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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호][노동]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과 노동자민주주의-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부지회장

  • 분류
    노동
  • 등록일
    2011/04/08 22:31
  • 수정일
    2011/04/08 22:54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통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불어나기 시작한 조합원 수는 그 속도만큼이나 큰 파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 자본은 계속 법을 지키지 않았고 복직도 정규직화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투쟁은 길어졌다. 공장점거파업 이후 정규직노조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은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이하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대량징계와 해고폭풍이 휩쓸었다.
이러한 가운데 사측과 유착한 한 집행부 임원이 간부들의 조합비 유용 등 비리사건을 ‘적절한’ 시점에 폭로하면서 비정규직지회의 조직력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집행부 사퇴 이후 비상대책위원회가 출범했으나 지도력의 공백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고 있다. 때문에 현재 각 공장별·사업부별로 선전전 및 집회 등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이 하나로 모이지 못한 채 각자 분투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속노조는 여전히 현대자동차지부 눈치를 보며 방관하고 현대자동차지부(이하 ‘현대차지부’)는 자기 말에 따르라며 협박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관리자들이 노조를 탈퇴하라며 회유하거나 탄압하는 부당노동행위가 만연하다. 물량싸움도 여전해 보수적인 정규직 대의원들이 자기 선거구의 조합원 자리를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은 나몰라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대량징계는 아산공장으로 확산되었고 전주공장에도 징계가 예고되어 있다.
그러나 조직력의 붕괴는 단순히 ‘징계’와 ‘비리사건’ 때문이 아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어떤 무기를 가지고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갈팡질팡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에 함께해 온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조성웅 부지회장이 기로에 서 있는 이 투쟁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기고해 주셨다.
첫 번째 글은 1공장점거투쟁을 중심으로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평가를 다루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두 번째 글에서는 집행부 선거를 앞둔 현 시점에서 현대차비정규직 투쟁을 전진시키기 위한 방향과 제언이 담겨있다.
기고글은 본지의 입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주]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자본이 설치해 놓은 ‘현대차비정규직 특별교섭’이라는 덫에 걸려 동요하면서 공장점거파업을 통해 솟구쳤던 계급적 활력을 유실하기 시작했고, 현대차의 잘 기획된 작품인 지회 임원들의 조합비 유용과 횡령 사건으로 조직력의 대부분을 유실했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투쟁이 시작되기 전으로 뒷걸음질 치는 듯이 보인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적이 강력했기 때문이 아니라 강력한 적에 맞서 계급투쟁을 지속하고 유지하기 위한 지도력이 취약했기 때문에 퇴행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이 스스로 투쟁하는 지도력을 건설하지 않는 한, 공장점거파업에서 등장했던 오류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도력은 하늘에서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류로부터 배우고 오류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을 정식화하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비로소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공장점거파업을 통해 배워야 한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모든 정치세력들의 말과 행동이 투명하게 드러남으로써 평조합원들이 자신의 부족했던 경험을 보충하고 학습했을 뿐만 아니라 투쟁을 지속하고 유지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배우는 교육적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투쟁의 출발점을 스스로 새롭게 창출해야 하며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이 다시 현장을 조직하고 자본의 유연화 공세에 맞서 계급투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자신의 집단적인 협력을 통해 조성해야 한다.

 

공장점거파업 해체한 3주체회의

3주체회의(금속노조,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3지회)는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하기 위한 자본의 바리케이트였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공장점거파업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이경훈을 넘어야 현대자본과 맞짱 뜰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른다. 이러한 자각은 공장점거파업의 운명을 요약하고 있다. 이경훈을 의식적으로 넘어서려 하지 않고 어쨌든 이경훈을 불파투쟁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이경훈 활용론”은 좀더 노골적이거나 보다 은폐된 형태로 존재했지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와 평조합원들, 개량주의 정치와 중도주의 정치까지 공유하고 있었던 남한 노동운동의 정치적 현주소였다. 이경훈 활용론의 구체적인 수단은 3주체회의였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3지회가 참여하는 일명 “3주체회의”는 현대차자본의 무자비한 폭력과 탄압이 정점에 달하고 이에 황인화 조합원이 분신으로 항거했던 투쟁 직후에 태어났다.

 

 

△ 공장점거파업을 해체시칸 3주체회의 (출처 : 울산노동뉴스))

황인화 동지는 “비정규직 철폐, 무슨 일이 있어도 싸우자, 노동자는 하나다 투쟁!” 의식이 남아있는 그 순간조차도 조합원들에게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를 실현하기 위해 투쟁을 호소하고 정규직 조합원들과 전국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황인화 동지의 분신 직후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민주노총 울산본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대표자들이 참여한 대책회의의 결론은 “흥분하는 조합원들을 자제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지도부의 방침을 기다렸지만 지도부의 방침은 투쟁이 아니라 투쟁의 자제, 조용한 촛불문화제가 다였다. 1공장점거파업을 사수하기 위한 직접행동은 등장하지 않았다.
흥분하는 조합원들을 유능하게 자제시킨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노동조합 관료들은 투쟁을 수습하고 공장점거파업을 해제시키기 위한 계획에 착수한다. 11월22일 울산에서 열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는 즉각적인 전면총파업이 아니라 “구사대와 공권력 진압시”라는 단서조항을 달아 전면총파업을 결정하고 이조차 12월1일까지 유보시킨다.
금속노조 박유기 집행부가 12월1일까지 총파업을 유보한 것은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의 노골적인 파업파괴선동 ― “총파업 때리면 이 싸움 3일 안에 박살난다...조합원총회 통해 분명히 물어야 한다” ― 에 대한 화답이자 굴종이었고 12월1일까지 현대차와의 교섭국면을 여는 일에 집중하고 공장점거파업을 수습하기 위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황인화 동지의 분신 이전까지 현대차지부는 금속노조와 현대차비정규직 3지회가 요구했던 공동투쟁을 완강하게 거부했던 제3자였을 뿐이다. 현대차 이경훈 집행부는 2010년 11월18일 공문을 통해 “비정규직 불법파견 문제는...현대차지부와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이경훈 지부장은 황인화 동지의 분신 이후에야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경훈 지부장은 11월22일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 참가해 파업파괴행위를 노골적으로 선동했고 23일 기자회견을 통해 중재안을 던지고 24일 3주체회의를 소집한다. 그리고 24일 3주체회의 결과는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8대요구안을 폐기시키고 손배가압류 최소화 등 ‘현안문제’ 해결로 후퇴시킨 것이었다.
현대차지부 이경훈 지부장이 소집한 3주체회의는 황인화 조합원의 분신 이후 흥분하는 조합원들을 자제시키고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시키기 위한 성격을 갖는다. 12월9일 농성이 해제되기 전까지 3주체회의가 한 역할은 “공장점거파업의 통제와 해체”였고 그 결과는 현대차자본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이었다.
현대차와 현대차지부는 하나로 통합됐다. 현대차지부는 현대차를 대신해 외부세력이데올로기를 선동하며 해고자는 조합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농성장에서 폭력적으로 끌어내고 권우상 전 연대노조 사무국장을 강금해 폭행했다. 현대차지부의 허락을 득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농성장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여 농성장을 통제하고 고립시켰다. 추위와 굶주림에 고통받고 있었던 조합원들에게 농성장해제를 김밥 한 줄로 협박했고 밖에서는 아름다운 연대로 포장했다. 이경훈 집행부는 공장점거파업을 해체하기 위해 대단히 ‘계급적’으로 투쟁했고 마침내 노사평화를 이끌어냈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1공장거점파업장으로부터 투쟁을 확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타협하고 중재하고 조정하고 수습해 투쟁을 마무리하는 데 적극적인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공황기,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관료들의 역할은 생존권적 요구에 나서는 현장조합원들의 투쟁을 통제하고 파괴함으로써 자본가계급에게 협력하는 일이었다.
공장점거파업 속에서 어용과 민주의 경계는 사라졌고 노동조합관료제(개량정당과 관료적 산별노조의 결합)로 통합됐다. 노동조합관료제는 현 시기 “반혁명이자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는 이유이고 자본가계급이 지배자로 존재하는 수단”이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와 한 몸이 돼 노골적으로 파업파괴행위를 조직했던 이경훈 집행부와 이에 굴종하고 타협하고 중재하고 조정하고 수습해 투쟁을 해체시키려 했던 개량주의자들과 노동조합관료들을 폭로하고 이에 맞서 투쟁해야 했다.
하지만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평조합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장점거파업을 통제하고 해체하려 했던 3주체회의에 참가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가 3주체회의에 참가한 것은 11월17일 쟁대위 회의를 통해 결정한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가 조건 없이 교섭에 임할 것을 요구한다”는 “직접교섭” 방침을 스스로 폐기한 것이었고 공장점거투쟁을 파괴하기 위한 이경훈 집행부의 협박 앞에 굴종한 것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가 3주체회의에 참가한 것은 공장점거파업을 무장해제하는 첫걸음이었다.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은 “지금 당장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는 불가능하다. 교섭을 통해 현안문제부터 풀어가면서 정규직화는 장기적 과제로 가져가자”고 선동했다. 교섭을 미끼로 농성장을 해제하려 했다. 현대차자본이 노동운동 내부로 파견한 이경훈 집행부의 파업파괴 프로그램에 금속노조, 민주노총울산본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은 손을 들어 중재자로 참여했고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쟁대위는 수줍게 끌려갔다.
“이경훈 활용론”의 결과는 무엇인가? 농성장의 강제해산이었다. 파업의 무기가 사라지자 3공장 비정규직노동자들은 해고됐고 체포영장발부자는 늘어났으며 징계위가 소집되고 손배가압류가 집행됐다. 공장점거파업의 파괴였고 노사평화였다. “이경훈 활용론”은 공장점거파업을 해체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 조합주의자들의 슬로건이었다.

 

 

△ 출처 : 울산노동뉴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이 건설한 노동자민주주의

이경훈을 넘는 것은 관료주의를 넘는 것이고 관료주의를 넘는 것은 부르주아 정치를 넘는 것이다. 관료주의는 부르주아의 정치이다. 부르주아 정치는 비판과 토론이 억압된 명령의 질서이다.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초대받지 못하고 철저하게 배제된다. 비판과 토론이 억압될수록 정치적 수동성이 강화되고 위계적 질서와 관료적인 명령이 결합한다. 차이는 제도화되어 억압은 강화된다. 대화가 죽은 자리에 조합주의(노사협조주의)와 관료주의가 굳건하게 자리 잡는다. 명령과 통제가 모두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의 관료적 명령과 통제를 뚫고 일어선 대중적 파업투쟁이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의 공장점거파업이고 그들이 이룬 정치적 이름이 노동자민주주의였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 신차가 나올 때마다 해고됐다. “자른다 자른다는 이야기만 듣고 살아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서로 헐뜯고 근속(입사역순)을 가지고 서로 싸웠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현대차의 해고방침을 “입사역순, 조합원 우선 고용보장” 방침으로 받아들였고 조합원들조차 누가 피켓을 많이 들었고 집회에 많이 참석했는가에 따라서 운명이 결정됐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의 출발점은 바로 이러한 “치떨리는 경쟁”과 단절하고 싶다는 절박한 요구,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는 소박하지만 절박한 요구였다.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하나의 계획에 의한 일의 순서와 절차를 뛰어넘는 대단히 특이한 활력으로 구성됐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의 25일간의 공장점거파업은 절차와 과정으로 굳어진 정규직 교섭질서를 한꺼번에 뛰어넘었다. 현대차비정규직노동자들은 자본의 지불능력이나 교섭절차와 기술이나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활 그 자체의 고통”이었으며 이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수단이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 투쟁이었다. 당연히 자본의 지불능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지금 이 곳에서 실현돼야 했으며 이를 위해 머리로 생각하고 고민했던 모든 투쟁의 수단들을 한꺼번에 집행해버린 것이다. 현대차와 노동조합관료들이 감히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과감하게 그리고 대단히 빠른 속도로 투쟁을 조직했던 것이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어떻게 구성됐는가? 그것은 관료적 명령과 통제를 아래로부터의 비판과 토론으로 대체했고 비판과 토론을 도입하는 수단이 바로 1공장거점파업 농성장총회, 비거점파업 조합원총회, 각 공장별 조합원총회, 공장별 분임조회의였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은 비판과 토론의 민주적인 기구를 통해 쟁점에 대해서, 요구안에 대해서, 전술에 대해서 자기 손을 들어 발언했고 견해를 제출했으며 때로는 논쟁하고 때로는 설득하면서 자신들의 계급적 요구와 전투적 전술을 유지하고 사수하려 했다.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자신의 권리를 위임하지 않는 자기결정과 직접행동을 발전시켰다. 평조합원들의 자기결정과 직접행동은 대의제 속에 뿌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관료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대의기구로 우회하지 않고 토론과 결정과 집행의 연속적인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비판과 토론, 결정과 집행에 따른 직접행동(행동통일과 규율)이 평조합원들이 이룬 노동자민주주의의 구체적 형상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자신들의 절박한 생활적 요구를 쟁취하기 위해 자본의 이윤을 뿌리로부터 파괴하는 공장점거파업을 머뭇거림도 없이 과감하게 단행했고 공장점거파업을 해체시키기 위한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과 계급투쟁을 조직했다. 평조합원들의 투쟁은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절박한 생활상의 요구는 계급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조합원들은 자신의 민주적 기관을 통해 현대자본과 개량주의 조합주의자들이 제기하는 “지금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는 불가능하다.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요구에 맞서 “이 안은 쓰레기 안”이라고 찢어버리면서 투쟁했고 이경훈 지부장이 밥 가지고 장난칠 때 “차라리 굶자”고 결의하며 농성장을 사수하려 했다.
또 평조합원들은 1공장점거파업을 사수하기 위해 “1공장 동지들에게 한 끼 밥보다도 오늘이든 내일이든 라인을 끊어주는 것이 더욱 힘나게 하는 것이다. 2공장, 3공장 생산타격 주게 되면 1공장 거점파업 동지들이 힘이 날 것”이라며 파업의 확대를 제기하고 생산타격투쟁을 결의하고 집행했다.
이것은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투쟁의 요구와 전술문제를 둘러싼 계급투쟁이었다. 평조합원들의 노동자민주주의는 계급적 태도를 취하고 전투적 행동을 이끌어내는 협력의 공간이었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평조합원들의 요구는 850만 전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법률적 가이드라인 안에서 단계적 정규직화론을 제기했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회 지도부, 이 개량주의자들, 노사협조주의자들, 조합주의자들의 요구는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이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은 자신들의 민주주의를 통해서 계급투쟁을 조직했고 가장 계급적인 요구가 가장 대중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다는 것을, 가장 계급적인 요구만이 노동자계급의 공동행동을 조직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자본의 공세와 노조관료들의 파업파괴 행위에 맞서 계급적인 요구를 정식화하고 노동계급의 공동행동, 계급투쟁을 조직할 수 있는 정치적 수단이 노동자민주주의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절차적이고 형식적이며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노동조합의 운영이나 국가의 운영에 “직접적이고 더욱 결정적으로 참여하고 통제권을 행사하는 평등”을 의미한다.
현대차비정규직 평조합원들은 비판과 토론을 통해 지도부의 방침을 결정하는데 직접적으로 참여했다. 흔들리는 지도부를 강제했고 투쟁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했다. 노동자민주주의 속에서 평조합원들의 대중지성이 성장했고 자발성과 결단력, 창조력이 솟구쳐 올랐다. 이것이 25일 동안 공장점거파업이 유지될 수 있었던 힘의 원동력이었다.

 

 

△ 공장점거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11월22일 울산에서 열린 금속노조 대의원대회. 총파업은 통과되었지만 각종 단서와 현대차지부의 협박 속에 총파업은 실행되지 않았다. (출처 : 울산노동뉴스)

 

자발성과 의식성의 결합 - 지도력의 문제

 

투쟁의 실마리와 방향을 제시하는 것, 투쟁의 모든 국면과 모든 순간에 이미 풀려나 움직이는 노동계급의 모든 힘을 당의 투쟁대오 속에서 실현되도록 정치투쟁전술을 계획하는 것, 사회민주당의 전술이 단호함과 예리함에 바탕을 두고 결정되고 그 단호함과 예리함이 실제 세력관계의 수준 밑으로 내려가지 않으며 오히려 그 세력관계에 앞서도록 하는 것, 이것이 대중파업 시기에 지도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임무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도는 어느 정도 저절로 기술적인 지도로 바뀐다. 사회민주당의 일관되고 단호하며 선진적인 전술은 대중들 속에 안정감과 자기확신, 투쟁의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노동계급을 과소평가한 것에 뿌리를 둔 유약하고 머뭇거리는 전술은 대중에게 해롭고 혼란스러운 결과를 불러일으킬 따름이다 (로자의 <대중파업론> 중에서)

 

자발성은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었지만 또한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 과정에서 확인한 것은 완전한 자발성이란 없었다는 것이다. 가장 뛰어난 자발성조차 의식성과의 결합 속에서만 구현되었다.
평조합원들의 민주적 기관은 아래로부터의 자연발생적인 요구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에 결합하고 있었던 한 사회주의자의 계획에 의해 대단히 의식적으로 조직됐다.
평조합원들은 자신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가슴 속에 담아준 자신의 이야기, 분노와 희망, 투쟁과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평조합원들의 발언은 대단히 짧았지만 명쾌했다. 군더더기 없이 사건의 본질에 접근하고 있었고 투쟁의 요구와 전술방향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었다. 평조합원들의 발언 하나하나가 주옥같은 선동이었다. 계획 속에서 평조합원들의 자발성이 성장했으며 이 자발적 활력이 흔들리는 지도부를 강제하는 의식성을 구현했다.
동성기업 투쟁은 평조합원들의 자발성과 지도부의 의식성이 조화롭게 결합된 투쟁이었다. “시트조합원은 신규업체와의 근로계약을 거부한다. 사측이 시트조합원을 공격(해고)할 시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즉각 쟁의행위에 돌입한다”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의 단호한 방침은 동성기업조합원들에게 두려움을 넘어 안정감을 갖도록 했고 동성기업 조합원들에게 놀라울 정도의 투쟁 결의를 불러일으켰다.
동성기업 조합원들은 11월15일 머뭇거림 없이 담벼락을 넘어 라인점거투쟁을 조직했다. 동성기업 조합원들의 라인점거투쟁은 직선으로 1공장점거투쟁까지 이어졌고 이 직선 위에는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평조합원들의 열정과 창조적인 직접행동이 있었다.
11월15일 현대비정규직지회 1,100여명의 평조합원들은 1공장 CTS공정에 모였다. 전면파업을 통해 만난 1,100여명의 평조합원들, 가슴 벅찬 감동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치떨리는 경쟁”과 단절했다. 집단적인 힘 속에서 그들은 미래를 꿈꿨다. 현대차자본의 목젖을 힘껏 움켜쥐었다.
공장이 멈췄다. 정규직화 투쟁에 대한 자기확신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들을 휘감고 있었다. 현대차비정규직지회 지도부도 전혀 예상치 못한 평조합원들의 놀랍고 경이로운 자발성은 바로 지도부의 과감한 전술방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조합원들의 ‘자발적 의식성’은 조직운동으로 구현되지 못했다. 평조합원들은 “우리는 싸울 준비가 돼 있다. 지도부는 흔들리지 마라”고 호소했지 자기 스스로 흔들리는 지도부를 대신해 현장투쟁지도부로 뛰어오르기 위한 용기와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평조합원들의 민주주의는 흔들리는 지도부를 대신해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못했다. 이것이 평조합원들의 자발성의 약점이었으며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2차파업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다.

 

 

△ 출처 : 울산노동뉴스

평조합원들의 자발성의 최대치는 흔들리는 지도부가 올바른 방침을 내리도록 하고 지침이 결정되면 성실하고 헌신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지도부가 흔들릴 때 평조합원들도 흔들렸고 나의 동지들이 현대차지부 상집간부들에게 폭행당하면서 끌려나갈 때 지도부가 침묵하자 평조합원들도 침묵했다.
평조합원들의 거듭된 호소와 비판에도 지도부가 반복적으로 흔들리고 오늘 지침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바뀌고 평조합원들의 통제를 벗어나자 평조합원들의 계급적 활력은 불균등해지기 시작했고 이탈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현대자본의 폭력은 하나의 두려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동자민주주의는 자발성과 의식성의 결합, 평조합원들의 계급적 태도와 전투적 행동을 조직하는 투쟁하는 지도부의 결합이라는 것을 현대차비정규직 공장점거파업은 가르쳐주고 있다. 이는 곧 평조합원들의 대중지성의 발전, 자발성과 창조력의 성장은 의식성과의 결합을 통해서만, 자신의 투쟁하는 지도부를 건설함으로써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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