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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취

"이야~신기하다.."

"뭐가?"

 

"상구한테서 미루 냄새가 나..."

 

주선생님이

바로 코 앞에 서 있다가 한 이야기입니다.

 

"그래? 신기하네.."

"그러게 정말 신기하다.."

 

"혹시 미루한테서 내 냄새가 나는 건 아니고?"

"헤헤~아니야..."

 

하루 종일 미루랑 붙어 있다 보니까

제 나쁜 냄새가 미루한테 옮겨갔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랍니다.

 

그렇다면 이건 정말

저한테서 미루 냄새가 나는 겁니다.

 

매우 기분 좋은 일입니다.

 

사람이 붙어 있다 보면 표정이 닮아가고

성격이 닮아가고 말투가 닮아간다는데

아무래도 최고 경지는 체취가 닮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에게서 미루냄새가 난다는 얘기를 듣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 안했었는데, 가만히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기분이 좋아질 뿐만 아니라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내가 육아휴직을 한 보람이 있구만..'

또 오버한다고 할 까봐

혼자 생각만 하고 말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술담배 냄새에 찌들지도 않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편이라서

미루 냄새가 옮겨 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것 같습니다.

 

더욱 보람있습니다.

 

기쁜 마음을 안고 샤워를 했습니다.

수건을 들고 몸을 닦습니다.

 

며칠전에 인터넷에서 보니까

씻고 얼굴을 닦은 다음에 5초 내에

로션을 안 바르면 피부가 노화한다고 적혀 있어서

요새는 로션을 손에다 묻혀 놓은 다음에 얼굴을 닦습니다.

 

수건을 들고 얼굴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면서

로션을 찾았습니다.

 

"아...내 로션 다 떨어졌지..."

 

할 수 없이 저쪽에 있는

아토마일드를 쭉 짜내서 발랐습니다.

 

"상구~~~~!!! 왜 미루 로션 바르고 그래~?"

"응? 어....내 로션이 다 떨어져서...이거 꽤 괜찮어.."

 

"냉장고에 남자용 로션 있다니까 그래...미루꺼 바른지 얼마나 됐는데?"

"응...며칠 됐어..."

 

"에잇~! 그럼 그렇지~그러니까 상구한테서 미루 냄새가 난 거였구만~!!"

 

주선생님이 저한테서 맡았던 미루의 체취는

바로 애기 로션 냄새였습니다.

 

애랑 어른 체취가 그렇게 쉽게 같아질 리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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