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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감옥에서 굴뚝으로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5/01/15 16:21
  • 수정일
    2015/01/15 16:21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사진출처 : 프레시안

서울구치소에서 4개월 가까이 수감 중인 김정도 동지가 굴뚝농성 중인 이창근, 김정욱, 차광호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게재해 달라고 요청해주셨다. 귀중한 편지 게재를 허락해 주신 김정도 동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리며 하루 빨리 석방되어 다시 투쟁의 현장에서 뵙기를 기원한다. [편집자]


쌍용자동차 이창근, 김정욱, 스타케미칼 차광호 동지께!

안녕하세요, 동지들! 저 정도입니다. 구치소에서 동지들 생각에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가, 늦은 밤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보건복지정보개발원, 재능교육, 세월호 투쟁 등에서 일반교통방해 혐의를 포함 총 12개+α의 혐의를 적용받아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오늘로 116일째 서울구치소에 수감중입니다.

벌써 굴뚝농성 200일이 넘은 차광호 동지, 한 달이 넘은 이창근, 김정욱 동지 … 이 추운 날씨에, 구치소 독방 안에 있어도 양말을 두겹 신고, 옷을 세네 겹 껴입어야 버틸 수 있는 그런 날씨에, 차가운 굴뚝에서 그리고 길바닥에서 농성하시는 동지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지곤 합니다.

가끔씩 들어오는 월간지나 구독하는 신문을 보면, 이창근 동지의 칼럼, 차광호 동지의 글 등을 접할 수 있어서 얼마나 반가운지 모릅니다.

처음 동지들이 굴뚝에 올라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2014년 5월 27일 새벽에 차광호 동지의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2015년 12월 13일 이창근·김정욱 동지의 소식을 신문으로 접했습니다. 차광호 동지가 올라가셨을 때는 안부 문자도 보냈는데, 이제는 감옥에 갇혀있어, 동지들이 계신 곳에 가보지도 못하고 희망버스도 집회도 농성도 함께 할 수 없어 마음이 답답합니다. 출소하면 꼭 찾아뵙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그 전에 잘 해결되면 더 좋겠지만요.

가끔씩 노트에다 출소하면 뭘 하고 싶은지 적어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중에 평택, 구미에 들러서 동지들을 찾아뵙는 것도 있습니다. 제가 굳이 한 마디 더 보태지 않아도 차고 넘칠 만큼, 동지들의 투쟁은 제게, 그리고 모든 투쟁하는 동지들에게 많은 희망을 주고 있다는 것 잊지 말아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옥보다 훨씬 더 갑갑할 굴뚝 위 동지들은 얼마나 힘이 드실지, 어떤 마음으로 그 자리에 계시는지 … 아직 많이 부족한 제가 미처 다 짐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지들을 생각하면서 또 하루하루 수감생활을 이어가는 제가 있다는 것, 하루하루 힘 받으며 생활하는 제가 있다는 것이 이창근·김정욱·차광호 동지께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지는 부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립되어 있지만, 고립되어 있지 않은 곳, 사람이 살아가는 ‘감옥’에서 ‘굴뚝’으로 띄워 보내는 이 편지가 오늘도 사투를 벌이고 계실 동지들께 힘이 되길 기원합니다.

저는 요즘 초기 수감생활 1~2달 간 읽던 사회과학 서적과 달리, 문학서적을 탐독하고 있습니다.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얼마 전에 읽었는데, 낙원구 행복동에 사는 난장이 아버지의 삶, 그리고 굴뚝 이야기가 나올 때, 동지들 생각이 계속 났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아직 우리가 투쟁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당연한 것 같습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을 확산시키려는 자본의 하수인 박근혜 정권에 치가 떨립니다.

얼마 전 한상균 동지 새로운 위원장에 당선이 되셨습니다. 물론, 지도부의 지침이나 명령으로만 포괄되지 않는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현장투쟁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이번 당선을 작은 ‘밀알’ 삼아 올해에는 정말 대투쟁의 한 해가 만들어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저도 지금은 비록 감옥에 갇혀 말과 글로써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출소하고 나서, 또 다시 구속이 된다할지라도 결코 주저하거나 물러섬 없이 투쟁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하고 있습니다.

빛도 잘 통하지 않는 독방에 있다보니 하늘과 햇빛이 그리워지는 요즘입니다. 항상 힘내시고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뒷면에 시 한 편 적어 보냅니다.


하나의 밀알이 썪어

진은영

한 알의 밀알로 썩어
거대한 밀밭을 꿈꾸는 사람들

나는 하나의 밀알로 썩어
세상의 모든 바람이 취기로 몰려오는
한 방울 향기
아득한 밀주
아무런 후일담도 준비하지 않는 


2015년 1월 12일 월요일 오후 11시경 구속 116일차 서울구치소에서 정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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