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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전망][노동운동]희망을 잃어버린 노동운동, 희망운동이 대세

‘선거’에 매몰된 노동자 ‘정치’

총선과 대선을 앞둔 2012년의 ‘의회정치’ 바람은 노동운동에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운동세력뿐 아니라 야당까지 탄압하면서 부르주아 정당들까지 포괄하는 야권연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면서 반MB전선이 모든 운동과 정치의 흐름을 끌고 갔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미명 아래 전현직 노조관료들은 선거에 올인하고 있고 총연맹과 산별연맹은 선거조직으로 변신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민주노동당이 탄생했을 때 확정되었던 민주노총의 ‘진보정당 배타적 지지방침’에 대한 논의는 대의원대회에서 또다시 흐지부지되었다. ‘3자 통합당 배타적 지지 반대와 올바른 노동자계급정치 실현을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 선언운동본부’가 조합원 311명의 서명을 받아 이 안건과 관련한 임시대대 소집을 요구했으나 집행부는 형식적 오류가 있다며 반려하는 등 정파갈등과 ‘진보정당’ 사이의 마찰을 격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민주노총의 지침에 따라 투표를 하지는 않는 듯하다. 때문에 정치방침에 대한 논란은 정계진출을 바라거나 의회정치에 환상을 가진 활동가 혹은 정치활동에 대한 민주노총 조직의 인적·재정적 활용을 둘러싼 노조관료 간의 싸움으로 머물러 있다.
이런 양상은 조직이 합법화된 이후 정부 및 자본과의 파트너십을 형성하는데 매진해온 민주노총의 우경화된 모습을 잘 보여준다. 관료들은 단위사업장 투쟁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과 협상을 하거나 각종 정당, 정부기관들과 만든 연석회의를 통해 자본을 압박하는 방식을 취한지 오래다. 투쟁사업장 지원이나 미조직노동자 조직화가 조직노동운동의 과제에서 점점 밀려나고 있다. 운동의 주체를 강화·확대하기는커녕 상층부와 현장 및 투쟁사업장 사이의 괴리와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올해 8월에 총파업 계획을 잡고 있지만 총선과 대선 사이에서 바람을 잡는 행사 이상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자본의 공격과 조직노동운동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유연화라는 일관된 기조의 연장선상에 있다. 탄력근로시간제가 확산되면 서비스업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파트타임와 같은 단기계약직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대공장에서는 수년 동안 미뤄져왔던 주간연속2교대 시행방안이 이에 부응하는 교섭거리가 될 것이다. 올해 임단협을 앞둔 현대자동차를 필두로 하여 노동강도 강화와 일정정도의 임금축소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타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후퇴조차도 사측의 강경함으로 인해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년간의 무쟁의로 안정화된 파트너십을 깨면서까지 투쟁이 촉발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 타임오프제와 함께 시행된 복수노조는 전투적 노동운동을 유지해왔던 금속제조업의 중소·지역노조에 타격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교섭창구단일화를 핑계로 벌어지는 교섭해태 속에 사측의 지원을 받고 등장한 어용노조가 기존 노조 및 조합원들에게 혼란을 주면서 산발적인 투쟁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정책 기사 참조)
노동시간 단축과 복수노조는 소수의 대공장 정규직과 다수 노동자들 사이의 이해의 차이를 더욱 벌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수의 노동자들이 생존권 악화와 노동탄압에 고통 받겠지만 금속과 공공의 대규모 사업장은 올해 역시 별다른 투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지난 2월23일 열린 현대차 불법파견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이 대공장 운동에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듯하다. 이는 2010년 말 현자울산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점거파업 이후 주춤했던 대공장 비정규직노조운동이 다시 꿈틀거리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미 파견법이 이전보다 개악되었고 자본 역시 공장에 불법파견 요소를 많이 없앤 상태이므로 판결이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법적 해석다툼 속에 적용되는 노동자와 아닌 노동자를 가르는 것, 그리고 이전의 경험처럼 금속노조·현대차지부와 현대차 자본 사이의 교섭틀에서 사안을 축소시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와 투쟁의지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동희오토와 같은 불법파견의 요소가 없는 비정규직과 단기계약직, 2·3차 하청노동자에 대한 배제는 여전하다.
그러므로 법률에 대한 의존성 문제와 비정규직노동자 내부의 이해와 갈등을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지가 이 투쟁이 의미 있는 투쟁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정규직노조의 통제 하에 소수의 정규직화를 성과로 남기는 것에 그칠 것인가를 판가름하게 될 것이다.

 

 

 

조직노동운동 체계를 벗어난 투쟁,
희망운동이 대세

조직노동운동이 방치한 대다수 노동자들의 투쟁은 점차 ‘희망운동’이라는 형태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희망버스로 시작된 소위 ‘희망운동’은 투쟁사업장들이 모여 진행했던 품앗이연대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다. 촛불투쟁 이후 다시 등장한 민주주의 운동과 SNS의 빠르고 광범위한 정보력이 결합하며 그 외연이 넓어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크레인 투쟁이 일단락된 뒤 희망발걸음으로 확대되어 투쟁 1500일을 넘긴 재능이 희망색연필로, 정리해고 및 비정규직 사안을 가지고 수도권을 걸은 희망뚜벅이로, 아직도 진행 중인 한진 정리해고는 희망의 소금꽃 열매로, 쌍용차 공장 앞에서 희망텐트로 이어졌다. 희망운동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방식을 통해 노조로 묶이지 않은 다양한 시민들과 만나며 투쟁에 대한 사회적 지지를 획득하고자 애쓰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자본의 힘이 법을 넘어서면서 노조를 건설하거나 단협을 유지할만한 힘이 약한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장기화되기 일쑤이고, 사법부와 공권력에 의해 쟁의행위 및 재산·신체 구속이 극악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대부분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이 현장 밖으로 밀려난 상황이고 상급단체나 총연맹의 전폭적인 지지와 연대가 없는 상황에서 단사만의 투쟁으로 역부족인 상황에 있다. 이로 인해 투쟁방식이 ‘회사 때려부수기’에서 희망버스 운동처럼 사회적인 정당성과 지지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 듯하다. 때문에 이러한 흐름은 투쟁을 선택하는 노동자에게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운동은 대개 총연맹을 위시한 조직노동운동체계에 기대지 않고 자체적인 사업운용과 전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다양한 정치·연대단체들과 연계하고 대사회·대시민 이슈화와 캠페인을 통한 대중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만간 서울 도심을 거점으로 하는 점령운동인 희망광장으로 확산될 예정이다. 희망광장은 총선시기와 맞물려 노동 사안을 이슈화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움직임은 민주노총 조직의 해체를 반영하고 있다. 과거에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등 공식단위에 할 일들이 연대단위에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전통적인 노동자 투쟁의 심각한 고립과 무기력 상태를 반영하는 것이다. 실제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이미 주체들의 역량이 소진된 투쟁을 김진숙이라는 상징적 아이콘과 희망버스가 외부에서 강제한 측면이 컸다.

 

보다 열린 운동으로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과거와 같이 폄하할 수는 없다. 90년대 중반에는 노동운동의 영역과 시민사회 운동의 영역이 뚜렷히 분리되어 있었으며, 김대중-노무현 정권 아래에서 그것은 더욱 심화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십 수 년 가까운 사회적 변화로 말미암아 고용과 생존의 불안정성에 끊임없이 고통 받고 있는 무정형의 노동자층이 증가했으나 조직노동운동으로부터 배제되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조직노동운동 내부에서도 대규모 사업장 기반의 보수적인 중심부와 이들로부터 지지와 엄호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중소사업장의 투쟁사업장을 중심으로 한 주변부가 분리되었다.
희망운동은 조직노동자만을 주체로 보고 그들이 일하는 제조업 현장만을 운동의 중심지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아직 노동자로서 정체화되지 않은 많은 시민과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열려 있음으로써 이들의 접합지점으로 기능할 가능성이 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연대는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협소한 조합주의 운동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아직 민주주의적 대중운동의 일각을 이루고 있는 계급적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계급적인 시각에 눈을 뜰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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