이 있으니 생략하겠습니다.
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행인/ 말씀하신 당내 논쟁의 상황은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했습니다만, 그런 조건에서라도 "어떤"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가지는 정세적 효과가 어떠했을지, 그것이 어떻게 당원-대중에게 인식될 것인지 예상할 수 없는 조건은 아니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생활 영역"이라고 부르는 쟁점에 대해서 정치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야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가지는 고유한 위험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을 제기할 때 주의해야한다는 의견입니다. 저는 그 위험이 사민주의적인 경향이라고 말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말하면 체제의 급진적인 변화가 아니라 체제를 정당화하는 실천으로 귀결할 위험이 항상있다는 것입니다.
생활영역의 쟁점이 정치화되고 제기되는 데에도 상이한 정치적 입장에 따른 상이한 방식이 있다는 점, 특히 그것에 부정적인(제가 사민주의적이라 부른)방식이 더 강력한 구조적 조건이 있다는 점에서 주의해야한다는 것.
사민주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여기서 댓글로 논쟁키는 적절하지 않은 주제이죠.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우선 그것이 전제하는 사회운동과 체제의 구조, 산별노조-사민주의적인 노동자당-삼자협의구조, 그리고 미국식의 생산성임금 대신 사회보장제도가 구축되는 정세, 지정학적인 요인, 역사적 과정과 사회/운동의 전통 등등을 함께 사고해야한다는 점입니다.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그것은 올바르고 그르고의 문제 이전에 가능한가 아닌가의 문제가 우선 제기될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정세에서 (경계선에 있으나) 반주변국가로서 남한이라는 공간에서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사민주의적이냐 변혁적이냐라는 논쟁은 "어떤 실천"들에 딱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어떤 실천"들이 어떤 정치적 결과를 낳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를 넘어서는 효과를 실제로 낳을 수 있는가는 엄밀하게 평가되어야하겠죠.
이런 점에서는 행인님과 쟁점도 있겠지만 의견을 모아갈 수 있는 측면도 있을 것같습니다.
부가 정보
보스코프스키
관리 메뉴
본문
논쟁 잘 보았습니다. 안티조선 우리모두의 진보정당방(http://neo.urimodu.com/bbs/zboard.php?id=forum_party)으로 가져갑니다. 전 갑자기 왔습니다만 해당 방의 지기입니다. 겨울철쭉님의 논평 잘 보고 있습니다.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보스코프스키/퍼가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몇몇 사람의 토론이 아니라 더 확장되면 좋을 텐데하는 생각도 좀 합니다. 뭐 저는 쟁점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좀 두리뭉실한 입장이라 ^^;부가 정보
보스코프스키
관리 메뉴
본문
한 번 진보정당방에 직접 방문해 주십시요...부가 정보
겨울철쭉
관리 메뉴
본문
보스코프스키/동향과 관련해서 많이 모으셨군요.^^; 신당, 당장 우려되는 것은 분명한데 한편으로는 이랜드 김경욱 위원장은 신당으로 출마할 수도 있을 것같고, 그렇다면 또 어떻게 해야할지도 고민되고 그런 상황이군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