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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인정 받다

육아휴직을 하고 애를 키운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신기한 일이고

처가집한테는 놀라운 일인데

저희 부모님들한테는 탐탁치 않은 일입니다.

 

1년 육아휴직을 했다는 말씀을 드리는 데도

거의 3개월 정도가 걸렸었는데

 

그 사실을 부모님이 실제로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따르르릉..."

 

주선생님이 얼른 뛰어가서 전화를 받습니다.

 

"상구는 나갔냐?"

"아니오 집에 있는데요.."

 

어머니나 아버지는

제가 뻔히 미루 키운다는 걸 아실텐데도

집에 전화하시면 꼭 '상구는 나갔냐?'고 물어보셨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게 물으신 건 아닙니다.

 

"상구는 사무실 안 가냐?"

 

"현숙이 나갔으면...니가 지금 애 보겠네?"

 

가끔 밤에 전화 하시면

"상구는 들어왔냐?" 고 묻기도 하셨습니다.

항상 들어와 있는데요라고 주선생님이 대답하지 않은 건

참 현명한 행동입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점점 상황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느날부터인가

전화하실 때 마다 제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미루는 자냐? "

"그럼...애 키우는 게 그게 쉬운 게 아냐.."

"애 낳고 키워보니까 부모 심정이 이해가 가지?"

 

그래도 부모님은 제가 계속 집에만 있다는 사실을

결코 본인들 입에 담지는 않으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담기는 했습니다.

 

"야...너 일주일에 몇일씩이라도 나가는 데 없냐?"

"너 불러주는 데 그래도 좀 있지 않어?"

 

그러는 사이에 벌써 7개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육아휴직 5개월 남았습니다.

 

5개월 후면 집에 더 이상 못 있습니다.

전 그 전에 부모님이 저의 육아휴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그날이 왔습니다.

 

찬란한 환희의 역사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미루 아팠다면서?"

"네..."

 

"어쩌다 그랬다냐.."

"사실은 제가 먼저 감기걸렸었는데요, 그게 옮았나봐요.."

 

"넌, 뭐 집에만 있는 애가 무슨 감기가 다 걸렸냐?"

 

순간 저는 집에만 있다 보니까

면역력이 떨어져서 더 쉽게 감기에 걸린 것 같다는

통찰력있는 분석을 제시하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어머니의 제일 끝 발언의 역사적 의의를

놓치지 않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저는 드디어

부모님께 제 육아휴직을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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